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렌에 대해서

그 긍지에 대해서

루크 헌트 드림

“마드모아젤 르나르는 공주님 같군.”

“네?”

 

툭. 루크의 한 마디에, 아이렌이 물고 있던 스푼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잠깐, 더럽게!’ 저 멀리서 에펠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던 빌이 작지만 요란한 추락음에 주의를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를 향해 돌아보는 이는 없었다.

 

“가, 갑자기 뭐예요?”

“이런. 그 놀란 얼굴 귀여운걸. 네가 이렇게 까지 황당해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네. 확실히, 선배의 엉뚱함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어퍼컷을 먹으니 어째야 할 줄을 모르겠네요.”

“하하! 멋진 비유인걸!”

 

루크는 얼빠진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미사여구를 붙여 말하는 아이렌이 재미있다는 듯 웃어 보였지만, 아이렌은 웃을 수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자신에게 자신을 공주님이라고 말하는 이가 나타난 것은 7살 유치원 졸업 이후로는 처음이었으니 어쩌겠는가.

자신은 공주님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공주보다는 마녀가 어울렸고, 좀 더 자세히 따지고 들자면 애초에 동화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만약 자신의 캐릭터를 장르로 치자면 다크 판타지의 반동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던 아이렌에겐 루크의 발언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고, 충분히 물고 있던 스푼을 떨어뜨릴 만한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그, 일단 이유나 좀 들어보죠.”

“물론 이야기해 줄 생각이었어, 마드모아젤 르나르. 일단 먹던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으며 듣는 건 어때? 자아, 새 스푼이야.”

 

여전히 자신들에게 무어라 야단을 치고 있는 빌은 보이지 않는지, 루크는 태연하게 아이스크림을 사 올 때 들어있었던 여분의 스푼을 내민다. ‘아아, 멘탈 한번 강철이시지.’ 쭈뼛쭈뼛 새 스푼을 받아든 아이렌은 제가 떨어뜨린 스푼을 쓰레기통에 던져놓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확실히 너는 사회 통념상 말하는 공주님과는 거리가 멀지 몰라. 언젠가 학교를 무단 점거했던 그 유령 공주님처럼, 천진난만하고 조금은 제멋대로에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소녀는 아니니까.”

“그렇죠. 오히려 그런 의미에서는 빌 선배야말로 공주님일지도. 천진난만하신 건 아니지만.”

“흥, 공주라니. 나는 이왕이면 여왕이 좋아.”

“아. 네. 어쨌든, 그래서요?”

 

‘아이렌!’ 이제는 간이 제법 커져 자연스럽게 제 말을 받아쳐 넘기는 아이렌을 향해 빌이 호통치자, 근처를 지나던 폼피오레 학생들이 웃음을 꾹 눌러 삼켰다. 물론 에펠은 참지 못하고 ‘풋!’하고 웃음을 흘리고 말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시선은 대화의 중심인 아이렌과 루크에게 쏠려있었기에 그 웃음을 눈치채는 이는 없었지.

 

“하지만 너는 공주에게 가장 필수적인 조건을 하나 가지고 있어. 그것이 너를 그 무엇보다도 공주같이 만들어 주지.”

“……뭔가요, 그게? 혹시 낡은 기숙사에 살며 동물과 파트너를 이루어 역경을 이겨내고 뭐 그런 이유는 아니겠죠?”

“하하. 아니야. 그건 확실히 공주님다운 설정이지만, 절대 결정적인 이유는 되지 못하지.”

 

아아. 아이스크림이 녹아간다.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먹다 만 컵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도 모르는 학교의 홍일점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본 루크는, 직접 그 손에서 스푼을 빼앗아 액체도 고체도 아닌 상태의 아이스크림을 떠주었다.

 

“너에게는 긍지가 있어. 아이렌.”

 

뚝. 뚝. 새하얀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잔해가 컵 안으로 떨어진다. 아이렌은 제 입술 근처로 내밀어진 아이스크림을 반사적으로 피했다가, 이내 미심쩍은 눈으로 입에 담고 질문했다.

 

“웬 긍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그저, 나는 네가 이 학원에서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비굴하게 구는 법을 본 적이 없어 그리 판단내린 거니까.”

 

마치 어린 것을 먹여 살리는 어미처럼, 혹은, 제 사냥개에게 사냥을 떠나기 전 영양을 보충해주는 사냥꾼처럼. 루크는 남은 아이스크림을 모두 아이렌에게 떠먹이며 제 지론을 늘어놓는다.

 

“아이렌. 너는 약해. 마법도 쓸 수 없고, 믿을만한 연고자도 없지. 그렇지만 언제나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예의는 갖추되 필요 이상으로 허리를 숙이진 않아.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 붙은 것은, 남을 위한 사과가 아니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버릇이니 비굴한 것과는 거리가 있지. 나는 다 알아. 너를 쭉 봐왔으니까.”

“이거, 프러포즈인가요?”

“오, 이런 사냥꾼이랑 결혼해도 괜찮겠어? 공주님.”

 

어느새 아이스크림은 사라지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묘한 분위기 속 서로를 바라보던 아이렌과 루크는 누구 하나 고개를 빼지도,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고 거리를 유지했지만…… 그 긴장감은 폼피오레 최고 존엄에 의해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둘 다 웃기지 마. 신성한 기숙사 담화실에서 무슨 소리야?”

 

당장이라도 입술이 부딪칠 것 같은 거리감에, 빌이 발을 한 번 구르고 루크를 노려본다. ‘이런, 이런.’ 단호한 방어벽에 고개를 뒤로 뺀 루크는 스푼을 빈 아이스크림 통에 넣어두고 일어났다.

 

“뭐, 그래도 역시 너는 여우가 더 잘 어울리지만.”

“저도 그쪽이 더 좋아요. 시시한 프러포즈 말고, 제대로 화살로 절 맞추러 오세요.”

“하하. 그래. 이런 점이 정말로 공주님 같다는 거야.”

 

이 이상 떠들었다가는 정말로 빌에게 혼나겠지. 점점 매서워지는 빌의 눈빛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루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담화실 밖으로 나섰다.

‘아이렌. 당분간 기숙사 담화실에는 오지 않도록,’ ‘아니, 왜 제 책임처럼 되었죠? 오늘만 해도 선배가 절 부른 건데요?’ 뒤에서 들리는 사이좋은 말싸움은 마치 노랫소리 같다.

발걸음은 비록 바깥으로 향하고 있어도 두 귀는 제가 앉아있었던 그 장소를 향해 열어두고 있었던 루크는, 저절로 떠오르는 두 사람의 표정에 입을 가리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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