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야쿠 드림] The soliloquy: A wisp in sea

커미션 작업물

죽음은 생명 가진 것들이 응당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생사의 경계는 언제나 확고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단 하루, 망자의 날을 제하고.

경계가 그어져 있으면 그 경계 너머와, 너머에 있는 존재를 그리워도 하는 법. 일 년 중 오로지 한 날에 한해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이 생으로 가득찬 세계에 침범하도록 용인했고, 그 덕에 망자들은 경계를 타고 넘어 밀물처럼 허락되지 않은 세계를 유람했다. 그리운 누군가를 위해, 혹은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원한을 위해, 혹은 그저 찰나의 유희를 위해.

그러나 모든 예외에는 그만큼의 안전장치가 존재해야 하는 법.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죽은 사람을 위해 경계간의 통행이 허락되는 이 날, 살아 있는 이들은 죽은 이와 분간하기 어렵게끔 망자와 비슷한 분장을 해야 한다는 규칙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규칙들을 기반으로 ‘망자의 날’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하루는 축제의 형상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어때, 재미있는 이야기였지?”

“아뇨! 그래서 이제 밖에 나가도 된다는 거죠?”

“누가 더 사탕 많이 얻나 내기하자!”

“분명히 내가 압도적으로 승리다!”

 

피가로가 어라, 하고 눈을 깜빡이는 사이 빨리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던 아이들은 무언의 승낙이 떨어지자 마자 쏜살같이 문 밖으로 빠져나갔고, 열린 문 틈으로 축제 특유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피가로의 귀에 들려 왔다. 북부의 망자의 날은 혹한기만큼이나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날이었는데. 이제는 새삼스러워진 남부의 익숙한 낯섬과 흥미로움이 그의 표정에 평이한 미소를 만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턱으로 다가간 피가로는 축제가 한창인 거리를 둘러봤다.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마법사인 그의 눈에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명확히 구분되었다. 잿빛인 낯, 상아빛인 낯……. 그러나 구분은 큰 의미가 없었다. 생사에 관계없이 그들 모두 웃고 떠들며, 때로는 어색해하며 죽음만큼이나 달콤한 과자들에 둘러싸여 있었으니까.

 

망자의 날이 만들어진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고,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날의 기원도, 의미도 잊은 채 그저 축젯날로만 기억했다. 장식들은 (특히나 대륙 중앙에서 남부로 나아갈수록) 점차 화려해졌고, 산 자들이 흉내내는 망자의 모습도 시간이 지날수록 다채로워졌다. 죽은 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다. 어떤 식으로 죽었어도, 어떤 목적을 띠고 산 사람의 세계에 도착했어도 결국은 이 분위기에 뒤섞이게 되었으므로. 이는 또한 산 자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멀리한 채 달콤하고 즐거운 기억을 근원적 공포 위로 켜켜이 덮을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현대에 이와 같은 맥락을 띠게 된 망자의 날이 하필 ‘지난번’ 현자의 사망과 그다지 멀지 않은 게 묘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공교로운 필연 같았다. 현자가 얼마나 갑작스럽게, 의아스럽게 죽었든 어차피 망자의 날이 다가오니 지난 현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며 여론을 조작하기 적절하지 않나. 실제로 새로운 현자는 축제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됐고, 막상 망자의 날이 되니 저마다 기쁨과 슬픔을 갖춘 채로 이 날만의 분위기에 빠져들어 지난 현자 같은 건 자연스레 잊게 됐다. 현자의 죽음이 물거품이라면 바다 표면에 얼마 일렁이지도 못한 채 썰물에 휩쓸린 셈이었다.

 

“그렇지만 너에게는 잘 된 일이지, 현자님.”

 

색색깔로 일렁이는 불빛과 사람들의 치장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피가로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젠 사람들이 부르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는 듯한 지난 현자의 이름을 입에 담는 마법사의 입가엔 여전한 미소가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던 사람 아닌가.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도, 입에 담는 것도 꺼리던 생전의 현자의 모습을 감안하면 지금의 광경을 분명히 기꺼워하리란 짐작이 있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죽음이 존재하는 것도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면 분명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워지길 바랄 것이다. 설령 그로 인해 ‘죽은 본인’이 함께 잊혀지더라도.

 

실제로, 피가로가 둘러보는 거리의 어느 곳에도 전 현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이곳으로 넘어오지 않은 것이다. 당연했다. 망자들 사이에 섞여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를 지켜보는 일 같은 걸 그 현자가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으니.

 

“작년 망자의 날엔 현자님 때문에 참 성가셨거든. 타인의 것이든 자신의 것이든, 죽음 따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사람에게 문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는 둥, 이런 날이 축제가 된 건 말이 되지 않는단 둥, 그냥 달력에서 이런 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둥…. 붙잡고 한시도 놔주지 않으며 그런 소리나 하니 통 지겨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건, 죽은 현자는 모르는 사실. 당시의 피가로는 당연히 그런 속내 따윈 내비치지 않았다. 올해와 다름없이 사람들이 즐거울 수 있다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라며 분장을 도와주고, 과자 통의 장식을 같이 고민해주었을 뿐. 하지만 그의 비밀이란 게 다 그렇지 않던가. 현자가 망자로써 그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혹은 이 거리를 거닐고 있었더라면 결코 혼잣말로라도 입밖에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말을 읊조리는 그의 표정에는 살아 있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편안한 숨이 자리했다.

 

문간에 몸을 기댄 피가로가 눈을 감은 채 즐거이 말했다.

 

“북부에는 이런 속담이 있지. ‘가장 먼저 눈보라를 맞은 집이 그 해의 겨울을 가장 잘 날 수 있다.’ 이 세상에 영원불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현자님. 내가 이 지난한 생을 끈기 있게 인내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 나에게 유일하게 구원이 되는 개념이기도 하고. …그러니 그 축복, 감사하게 받아들이도록 해. 그토록 두려워하던 죽음도 이제는 현자님을 괴롭힐 수 없게 되었으니까. …라기엔 이미 죽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살아서 현자가 들었다면 그에게 악질이라며 비난할까? 혹은 너무나도 당신 다운 사고라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을까? 반응을 상상해보던 그는 쿡쿡 웃음을 흘렸다.

어느 쪽이더라도 피가로가 알 수는 없었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었으므로.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피가로는 이제는 없는 존재가 된 이를 향한 질투 속에서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그의 마지막 중얼거림은 혼령에게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지막했다.

 

“내가 현자님을 받아주지 않아서 나에게 복수하겠다는 이유로 죽음을 고른 게 아니라 참 다행이야. 그랬다면 하마터면 현자님을 잊지 못할 뻔 했으니.”

 

축제의 밝음과 소란이, 가장 어두운 바다의 저편에서 반짝거리며 명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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