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에는 죽은 무대소녀가 돌아온다
카구라 히카리 x 아이조 카렌
할로윈에는 죽은 무대소녀가 돌아온다
w. 에스프레소
안녕, 카구라 히카리. 나를 기억해?
그 소녀는 산뜻하리만치 싱긋 웃으며 말했다. 카구라 히카리라 불린 유명한 무대인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환히 웃는 소녀와 마주하는 일은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다. 히카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오늘의 날짜를 상기했다.
분명, 그 날이었다.
"빨라. 전날이야."
요즘은 전야제가 더 큰 행사 아니야? 그렇게 의구심을 내뱉은 소녀는 소리 없이 히카리에게 다가왔다. 아무도 없는 연습실, 단 둘이 있게 된 연습실. 히카리는 매년 이 순간마다 어째서인지 카렌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을 자신의 '운명의 무대'라고 말해주었던 카렌.
이제는 자신이 서 있을 무대를 새로이 찾아 떠난 카렌.
그리고, 이제는 운명의 무대로 얽힌 약속이 아닌 한 사람의 연인으로서 곁에 있게 된 카구라 히카리. 바로 자신.
무대소녀 카구라 히카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항상 그런 식으로 나를 무시하지 마, 라는 말과 함께였다.
"너는 죽었으니까."
무대인 카구라 히카리는 차갑게 고했다.
"영국에서 한번 죽은 무대소녀. 그것이 너의 정체."
왕립학교 시절이 그립지 않아?
무대소녀는 떠벌이듯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그때 찬란히 빛나고 있었어. 그 누구의 반짝임에도 지지 않을 정도로 눈부셨어. 수도 없이 겪은 동양인 차별에도 너의 반짝임은 빛이 바래지 않을 지경이었지. 관례상 동양인이 따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배역을 따냈을 때도 너는 만족하지 않았어! 오히려 더 노력해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주역을 향해 발걸음을 떼려 했지!
무대소녀는 순간 몸이 흔들렸다. 무대인이 우악스럽게 멱살을 틀어쥐었기 때문이었다. 무대소녀가 무어라 더 말을 내뱉으려 했지만, 무대인은 고개를 홱홱 젓고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기린의 오디션에 참가했다. 결과적으로 반짝임을 잃어 너는 영국에서 죽고 일본에서 내가 다시 태어났다. 그 순간에 무대소녀 카구라 히카리는 한번 죽었다. 하지만 네가 묻는 것은 늘 똑같지."
그 찬란하고 빛나던 시절의 자신을 더는 소망하지 않는 건에 대하여, 말이지.
"항상 답했을 텐데? '우리'는 스타라이트를 모두 연기해버렸다. 새로운 무대, 새로운 배역을 찾아 떠났다. 그 시절의 카구라 히카리로는 돌아갈 수 없는 거야."
하지만 당신은 시시때때로 나를 그리워해. 매년 나를 떠올릴 정도로 힘들어하는 주제에, 강한 척 하지 마.
무대소녀가 툴툴대며 무대인이 틀어쥔 멱살을 풀어냈다. 둘 사이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 하지만 죽은 무대소녀 쪽에는 온기는커녕 기척조차 없기 마련이다. 이것은 카구라 히카리가 보고 있는 환영에 가깝기에.
"택할 수 없었던 선택지에 대한, 미련. 누구보다 우리는 스타라이트했고, 우리는 스타라이트의 신장을 연기했고, 우리는 스타라이트의 마지막까지 보아버렸다. 그것은 네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라, 내가 해야만 하는 배역이었다. 그것 뿐이야."
그걸 늘 나한테 말해야 아는 거냐고? 무대에서 죽어버린 무대소녀라고 너무 막 대하는 거 아니야?
"그런 핑계로 핼러윈마다 나타나지 마. 사무치게 그립고 뼈저리게 후회하더라도 너는 과거에 두고 와야 해."
무대인은 자신의 짐을 챙겨 연습실을 나오려 했다. 등 뒤로 아련한 목소리가 맴돌았다. 그래서, 지금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톱스타가 된 소감이 어때? 히카리는 속으로 읊조렸다. 카렌이 보고 싶어.
