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렌에 대해서
유료

그 생명에 대해서

쟈밀 바이퍼 드림 / 주의문 필독

* 4장 이전 시점의 독백문.

* 쟈밀이 아이렌에게 (다소 가부장적인 느낌의) 음습하고 과격한 욕망을 꿈꾸는 내용이라 그 부분만 소액결제 처리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천사의 가죽을 뒤집어쓴 악마였다.

남자는 자주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여자를 마녀나 악마에 비유한다고 하지만, 나는 고작 그딴 이유로 저런 비유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 녀석은 누구에게든 악마 같았고, 아이러니하게도 누구에게도 천사 같았으니까.

그래. 아이렌은 분명 내게는 어떤 의미로는 여전히 천사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천이니 악이니 하는 것조차도, 그 여자의 앞에선 의미 없는 구분이 되는 걸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아이렌은, 사람의 욕망을 헤집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물론 타인의 욕구나 욕망을 눈치채고 건드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생명체는 본능과 이성이 추구하는 욕망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이 원하는 걸 이루어주거나 소중한 것을 위협해 제 지분을 얻어내 살아가야 했으니까. 그래, 나 또한 타인의 욕망에 맞춰가며 살아가는 종자이니, 남의 들쑤심을 비난할 처지가 아니었지.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의 수발을 들며 살아야 하는 내가, 사람 마음을 떠보고 눈치를 보는 일을 비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혐오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녀석의 방식에는 절박함 같은 것이 없었다. 그래. 아이렌은 살기 위해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마치 그러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타인의 마음을 휘젓고 다녔다.

마치 목숨이 9개는 되는 것 같은 그 행동거지란.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별개의 세계에서 온 그 여자는 마력 하나 없는 몸뚱어리 하나만 가지고 이 세계에 온 주제에, 겁도 없이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라는 연못 안을 누벼 흙탕물로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외로워하는 이에게는 친구가 되어주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 하는 이를 위해서는 모든 걸 받아주는 이해자가 되어준다. 고민을 안고 있는 이에게는 언제든지 좋은 상담사를 자처하고 나서곤 했고, 사랑을 원하는 이에게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일 연인이 되어주기도 했지.

그야말로 천의 얼굴. 본래의 제 모습이 있긴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밀하고도 다양한 페르소나들. 시시한 어른들의 눈에는 지극히 짧아 보일 17년의 삶 동안, 나는 그런 계집애는 처음 보았고 앞으로도 보지 못할 거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희소성과 녀석이 가진 기가 막힌 처세술에 끌려, 자연스럽게 아이렌에게 관심을 가졌었지.

하지만 그래서는 안됐었다. 정말로. 나는 그 여자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그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나의 마음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상냥한 얼굴로 내게만 다정할 것처럼 굴기도 했고, 누구도 물어보지 않는 사소한 일상을 궁금해하며 물어주기도 했지.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겸손해야 하더라도, 제 앞에서는 좀 더 잘난 듯 구셔도 되어요.”

그 녀석은 내가 숨겨놓은 욕망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눈치챘다. 내가 카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도 구체적으로 눈치채지 못했으면서. 꾹 다문 입안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독니와 꽁꽁 묶여 펼치는 법을 잊은 날개만큼은 누구보다도 빨리 눈치챘다.

“자발적인 양보는 즐거울지 몰라도, 멋대로 뺏어가는 건 슬프잖아요?”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건 끔찍하죠. 사람은 누구든 저 자신을 숨기면서도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주길 바라는 건데.”

“제가 해 줄수 있는 게 있다면, 언제든 들어드리고 싶어요.”

그래. 그런 달콤한 말을 속삭이면서, 내가 그 손을 잡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고선. 나를 위해 어딘가에서 떨어진 천사라도 되는 것 마냥, 내가 이리 태어난 것이 불행이라 하더라도 결코 내 잘못은 없다는 듯 말해놓으면…, 누구든 가슴 깊숙한 곳에 품어놓은 울분을 풀고 싶어지지 않던가.

그래. 그런 면에서 아이렌은 정말로 천사의 탈을 쓴 악마였다. 다른 사람의 욕망을 끄집어내, 악마로 만드는. 타인의 자제를 잡아먹는 악마 말이다.

‘좋아서 이렇게 태어난 게 아니야.’

언제나 목구멍 안쪽에 깊숙이 숨겨놓았던 그 말을. 나조차도 잊고 있던 그 말을, 네게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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