걘 미쳤어 6

스트레스 해소용 자급자족 네임리스 드림

개연성 없음 아무것도 없음

32.

하이타니 란은 뻔뻔하게도 손님방을 점거했다. 침구 하나 덜렁 있는 방을 물끄러미 보더니 가져온 짐만 안에 내려놓더라. 그냥 나가 주면 안 되냐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인내했다. 어떻게든 개추태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했지만 완벽주의 성향이 그것을 방해했다. 그렇게 기묘한 사흘의 동거가 시작됐다.

"(-)쨩, 혹시 집에서 굶고 살 예정이야~?"

"남의 집 냉장고를 함부로 열어 보는 건 어느 집 가정 교육이니?"

"아, 란쨩 가정 교육 독학해서~ 오늘은 외식할까?"

할 말 없게 한다. 미유랑 아는 사이면 쟤도 대단한 집 자식이라는 건데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면 꽤나 방치되어 자랐다는 거니까. 그런데 누구 마음대로 외식하네 마네야. 

"저녁은 혼자 챙겨 먹어. 나 본가 가야 돼."

"에, 란쨩 두고?"

"그럼 데리고 가리?"

"좋아하시지 않으려나? 일단 남자친구 후보고."

약간 동정심 생기려던 거 취소한다. 

33.

"헛소리 말고 나와. 집에 너 혼자 두기도 불안하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얘를 내 집에 혼자 두는 건 조금 그랬다. 어느 정도 간단한 한국어도 할 줄 안다고 하니 잠시 집에 다녀오는 사이에 밥은 혼자 챙겨 먹을 수 있겠지. 아니다, 배달을 시켜 주고 가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신발장을 굴러다니는 운동화에 발을 꿰는데 하이타니 란이 꼼짝을 안 한다. 남의 집에 갑자기 쫓아온 주제에 불만 많네.

"나오라고 했다."

"란쨩 안 나갈래~"

"안 나가면 어쩔 건데."

"(-)쨩네 집에서 쫄쫄 굶지 뭐."

"헛소리 말고 신발 신어. 시간 없어."

"(-)쨩은 정말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마미야 미유가 뒤에 있으니까 내가 못 건드릴 거라고 생각해서 자꾸 내 심기 거스르는 건가? 

내 관심 얻겠다고 쫓아온 지 몇 시간도 안 된 주제에 고작 몇 마디로 심기 뒤틀려서 지랄하는 꼬라지가 딱 알 만했다. 그럼 그렇지. 나는 내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하이타니 란을 바라보다 잘 정리된 셔츠깃을 한껏 구긴 채 멱살을 잡고 끌어내렸다. 얼마든지 내 손목을 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잡힌 이 새끼의 자만심도 마음에 안 든다. 

"내 심기 거스르고 있는 건 너 아니야? 내가 말했지, 은혜는 돈으로 갚으라고. 다시 엮이지 말자고 몇 번이나 말했고, 안 들어처먹은 건 너고. 그래놓고 뭐? 심기를 거슬러?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좋다고 매달리고 있는 건 너야. 내 관심 얻겠다고 한국까지 쫓아온 것도 너라고.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면 일본으로 꺼져."

 쥐고 있던 멱살을 내팽개쳐도 뒤로 밀리는 시늉조차 안 하는 보라머리 또라이의 싸가지에 정말 질렸다. 쟤 전 애인들은 단순히 얼굴만 보고 만난 거겠지. 난 그 꼴 나지 말아야지. 집에 다녀오면 그대로 짐 싸서 일본으로 간 상태였으면 좋겠다.

34.

한국 복귀 기념 저녁상을 거하게 받고 품에 김치며 밑반찬까지 바리바리 얹어 준 부모님은 이제 데이트하러 가야 한다며 집에 가서 쉬라는 말로 날 내쫓았다. 일본으로 가기 전과 똑같은 일상에 고향으로 돌아온 걸 실감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현관문이 득달같이 열린다.

"뭐야, 너."

"뭐가 이렇게 많아? 란쨩 부르지."

"뭐냐고."

"뭐긴 뭐야, 란쨩이지~"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라.

35.

또라이는 내가 양손에 들고 있던 반찬과 김치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제 집마냥 자연스럽게 냉장고에 정리한다. 진짜 뭐 하는 새끼야?

"너 일본 안 갔어?"

"가길 바랐구나~?"

"갈 것처럼 지랄하길래 갔을 줄?"

"(-)쨩 나가고 생각을 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손해 같아서?"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렇잖아? (-)쨩 같은 여자를 내가 또 어디서 만나겠어~"

"찾아보면 수두룩할 것 같은데."

"그리고 내가 반사 간부인 걸 알면서도 겁 안 먹고~"

"미유네 집안도 그쪽이니까."

"또 이렇게까지 내 자존심 밟는 여자는 (-)쨩이 처음이라. ♡"

생긴 건 사디스트처럼 생겨서 취향은 마조였나. 대체 나한테 왜 이럼?

"아, 그렇다고 취향이 그쪽이라는 건 아니고. (-)쨩 내 앞에서 표정 안 숨기는 것 귀여워. ♡"

어머니, 딸래미 한국 돌아온 지 n시간 만에 사람 죽일 것 같아요.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