무제

키스데이라고 하길래요

장르연성 by 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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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 10 이후 시점
    * OC 설정 대거 차용
    * 차기작 <Moonvale>과 그 선공개 설정 일절 미반영
    * 퇴고 예정 X



한밤중이었다. 이블린이 남자 친구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조물딱거리는 동안 제이크는 유순하게 팔을 늘어뜨리고 그녀의 손길에 얼굴을 맡기고 있었다. 그녀는 도대체 존재는 하는지 모를 ‘최적의 각도’를 찾다가 막 포기한 참이었다. 제이크가 응원의 의미를 담아 눈을 몇 번 끔적거렸지만 맥진한 이블린에겐 닿지 않았다.

키스하기 좋은 자세를 탐구하지 않고도 환상적인 첫 키스를 나누는 건 기대도 안 했다. 특히 외부와의 교류라곤 여태껏 없다가 더스크우드 사건으로 겨우 밖을 나다니게 된 두 아웃사이더들에겐 더욱 그랬다. 그나마 마지막 키스 경험이 근소하게 더 가까운 이블린이 총대를 멨다. 하지만 이건 몹시 번거롭고 면구스러운데다 귀찮은 일이었다. 그녀는 긴장하느라 꾹 쥔 뺨 사이로 제이크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걸 보고 두 번 웃음을 터뜨렸고, 무언가 감이 잡히는 것 같을 때면 그 파란 눈에 여지없이 눈길이 뺏겨서 세 번인가 도망을 쳤다. 이 나이 먹고 겨우 키스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진 탓에 그녀는 손을 툭 미끄러뜨렸다. 제이크의 양어깨에 얇고 가는 손이 맥없이 얹혔다.

“얼른 뭔가 해 봐, 제이크.”

“뭐를?”

“뭐든! 가령, 그 천재적인 두뇌로 브라우저 하나를 통째 해킹해서 최적의 키스 루틴을 찾아낸다든가.”

“기각한다. 실용적인 정보를 추리는 데에 시간이 너무 걸려.”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말이. 투덜대면서 이블린은 괜히 남자 친구의 후드티 모자를 매만져 정돈했다. 시선이 자연히 그 안으로 흘렀다. 긴 목과 단단한 승모근, 길고 곧은 쇄골. 도드라진 목젖. 그리고 그 모든 걸 덮은 밤 도시의 불빛들…….

“긴장했군.”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테고.”

“이런 건 너답지 않다는 뜻이었다.”

제이크가 둘이 현재 처한 상황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예시를 덧붙였다. 넌 뭐든 큰일을 앞두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경향이 있지. 이를테면,

“거기까지만 해, 제이크 던포트.”

“난 네가 고주망태가 돼서 내게 전화한 일 같은 건 언급할 생각이 없었는데, 무슨 생각으로 내 말을 끊은 거지?”

“또 짜증 나게 굴지.”

“네가 왜 날 놀리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지, 요즘 들어 조금 알 거 같다.”

명백히 웃음을 참는 얼굴로 그가 여자 친구의 쇄골 아래에 이모티콘을 그렸다. :) 하지만 이블린은 그의 신체에 이모티콘을 그려 답하는 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얄미운 연인을 노려보기나 했다. 제이크는 약간 민망한 듯 목을 가다듬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네가 우선 해 보고 시행착오를 겪는 방법을 선호할 줄 알았다. 사전에 모든 요소를 고려하는 건 오히려 내가 하던 일이지.”

그러니까 돌려 말해 그는 지금 연인 간의 기념비적인 첫 키스를 해치우자고 들이닥친 이블린이 정작 입술을 부닥쳐 주지 않아서 안달이 난다는 의미였다. 

