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의미가 퇴색된 입맞춤

펜슬 오픈 기념(? 짧은 단문 백업 / R-15

토우아키 by 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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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자님, 분명 들킬 겁니,"

  이따금씩 귀족 영애들이나 왕실 사람들이 한가로이 시간을 즐기러 오는 화원. 그 곳에서 시노노메 아키토는 벌건 대낮부터 셋째 왕자 아오야기 토우야와 입을 맞추고 있었다. 입술과 입술이 맞부딪히는 꽤나 외설스러운 소리가 화원을 가득 메웠다.

  아키토가 숨이 달려 무리다 싶으니 가쁜 숨과 함께 토우야를 밀어낼 때면, 토우야는 얼굴을 들이밀고 다시 입을 맞추려 들었다. 어느 기사가 군주의 명령에 불복할 수 있겠느냐. 설령 그것이 무언의 명령이라 할 지어도. 아키토는 그럴 때면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들고 토우야의 장단에 맞추어 입술을 포개며 이리저리 몸을 떨었다.

  숨 쉴 틈도 없이 입을 맞추는 것이 토우야의 악취미라도 되는지, 아키토는 힘겹게 코로 숨을 쉬며 토우야의 혀를 부드럽게 엮어내었다. 그럴 때면 토우야는 꼭 거칠게 혀를 옭아매곤 했다.

  더 하면 죽을 것 같을 때가 되고서야 아키토는 강하게 토우야를 밀어냈다. 서서히 눈을 떠 보면, 토우야는 늘 눈을 뜨고 있었다. 불그스름하게 상기되어 흥분감에 젖어 있는 그의 얼굴을 응시하며 아키토는 얼굴을 붉혔다. 그 얼굴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탓이었다.

  "하아⋯⋯."

  더운 숨을 내뱉으며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는 그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자면, 아키토는 쾌락과 더불어 밀려오는 죄책감 따위를 느낄 수 있었다. 본디 기사와 군주가 입을 맞추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행위였던가? 함부로 접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어야 할 판에, 이리 입이나 맞추고 있자니. 아키토는 숨을 고르며 차츰 이성적인 사고를 되찾아가려 노력했다.

   "⋯이게 몇 번째인가요, 왕자님. 이제는 정말 멈추어야 합니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떡하시려 그럽니까."

  문제는, 이리 말해도 토우야가 아키토의 말을 일절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토우야는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키토의 허리를 팔로 끌어안았다. 토우야가 아키토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을 때면, 아키토는 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에는 아키토도 망설이고, 토우야도 낯설어했지만 이제는 입맞춤 후 꼭 해야 할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으면 토우야 자신이 꼭 불만족스럽다는 듯 손가락으로 아키토의 어깨를 연신 두드렸다.

  "왕자님, 제 말 듣고 계십니, 읏⋯⋯."

  본래 토우야였다면 이맘때 즈음에서 끝내고 다시 집무실로 돌아갔을 텐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토우야는 아키토의 턱을 잡고 끌어당겼다.

  거리가 가까웠다. 너무나도 가까웠다. 서로의 호흡하는 소리가 귓가로 선명히 들려온다. 아키토는 토우야의 눈빛에 입을 맞추지 않았음에도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왕자의 눈빛이 두려웠다. 그는 단 한 번도 제게 다정한 눈길을 던져 준 적이 없었다. 오로지 입맞춤의 용도로만 쓰이는 기사. 억누르고 있던 욕망을 풀어내기 위해 쓰여지는 기사. 그것이 시노노메 아키토 본인이었다.

  곧이어 피식,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비웃음인지, 혹여 진정으로 소리 내어 웃는 것인지 아키토는 알 수가 없었다. 웃는 소리가 들려온지 얼마나 되었을까. 제 입술 위에 맞닿는 입술의 감촉에 아키토는 절로 입을 벌려 그의 혀가 쉽게 비집어 오도록 했다.

  혀를 몇 번 뒤섞을 때를 제하고선 눈길조차 주지 않는 왕자가 언제 저를 버릴지 모르는 터였다. 자신보다 더욱 혀 놀림이 좋은 사람을 찾는다면 자신이 버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자신의 혀를 몰아붙이는 그의 거친 움직임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것 때문인지. 아키토의 눈에서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떨어졌다. 이런 상황도 그의 눈에는 하나의 여흥 거리로 보일 것이다.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 역시 기대하는 것조차 사치다. 아키토는 눈물을 계속해서 흘리며 토우야의 장단에 맞추었다.

  기나긴 입맞춤 한 번이 끝나고 색색거리며 숨을 골랐다. 얼굴이 타액이며, 눈물이며, 말도 아니었다. 다시 한번 그가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는 얼굴을 볼 때면,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싫었다. 그저 동경의 의미로 가슴이 뛴 것이리라, 하고 자기합리화했다. 매몰찬 왕자는, 기어코 엉망으로 만든 기사 하나를 두고 다시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물론 익숙한 일이었다. 토우야가 무사히 집무실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전부 눈에 담고서야 아키토는 자신의 모습을 정돈했다.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아키토는 속으로 빌었다.

  저 왕자가, 언젠가는 나 때문에 처절히 후회하는 모습을 보게 해 달라고.

  왕자가 내게 입 맞추지 못해 안달난 모습을 살아 생전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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