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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차

마비노기 베임네크 드림

드림 by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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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비노기의 비공식 팬 창작물입니다. 모든 세계관 관련 저작권은 데브캣에 있습니다.

  • 개인적인 캐해석이 담긴 드림글입니다. 캐해석 관련 이야기는 받지 않습니다.


걱정이라고는 없는 듯한 평화로운 풍경. 밀레시안에게 주어진 땅, 낭만 농장. 주변의 이들은 쓸모없는 땅을 처리한 것 아니냐며 화를 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밀레시안들은 그 땅을 만족스러워했다.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꾸미고, 형태를 만들고, 공간을 채운다. 그렇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질적인 공간이 되는 것이다.

곧 운석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와는 무관하다. 아무것도 없이 맑은 하늘. 저주나 악몽, 비극적인 모든 것들에서 벗어난 공간······. 풀과 꽃이 가득한 공간과 어울리지 않게 중갑을 입고 있는 이는 눈으로 훑는다. 그 무엇도 이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니, 어쩌면 이곳이 도피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허락하지 않는다면 출입이 불가능한 공간. 그것만으로도 이곳을 안식처 삼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생각은 그것으로 끊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영웅이다. 이 세계를 몇 번이고 반복해 가며, 구하려고 하는 이. 그러니 도망치려 하더라도 도망칠 수 없고, 쉬고자 하더라도 쉴 수 없다.

 

평화로워 보이는 풀밭 위에 차려진 다과회는 공간만큼이나 이질적이다. 그것도, 대적하는 이와 함께 하는 평화로운 다과회라는 건 허락되지 않을 일이다. 이런 것은 그녀가 아끼는 작은 여왕과 함께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던가. 세계에 어색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실패한 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우유나, 설탕이 필요한가요? ······단 걸 좋아하지 않다면 그냥 마시는 게 좋을 거예요. 차 자체도 단 편이라 들었어요.”

“그렇다면 필요 없겠군. 그나저나 ‘들었다’고?“

“네. 신시엘라크에서 보내준 차거든요.”

 

신시엘라크. 그 이름에 걸맞게 수색은 맑았다. 품종 또한 좋을 것이다. 그것이 밀레시안이기 때문인지, 같이 하는 상대가 있기 때문인지, 보내준 이를 제외하고는 이해할 수 없다. 의도적으로 그에 관해 생각한다면 알아낼 수 있겠지만, 그런 사소한 사실에 신경 쓸 사람은 없다.

 

“향이 좋군.'”

“···다행이네요. 독이 들어가면 향이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런가.“

 

저것보다 더 어울리는 말은 없을지도 모른다. 표정의 변화라고는 없이 찻잔을 들어 올린다. 평화로운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것이, 둘에게 어울리는 풍경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스웠다. 반호르에서 할 이야기가 있다며 부른 후 하는 행위가 고작 차에 독을 넣기 뿐이다···. 무른 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것은 너무도 무르지 않던가. 이런 것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쯤은 서로 알고 있는데.

 

“찻잔은 많으니, 마시지 않더라도 상관없어요.”

“마시라고 준 것 아닌가? 받은 성의를 보여야지.”

 

대꾸 없이 응시하고 있노라면 상대방의 울대뼈가 움직인다. 그것을 마셨다는 것을 방증하는 행위. 그것을 보며 에루에트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잔을 내치고, 찻잔을 엎고, 그 자리에서 당장 뱉어내게 하고 싶다. 평화로운 다과회는 깨지겠지만, 그것이 중요해질 턱이 있나.

그들에게 평화란 태초부터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허울뿐인 장식이니 깨지더라도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한순간의 충동으로 그 모든 것들을 엎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에루에트나는, 영웅으로 살아왔고 영웅으로 죽어야 하는 그 존재는 무엇도 하지 못했다. 영웅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결말이다. 정작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독이 든 차라며 건넨 이유는 단순했다. 그것을 마시는지 마시지 않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정말로 죽어도 괜찮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을 마실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야기한 모든 것들이 진실이라는 증거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번만큼은 당신을 찌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죽음을 선물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마시지 않길 바랐다. 당신이 파멸하는 나를 따라 공멸한 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이길 바랐다. 내가 아니라면 당신을 죽일 수 있는 이가 없기 때문에 같이 죽으려고 했다고 믿고 싶었다. 오랜 반복에 지쳐서, 내가 아니라면 당신을 죽일 수 있던 이가 없어서, 사라진다면 언제 당신을 죽일 수 있는 이가 나올지 몰라서··· 그래서, 공멸을 택했다고 믿으려고 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당신에게 내가 거대한 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우리의 끝은 정해져 있지 않던가. 그 끝을 알고 있음에도 죽음을 택한다는 것은 비극적이지 않나. 당신을 아끼면 안 된다. 그를 동정하거나, 애정해서도 안 된다. 발로르 베임네크는 그대로, 악당으로 죽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죽음에 슬퍼하면 안 된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좋을 리가 없죠.“

