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렌에 대해서

그 신앙에 대해서

에이스 트라폴라 드림

“에이스, 너는 혹시 신을 믿어?”

 

아이렌이 뜬금없는 것을 물어오는 건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다.

식사하다 말고 별의 탄생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숙제 중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는 질문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 질문은 슬쩍 보아도 그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기에, 에이스는 이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그냥, 문득 생각나서.”

“네가 ‘문득 생각나서’라고 말하는 건, 다 무슨 일이 있을 때뿐이었는데.”

“하하.”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아이렌이라지만, 함께 한 시간이 제법 되고 나면 어렴풋이 그 행동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진의는 알 수 없을지라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인지 의도를 가지고 꺼낸 말인지는 알 수 있었지.

눈치 빠른 에이스는 섣불리 이유를 캐내려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렌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줄 뿐이었다.

 

“나는 말이야, 신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아이렌은 공책을 정리하며, 기다렸다는 듯 머릿속에 담아 둔 말을 쏟아냈다. 손은 열심히 반복 작업을 하면서 입은 계속해서 움직이는 그는 에이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상대가 들어줄 거라고 믿고 있는 건지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하려던 말을 늘어놓았다.

 

“신에게 필요한 건 강력한 힘도, 포용력도, 불로불사의 육신도 아냐. 누군가의 추앙이고, 숭배지. 설령 신자가 없다 하더라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게 신이야. 악신도 신이니까.”

“헤에.”

 

이게 16살짜리가 할 말인가.

에이스는 문득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지만 애써 목소리를 삼켰다. 어디 아이렌이 보통 여자애던가. 동급생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이 학원 유일의 감독생은 학생보다는 선생에 가까운 정신연령의 소유자였다. 생긴 건 분명 학생 같아도, 언행은 그렇질 못했지.

에이스는 그 어른스러움이 아이렌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스러운 걸 동경할 법할 나이의 학생들 틈에서 성인 여성 같은 언행을 하는 아이렌은 자연스럽게 모두의 이목을 끌었지만, 막상 가까워지려고 하면 그 어른스러움이 방해물이 되어 선을 넘기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뭐, 아무나 선을 막 넘는 것보다는 낫지.’

 

상냥하지는 않지만 친절한 아이렌이니, 아무나 선을 넘으려고 껄떡거리는 꼴을 보느니 다들 어느 정도는 어려워하는 편이 제겐 득이었다. 제게도 아직 아이렌은 좀 어려운 면이 있긴 했지만, 그건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상관없다.

그런 생각을 가지자 문득 용기가 생겨, 에이스는 제 나름대로 상대의 말에 호응해 줄 수 있었다.

 

“아무리 강력한 힘이 있어도, 누구도 그걸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권력을 가지지 못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

“그래. 반대로 본인이 아무 힘이 없어도 절대적인 추앙을 받는다면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지. 사실 종교와 정치는 비슷한 구석이 많아. 지지자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점이 특히 비슷하지.”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지만, 솔직히 재밌지는 않다. 하지만 아이렌은 진심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흥미로워 보여서, 신이 난 그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람이 느껴졌지.

 

‘선배들이랑은 평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가…….’

 

루크는 이런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쓸 테고, 제이드도 흥미롭다며 대꾸해 주겠지.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쟈밀도 흥미 여부와 관계없이 가치 있는 대답을 해줘 아이렌을 기쁘게 만들 거다.

아아. 억울하기도 하지. 본질적으로 비슷한 이들끼리 느끼는 동질감이란 얼마나 울타리 밖의 사람을 외롭게 하는가. 자신이라고 그런 주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철학자 같은 여자를 사랑하게 되리라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나는 말이야, 에이스.”

 

아이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에이스는 괜히 혼자 심통이 나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아이렌은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춰왔다.

 

“타인에게서 오는 권력이라는 건 정말 부질없다고 생각해.”

 

선언과 닮은 단호한 말과 희미하게 미소 짓는 입술. 쨍한 빛 없이도 은은하게 빛나는, 밤하늘을 닮은 한 쌍의 자안. 그 모든 것에 혹한 에이스는 눈을 돌리지도 침묵을 유지하지도 못했다.

마른침을 삼킨 그는 자신도 모르게 대꾸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권력이 사회에선 가장 중요하지 않아?”