그 의문에 대한 답부터 말하자면 그녀도 그러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는 통에 지금은 갑갑하다 못해 지쳐서 집에 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둘이 있는 장소가 바로 그 당사자의 집이었는데도. 그러나 이블린은 눈 딱 감고 입술을 약 50cm 앞까지 들이미는 그 행위가 그렇게 어려웠다. 방금까지 화를 낼 기색으로 눈을 치떴던 이블린이 어깨를 둥글게 수그렸다.

“그랬다가 네가 실망하면 어떡해.”

“이블린. 난 고작 이런 걸로 네게 실망하지 않는다.”

“그건 모를 일이지…….”

네 자아존중감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제이크가 이전에도 했던 물음을 다시 뱉었다. 이블린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신과에서 처방받는 약 개수가 그대로인 점으로 그 질문을 깔끔하게 회피할 수 있었다. 변하고 싶은데 잘 안 되네. 때마침 밖에서 차가 달리는 소리가 요란했기 때문에 둘 사이엔 잠깐 정적이 들어섰다. 이블린은 제이크의 뺨에 물든 야경을 곁눈질했다.

“네가 왜 이렇게까지 나한테 소중해진 건지 이해가 안 돼.”

“모든 사랑은 결국 비이성적이라고들 하니까.”

“너도 이해 안 된단 뜻이지, 그거?”

Touché. 중얼거린 제이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블린은 그래서 그렇다고 한탄하듯 답했다. 그런 그녀를 제이크의 푸른 눈이 가만히 응시했다. 그녀가 그 새파란 눈짓에 흠칫거렸다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시선을 피하다 못해 결국 마주 볼 때까지. 그는 연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눈을 슬쩍 접어 웃어 보였다. 눈을 툭 떨궜던 그녀는 남자 친구의 입술을 잠깐 멍하니 들여다보더니 제풀에 놀라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쯤 되어서 고백해야겠군.”

이블린이 잠자코 눈을 깜박였다. 제이크는 담담하게 말했다. 네 방금 제안, 사실은 이미 시도해 봤다.

“방금 내가 뭘 제안했는……. 최적의 키스 루틴은 정말 온전히 내 헛소리였는데도.”

“안다. 근데 바로 그 헛소리를 나도 혼잣말로 꺼내 봤다는 게 문제지.”

그리고 그는 곧바로 이어서 ‘결국 각자 직접 해 봐야 안다’는 유의 결론을 내밀었다. 아주 마음에 안 드는 쪽으로 이상적인 답안이었다. 이블린이 이마로 제이크의 어깻죽지를 들이받았다.

“아야.”

“…약속해.”

“네게 실망하지 않겠다고?”

그녀가 고개를 처박은 채 끄덕이는 바람에 그의 후드티가 양껏 구겨졌다. 그녀가 간혹 보이는 자신감 없는 말들을 이제 제이크도 어느 정도 알아채고 곧잘 받아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 이런 얘기를 덧붙이는 것도.

“걱정 마.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내 전 상대들은 하나같이 내가 키스를 못 한다고 하더군. 그러니까 둘 중 누군가가 실망한다면 그건 네가…….”

“내 남자더러 누가.”

“응?”

이상한 데에서 핀트가 잡힌 이블린이 눈에 불을 켜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느라 남자 친구의 턱에 정수리를 거의 부딪칠 뻔했지만 그녀는 그런 사사로운 데에 둘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누가 내 남자 못났대, 사실 넌 천재적으로 잘하는데 지가 형편없어서 그렇게 느낀 거 아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상대를 두고 그녀가 몹시 역정을 냈다. 제이크는 애매한 낯으로 그녀의 위 팔뚝에 손을 댄 채 얌전히 듣고 있다가, 여자 친구가 씨근대는 틈에 냉큼 다시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네가 확인해 보면 되겠군.”

“뭘?”

“내 키스 실력 말이다.”

그리고 제이크가 이블린의 허리를 부지불식간에 끌어당겼다. 이블린은 대략 20분간의 노고가 흔적도 의미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직후 부딪는 말캉한 입술의 감촉도.

