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싫] 필링필링

2.2 그는 원래 운이 좋다 (下)

행운의 부재

망상요람 by Z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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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행운아가 된 거지?

사원 숙소로 들어오는 내내 타냐의 머릿속을 점령한 단 한 줄의 문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타냐는 태어나서부터 한 번도 운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 길을 걸으며 넘어질 뻔하는 것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있는 일이고, 떨어질 리가 없는 곳에서 갑자기 떨어지거나, 차에 치일 뻔하다 그 밑에서 기어 나오거나···.

그래서 부모님은 늘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타냐 주변에는 늘 친구가 많았고, 나름 관심 받는 사람이었다. 그 정도의 불행은 타냐를 불행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신경도 쓰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을 기점으로 아예 성격이 다른 사건사고를 불러오게 됐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걸 알고 있지만, 이것을 본격적으로 ‘사건 체질’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 기점은···

-고등학교 때, 특기를 발현했을 때 즈음.

그 생각을 끝으로, 타냐는 쓰러지듯이 잠자리에 들었다.

 

* * *

 

어린 타냐가 길을 걷고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막 돌아오는 길이었는지, 자그마한 가방이 어깨에 걸려 있었다. 타냐는 그 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을 것을 보아 한창 인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시점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때, 그런 타냐의 뒤로 검은 손이 다가왔다.

“-!!”

기괴하게 메말라 붙은 나뭇가지 같은 손이었다. 크기는 웬만한 트럭만큼 거대했지만, 그 안은 비어서 얼기설기 얽혀있는 것으로 형태를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툭 불거진 붉은 눈이 어린 타냐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밀쳐냈다.

“깜짝아!”

다행히 겨우 중심을 잡은 어린 타냐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어갔다.

하지만 악령은 멈추지 않고 아이를 밀치고, 떨어뜨리고, 악몽으로 깨우고···.

괴롭힘은 타냐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반복되었으나, 기어코 죽지는 않았다. -그리고 타냐의 특기가 발현되었을 때, 악령은 다른 악령을 불러내고, 또 불러와 몸에 가두었다.

꿀럭, 까드득-

하나뿐이었던 눈은 이제 악령의 몸 전체에 퍼져있었다. 아니, 얼굴이 여러 개로 변했다는 것이 맞을까? 검은 몸체 이곳저곳에 비죽 내밀어져 있는 얼굴은 하나같이 타냐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 리 가 알 려 줄 게’

‘난 우울을!’ ‘난 절망을!’ ‘난 공포를!’

‘이제 알겠어?’

“죽음의 공포란 거 말이야- 아?”

그리고 난데없이 새어 들어온 하얀빛에 악령들이 소리를 질렀다. 부서지는 것처럼 그 형체를 잃어가던 것은, 이내 먼지 한 줌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뭐지, 아침인가? 그러고 보니 모닝콜이 울리는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아침 햇살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빛이었다.

‘그 래 도 넌 평 생 못 도 망 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타냐는 눈을 떴다.


“그래서, 절 찾으신 이유는?”

“일단 사례비는 여기···.”

“잘 듣겠습니다, 고객님.”

타냐는 애매하게 웃었다. 돈이 나오자마자 극적으로 변하는 헤이즈의 태도가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타냐 주변에 영적인 쪽으로 일하는 사람은 헤이즈밖에 없었으니까. 조금 돈을 밝히긴 하지만, 오히려 돈으로 해결된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저에게 악령이 붙어있나요? 꽤 오래된··· 아, 이건 알 수 없으려나.”

“뭐, 네. 꽤 악질적인 놈이라는 건 알겠는데요. 퇴마해드려요?”

“일단 퇴마를 부탁드리러 온 건 맞아요. 그런데 제가 그 악령에게 꽤 오래 시달린 것 같아서 좀 여쭤보려고요.”

“음?”

타냐는 그간의 일을 털어놓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넘어진 것, 무형의 힘으로 차도로 밀쳐진 것, 분명히 잘 잡고 있던 정글짐의 철봉이 삭아 내린 것···. 그리고 중간부터는 갑자기 많은 악령들이 몰려와 타냐를 죽음까지 몰고 갔던 것. 말해놓고 보니 심증이 아주 많았다. 어떻게 이걸 눈치채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악령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죠. 직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요. 사건에 휘말리게 하거나, 떨어진 공장 자재에 깔리게 하거나, 다른 인간의 악의적인 감정을 부추기거나···.”

“그럼 악령의 짓이 맞겠네요?”

“당연하죠. 평생을 그런 종류의 악령을 달고 살았는데 죽지 않은 것도 기적이에요. 운이 좋았군요.”

