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의 추억, 3월 편
듀스 스페이드 드림
* 트친이랑 1년 장기 프로젝트(https://1yearcollabo2.creatorlink.net) 하는데 써서 냈습니다.
“와, 귀엽다.”
아이렌의 감탄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옆에서 나란히 듀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평소 늘 같이 다니는 인원이 아니라 단둘이서 나선 외출. 일 분 일 초가 소중한 순간이라 상대의 말이 더 잘 들린 걸까. 모든 감각이 아이렌을 향해 집중되어있는 듀스는 제가 들은 정보를 무시하지 않고 곧바로 대꾸했다.
“귀여워? 뭐가?”
“저거. 귀엽지 않아?”
아이렌이 가리킨 건 과자점의 커다란 통유리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막대사탕이었다. 직접 만든 수제 사탕인 걸까. 일반적인 원 모양이 아닌 다양한 모양을 한 막대사탕은 여러 식용색소를 쓴 덕분에 알록달록 화려했다.
“맛있겠다, 가 아니라?”
“물론 맛도 있어 보이지만, 생긴 게 귀엽지 않아? 꼭 장난감같이 화려한 색이고 말이야.”
그건 그렇다. 만약 저 가게가 과자점이 아니라 문구점이었다면, 자신은 분명 저게 장식품이나 먹는 걸 흉내 내어 만든 필기구 같은 것인 줄 알았을 거다.
한참을 가게 밖에서 사탕을 구경하던 아이렌은 이내 결심을 굳힌 것인지 과자점 안으로 들어섰다. 그를 뒤따른 듀스는 한 발짝 물러서서 상대의 쇼핑을 구경할 뿐이었다.
“듀스도 하나 먹을래?”
“어?”
“이거 박하 맛이래.”
막대사탕 앞에 놓인 설명을 읽어본 아이렌은 슬쩍 듀스의 옆구리를 찌른다.
아, 이런 깜찍한 권유는 거절할 수 없지. 어차피 단 걸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던 듀스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나 먹을까.”
“잘 생각했어.”
장난스럽게 웃어 보인 아이렌은 각양각색의 막대사탕 중 두 개를 골라 계산대로 향한다.
잠시 후. 계산을 마치고 온 아이렌은 보라색과 노란색이 섞인 꽃 모양 사탕은 제가 가지고, 흰색과 남색이 섞인 별 모양 막대 사탕은 듀스에게 내밀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뭘. 자, 가자.”
한입에 꽉 차는 사탕의 귀퉁이를 가볍게 깨문 아이렌은 앞장서서 밖으로 나선다. 그를 따라 과자점을 나온 듀스는 받아 든 사탕의 포장을 뜯어 문 후,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고 말았다.
‘……이 나이에 사탕을 먹으며 돌아다녀도 되는 걸까.’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니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을 텐데, 괜히 눈치가 보이는 건 역시 막대사탕의 크기가 좀 크기 때문이겠지. 흔히 물고 다니는 막대 사탕은 작은 구슬 정도의 크기지만, 이 사탕은 길이가 제 엄지 정도 되지 않는가.
입안에 퍼지는 상쾌한 단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는 듀스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아이렌을 힐끔거렸다. 남들의 시선 같은 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걸까. 아니면 어지간히도 사탕이 먹고 싶었던 걸까. 차근차근 사탕 귀퉁이를 깨물어 먹고 있는 아이렌은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있었다.
“아이렌은 사탕이랑 초콜릿 중 뭐가 더 좋아?”
무언가에 홀린 듯 아이렌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듀스는 제 몫의 사탕을 잠깐 입에서 빼고 묻는다. 오독오독 소리 나게 사탕을 씹고 있던 아이렌은 입 안의 내용물을 얼른 삼키고 답했다.
“둘 다 좋은데…….”
“그래도 더 좋은 건 있을 거 아냐.”
“으음.”
이게 그렇게 크게 고민할 일은 아닐 텐데, 아이렌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사탕 끝만 갉작인다. 그렇게 말없이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언제나 신중한 그가 겨우 생각을 정리한 건지 입을 열었다.
“평소엔 초콜릿을 더 좋아하는데, 가끔 사탕이 엄청나게 먹고 싶을 때가 있어.”
“오늘같이?”
“그렇지.”
깨물어 먹고 있기 때문일까. 작다곤 할 수 없지만 그리 크지 않은 막대사탕은 벌써 3분의 1 정도가 사라졌었다. 조곤조곤 대답하는 아이렌의 숨결에선 짙은 박하 향이 느껴졌다.
