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끝나면 연락 해

빌 셴하이트 드림

* 전력 드림 60분 신데렐라 [49회 주제: 끝나면 연락 해]

 

 

빌은 예리한 눈을 가진 남자였다. 타인의 장점도 단점도 금방 찾아내고, 개선할 점과 지켜야 할 점을 잘 구별하는 판단력을 가진 사람. 연기를 하며 타인을 관찰하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상대의 표정을 읽는 것도 잘하며, 말로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채는 것 또한 뛰어났지.

그리고 빌은 제가 뛰어난 감과 눈썰미를 가졌음을 알기에, 차마 아이렌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녀석, 어제부터 상태가 안 좋았지.’

 

어제 오후. 영화연구부 활동이 끝난 후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러 돌아가던 때. 항상 주변 정리를 끝낸 후 먼저 자리를 뜨던 아이렌은 그날따라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마지막까지 동아리실에 남아있었다.

무언가 잘 안 풀리는 일이 있던 걸까. 아니면,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 걸까. 모두가 나갈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손 인사만 하던 그는 방이 조용해지자 곧바로 책상에 엎드리더니, 한참을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자는 건 아니었지.’

 

애초에 졸렸다면 기숙사로 돌아가 잤겠지, 동아리실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엎드려 있는 동안 몇 번이고 한숨을 쉬었으니, 자는 건 정말 아니었을 거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척. 사실은 동아리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슬쩍 안을 살펴보았던 빌은, 얼굴을 보이지 않던 상대의 모습이 무척이나 흐릿하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원래도 인상이 강한 편은 아니며 헤어 스타일이나 체모의 색이 아주 독특한 건 아니라지만. 어째서일까. 그날 아이렌의 모습은 참으로 유난히도 불분명한 구석이 있었다. 잠깐 한눈판 사이, 어딘가로 훌쩍 가버려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해가 떠오르는 아침을 앞둔 새벽안개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원래 아이렌은 그런 분위기의 사람이 아니다. 솔직히 매번 사람에 맞춰 페르소나를 갈아치우는 아이렌의 ‘원래’가 무엇인지 빌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어제의 아이렌이 이상하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본래 그 애는 속이 잘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 같은 애지, 볕을 조금 쐬었다고 증발할 안개는 아니란 말이다.

 

‘오늘은 괜찮으려나.’

 

마음 같아선 일과 중 얼굴을 볼까 했지만, 오늘은 이동수업도 많고 기숙사에서 하는 일도 있어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빌은 뒤늦게 지금이라도 그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뭐든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늦는 게 나았으니까 말이다.

주소록에서 아이렌의 이름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른 빌은 최대한 평온한 얼굴로 신호 대기음이 끊기기를 기다렸다.

뚜르르. 뚜르르. 무미건조한 연결 음이 몇 초나 지속됐을까.

 

「여보세요.」

 

금방이라곤 할 수 없지만, 그리 늦지 않게 아이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주변에서 잡음이 들리는 걸 보니 조용한 공간에 있는 건 아닌 듯하였다.

 

“어디니?”

「저요?」

 

그리 어려운 걸 물어 본 것도 아닌데, 왜 또 이 애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무는 걸까.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던 아이렌은 상대가 재촉하기 전에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잠깐 외출했어요.」

“학교 밖이니?”

「예.」

 

말이 짧다. 빌이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름 아닌 저것이었다.

평소라면 제가 왜 외출했는지, 지금 어디인지 먼저 주절주절 설명했을 녀석이 묻는 말에만 딱딱 대답하는 꼴이란. 역시 뭔가 이상하다.

게다가 오늘은 평일이지 않은가.

수업을 마친 후라 이미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도 않고, 평소라면 이 여유시간에 예습이나 복습을 하는 아이렌이 외출을 하다니. 웬만한 물건은 샘의 상점에서 다 살 수 있는 점을 생각하면 쇼핑을 하러 간 것도 아닐 텐데, 어딜 간 건지 참으로 신경이 쓰였다.

 

“언제 돌아오니?”

「……무슨 일 있나요?」

“아니. 그냥 언제 돌아오나 물어보는 거야.”

 

그 와중 제게 무슨 일이 있냐 묻는 걸 보니, 남 걱정할 여유는 있는 모양이다.

그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한숨 쉬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못 쓸 상태는 아닌 거 같다는 건 다행이겠지.

상대의 말만으로 모든 걸 읽어내야 하는 빌은 최대한 중립적으로 상대를 판단하려 노력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니, 왜?”

「볼일이 있어서 나왔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겠어요.」

 

아이렌의 대답은 모호했다. 정확하게 무슨 볼일인지도 말하지 않고, 불확실한 말만을 늘어놓다니. 언제나 뭐든 딱 떨어지는 걸 마음 편해하는 아이렌은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혹시, 거짓말을 하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빌은 스마트폰의 스피커 너머로 귀를 기울였다.

환청인지 실제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너머에서 어렴풋이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늦니?”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정확한 건 저도 몰라요.」

 

이건 늦을 거라는 소리나 다름 없었다. 다만, 그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은 거지.

어쩌면, 그저 혼자 있고 싶은 것뿐인데 제가 이렇게 캐묻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걸지도 몰랐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빌은 그 바람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끝나면 연락하렴. 데리러 갈 테니.”

「예?」

“여자 혼자서 늦게 돌아다니면 안 되니까.”

 

사실 그 이유도 있지만, 빌은 그냥 아이렌이 돌아올 거라는 확신을 듣고 싶었다.

당연히 이곳,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의 고물 기숙사로 돌아오겠지만. 그걸 제가 직접 확인할 겸 직접 마중하고 싶었다고 할까.

그러나 아이렌은 그런 빌의 마음은 모르는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지만, 그러지 않으셔도 되어요.」

“내가 불안해서 가겠다는 거야.”

「하하. 선배도 참 걱정이 많으시다니 까요. 그런 철저한 점이 선배를 더 완벽하게 만들어 주시는 거겠지만요.」

 

이 와중에도 능청을 떨다니. 정말 진절머리 나는 여자다. 빌은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고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본인은 아무런 티가 안 난다고 생각하고 과장되게 웃고 있는 거겠지만, 뛰어난 배우인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과 통화하는 상대의 얼굴은, 눈썹 하나 꿈틀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그저 석상 같은 무표정으로 목만 울려 웃었겠지.

 

“연락해. 꼭. 알겠니?”

 

역시 직접 찾아가서 한마디 해야겠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캐묻진 않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을 것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아 하는 아이렌이라도, 그저 같이 있는 정도는 받아주겠지.

단호한 빌의 재촉에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이렌은, 결국 못 이긴 듯 입을 열었다.

 

「네. 그럴게요.」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HL
커플링
#드림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