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야쿠 드림] Ad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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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현자님.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된 걸 축하해. 이 말을 가장 먼저 해야겠지. 현자님은 가족을 많이 그리워했으니까.

꿈결 속의 바다로 돌아가는 셈이 된 현자님이 부럽다고 생각하기도 해. 그렇지만 현자님이 이곳의 차가운 바다가 아닌 사랑하는 이들의 온기로 가득한 현자님의 원래 세계의 바다로 가게 된 걸 진심으로 기쁘게 여기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라. 그게 내 본심에 더 가깝다는 것도.

 

본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현자님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결정한 이유기도 하니까.

 

현자님도 알고 있겠지만, 인터뷰 때는 이래저래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지. 미안하게 생각해. 추궁하지 않아 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전하고 싶어.

싫었던 건 아니야. 그랬다면 아마 거절했을 테니까. 인터뷰의 취지에는 지금도 동의하고 있어. 나에 대한 것을 다음번 현자에게 남겨야겠다, 혹은 남기고 싶다는 현자님의 마음도 제법 기특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럼에도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지 않은 까닭은 간단해. 현자님의 그 마음과 취지에 동의하는 것과 별개로 내가 그 기록이 의미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애매하게 존재하는 실낱같은 희망이란 사람을 제법 괴롭게 하니까. 혹여나 그 기록을 보고 새로이 온 현자님이, 지금의 현자님이 나에게 그래 주었듯 나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래서 다시금 그런 일을 시도하여 나로부터 거절을 받고 그래서 그 일을 현자님처럼 마음에 두게 된다면…….

나는 이제 누구도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 모두가 즐겁고 해피하게. 그게 나의 꾸준한 바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드디어 현자님의 따뜻한 바다로 현자님이 떠나게 되는 시점에서 이런 편지를 건네는 건 이치에 맞지 않겠지. 그래도 계속 읽어주겠어? 틀림없이, 이 글을 모두 읽고 나면 현자님의 마음이 조금은 더 편해질 거라고 자부하거든.

 

지금부터 적어 내릴 건 현자님의 부탁과 선의를 거절했을 때에 대한 이야기야. 그렇지만 거절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네, 나에게는 현자님을 거절하려던 의도가 없었고, 지금도 없으니. 그때 그랬던 건 그저, 바닷물도 물이니까 괜찮다며 그걸로 갈증을 해소하겠다는 사람을 바닷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말렸던 일에 불과해.

아, 물론 현자님 입장에서는 거절당했다고 느끼기 충분하다는 걸 알아. 그걸 부정하려는 건 아니야. 말했듯, 어디까지나 나의 본심에 관한 이야기일 뿐.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모리?

나는 사랑이란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이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불의 온기를 공유하듯, 모닥불에 잘 구워진 음식을 함께 앉은 옆 사람과 공유하듯, 함께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감각 말이야.

그래서 현자님이 나와 함께 나의 바다에 가라앉아 주겠노라고 해 주어서 무척 기뻤어. 정말로.

 

그런데 사실 함께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이 공유되는 건 아니거든.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야. 공유란 말 그대로 공유.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걸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눠 가지는 것. 만일 내가 현자님의 마음과 사랑을 받았더라면 나는 현자님의 것을 공유받았다고 할 수 있지. 그렇지만 나에게 마음의 반을, 혹은 전부를 줌으로써 비어버리게 된 현자님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사랑을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아. 현자님과 무언가를 공유할 수 없는 사람인 거야, 나는.

주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는 생각은 부디 하지 않길 바라. 현자님이 나의 외로움을 알아채고 채워주고 싶다고 생각한 건 나의 비어있음과 현자님의 비어있음이 같기 때문이었잖아. 주는 것만으로는 괜찮지 않아. 받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어. 사랑이란 그런 거니까.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 공유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기부와는 거리가 먼 것.

그렇기 때문에 현자님의 소중한 마음을 나라는 사람에게 주지 않길 바란 거야. 바다에 닿아 의미 없이 녹아버리는 건 떨어지는 눈송이면 충분하니까.

 

그러니 나는 여전히 나쁘고 냉혹한 마법사인 거지.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돌려줄 수도 없으면서 끊임없이 게걸스럽게 그들로부터 감사와 친애와 애정을 받을 수 있는 행위를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존재니.

 

그런 사실이,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길 바라. 자신의 행동이 돌려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 건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경험인걸. 나는 사람들이 상실이나 비참함을 겪기보다는 평온함과 충만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기를 바라. 그런 하루가 매일 이어지길 바라.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랑도 줄 수 없다면 내가 가진 힘이나 능력으로 사람들이 사랑받는 경험을 더 자주 겪을 수 있게 돕는 일이나마 하고자 해. 그게 내가 외로움 속에서 한없이 서 있을지언정 그 사실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는 이유야. 이런 추한 마음도 사랑의 범주에 속하길 바라면서.

 

그러니까 안녕, 현자님.

언젠가 내가 바다로 돌아가는 날, 온난한 해류가 흐르는 그곳에서 나에게 손 흔들어 줘.

그 인사만큼은 기꺼이 안심하고 받을 테니.

 

 

p.s. 현자님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되어서 기쁜 이유를 특별히 하나 더 밝혀 볼게.

내 이런 민낯을 알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마침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니 정말 홀가분한 거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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