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04
커미션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P의 머릿속에서 맴돈 문장이다. 다만 이것을 단순히 P의 머릿속에 맴돈 문장이라고 치부하기엔 어딘가 애매했다. 그야 S의 머릿속에서도 비슷한 문장들이 떠돌고 있었다. 오히려 이쪽에서는 더, 더 많은 문장이 떠다니고 있겠다.
시작은 이랬다. 불꽃이 터졌다. 검은 하늘을 바탕으로 쏘아올려져서는 꽃과 같은 모양으로 큰 소리를 내며 형형색색의 모양을 이루어냈다. 하이랄에서의 불꽃놀이라니 그토록 보기 힘든 것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그럼에도 이 광경을 눈에 담기 위해 너도나도 각자의 위치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S와 P도 마찬가지였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고선 뒤이어 따라오는 잔폭발음까지 생생히 귀에 담다보면, 내뿜어지는 빛이 각자의 얼굴에 짧게 드리웠다 사라졌다를 반복했으며 이에 추임새라도 넣듯 P가 예쁘다는 말을 내뱉었고 이에 S는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러다, 문득. 난간에 기대어 나란히 서 있던 S와 P가 서로를 눈에 담았다. 평소처럼 재잘대는 P의 목소리는 없었고 그에 맞춰 난감해하는 S도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하늘에서 꼬리를 그리며 높게 쏘아올려지고 있는, 아직 터지지 않은 불꽃. 그리고 그 밤공기 사이에 녹아들어 있는 둘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분다. 쌀쌀한 밤공기는 신경도 채 쓰이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S와 P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P는 온전히 S의 품에 안기자 제 한쪽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S의 턱을 만지작댄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엄지로 가면의 아랫부분을 천천히 매만지다가, 제법 갑작스러운 행동을 한다.
그 찰나의 순간 불꽃은 터지며 큰 소리를 냈고, P는 S의 가면을 살짝 들어올려서는 그 위에 제 입술을 겹쳐 꾹 눌러냈다. S는 살짝 놀란 눈으로 P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틀어 그 입맞춤을 천천히 받아내고 있었다.
몇 초간의 맞닿음이 지나고 S와 P는 다시 고개를 떼고는 서로를 다시금 눈에 담았다. 허나 이후 뒤따라오는 감정은 양 측 모두 당황스러움. P는 할 말을 찾지 못하며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느라 바빴으며 S는 아무 말 없이 제 가면을 고쳐쓰고 있을 뿐이었다. 부, 불꽃놀이는 이제 끝났나 봐요. 그럼, 그…… 들어가 볼게요. S 님도 주무세요! 먼저 자리를 떠난 건 목소리 떨리는 문장을 횡설수설 내뱉은 P였다. 이가단 조무래기 말로는, S 님은 왜인지 불꽃놀이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 그대로 한참을 선 채 시간을 보내시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들어갔다고 한다.
빠르게 자리를 옮겼던 P는 제 집에 돌아가고 나서도 섣불리 잠에 들지 못했다. 그야 당연했다. 세상 누가 처음으로 입을 맞춘 날 두 다리 뻗고 편하게 잠들겠나. P 또한 그랬다. 그렇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뭐 이런 느낌의 고민 탓이었다. P의 행동을 P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소였다면 지금 입 맞추기 딱 좋은 분위기 아니겠냐며 S에게 장난을 쳤을 텐데, 오늘은 그러한 사항을 생각하는 동시에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럽지 않았나? S 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기도 했다. 연인과의 입맞춤.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기만 했지. P가 이불을 목 끝까지 덮고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S 님도 싫지 않으셨을 거야. 그런 믿음과 함께 몸에 힘을 빼자 P는 천천히 잠에 들 수 있었다.
“……못 주무셨어요?”
P가 S를 올려다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이가단들이 보기엔 S는 늘 그렇듯 단단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P의 눈에는 영 아녔다. 평소와는 어딘가 달랐다. 가면 아래에는 분명 피곤한 얼굴이 자리잡고 있을 터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S가 P를 계속해서 피하려 들었다. 훈련이 있다며 자리를 옮기질 않나, 짐이 많으니 먼저 가 있으라며 보내버리려 하질 않나. P는 웃으며 넘어가기로 했다. 어제 일 때문에 그러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행동이 하루, 이틀, 사흘 즈음 반복되자, P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다.
“……마, 많이 이상했어요?”
눈동자를 굴린다. 평소라면 S를 올려다보며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을 P가 답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는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것은 S 또한 매한가지였어서, 평소라면 차분히 말을 내뱉었을 S는 기나긴 침묵만을 이어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침묵, 그리고 또 침묵. 몇 분 간의 긴 고요가 이어지고 나서야 S가 겨우 입을 열어냈다.
“……뭔가, 죄책감이, 조금…….”
……들었소. 머뭇거림과 함께 겨우겨우 문장을 끝맺는 S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소. 왜 내가 그런 행동을 했지? 혹시 P 공에게 이상한 짓을 한 것이라면 어쩌지 싶었고, 그것이 너무나도 후회되고 있었소. 답지 않은 모습으로 주절거리는 S의 모습을 P가 제법 당황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뒤늦게서야 웃음을 터뜨렸다. ……아, 하하하! 그런 가벼운 웃음을 한동안 흘리고 나서야 P는 다시 평소와 같은 밝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 수 있었다.
“그건 당연한 거예요.”
“……?”
“이상한 게 아니에요, 그런 건. 연인 사이면 말이에요!”
쓸모없는 고민이고, 쓸모없는 후회다. S는 그저 타 연인들과 매한가지로, 첫 입맞춤이라는 행위에 대해 놀란 것뿐이었다. P가 한쪽 손을 들어올린다. 손바닥으로 S의 등을 천천히 여러 번 쓸어내리며 그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연인끼리는 어쩌면 당연한 거잖아요? 입 맞추는 건. 사실, 우리는 이런 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사이인데도, S 님도 저도 처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낯설어하고 있던 것 같아요. ……P 공도 그랬소? 그, 그럼요. 저도 그 날 거의 도망쳤잖아요. ……그거야, 이상해서 떠나버린 줄만 알았소. ……에이, 그럴 리가요. 저는 정말 좋았는걸요…….
S가 천천히 P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P는 그런 S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S 님의 가면 아래 있는 얼굴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던 P는 익숙한 듯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게 무슨 표정이든, 분명 나쁘지 않은 표정일 거라고. 그렇게 판단한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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