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리라] 마법사는 매달린 자의 밧줄을 끊어내기 위해
커미션 작업물
흰 분필로 그렸던 마법진의 일부를 손으로 쓸어내 지운 유유코는 분필을 쥔 손을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발짝 떨어져 선과 선의 이음새를 바라보다, 도로 자리에 앉아 다시 그것을 지웠다. 그런 행동이 몇 번씩, 거의 십여 번에 가깝게 반복됐다. 유유코가 원하는 형태의 곡선과 교차점이 만들어질 때까지 쉴 새 없이.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조그만 손에서 4분의 1정도가 닳아 없어진 분필이 작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녀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세 발짝을 떨어져 바라본 마법진은 한 시간 전에 비해 진척된 부분은 한 뼘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음으로 넘어가도 미련 남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유코는 몹시 뿌듯했다. 그가 그리려는 진은 이 거대한 건물의 전체 면적을 차지할 정도로 컸으므로 위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 보이는 완성도는 한참이나 형편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이 이상 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는 건 중요했다. 바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면 더더욱.
진에서 시선을 든 유유코는 지면에서 한참 떨어진 높이에 위치한 사각형 창문을 바라봤다. 350년 전 멸문한 가문이 지은 것으로 짐작되는 이 건축물은 나무로 지어진 지상의 공간은 거의 연소되어 있었고, 돌계단을 따라 내려갈 수 있는 지하 공간만 보존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진입을 위해선 계단에 형성된 봉인을 파훼해야 했는데, 먼 시대의 마법 흔적을 간신히 복원하고 기쁨에 겨웠던 것도 잠시, 해제해야 하는 봉인진의 복잡함이 이번에는 앞을 가로막았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유유코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아래에 누가 있는지. 왜 그가 이곳에 있는지까지.
루이가 왕실기사단의 명으로 교국과 벌이는 마력석 쟁탈전에 나가 실종된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력석이 아무리 예측할 수 없는 파장을 만들어낸다 해도, 왕실기사씩이나 되는 이가 그렇게 간단하게 파장에 휩쓸려 사라지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왕실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직접 루이의 신원을 찾아 나서기도 했으나 왕실은 그에게 해야 할 일들이 있지 않냐며 도리어 다른 일을 재촉하는 답을 보냈고, 교국은 유유코의 입국 신청을 받아 주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교국이 보유한 마력석이 불안정해 대륙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마법사의 안전이 우려된다고 밝혔으나, 유유코를 왕국 마법사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 분명했다. 마력석이 불안정하다면 안정화를 위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어하는 게 모든 아카데미와 국가의 입장 아니던가. 마력석이 유유코와 공명해 소유권이 넘어갈 가능성이 염려되지 않고서야 그의 출입을 거부할 리 없었다.
그들이 유유코의 마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유유코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도 이제는 익숙했다. 그러니 그런 건 그다지 상관 없었다. 루이가 실종되지만 않았더라면 앞으로도 쭉 그랬을 것이다. 그때 루이를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미완성된 마법진을 바라보는 유유코의 입맛이 썼다. 그런 후회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돌아간대도 자신은 루이가 스스로 원한 일을 만류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심을 굳힌 루이를 회유하고 싶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루이가 없는 지금도, 루이를 향한 마음은 여전했으니까. 루이가 앞으로 나아갔으면, 타마오의 그림자에서 벗어났으면, 루이가 원하는 검의 길을 걸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쟁탈전 현장에 잠입해 끊긴 마력의 흔적을 수색하기. 루이가 강제 송환에 ‘응답한’ 지점을 밝혀내기. 그곳에 찾아가 숨겨진 건축물을 드러내고, 지하 진입을 위한 파훼진을 완성하기.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옛 시대와 타마오의 자취를 파괴하기.
그로 인해 루이의 검과 자신의 지팡이가 맞부딪친대도. 자신에게 옛 시대의 마법을 파훼할 정도의 역량은 없을지라도.
“내가 갈게, 루이. 기다려 줘. 반드시.”
루이의 검도, 루이도, 루이가 앞으로 펼쳐나갈 시간도 전부 무척 좋아하니까 유유코는 반드시 해내고 말 터였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