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birds

흔들리는 것에는 형태가 없다

문호사서 : 高司書 타카무라 코타로X특무사서. 방랑벽 사서씨. (2018)

흔들리는 것에는 형태가 없다

일을 그만두고 여길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꽤 오래 전이었다. 방랑벽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원체 한 곳에 붙어있질 못하는 성정이기도 했고, 슬슬 새로울 것이 없어 일상의 모든 것이 질려버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질렸다고 생각하면 그 뒤로는 도무지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꽤 많은 것들을 그만두고 새로 시작하고 그만두고… 반복해왔다. 그래도 1년 반 정도면, 이번에는 나름대로 꽤 오래 버틴 편이었다. 더군다나 프리터도 아니고 정직원인데. 공무원이기도 하고. 일을 그만두기 위해 쓴 사직서가 몇 통쯤 될까. 이제는 세는 것도 귀찮아졌다.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게 두면 되고, 흔들리는 것은 흔들리도록 놔두면 된다. 가만히 있지 못한다면 움직이면 된다. 그래서 가능하면 나를 한 곳에 묶어놓는 것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여행을 떠날 때 짐을 가능한 만큼 줄이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관내는 그날따라 조용했다. 평소에도 딱히 시끄럽다고 할 만큼 소란스럽지는 않았지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고 무거운 공기가 장서실 전체를 누르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짐가방을 들어 올렸다. 가지고 온 것이 없어서 그런지, 떠날 때도 가방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직접 낸 것은 아니지만 사직서는 관장에게 잘 전달되었을 것이다.

- 서류 여기에 둘게요.

- 아아, 고맙다. 언제나 수고하는군.

그 서류 사이에 슬쩍 끼워뒀으니, 곧 발견하시겠지. 다소 책임감 없는 행동일 수는 있으나 예전에 몇 번인가 그만 두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도 있었고, 대충 내가 그만뒀을 때 업무를 이어받을 사람까지는 정해진 모양이었다. 어차피 관장도 나의 성정을 대강 알고 있었다. 그는 종종 내게 원래 알케미스트 중에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해 주곤 했다. 자신이라든지 아카나 아오처럼, 한 곳에 붙어 있는 알케미스트가 오히려 드문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는 그의 모습은 흡사 학문에 낚여 홀라당 대학원에 진학한 대학원생 같았다. 아무튼 그랬다. 떠날 것이라면 이별의 순간을 연출해서는 안 된다. 가지 말라던가, 가서도 잘 지내라던가 하는 말을 들어버리면 놀랍도록 흥이 깨져버리고 만다. 나는 언제나 갑자기 떠나는 것을 선호했다. 나름의, 미련을 남기지 않는 방법이었다.

손을 뻗었다. 금속으로 된 손잡이는 기분 좋게 차가웠다. 안녕히 계세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속으로 중얼거리며 문을 밀었다.

- 응?

덜컹, 덜컹. 힘을 주어 밀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상하다, 당겨서 여는 문도 아닌데. 내가 초과근무를 밥 먹듯 했더니 드디어 근력이 마이너스 상태를 찍었나… 그러나 몇 번이고 문을 밀어도 문은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았다. 불길한 예감이 몸을 감쌌다.

- 사서 씨, 어디 가려고?

- 타카무라 선생님.

나의 조수문호는 그곳에 서 있었다. 언제나처럼 웃으며, 온화한 말투로 말을 건네지만, 그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금색 눈동자가 빛났다.

- 짐 들어줄게.

선생님은 손을 내밀었다. 최대한 상냥하게,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태도였다.

- 제가 할 수 있어요.

- 그래서 그거 들고 어디 가려고?

- 말했잖아요, 그만두고 싶다고.

- 안 돼.

- 선생님이 아니라, 제가 정하는 거예요.

그는 나를 잠시 노려봤다. 사이에 침묵이 흘렀고, 나는 그를 본 시점에 이미 흥이 깨져버렸다. 여행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자 그가 말없이 그것을 들고 먼저 사서실로 향했다. 나는 사서실에 들어가기 전에 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직서를 못 본 척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관장실의 창문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자세한 상황이라든가 귀찮은 것을 물어보지 않고 곧바로 OK 답장을 해주었다.

앞에서 관장이 나의 성정을 이해해주었다고 말했다. 반면 타카무라 선생님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단어로 정의될만한 명확한 관계는 아니었다. 굳이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섹스 프렌드 정도가 어울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른다. 사랑의 고백 같은 것은 없었다. 암묵적인 연인 관계라고는 생각하지만, 결코 공식적이라거나 명시적인 것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짐을 만들어 버릴까봐 나는 그와 어떤 확실한,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을 경계했다.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생각하는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보고 있을 때는 언제나 적어도 종이 한 장 만큼의 경계나 거리감은 있어야 한다. 쉽게 끊어내기 위한 요령 중 하나였다.

사서실의 문을 열자, 그는 책상에 기대어 싸늘한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 사서 씨.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이지만 그건 명백히 화가 난 어조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이유도 없었거니와 어차피 이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해도 같은 결과일 것이라면 차라리 대답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나는 말없이 그의 옆으로 걸어가 짐가방을 풀었다. 이곳에 올 때와 같은 양의 짐, 최소한의 물건들뿐인 가방에는 어차피 별 대단한 것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잠시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짐을 풀고 있는 것이 어차피 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쇼의 일환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 배짱도 좋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 말했잖아요. 선생님이 정하는 게 아니라, 제가 정하는 거라고.

-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나는 나한테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만 두려고 한 걸 지적하는 거야.

- 그러니까, 그것까지도 제가 정하는,

- 적어도 상의라도 했다면, 덜 화났을 거야.

그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쩐지 화를 참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짐을 풀던 것을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몇 발짝 발을 옮기는 소리 후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 미안해요.

- 사과를 듣고 싶은 게 아니야.

- 몇 번 말했었죠, 어쩔 수 없는 내 성정이라고.

- …….

- 화났어요?

- 조금.

-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 …키스해도 돼?

싫다고 하면 안 할 거예요? 내가 장난스럽게 되묻자 그는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그냥 대답하지 않았다. 곧 입술이 겹쳐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내 존재를 확인하려는 듯 어딘가 절박하게 입을 맞춰오는 그의 앞에서 정작 나는 다음번엔 어떻게 해야 이 관계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여길 그만둘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H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