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연성

잠 못 드는 밤이었는데.

   너와 함께 있으면서 행복한 날들이 많다지만 그렇다고 악몽을 꾸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즐거웠던 꿈속에서 너는, 아주 가끔 날 등지거나 세상을 떠났다. 그런 소식이 들려올 뿐이었다. 네가 나오지 않는 몽계夢界에 나 홀로 무의 세계에서 떠돌다 눈을 뜨면 옷이며 침대보가 축축했다. 오토바이에 타기도 전부터 몸을 기대오는 너에게 어제는 꽂아주지 않았던 빨대를 딸기우유에 꽂아 건네주면, 너는 웬일이냐며 기뻐했다. 지긋지긋한 악몽을 꿨노라고는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글쎄. 식은땀을 소낙비처럼 쏟아낸 몸을 욕실에서 달래고 침대에 앉으면 건너편에 곤히 자고 있는 그 얼굴을 방해할 수 없다는 거겠지.

오늘도 기상 시간까지 그렇게 다루마 인형을 끌어안은 채로 네 얼굴을 바라보는 밤을 보냈다.

   학교에 도착하고 헬멧을 벗자 네가 내 눈 밑을 쓸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고개를 살짝 뒤로 빼내니 잠을 제대로 못 잤냐는 가벼운 타박이 왔다. 연습이 힘들어 그렇겠지, 어물거리면 여자의 피부는 그러면 안 된다는 둥, 후타바항은 내가 특별 관리를 해줘야 한다는 둥, 자기가 좋은 화장품을 가지고 있으니 써보라는 둥 온갖 말이 나왔다. 나는 번거로워지겠다고 생각하며 오토바이를 끈다. 기회가 없던 화장품 자랑을 할 수 있다는 기대에 네 발걸음이 통통거리는 게 보였다. 그래. 저런 애 앞에서 네가 없는 악몽을 꿨다고 말하는 게 가능하냐고.

   쉬는 시간은 화장품 공격에 시달리는 시간이었다. 너는 어디서 숨겨왔는지 수분 크림이며 립스틱, 컨실러, 파운데이션 등을 가방에서 슉슉 꺼내 자신의 책상 위에 늘어놓고는 대뜸 내 앞머리를 훼까닥 젖혔다. 그러자 무언가에 이끌리듯 주변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얼굴에 반강제적으로 철퍽철퍽 발라지는 걸 버텨냈더니 실눈 틈 사이로 립스틱이 다가오기에 고개를 뒤로 쭉 뺐다. 지금은 총연습 시간이 아니며, 이것까지 했다간 전부 압수당할 거라는 말에 너는 내 머리를 앞으로 끌어당기는 걸 멈추고 꺼냈던 걸 도로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결론적으로 내 얼굴은 다크서클이 완벽히 사라지고 피부 톤까지 조금 올라가 화사하게 되었다. 거울로 보이는 모습은 나름 만족스럽게 되었다. 보기도 좋고, 피부도 끈적거리지 않는다. 좋은 건 좋은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느낌이었다.

   레슨 시간이 되었고 나는 늘 하던 대로 너에게 손을 내밀어 파트너 신청을 한다.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관습이었고, 너와 함께 살며 생긴 습관이었다. 널 만나기 전에는 분명 나 혼자였을 텐데 이제는 그때가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너와 같이 태어난 느낌이었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며 박수 한 번. 오늘따라 카오루코 상태가 좋네. 왼발을 옆으로 빼내며 박수 두 번. 역시 춤 선이 예쁘다니까. 새하얀 손을 맞잡고 팔 아래로 한 바퀴 턴. 그런데 오늘따라 몸이 처지는데. 가볍게 몸을 푸는 시간이 지나고 나에게 남은 건 묵직하게 쌓인 피로였다.

   그 이후로는 실수 연발. 네 발을 밟고, 내 발에 걸려 넘어지고, 옷자락을 밟아 미끄러지는 등의 자잘한 미스가 터졌다. 발등의 고통에 놀라 비명을 지르는 너도, 자꾸만 실수하는 나를 혼내던 선생님도 이쯤 되자 이상함을 느꼈는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왔다. 호흡이 크게 흐트러진 내가 앞으로의 커리큘럼을 더 진행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 선생님은 날 양호실로 보냈다. 넌 당연히 함께 따라왔고.