·0·

그렇구나. 타냐는 고개를 끄덕이며 퇴마를 부탁했다. 고개를 끄덕인 헤이즈가 부적을 붙인 배트로 살랑, 어깨 부근을 건드렸다.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끼에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다만···. 지난번에 서장실에서 뵈었을 때는 훨씬 많은 악령들이 붙어있었는데요. 분명 이놈이 꾀어서 붙인 걸로 보였고.”

“네? 그런 종류의 악령도 있나요?”

“네. 본인 자체는 별거 없으니까 잔치판 하나를 붙잡고 다른 놈들을 끌어들이는 거죠. 타냐 씨의 몸이 그 잔치판이었던 셈이고요.”

아마 죽음의 위협까지 느끼기 시작했을 때가 그때일 겁니다.

절로 어깨가 떨렸다. 타냐는 정말로 죽을 뻔했던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저를 괴롭혀왔던 악령의 악의에 의해서. -그리고 그런 타냐를 지켜온 것은 특유의 행운이라는 건데···. 나가의 행운에 견줄 만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저번, 지하철역 사고 때···. 웬 빛과 함께 악령들이 사라졌는데.”

“아, 그거 백모래 짓이네요. 거참, 어쩌다 타냐 씨 좋은 일 해주고 갔나 봅니다.”

디용, 타냐는 당황스러운 기분에 괜히 볼을 매만졌다. 생각도 않고 있었던 나이프의 보스에게 신세를 졌다. 그렇다고 해서 부채감을 가질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묘한 기분이다. 덕분에 악령들의 손길에서 벗어났고, 자신이 원래 행운 체질이라는 것 역시 알게 되었으니···.

그래, 나이프의 덕이기보단 나 자신의 행운 탓이라고 생각하자. 하필 그 사건 당시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 자체가 행운 아닌가? 전 남친의 일로 운 나쁘게 휘말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설마, 아모르 씨가 말했던 골칫거리가 게 전 남친의 일이 아니라 악령 쪽이었던 건가?

타냐가 스푼을 통해 그를 퇴치하고, 전 남친의 급발진으로 사건에 휘말린 것조차 악령에게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의도한 거라면 아모르는 정말로 대단한 예언가인 것이다. 타냐는 괜한 소름에 다시 어깨를 떨었다.

“···그럼 이제 저를 위협하는 저주는 없는 건가요?”

“네, 이제 사건 체질에서 벗어나겠군요.”

하지만 그런 호의 덕에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타냐는 세상을 다 가진듯이 웃었다.


 

“-그래서 백화점에 다녀왔다고?”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사 온 케이크를 받아 들며 다나가 물었다. 날 좋은 오후, 갑자기 서장실로 찾아간 타냐가 다짜고짜 자신의 사건 체질은 악령 탓이며, 헤이즈에게 제령을 맡겼다고 통보한 것이다. 결국 어이를 잃고 쳐다보는 다나와 귀능에게 다소 길게 풀어서 설명해야 했지만.

“···그러니까, 네 특기 발현을 기점으로 악령이 수도 없이 붙었고, 그 상태로 5년 넘게 살았다?”

“뀽, 그 저주 속에서 5년이나 살았다니, 타냐 양 엄청난 행운아였네요.”

“그렇죠? 괜히 언럭키 씨와 접촉하고도 무사한 게 아니에요.”

와, 그때 진짜 넘어질 뻔한 게 끝이었어요? 네!

타냐는 두 손을 마주 잡으며 기쁨을 표출했다. 그 눈에는 어떤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5번씩이나 다른 히어로를 대동하고 거한 외출을 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보고가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제 혼자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별일 없겠군.”

“그렇죠?”

다나는 평소보다 훨씬 웃음이 헤퍼진 타냐를 보며 살짝 웃음 지었다. 착하고 능력 있고, 어리다. 스텔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타냐를 볼 때면 비슷하게 흐뭇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기뻐하는 타냐를 순수하게 축하해주기로 했다.

이미 시작된 조사는 뒤로 숨긴 채.


“아, 타냐 선배.”

“나가 군. 안녕하세요?”

“안 그래도 찾고 있었는데-”

“?”

나가는 갑자기 등장한 히어로 계의 대선배, 영정이 거대 게를 잔인하게 산산조각 낸 이후 심란한 마음에 타냐를 찾고 있었다. 타냐는 다행히 서장실 아니면 상담실에 상주하는 사람이었고, 연락하면 20분 안에는 돌아왔다. 지금 상황에서 제일 기댈 만한 어른이었다. 나가는 웬일로 가운을 벗은 상태로 서장실에서 나오고 있는 타냐를 붙잡았다.

“그, 상담할 게 있어서요···.”

“그렇구나! 그럼 상담실로 갈까요? 가면서 말해도 괜찮으면 말해줘요.”