그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탐구적이었다. 입술을 비집고 그 안의 치열을 혀끝으로 더듬는 데까진 수월하게 성공했으나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는 없었는데, 제이크는 이블린의 이를 비틀어 여는 대신 그녀의 앞니에 쪽 소리를 내며 잠깐 떨어지길 택했다. 그녀는 별안간 들이닥친 불청객 때문에 하얘지려는 머리를 가까스레 붙잡았다. 검은 고수머리를 헤치고 이블린의 손가락이 그의 뒤통수를 감쌌다. 그는 놀랐는지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려다가 이블린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의 사과가 육성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혀가 숨통을 틀어막았다. 끝을 마주치고 그 사이로 쓱 미끄러진 혀가 입 안쪽을 간질거리는 동안 제이크는 신중하게 이블린의 혀 밑을 누르고는 혀뿌리를 타고 올라왔다. 움츠러든 이블린의 어깨를 그의 손이 꾹 쥐었다가 품에 넣었다. 이블린은 손마디가 도드라진 그 흰 손가락이 등을 더듬다가 브래지어 끈 위에서 잠깐 버벅이는 걸 느꼈다. 귀까지 간질거리는 기분이 된 그녀가 혀를 피했다. 하지만 남자 친구가 제법 집요했기 때문에 도망이 오래가진 못했다. 도대체 언제 눈을 감아야 하는지 몰라서 가늘게 뜬 눈을 잘게 깜박거리다가, 제이크가 감았던 눈을 뜨는 바람에 시선이 마주치자 질끈 감았다. 입안으로 자그마하게 그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이블린은 마냥 입안의 혀처럼 —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라 의미가 이상해졌는데, 그의 입과 그 안에 있는 그의 혀처럼 — 굴다가 정신도 못 차리고 넘어가 통째 삼켜지고 싶진 않았다. 혀를 빨아 당기는 압력이 느껴지자 지척에서 그의 미간이 구겨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뺨 위를 스치는 제이크의 속눈썹이 움찔거렸다. 그간은 도대체 왜 소설에서 키스를 하면 숨이 막힌다는 묘사를 해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코는 입과 별개의 기관이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둘을 따로 쓰는 게 대부분 익숙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블린은 입안의 통제권을 연인에게 반쯤 넘기게 되면 호흡계가 모조리 고장 난다는 사실은 몰랐다. 결국 그녀도 숨이 모자라 억지로 고개를 물려야 했다.

“흣…….”

“…이블린.”

별안간 이른 새벽처럼 잠겨버린 목소리로 제이크가 입안에 그녀의 이름을 굴렸다. 깊은숨을 헐떡이며 그의 목에 매달린 채로 이블린은 고개만 겨우 끄덕였다. 제이크가 알아낸 바가 전혀 틀리지 않았다. 어차피 각도 같은 건 신경도 못 쓸 테니 그냥 해 보는 게 제일이었다.

“그래서 감상은?”

“으응?”

“날 모욕한 이들에게 할 말이 있느냔 뜻이다.”

“…다 모르겠고 질투만 나는데. 이런 키스를 나보다 먼저 가져갔단 말이지…….”

하하. 제이크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무의식중에 따라 웃으려던 그녀는, 그러나 제이크의 눈빛에 가로막혀서 다음에 하려던 일을 모조리 잊고 말았다. 그녀의 연인은 푸른 눈을 기이한 빛으로 물들인 채 이블린의 입술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슬쩍 입술을 감쳐 물었다가 그 위에 남은 연인의 향을 맡고 어깨를 떨었다.

“그래서, 한 번 더?”

“…한 번만?”

“아니.”

그답지 않게 빠른 속도로 답이 돌아왔다. 이블린은 내려앉다 못해 명치 근처에서 뛰는 듯한 맥박을 느끼며 발가락을 꼬물거렸다. 그리고 남자 친구의 앞머리가 그녀의 이마를 간질일 즈음 다시 눈을 감았다.


// 4,697자 24.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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