"히카리? 와악! 히카리, 갑자기 왜 그래? 오늘 연습실 다녀온 거 아니었어? 빨리 왔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카렌의 품에서 제 얼굴을 부비적대던 히카리가 넌지시 물었다. 카렌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맞다. 히카리, 이거 봐봐. 핼러윈이에요, 핼러윈! 요번에 올리는 극하고 핼러윈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면서 팬클럽에서 스페셜 선물을 해줬어!"
카렌은 팔다리를 쭉쭉 휘두르며 팬클럽 선물을 가지러 갔다. 히카리는 카렌의 다음 상영극 이름을 떠올렸다. 연인이 주역을 따낸 극인데다 제목이 강렬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늑대인간』 . 다름 아닌 카렌은 주인공 늑대인간 역이었다.
이윽고 양손에 팬클럽 선물을 들고 온 카렌이었다. 어느 정도의 포장과 부피를 볼 때 고급 양과자 세트인 것 같았다.
"보답으로 나도 엄청난 슈퍼 하이퍼 메가톤 스페셜급 연기로 보답해드려야지!"
"슈, 슈퍼, 하이…… 뭐라고?"
"잘 해낼 거라고."
"으, 으응."
"히카리."
분주하게 양과자 세트의 포장을 벗기던 카렌이 히카리를 나직이 불렀다. 히카리는 말없이 카렌을 돌아보았다.
"지금의 히카리는 누구보다 빛나는 스타야."
"응."
"히카리도, 잘 해낼 거야."
"카렌도."
"정말이야! 히카리가 나한테 고백했을 때 떠오른다니까."
"그, 그건."
"난 다 기억하고 있지롱. 내가 신국립 엔도 씨 멋있다고 계속 그러니까, 속으로 질투하다가 내가 더 멋있고 예쁘다고 했잖아? 그래서 무대 서는 엔도 씨 기준이라고 했더니―"
"내, 내 인생의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톱스타는! 카렌, 너야! 이건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어!"
히카리가 얼굴이 새빨개진 채 고백 대사를 내뱉었다. 카렌이 까르르 웃었다.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었잖아? 우린 이미 스타라이트를……."
"그냥, 순수하게, 많이 좋아한단 거야, 카렌."
"그리고 그 말도 했었지."
"그래. 확실하게, 카렌을 좋아한다 고백하는 거라고! 아아, 그만 부끄럽고 싶어."
"그치만 히카리, 오늘 연습도 조금 하고, 오자마자 나한테 어리광부리고, 이상했는걸? 자아 히카리, 고개 들고 아 해봐."
히카리가 새빨개진 얼굴을 숨기느라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마자 입 안에 막대형 과자가 쑤욱 들어왔다. 카레에엔, 진짜, 장난 그만 쳐어어, 하고 와작와작 저도 모르게 과자를 씹던 히카리는 문득 몹시 맛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좀 어때?"
그제야 히카리는 카렌이 이것저것 던진 말의 의도를 깨달았다.
"아…… 내 기분 풀어주려고?"
"당연하지! 히카리는 이 시기만 되면 조금 우울해지니까."
"그냥, 이 시기만 되면 놓고 온 것들에 대한 회한이 있을 뿐이야."
"놓고 온 것들에…… 회, 회, 회, 회……."
"미련이라고 해둘게."
여전히 한자가 약한 자신의 연인이다. 영국에서 오래 자란 자신보다 한자가 약한 걸 보면, 아무래도 타고난 거지 싶었다. 가끔 핸드폰으로 모르는 한자를 하나하나 검색하는 카렌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기도 했다.
카렌이 몹시 귀여워진 히카리는 과자를 꿀꺽 삼키고는 카렌을 꽉 끌어 안았다.
"그러니까, 미련은 놓고 왔으니까 카렌은 더 놓치지 않을 거야."
"히카리, 요즘도 말없이 영국행 비행기 타잖아."
주로 스트레스 받거나 나한테 삐졌을 때 말이지, 하고 카렌이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히카리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글로벌판 한정 미스터 화이트 사러 갔던 거야. 그러자 카렌은 히카리의 뺨을 양손으로 천천히 잡아당겼다. 그래서, 영국 팬들에게 제대로 걸려서 사인만 3시간 한 거 모를 줄 알고? 우우으아으아우, 히카리는 결국 괴상한 소리를 내며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때 자신의 반짝임을 모두 내걸어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카렌의 반짝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고 놓칠 수 없는 행복 그 자체가―
아이조 카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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