걘 미쳤어 5

스트레스 해소용 자급자족 네임리스 드림

개연성 없음 아무것도 없음

24.

관심 받고 싶으면 기라는 말을 남기고 하이타니 란을 카페에 두고 나온 지 한 달이 지났다.

내 말에 자존심이란 자존심은 닥닥 긁혔는지 멀대 같은 보라색 또라이는 그 뒤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얼마만에 느끼는 자유인지. 덕분에 나는 방해 없이 한국으로 이직을 준비할 수 있었다. 미유는 여전히 가지 말라고 징징대고 있었지만 나는 마음 먹은 일은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고향 땅 안 밟은 지도 좀 되었으니 이제 한동안은 들어가 있는 게 맞았다.

"한 2년만 더 있어, 응? 언니이."

"안 어울리게 웬 어리광이야. 네가 자주 놀러오면 되잖아."

"아줌마랑 아저씨도 일본으로 오시라고 하면 안 돼?"

"우리 형편에 이민은 무슨. 얼른 가. 낙하산 소리 듣기 싫다며."

내 말에 콧잔등을 몇 번 찡긋대다 한숨을 내쉰 미유를 한 번 꼭 안아 주고 배웅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25.

간만에 돌아온 고향에 기분 참 좋았는데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보라색 머리에 눈을 몇 번 비볐다. 보여선 안 될 염색모가 공항에 있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쨩. ♡"

미친 새끼인가.

"(-)쨩~ 나 안 보고 싶었어~?"

진짜 미친 새끼인가?

"란쨩은 (-)쨩이 너무 보고 싶었는데. ♡"

"너 왜 여기 있어?"

"(-)쨩이 관심 받고 싶으면 기라며. 근데 관심도 안 주고 홀라당 가 버리길래 쫓아왔는데? ♡"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26.

항상 입고 다니던 쓰리피스 수트와 다르게 편안해 보이는 캐주얼 차림이 진짜 작정하고 쫓아온 것 같아 나는 그만 분노로 이성을 잃을 뻔했지만 인내했다. 이 새끼가 잘생겨서 이성을 잃는 건 아니다. 황당한 얼굴로 하이타니 란을 바라보니 그렇게 잘생겼냐며 꼬리를 친다. 미친 여우 새끼.

"왜 자꾸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하게 하지? 은혜 갚을 거면 돈으로 갚고, 네 감정 내가 받아 줄 의무 없다고 했을 텐데."

"응, 그러니까. 받아 줄 의무 없는 건 알지만 그래도 (-)쨩이 좋은 걸 어떡해. 그래서 좀 열심히 꼬셔 보려고."

앞서 말했지만 나는 성별을 막론하고 미인에게 약한 타입이었다. 하이타니 란도 그 기준에 부합하는 인간이었으나 야쿠자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배제되었었다. 

미친 새끼, 쉼표머리는 사기 아니냐?

27.

위험했다. 이게 바로 스톡홀름 신드롬인가 싶고, 퀸젤이 조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그 과정이랑 비슷한 것 아닌가 싶어졌다. 스톡홀름 신드롬은 조금 다른 거지만 뭐 어쨌든.

 

하이타니 란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지낼 것이라고 했다. 반사여도 대외적으로는 이사라는 직함을 가졌으니 일은 해야 한다나. 그럼 그냥 일본에 눌러붙어 있으라니까 그건 또 싫단다. 진짜 어쩌라고였다.

"근데 너 언제까지 쫓아올 건데? 호텔 안 가?"

"호텔 예약 안 했는데?"

"뭐라고?"

"3일만 재워 줘. ♡"

28.

나는 오늘 하이타니 란을 죽였다.

이유는 터무니없었다. 아니, 터무니없지 않다. 날 스토킹한 주제에 3일씩이나 재워 달라는 파렴치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쥐고 있던 캐리어 손잡이에 힘을 줬다. 상상 속에서는 이미 이 캐리어로 하이타니 란을 몇 번이나 후려치고 피떡으로 만들었지만 나는 일단 지성이 있는 사회인이었기 때문에 참았다. 그런 내 속을 알고 있다는 양 서글서글 웃는 하이타니 란이 너무 괘씸해 발을 콱 밟아 버리고 택시를 잡았다.

"아파, (-)쨩~ 구두였으면 란쨩 발등 뚫었겠어. 완전 범천의 인재일지도~?"

"내 집에서 자고 싶으면 지금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시종일관 웃으며 깐족대던 하이타니 란은 입을 조개처럼 딱 다물었다. 

29.

이 새끼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미유에게 카톡을 남겼다. 일본어는 하이타니 란이 옆에서 읽을지도 모르니까 한국어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165            深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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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하이타니 란이 왜

                     1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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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메시지를 보내고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내 쪽을 바라보고 있던 하이타니 란과 눈이 마주쳤다. 거래처에서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입만 다물고 있으면 저 보라색 눈이 참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평생 입 다물고 웃기만 한다면 좋을 텐데 그는 내가 아는 인류 중 가장 지독한 공포의 주둥아리였다. 

"미유쨩한테 뭐라고 보냈어? 내 이름 있는 것 같던데."

"네 이름 있는 건 어떻게 알아?"

"한국어 조금 할 줄 알아서?"

C8, 나 이제 3일은 욕도 한국어로 못 하나?

30.

내 표정을 읽은 하이타니 란이 웃으며 설명했다. 일본 내에서만 불법적인 거래가 이루어지진 않는다며, 중요한 거래들은 간부진이 직접 나서야 하기 때문에 간단한 영어나 한국어 정도는 할 줄 안단다. 인터폴은 뭐 하냐, 이 새끼 안 잡아가고.

한참을 달려 새 오피스텔 앞에서 택시가 멈춰섰다.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내려는데 하이타니 란이 먼저 손을 뻗어 캐리어를 꺼낸다. 의도한 건진 몰라도 두어 번 접혀 소매가 걷어진 팔뚝에는 힘줄이 선연했다. 그 위로 새겨진 타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생각해 보면 처음 골목길에서는 그렇다고 쳐도 거래처에서도 목에 새겨진 타투는 얼굴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으니, 새삼 지독한 얼빠임을 실감했다.

"몇 층?"

"너 진짜 호텔 예약 안 했어?"

"응~ 몇 층이냐니까?"

"9층."

하지만 다 제치고 이건 좀 아니지 않나?

31.

하이타니 란은 나의 새 집에 손수 캐리어를 옮겨 주더니 제 집마냥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우리 신혼집도 이렇게 꾸미면 되겠다. ♡" 

"나가."

"하이타니 (-), 울림 좋지 않아~?"

"너랑 성 합칠 생각 없어. 나가."

"매정해라.♡"

대낮부터 깡소주가 필요한 날이었다.


조금 늘어질 것 같으니까 추후 본편들 모아서 상하로 나눌 예정... 

보고 싶은 장면은 딱 하나였는데 이상하ㄴ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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