“단순히 곧 죽을 이와 함께 티타임을 보내서 싫다고 하기에는 이전보다 표정이 더욱 안 좋아 보이지 않나.”

 

볼을 스치는 손.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어, 이미 죽어버린 이와 다를 바가 없는 그것···. 갑주의 차가움으로 묵인하기에는 갑주를 벗은 손의 체온을 알고 있다. 갑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차갑기만 하던 그 손을 안다. 처음에는 그저 갑주가 차가워서 그런 것이라 합리화했으나, 그것마저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사라진 손의 온기를.

지금 무어라 이야기하든 곧 묵살될 의견임을 안다. 당신은 늘 그랬고, 한 번도 들어주지 않던 이를 늘 보아 왔으니까. 무언가를 이야기하더라도, 결국 이것은 반복일 뿐이기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곧 당신을 죽이기 위해 하이미라크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내가 반복하는 것을 알고 있다. 몇 번이고,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 반복해 온 그 순간을···. 당신이 무시한 그것을 그는 알고 있다. 내가 당신의 생존을 바란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다. 수호자는 달가워하지 않으면서도 되돌아 가겠다고 한다면 도와줄 것이며, 결국 나는 당신과 다시 만날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 온 이 순간을 세계가 알게 해서는 안 된다. 이질적임을 세계가 모르게 해야 한다. 그래서, 실패할 것이다. 당신도 알고 있다. 몇 번이고 동일한 시간을 반복하면서 실패할 것을···. 말리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게도, 그 결말을 알고 있는 이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단두대에 가깝지 않던가. 당신을 죽일, 아주 완벽한······.

속이 메스꺼웠다.

 

“그런 걸 마시면서 다른 생각이 안 드는 건가요?”

“이런 거로 죽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않나. 화풀이하고 싶은 거라면 받아주겠네. 이 정도 화풀이는 못 받아줄 것도 아니고.”

“그런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잖아요!”

 

덜그럭, 책상을 내려침과 동시에 다기가 움직인다. 그러나,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기에는, 멀리 와버렸다.

 

“당신은······!“

“그쯤 하는 게 좋겠어, 에루에트나.”

 

이어지는 정적. 에루에트나. 그 이름이 뭐라고 그리 깊게 박히는지 모른다. 그녀는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손을 잡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부정하는 것이다. 오래전에 만났더라면, 적어도 이 반복이 오래 지속되기 전의 그를 만났다고 하더라면, 함께 살아가는 삶을 생각해 줬을지도 모른다고. 그것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을 거라고···.

그러나 그들이 만난 것은 지금이다. 변하지 않고, 변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 아무리 반복하더라도, 실패가 연속되고, 결국 살리지 못하는 그 순간, 돌이키고 싶다 하더라도 결국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의무감인지, 애정인지, 동정인지······ 혹은 그에게서 자신을 겹쳐보는지. 모든 것이 부식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베임네크.”

 

그녀에게 뱉을 수 있는 이름은 그것이다. 아는 이름은 많다. 인지한 것도 많다. 그러나, 그 무엇도 이야기할 수가 없다. 허락되었으나, 결국 내뱉지 못하는 말이다. 결국 이름은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니, 그를 사람으로 보면 안 된다···. 이름이 뭐라고, 고작 한 단어가 뭐라고 사람을 그토록 비참하게 만드는가.

 

“더 할 말은 없나?”

“···네, 그거면 충분해요. 애초에 원하는 건 없었으니까요.“

“다음에는 이런 곳에서 볼 수 없겠군. 그것이 아쉬울 따름이야.”

“······.“

 

평화로운 티타임은 끝났다. 이제는 정말로, 그들에게 어울리는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꿈 하나를 위해 발버둥 치기 위해, 돌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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