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지 알 수 없는 심판자가 떠올라서
신수묵시록 스토리
속보입니다. 학생 30여 명과 교사 2명이 탑승하고 있던 버스가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학생들은 여름방학 합숙 캠프를 떠나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폭우와 인근의 산사태로 인해 작업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 … )
지난달 3일 발생한 버스 추락 사고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A 양이 오늘 오전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경찰은 한 달째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있으나 버스가 심하게 훼손되고
운전기사 B 씨는 사고 직후 행방불명되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2009년 3월 13일 금요일(1)
특별반 입반 시험을 위해 오후 내내 선양관의 출입이 통제됐다. 긴장과 불안을 이기지 못한 얼굴이나 신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찾기란 눈을 깜빡이는 것만큼 쉬웠다. 드물게 합격을 확신하며 느긋한 얼굴도 보였다. 신의 눈동자는 아이들의 낯을 천천히 새겼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2009년 3월 18일 수요일(1)
실기 고사를 통과한 아이들이 선양관에 모였다. 1층 세미나실에 모인 아이들은 차례가 되면 한 명씩 기도실로 향했다. 아이들의 맞은편에는 종교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 둘과 윤신영 보건교사가 자리했다. 전공을 선택한 계기와 특별반 지원 사유, 장래 희망, 신앙 유무 따위를 묻다가 ‘특별반의 최우선 목표는 예술적 재능을 꽃피워 주께서 보시기에 기쁠 만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교장의 훈화처럼 지루한 이야기에 아이가 긍정을 표하면 특별반 입반 시험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 흰 배지를 달고 있는 류가빈이 신호에 맞추어 기도실로 입장했다. 하얀 천으로 덮힌 ‘성수 가지’를 아이에게 건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가빈이 날카롭게 말했다. “뭐해? 걷어 봐.” 천을 걷고 가지를 받아든 아이는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에 몸서리쳤다. 심부 깊은 곳이 꿰뚫리는 감각, 혹은 미지의 존재가 자신의 혼을 움켜쥐는 감각. 앙상했던 가지가 순식간에 아이의 팔을 타고 자랐다. 팔을 옭아매던 가지는 손목에 자신의 형상을 남기고 나서야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깐의 정적 후 조용한 박수 소리가 기도실을 채웠다.
가빈의 교복 자켓에 달려 있던 배지와 같은 것을 손에 쥐고 나온 아이는 손목에 새겨진 문양을 한참 바라봤다. 특별반 학생이라는 증거이자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증명. 결코 본인의 의지로 지울 수 없는 운명이 지워졌음을 깨닫기에 열일곱은 어렸다. 특별반 면접을 본 같은 반 친구의 손목이 깨끗하다는 사실에 몰래 기뻐할 수는 있어도.
2009년 3월 25일 수요일(1)
2009학년도 신율특별반 첫 모임이 진행됐다. 낯선 얼굴들은 대부분 신입생이었다. 학교가 지명한 특별반 임원이 발표되었다. 학교는 반장으로 성살로메를, 부반장으로 명휘연을 지명했다. 담임인 신영은 대축일 미사를 기념하는 특별 공연이 예정되어 있고, 방학 중 일주일의 수련회가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올해는 수련회를 나눠서 진행한다는 것. 더욱 면밀한 전공 지도를 위해 하계 수련회 참석 인원과 동계 수련회 참석 인원이 나뉜다고 했다. 명단은 방학이 시작될 무렵 발표할 것이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1학기 모임 일정을 정리한 뒤 아이들은 기숙사 방을 옮기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기숙사로 복귀했다. 본래 특별반 전용실을 사용하던 아이들을 포함하여 새로운 방 배정이 발표되었다.