“그렇지. 그러니 사람들은 정치를 하는 거고 사교를 하는 거지.”

 

반사적으로 답한 것뿐이었는데, 얼떨결에 무언가 중요한 점을 지적한 걸까. 아이렌은 신이 나서 부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 모든 건 결국 타인이 돌아서면 힘을 잃잖아.”

 

정리가 끝난 공책을 구석에 밀어둔 아이렌이 에이스의 손을 마주 잡았다. 손가락 여기저기에 굳은살이 박인 전형적인 학생의 손에는 은은한 온기가 느껴졌다.

 

“신도 마찬가지야. 믿는 이가 없으면 잊히고,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거지. 하지만 저 자신이 온전하면 지지해주는 이가 없더라도 존재할 수 있어. 별것도 아닌 이들은 그들끼리 뭉쳐서 서로를 변호하고 추앙하며 존재하기 위해 발악하겠지만,”

 

마치 아이를 어르듯 부드럽게 에이스의 손을 어루만지고 토닥이던 아이렌은, 기나긴 서론 끝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당사자는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던, 에이스를 위한 본론을.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 선배들도 누굴 믿고 설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명씩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니까.”

“아.”

 

에이스는 그제야 이 모든 이야기가 자신을 위한 이야기임을 눈치챘다.

아이렌이 말한 선배란, 오늘 낮 제게 찾아와 기숙사 당번 일에 시답잖은 트집을 잡은 그 선배를 말하는 거였다.

쉬는 시간에 대뜸 교실에 제 친구 서너 명과 함께 쳐들어온 그 선배는 ‘네 일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오늘도 네가 당번 일을 해 줘야겠다’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하더니, ‘여기 같이 온 녀석들이 다들 내 말에 동의해 줬으니 네가 잘못한 게 아니겠느냐’ 같은 말을 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도 날 도와줬었지.’

 

이 모든 걸 보고 있던 아이렌은 ‘그런 문제라면 부사감이나 사감에게 말하는 게 맞지 않냐. 왜 여기서 말하냐’라는 말로 자신을 지지해줬다. 그 선배는 아이렌의 말에 대뜸 외부인은 조용히 하라 대꾸하긴 했지만, 결국 수업 종이 울려 강제로 돌아가야 했을 때까지 저 논리를 반박할 만한 대꾸를 하진 못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따로 위로까지 해주다니.

생각지도 못한 호의에 웃음이 터진 에이스가 아이렌의 손을 마주 잡았다.

 

“뭐야, 날 신경 써준 거야?”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어. 그때 이후로 표정이 썩 좋지 않았는데. 네가 기분을 망친 상태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둘 수는 없지.”

 

당도 높은 말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흘린 아이렌이 슬그머니 어깨를 으쓱였다.

 

“다들 너 하나가 두려워서 그렇게 떼지어 몰려온 거 아니겠어. 그러니 그냥 무시해. 어쩐지 사바나클로 학생이 할 법한 말이긴 하지만, 몰려다니며 서로 부둥켜안는 사람들치고 정말 쓸만한 사람은 없거든.”

“……하하, 그런 논리라면 인기인들은 다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되는 거 아냐?”

“아니지.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와 부적절한 목적을 가지고 서로를 치켜세우는 건 다르잖아. 누군가를 좋아해서 호감을 표현하는 것과 목적을 가지고 호의를 베푸는 건 다르지.”

 

그러니까, 결국 중요한 건 본심이 무엇인가란 말인가.

그렇게 치면 종교와 정치는 결국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필요에 따라 치켜세우는 이가 바뀌는 정치와 달리, 종교란 목숨마저 버려가며 지키려는 숭배 아니던가.

에이스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걸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제가 위로받을 시간이지, 토론 같은 걸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어쨌든, 아까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마. 죽으면 아무것도 아닐 놈들이 말은 많다니까.”

“그래, 그래.”

 

친절하기도 하지. 이렇게 설법까지 늘어놓으며 자신을 위로해주려 하다니.

에이스는 가지런히 손을 펴 아이렌과 손바닥을 마주했다. 꽉 붙잡았을 때처럼 강한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기도하듯 모인 손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강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누군가는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겠지만, 아마 아이렌은 죽고 나서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열렬한 신자가 아닌 에이스는, 그렇게 처음으로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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