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

쟈밀 바이퍼 드림

* 전력 드림 60분 신데렐라 [48회 주제: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

 

 

평소 아이렌은 수다스럽다기보다는 과묵한 편이었다. 말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먼저 입을 열기보다는 남이 말을 꺼내야 자신도 입을 여는 편이라고 할까. 조금 친해지면 먼저 말을 거는 일도 자주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본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상대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타인이 흥미를 보일 만한 이야기를 하곤 했지.

간단히 말하자면, 아이렌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하는 것에 꽤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신비주의 같은 건 아니었다. 상대가 진심으로 궁금해한다면 정말 알아서 안 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의외로 순순히 알려주곤 했으니까. 심지어 ‘거짓말을 하느니 차라리 입을 다물겠다’라는 식으로 고지식한 태도를 보이는 아이렌은 거짓 정보로 자신을 가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쟈밀은 오히려 아이렌이 정말로 입을 다물게 되는 순간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너 무슨 일 있냐?”

 

모든 수업이 끝난 후. 누군가는 동아리 활동을 위해 움직이고, 누군가는 기숙사로 돌아가는 시간. 평소라면 좋은 자리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바쁘게 도서관으로 향해야 할 아이렌이 중원의 벤치에 앉아 멍하니 허공만 보고 있다.

평소보다 어두운 무표정. 유난히 초점이 흐린 제비꽃색 눈동자와 자꾸만 한숨 쉬는 입술과 구겨졌다 펴지는 걸 반복하는 미간까지.

그 모든 것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쟈밀은 체육관으로 향하다 말고 아이렌을 향해 발길을 틀 수밖에 없었다. 제게 묻는 목소리에 눈동자만 살짝 굴려 위를 바라본 아이렌은 인사를 하는 것도 잊고 반문부터 토해냈다.

 

“예?”

“무슨 일 있냐고. 표정이 영 안 좋은데.”

 

‘아.’ 짧은 탄식을 보아하니, 본인 표정이 얼마나 심각한지 특별히 자각하진 못한 모양이다.

하여간, 과묵한 것과 별개로 표정 하나는 솔직한 녀석이다. 쟈밀은 마치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깜빡이는 후배 옆에 앉았다.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거야?”

“그런 건 아녜요.”

“그럼?”

“그냥…….”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 아이렌은 잠깐 입을 닫더니, 이내 작위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말 별거 아니에요. 심각한 일도 아니고, 처치 곤란한 상황인 것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고?”

“제 표정이 그렇게 안 좋나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딘가 아픈 게 아닐까 싶을 정도긴 하지.”

 

이건 과장이 아니었다. 아까 아이렌의 표정은 정말 고통을 참고 있을 때의 표정과 비슷했으니까. 그 고통이 물리적인 고통인지 심적인 고통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지만, 그건 분명 인내하고 억누르는 이가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런 건 잘 눈치채는 쟈밀은 대체 상대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참고 있는지가 궁금해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아이렌은 엄살쟁이 같아도, 오히려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마치 약해진 것을 들키면 가장 먼저 사냥당한다는 걸 익힌 야생동물처럼 말이다.

쟈밀의 말에 생각이 많아진 걸까.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하늘로 돌린 아이렌은 그렇게 잠깐 침묵하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정말 별일 아녜요. 걱정하게 만들어서 죄송해요.”

 

이건 사과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별일이 아니라면 그냥 말하면 되는 걸 왜 입을 다문단 말인가.

여러모로 모순된 태도에 결국 쟈밀의 표정이 안 좋아진다. 왜 이놈의 계집애는 남이 죽상으로 있으면 세상이 무너질 듯 굴며 해결해 주고 싶어 하면서, 제 일에는 이토록 무덤덤한지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뭐가 그렇게 알려주기 싫은 건데?”

“예?”

“정말 별거 아니라면 그냥 말하면 되는 거잖아? 아니면 심각한 일인데 거짓말을 하는 건가?”

“아니, 그런 거라면 차라리 선배에게 상담하지 않았을까요…….”

