걘 미쳤어 7
란 날조, 적폐 캐해 有
님 캐해 내 캐해 다르다면 내 캐해가 잘못된 거임
개연성 無 그냥 있는 게 없음
스트레스 해소용
그냥 연상한테 휘둘리는 란이 보고 싶었음
36.
그러니까 하이타니 란은 그거다. 욕먹는 걸 즐기는 사람. 지가 아니라지만 나한테 하는 꼬라지를 보니 아닌 게 아니다. 이 새끼는 분명 나한테 욕먹으면서 희열 느끼고 있다. 반사에서 어떤지는 몰라도 내 앞에서 저러는 걸 보면 맞는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황당하기 그지없는 와중에 내가 없는 사이에 씻기라도 한 건지 앞머리가 촉촉하게 젖어서 내려와 있는 꼴이 30대 집주인의 마음을 흔들어 놨다. 정신 차려, 얼빠야.
"집밥은 맛있었어?"
"맛없을 리가 있나. 간만에 먹으니까 아주 술술 넘어가고 좋더라."
"흐응, 란쨩 두고 먹으니까 좋았어?"
아까부터 자꾸 남친 행세하려는 꼬락서니가 진짜 내쫓고 싶게 생겼다. 잘생겼으면 뭐 하냐, 인성이 반비례에 범죄자인데. 역시 그때 구해 주는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하이타니 란이 정리하다 만 반찬들을 냉장고에 넣고 있는데 어디선가 벨소리가 울린다. 낯익은 벨소리였으나 내 주머니에서 울리는 건 아니었으므로 하이타니 란의 휴대폰이었다. 옆에서 종알대던 하이타니 란은 마치 좋은 시간 방해받았다는 얼굴로 방으로 들어가 수신자를 확인하더니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문을 슬그머니 닫아 버린다. 척 봐도 알겠다. 일 전화네.
37.
"코코, 무슨 일~?"
- 야, 이 새끼야. 너 진짜 한국 갔다며.
"그럼 가짜로 가~?"
- 아니, 하.... 미친 새끼야, 네가 하던 일은 마무리를 하고 가야 할 것 아니야!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들한테 마무리하라고 던지고 가면 어쩌라고!
"에, 그거 하나도 마무리를 못 지었다고~? 란쨩은 그런 멍청이들 내 밑에 둔 적 없는데~"
- 닥치고 귀국해. 네가 공들이고 있는 그 여자, 어차피 뒤에 아마미야 있다며. 뭐 그런 여자를,
"코코, 지금부터 란쨩이 (-)쨩 관심 사야 하거든? 바쁘니까 끊어~"
38.
하이타니 란이 전화를 하든 말든 내 할 일에 집중해 있던 나는 뒤에서 접근하는 것도 모르고 정리하다 만 식기들을 정리 중이었다. 이 집은 다 좋은데 수납장이 좁고 높아서 곤란했다. 내 키로도 애매한 곳을 멀거니 올려다보기만 하다 누군가의 손이 옆에서 불쑥 끼어들어와 화들짝 놀랐다.
“깜짝이야. 무슨 통화가 이렇게 빨리 끝나?”
“응, 딱히 중요한 전화 아니었어서~”
중요해 보이던데. 근데 내 일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하이타니 란을 부려먹기로 했다.
“이것 좀 저 위 찬장에 올려 줘.”
“이것만 올리면 돼? 다른 건?”
“일단 그것만. 잘 안 쓰는 식기인데 엄마가 가져다 놓은 거라.”
“장모님이 직접 가져다 두실 정도면 중요한 건가~?”
“누가 장모님이야. 안 중요하니까 그냥 거기 넣어.”
안 중요하지, 응. 누가 구 남친이랑 쓰던 식기를 중요하다고 해. 이 말은 꾹 삼킨 채 찬장 너머로 숨겨지는 식기를 잊기로 했다. 이 집에 내가 또 식기 두 개 두는 날은 없을 것이다. 생긴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39.
하이타니 란의 도움을 받아 정리를 끝내고 나니 주방이 한결 깔끔해졌다. 아, 새끼. 키 진짜 부럽네. 나도 조금만 더 컸으면 175는 됐을 텐데. 다시금 하이타니 란과 내 키를 눈대중으로 비교하다 그만두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하이타니 란에게 건넸다.
“고생했으니까 주는 거야. 마시고 제발 호텔로 가든, 일본으로 가든 해라.”
“에, 이거 마시면 란쨩 쫓겨나는 건가? 그럼 안 마실래~”
진짜 죽일까.
40.
하이타니 란은 진짜 맥주에는 입도 안 댔다. 나는 괜한 말로 아까운 기회를 날렸다고 생각하며 혼자 맥주를 홀짝거리다 주머니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휴대폰을 꺼내니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이 시간에 왜 전화하시지.
"응, 엄마."
- 너 이불은 괜찮니? 너무 두꺼운 이불만 가져다 놓은 것 같아서 조금 얇은 거 챙겨서 가고 있는데 두꺼운 거 일단 개서 정리해 놓을래?
날벼락이 떨어졌다. 아홉 시가 넘은 시간에 딸의 새 집에 남자와 둘이 있는 것을 보면 엄마는 몰라도 아빠는 뒤집어질 것이다. 그냥 일반인이어도 뒤집어질 마당에 온몸에 문신을 한 양키? 더 안 될 말이었다. 패닉에 빠진 나는 일단 전화기부터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운 채 멀대를 일으켜 손님방에 감금하려고 했다.
"왜 그러는지 일단 말은 해 줘야,"
"닥쳐."
그러나 내 전화기 너머로 일본어로 뭐라 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이미 흘러들어간 뒤였다. 누가 느껴도 조용해진 수화기 너머에 분위기 파악을 마친 하이타니 란이 씩 웃었다.
"드디어 어머님, 아버님께 나 소개하는 거야?"
하이타니 란의 완벽한 한국어 억양에 내 억장은 와르르 무너졌다.
근데 진짜로 란이 한국어를 한다면 잘할 것 같지 않나요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