“네, 오늘-”

영정. 나가는 그저 대단하신 히어로라고만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그 힘을 실감했다. 갑자기 제 몸을 드러내 민가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거대 게를 제압하는 임무에서 갑자기 영정이 등장해 일격에 그를 사살한 것이다. -윽, 갈기갈기 찢긴 거대 게의 잔해를 새삼 떠올리니 속이 안 좋아졌다. 제 서식지에서 벗어나서 겁을 줬다는 이유로 사람을 헤치지도 않은 무고한 생명을 죽였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잠자코 듣고 있던 타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 개인적으로 ‘미연에 방지한다며’ 싹을 자르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그렇죠?!”

“당장 게가 아니라 토끼였어도 토벌했을까요? 나가 군 말에 따르면 사람을 공격하지도 않던 생명을 들쑤신 것 같던데.”

“아마, 아니요.”

“아무래도 그랬겠죠··· -여기까지가 제 입장이고, 상담실로 들어가 볼까요?”

? 나가는 개인의 입장과 상담사의 입장을 구분하는 듯한 타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사이에 타냐는 나가를 소파에 앉혀두고 가운을 입은 뒤, 전기 포트의 전원을 올리고 있었다. 녹차 마실 거죠? 아, 네.

-아니었나? 나가는 타냐가 끓여준 녹차를 받아 들었다. 그렇든 아니든 그리 중요한 건 아닐 것 같다.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한 나가는 입을 열었다.

“제가 유난 떠는 건가요? 아니면 다들 무뎌진 건가?”

“일단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무뎌진 게 맞을 거예요. 생명이란 늘 희생 위에서 살아가니까요.”

“아모르 씨랑 비슷한 말씀을 하시네요.”

“하하, 그런가요?”

하지만 정말 그래요. 죽음에 대한 예민함 정도가 1부터 100까지라면, 살아가면서 예민함이 점점 깎여나가죠. 점점 죽음에 무뎌진다는 소리예요. 심지어 그 기준은 유형마다 다르게 적용돼요.

“유형마다요?”

“음, 벌레에 있어서 예민함은 1로 수렴하는 한편 인간에 대해서는 100에 가까운 정도? 그래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이 기준들이 천차만별이죠. 연쇄 살인마라면 인간의 죽음에 대한 예민함이 10 정도 되지 않겠어요?”

납득했다. 나가는 합리적인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쪽으로 생각해봤을 때, 심약한 나가와 가차 없는 영정이 대척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타냐조차도 영정과는 맞지 않을 거라고, 나가는 넘겨짚었다.

“영정 님은, 음, 글쎄요··· 저보다 그분을 잘 아는 사람에게 설명을 듣는 편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죠. ‘사람’을 위해, 어떤 위협도 두고 보지 않는 사람. 그게 다른 생명이어도 말이에요.”

“그래도··· 되는 걸까요?”

“나가 군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타냐의 순순한 질문은 나가가 어떤 답을 해도 선뜻 비난하지 않고 받아줄 것 같았지만, 나가는 망설였다. 무려 ‘그’ 히어로인 영정이다. 일개 고등학생 나부랭이인 자신이 어떻게 그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 그런 거예요.”

“에.”

나가는 타냐의 쌈박한 대답에 당황해서 고개를 퍼뜩 들었다.

“영정 님의 생각이 있고, 나가 군의 생각도 있어요. 선택이 다른 건 당연해요. 하지만 나가 군이 확신이 없는 것도 이해해요. 그분에게 선뜻 비난 비슷한 말은 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래도 그런 말, 해도 괜찮아요. 저도 나가 군과 비슷한 입장이거든요.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유하게 넘기는 것뿐이지. 만약 영정 님과 그런 문제로 부딪히게 된다면 말해요. 제가 옆에서 지원해줄 테니까.”

타냐 선배···.

나가는 새삼 감동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저런 의문의 해결은 차치하고서라도, 같은 입장에서 공감하고 설명해줄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훨씬 안정됐다. 게다가 그 후의 대화 역시 타냐답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어졌다.

“그래도 전 영정 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듄 씨 같은 분께 제대로 들어보는 게 좋을 거예요. 잘 가요~”

“앗, 네. 연락해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 나가는 산뜻하게 웃으며 상담실을 나섰다.


“3600원입니다-”

“여기요.”

“계산되셨어요. 안녕히 가세요~”

마지막 상담 시간이 비어서, 조금은 이른 저녁 산책을 나오게 됐다. 타냐는 모처럼 멀리 나온 것에 새삼스러움을 느끼며, 노을 진 하늘을 바라봤다. 평소라면 히어로를 대동하고 아주 근처의 편의점을 들렀어야 했겠지만, 그래서 애초에 직접 나가지 않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는 걸어서 가보지 못한 저 멀리까지 저녁 산책을 다녀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타냐는 가방에 담긴 젤리를 하나 꺼내며 문에 다가섰다.