2009년 4월 15일 수요일(1)
14시경 중정의 천사 분수에서 녹물이 흘러 분수가 폐쇄되었다. 분수에서 녹물이 아니라 피가 흘렀다는 소문이 괴담처럼 퍼졌다. 분수 근처에 앉아 있으면 종종 울음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덧붙었다. 선생들은 학생들의 입단속에 나섰다. 특별반 소속의 호사평과 선아교 또한 그 현장에 있었다.
2009년 4월 26일 일요일(1)
천사 분수 녹물 사건의 목격자 중 한 명으로 알려졌던 이규현이 정기 외박 후 복귀하지 않았다. 규현의 보호자는 18시경 아들을 정문에 내려주었다고 증언했으며, 경찰에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다. 규현의 실종 소식이 알려지며 교지편집부, 방송부 등 중앙 동아리는 물론 각자의 방식으로 그를 찾으려는 학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9년 5월 5일 화요일(1)
천사 분수의 수리가 끝나 중정 접근 제한이 풀렸다. 녹물 발생의 원인은 수도관 부식이라는 것이 학교 측의 발표였다. 학교의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09년 5월 24일 일요일(1)
신성호 인근에서 이규현의 유서와 유품이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신성호 근처를 산책하던 특별반 명휘연이었다.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경찰은 성적 비관에 의한 자살로 수사를 잠정 마무리했다.
2009년 6월 24일 수요일(1)
특별반 정규 모임 직전 특별반 소속이자 부학생회장인 주신의의 실종 소식이 전해졌다. 짐을 챙겨 도망치듯 떠나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과, 누군가의 손에 끌려가는 것 같았다는 증언이 공존했다. 마지막으로 신의를 목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제니에게 잠시 이목이 쏠렸다.
2009년 7월 2일 목요일(1)
특별반 소속 가희수가 23시경 선양관 근처에서 교복을 입은 신의를 목격했다. 희수와 마주친 신의는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한마디로 일축하고 자리를 떠났다.
2009년 7월 5일 일요일(1)
특별반 소속 백강한이 정기 외박 후 이른 복귀 중 학교를 촬영하고 있는 수상한 사람을 목격했다. 저녁 7시경 수상한 사람이 학교에 침입하려다 경비원에게 들켜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2009년 7월 11일 토요일(1)
특별반 소속 신차엽이 외출 중 한 기자를 마주쳤다. 기자는 차엽에게 신율예고 특별반과 신수재림교에 대해 캐물었다.
2009년 7월 16일 목요일(1)
1학기 최종 성적이 발표되었다. 신의의 룸메이트인 유단비는 기숙사 복귀 후 방에서 신의의 이름이 완전히 사라지고, 짐 역시 깨끗하게 정리된 것을 발견하였다. 특별반 하계 수련회 참가자 명단이 발표된 날이기도 했다.
2009년 7월 24일 금요일(1)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신의가 특별반에서 제명되었다는 이야기가 암암리에 퍼졌다.
2009년 7월 29일 수요일(1)
신의의 특별반 제명 소식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개학 후 3일 뒤 특별반 추가 입반 시험이 진행될 예정이라는 공지가 붙었다. 특별반 하계 수련회 장소가 발표되었다. 신화리에 자리한 신수재림수도회. 신앙이 있는 몇몇은 성지를 직접 가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집’일 뿐이지만.
2009년 8월 3일 월요일(1)
수련회가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폭우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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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5일(?)
심부를 관통당하는 감각은 이로써 여덟 번째다. ‘우리’는 결코 2024년 8월 16일에 도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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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5일(?+1)
방학은 특별반과 무관한 일이다. 방학 후 첫 번째 특별반 모임이 진행됐다. 특별반 담임인 윤신영 보건교사와 부담임 마리아 수녀는 신의가 3일째 행방이 묘연해 걱정이라고 했다. 잠깐, 3일째라니…….
신수묵시록의 인트로 시점은 2009년 7월 29일(?+1)입니다.
스토리에 기반한 자유로운 사건 창작을 허용하며,
문의가 있으신 경우 총괄계(@time_to_r3c0rd) DM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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