 

그건 맞는 말이다. 아이렌은 정말로 거짓말은 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이건 좀 심각하다 싶으면, 차라리 속 시원하게 말하고 조언을 구했겠지. 그 와중에도 감정적으로 기대려고 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는 건 꽤 열받는 일이지만. 아이렌은 현명했으니 거짓으로 심각한 일을 숨기는 건 절대 아닐 터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쟈밀은 더욱 답답한 거였다. 아주 자잘한 문제라도, 정말 아무렇지 않은 불편도 제게 공유하고 의지해 주었으면 하는 건데. 이렇게까지 독립적이니, 어쩐지 쓸쓸하지 않은가. 제게는 뭐든 털어놓아도 된다는 듯 다정하게 굴어놓고는, 자신은 그러지 않는 꼴이라니. 하여간 모순 된 인간이었다.

 

“너는 늘 그런 식이지. 남의 문제에는 네가 다 개입하고 싶어하고 궁금해 하기도 하지만, 남이 네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꼴은 싫어하고.”

“뭐. 그런 편이긴 하죠. 싫어한다기보다는 부담스러운 거지만.”

“부담스럽다고?”

“상대가 알고 싶은 건 그냥 무슨 일이 있냐는 걸 텐데, 보통 저는 ‘고작 그런 것’ 정도로 취급받을 사실에 자주 마음이 상하니까요. 그러니,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아요.”

 

과연. ‘네가 이해해라’라던가 ‘그냥 참아라’ 같은 소리가 나올 말을 꺼내느니 그냥 입을 다물겠다는 것인가. 그런 건 서로 기분을 상하게 할 뿐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 구겨진 미간은 펴지지만, 여전히 완전히 속이 시원한 건 아니었다.

 

“나는 너한테 그런 소리 안 해. 알잖아.”

 

아이렌은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제가 기분이 상한다면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감정적인 공감을 해주었다. 마치 ‘머리로 생각해서 나오는 결론은 당신이 더 잘 알 테니, 나는 내가 잘하는 걸로 보듬어주겠다’라는 듯 말이다. 평소엔 무서울 정도로 이성적인 듯 보여도, 한편으로는 당사자도 모르는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직관력. 그건 아이렌의 무기이자 매력이었다.

하지만 그게 제 특기라는 걸 아는 이 여자는, 아주 당연한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자신은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이 기술이, 보통 사람들에겐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당연하지만 쟈밀은 감정적인 위로 같은 건 자신이 없었다.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해결책을 알려주는 건 잘해도, 카림처럼 진심으로 공감하며 울고 웃는 짓은 특기가 아니었지. 그래도, 적어도 소중한 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대답은 아는데. 아이렌이 제게 이러는 건 아니지 않나.

 

“너는 아무렇지 않게 남의 속을 들여다 보면서 네 속은 말하지 않는 거. 비겁하고 치사한 일인 건 아냐?”

“물론 알죠. 저는 자신의 모난 부분에 변명하지 않으며 살려고 하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치사한 방법으로 본인을 보호하지 않나요?”

“……하아. 이게 어디가 16살인지.”

“조숙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일게요.”

 

아이렌이 소리 죽여 웃자, 아까까지만 하여도 심각했던 분위기가 확 누그러진다. 고통이 한층 덜어진 상대 표정에서 정말로 더 따질 수도 없게 된 쟈밀은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정말 듣고 싶어요? 황당해하실 수도 있는데.”

“어?”

“쟈밀 선배가 궁금하면, 말해드릴게요.”

 

‘지금 생각하면 황당해하시는 반응도 재미있을 거 같고.’ 장난스레 덧붙인 아이렌이 가지런히 모은 무릎이 자신 쪽을 향하도록 몸을 틀어 앉는다.

아. 저 특별 취급하는 듯한 말투. 자신이기에 속에 든 걸 꺼내 보여준다는 저 태도에, 자신은 대체 몇 번이나 넘어가는 걸까.

어쩐지 속이 간질간질해진 쟈밀은 한숨을 푹 내쉬곤, 서로의 무릎이 마주 닿게 저 또한 아이렌 쪽으로 몸을 틀었다.

 

“말해 봐.”


사실은 응원하던 팀이 져서 죽상이었다는 게 현실.

쟈밀… 아마 듣고 황당해 하지 않았을까요. 겨우 그걸로? 싶은데? 아이렌이 하늘 무너진 얼굴로 ‘하지만 체급차이가…’로 시작된 한탄 해서 왜 말 안했나 이해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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