“···?”

범고래가 떠오르는 흑백의 머리카락, 그리고 그을린 피부에 초록색 장발 머리의 검사. 타냐는 망설임 없이 벨을 눌렀다. 외투 안에 넣어두었던 차가운 금속이 묵직하게 존재감을 보였다.

뭐지? 누굴 미행하는 건가? 저 앞에는 검은색 후드티를 뒤집어쓴 사람밖에 없었다. 나이프가 평범한 사람을 표적으로 미행을 하고 있을 리는 없다. 적어도 스푼 관계자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슬슬 나이프가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벨을 눌렀다고는 하지만 최소 5분은 걸릴 것이다.

[귀능씨]

[나이프]

저 사람이 스푼 관계자가 아니어도, 타냐는 구해내야 했다. 명색이 히어로니까, 그리고 각오했으니까. 그러려면 시간이 없어! 타냐는 대충 문자를 보내 둔 뒤, 편의점을 뛰쳐나갔다.

“거기 검은 후드, 뒤에!”

탕-

“···불청객이군요.”

녹색 장발의 소나무 인간, 송하는 검을 꺼내 총알을 튕겨냈다. 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타냐는 입술을 깨물고, 자리를 피했다.

후웅-

“제가 쫓아가겠습니다.”

바로 옆으로 칼이 궤적을 그렸다. 범고래 인간, 오르카는 타냐가 애써 쫓아낸 사람의 뒤를 쫓고 있었다. 제발 멀리 도망갔기를 바랐지만, 그럴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훤히 보였다. 지금 당장으로서는 스푼에서 히어로가 최대한 빨리 오는 것만이 희망이었다···!

하지만 타냐는 5분은커녕 1분도 시간을 끌 자신이 없었다.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이미 팔을 길게 베인 상태였다. 곳곳에 생채기가 남았다.

“정말로, 그걸로 상대가 될 거라 생각한 겁니까?”

“상대가 되지 않는 건, 알고 있어요.”

이번엔 칼이 허공을 가로로 갈랐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뒤로 젖힌 타냐는 허리가 반으로 갈릴 뻔했다는 것에 숨을 가쁘게 쉬었다. 시간을 끌기는커녕, 변사체로 발견될 확률이 훨씬 높아 보였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타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송하를 향해 총을 쏘는 것뿐이었다.

“헉, 허억-”

“그렇게 마구잡이로 쏴 봤자, 총알 낭비입니다.”

칼이 턱 끝까지 쫓아왔다. 타냐는 추하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에 아파할 겨를도 없이, 총을 겨누며 송하를 견제했다. 아니, 견제라고 할 것도 없었다. 뛰어난 검사인 송하에게, 그런 타냐의 모습은 고양이가 몸을 부풀리는 수준의 위협이었다.

“지금쯤이면 제 동료가 목표물을 잡았을 겁니다.”

당신이 이렇게 희생해봤자 헛수고라는 소리죠.

극도의 흥분에 머리가 띵하니 아파왔다. 타냐는 송하가 무감정한 눈빛으로 저를 감시하듯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까워진다면,

“-흐, 아악!”

송하를 향해 뻗어가던 손이 꿰뚫렸다. 순식간에 화끈한 감각이 올라왔다.

“당신의 특기에 대한 사항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전투에는 하등 쓸모없는 능력이죠.”

“알, 아!”

“그렇다면, 가만히 있지 그랬습니까.”

“하아, 흑, 그건, 안, 돼···.”

탕, 탕탕-

소리 없는 총성이 다시 골목을 울렸다. 타냐는 결국 옆구리마저 길게 베이고, 총을 들고 있던 손을 짓밟혔다. 고통으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 과정이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끄으흡, 제발-”

타냐가 다시 손을 뻗었다. 송하는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듯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저 멀리로부터 검은 후드의 인간을 제압해 데려오는 오르카가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타냐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눈물이 아닌 다른 것이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털썩.

손이 채 닿지 못하고 툭, 떨어졌다.

 


 

“아마 계획 자체는 받아들일 거예요.”

“···호오.”

“그는 저와 비슷한 구석이 있으니까요. 그게 모두에게 좋은 방향이라면 기꺼이 하겠죠.”

“그렇다면-”

“-하지만,”

그에 희생되는 사람, 아니 히어로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는 반대할 겁니다.

“···”

“그래요, 알겠어. ···그렇다면 이 방법밖에 없겠네.”

“···그를 죄인으로 만드시려고요?”

“어머, 만든다니.”

본인이 자초한 거지, 안 그래?

-억눌려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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