   고운 손에 이끌려 어느새 침대에 누운 나는 전혀 문제가 없다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피곤한 거야 늘 그랬고, 연습이 힘든 것도 늘 그랬으니 오늘도 어제와 똑같다고 침대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네 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날 다시 침대로 내리누르는 손길에 고개를 들자 연갈색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온갖 감정이 쏟아져 내려온다. 걱정, 이상함, 만류, 예민, 염려, 근심, 우려.

   어설프게 올렸던 입꼬리가 차차 내려갔다. 왜 그러냐는 호들갑도 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오늘 꾸었던 악몽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아야 한다. 내가 이리되어버린 이유는 그 꿈에 있을 테니까.

   오늘따라 왜 그래요, 후타바항. 어디 아파요? 몸 상태가 안 좋아요? 아니면 많이 힘들어요?

   으응.

   힘없는 대답을 시작으로 나는 지금까지의 악몽 중에서 가장 끔찍했던 오늘의 꿈을 이야기했다.

   우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말마따나 데이트였다. 어딜 가나 원하는 장소와 먹고 싶은 음식이 튀어나오는 행복한 순간을 즐기던 중, 네가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데이트였는데. 그리고 네가 데리고 온 것은 네 결혼 상대라고 하는, 이름 모를 사람이었다.

   그렇게 네가 그와 함께 사라지고 화과자 가게 앞에 남은 건 나 혼자였노라고, 꿈이란 걸 알자마자 모든 사람이 홀로 남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노라고 말했다.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났다. 고작 그걸로 그렇게 혼자 난리를 쳤냐며 네가 폭소를 했다. 나는 속으로 얼마나 곪고 있었는데. 네가 죽는 것보다, 네가 나에게 욕을 한 바가지 하고 떠나는 것보다 그렇게 사라지는 게 더 끔찍했는데. 볼이 절로 부풀었다. 한참을 웃던 너는 복어처럼 부푼 볼을 가지고 고개를 돌려버린 날 콕콕 찔렀다.

   꿈속의 그 사람한테 질투했어요? 하루종일?

   그러면서 또 웃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났다. 질투 같은 거 하지 않았다고 고개를 다시 홱 돌리자 송골송골 맺힌 눈물방울을 훔치는 네가 보였다. 뭔가 분했다. 됐어! 하며 이젠 몸까지 홱 돌리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불쾌감에 눈을 떴을 때는 참담한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조롱당하고 나니 정말 질투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얼굴에 열이 올랐다. 어린애처럼 당사자 앞에서 칭얼거린 꼴이었다. 부끄러웠다.

   한숨을 폭 쉬고 있으니 뒤에서 네가 이불 안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 놀라 몸을 틀면 내 뒤에 딱 붙어 누워서는 배에까지 팔을 두르고 날 껴안고 있는 네가 있었다.

   후타바항이 가끔 자다 깨는 걸 알아요.

   내 목덜미에서 전해져오는 목소리는 나긋나긋했다. 한껏 뻣뻣해졌던 몸이 타인의 체온과 숨결에 서서히 풀어져 갔다.

   안 깰 줄 알았어.

   그렇게 빤히 보는데 어떻게 몰라요. 그럴 때마다 악몽을 꾸는 거죠? 오늘처럼?

   오늘 같지는 않고. 네가 죽거나, 떠나거나.

   그럴 리 없는 거 알죠?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몸이 떨렸다. 얇은 뱃가죽을 토닥이는 손길이 기분 좋아 잠이 왔다. 으응. 나른한 대답에 네가 또 한 번 웃었다. 규칙적인 손길이 멈추지 않는다. 심장 박동과 똑같이 움직이는 손길은 몸을 부드럽게 흔드는 요람 같았고, 네 목소리는 나긋하게 흘러나오는 자장가 같았다. 졸리다. 수마가 사지를 붙잡고 무의식의 아래로 끌어내렸다.

   쓸데없는 걱정 말고, 피곤할 테니 자요. 오늘은 나도 같이 잘게요.

그 순간의 꿈은 너의 연인이 이스루기 후타바, 바로 나인 행복한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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