“파삭파삭 부서지는 식감이나, 초콜릿보다 다양한 맛이 있는 점이나 강렬한 설탕 맛이 좋다고 할까. 으음. 어쨌든 이런 게 확 당기는 날이 있지.”
알 것 같다. 세상에 맛있는 디저트가 그렇게나 많은데도 아직 사탕이 인기가 있는 건 다 저런 점이 매력적이라 그런 거 아니겠나.
애정 담긴 구체적인 장점을 듣고 있자니, 물고 있는 사탕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소극적으로 사탕을 녹여 먹던 그는 아이렌을 따라 별 귀퉁이 중 하나를 깨물어 보았다. 파삭. 연약한 소리를 내며 부서진 조각은 입 안에서 금방 녹아 사라졌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본 거야?”
“아니. 엄청 행복한 표정으로 먹고 있어서. 그렇게 맛있나 싶어서 물어본 거야.”
“아하.”
미각에만 집중하고 있던 아이렌은 그제야 제 뺨을 한 번 문질러보곤 고개를 기울였다.
“나, 좀 애 같은가?”
“어? 아니. 아이렌은 평소에 어른스러우니 이 정도로 애 같게 느껴지진 않아.”
“뭐야, 사탕 사줬다고 띄워주는 거야?”
“설마. 진심인걸?”
애초에 단것 좀 좋아하는 걸로 아이 같다고 하기엔 이 애는 너무 어른스럽다. 자잘한 거에 동요하지 않는 차분함이나 타인의 상황을 살필 줄 아는 여유. 그리고 결단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대범함 같은 걸 보고 있자면 가끔은 동갑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라고 할까.
하지만 그토록 애어른 같은 아이렌이 좋아하는 과자 하나로 제 나이처럼 보인다는 건, 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평소보다 한결 부드러운 표정의 새하얀 얼굴에서 아까부터 눈을 떼지 못하던 듀스는 결국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잠깐만, 아이렌.”
“응?”
상대에게 기다려 달라는 듯 손짓한 듀스는 아까 제가 걸어온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뛰어간다. 사복을 입고 있다지만 육상부 소속이라 그런지, 그의 달리는 속도는 인파를 뚫고 가고 있음에도 제법 빨랐다.
그렇게 목적도 말하지 않은 이탈로부터 몇 분이나 흘렀을까. 떠날 때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온 듀스가 종이 쇼핑백 하나를 내밀었다.
“자, 이거.”
아이렌은 그 쇼핑백에 새겨진 로고를 알고 있었다. 지금 제가 먹고 있는 이 사탕의 비닐 포장에 그려져 있는, 아까 그 과자점의 로고이지 않던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쇼핑백 안을 살펴보니, 그 안에는 자신들이 먹고 있는 막대사탕 외에도 여러 종류의 사탕이 들어있었다. 구석에 있는 작은 쿠키 혼자만 종류가 다른 건, 아마도 많이 샀으니 서비스로 하나 끼워준 게 아닐까.
“이게 뭐야?”
“그냥, 아이렌이 앞으로도 이렇게 웃어줬으면 해서.”
사탕을 먹는 네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사오 지 않을 수 없었다.
……라고 말하기에는, 듀스는 아직 여러모로 애송이였지. 아이렌과는 어떻게든 잘 지내고 있긴 해도 여전히 여자 앞에선 숙맥이 되는 그는 결국 저런 식으로 제 마음을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나 평소에 잘 웃는 편이지 않나?”
“음, 그건 그렇지만……. 그럼 맛있는 거 많이 먹었으면 해서?”
‘아, 방금 대답은 좀 바보 같았다.’ 생각나는 대로 둘러댄 말이 그리 근사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 듀스의 귀 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하지만 아이렌은 그런 듀스를 전혀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저 말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입을 가리고 ‘하하’하고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고마워. 잘 먹을게.”
멋들어진 말보다는 솔직한 진심을 좋아하는 아이렌에게는 이미 듀스의 마음이 잘 전해져 있었다.
히죽히죽 웃는 상대를 보며 코밑을 훔친 듀스는 더는 대꾸하지 못하고 사탕을 도로 입에 물었다.
기분 탓일까. 아까까진 상쾌함과 잘 어우러져 적당히 먹기 좋게 달다고 생각되던 사탕이, 지금은 혀가 녹아버릴 것처럼 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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