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아키] 상실과 미망의 세계
아오야기 토우야 X 시노노메 아키토
*아키토시점
*녹턴 이전 시점
**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유유자적 흘러내려간다.
그날도 어느 날처럼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던 날이었다.
토우야가 아키토의 귀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늘은 처음 보는 이어폰을 하고 있네.”
그 시선에 토우야를 흘끔 바라본 아키토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을 툭 뱉어냈다.
“아, 원래 쓰던 게 갑자기 안 보여서. 저기 앞에서 하나 샀어.”
“그렇구나, 줄 이어폰도 잘 어울려 아키토.”
아키토의 분위기랑 잘 맞아서 멋지네. 토우야의 낮은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 아키토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나 참, 쓸데없는 칭찬을 다 하네. 가기나 하자.”
그 녀석들이 늦었다고 뭐라고 하겠네. 그렇게 말한 아키토는 잠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빼두었던 이어폰을 다시 꽂곤, 자신의 목을 두어 번 매만졌다.
토우야의 칭찬에 목이 달아올랐던 것은 햇빛이 유난히 따가워서였을 것이다.
저 녀석은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걸 텐데, 나도 참 유난이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싸구려 특유의 노이즈가 울려 퍼졌다.
표정을 찡그리는 것도 잠시, 아키토는 그 잡음들을 무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지겨운 음악도, 언제나 옆에 있는 한 사람분의 인기척도,
지금의 시노노메 아키토에게는 당연한 것.
그렇기에, 아키토가 곁에서 사라진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이, 토우ㅡ”
“야....?”
신호가 깜빡이는 교차로의 한가운데에서, 아키토는 잠시 멈춰 섰다.
그때, 툭 하고 떨어져내린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무척이나 낯설었던 것은, 급하게 사 들고 온 싸구려 이어폰 때문이라고.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본 채로.
아키토는 그렇게 생각했다.
**
아늑한 카페의 구석에서, 아키토는 말없이 표정을 찡그리며 휴대폰을 노려보았다.
토우야가 사라졌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옆에 있던 토우야가 증발하듯 사라졌다.
아키토는 몰려오는 불안감에 강박적으로 토우야에게 연락을 했다. 처음에는 메시지, 그렇게 메시지를 한참 보내고 나서는 전화를. 전화조차 받지 않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속 장소로 한달음에 달려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도착한 곳에도 토우야는 없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말 한마디 없이 갈 정도로 급한 일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자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아키토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져 갔다. 그때, 누군가 아키토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우와, 누가 이렇게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나 했는데, 아키토였네.”
시비 거냐? 속에서 끌어 오르는 짜증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로, 아키토는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목소리에 예상은 했지만, 그곳에는 시라이시 안이 서있었다. 안은 아키토를 바라보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이 시간에 너를 가게에서 볼 줄 몰랐는걸,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단체로 짜고 나 놀리려고 이러는 건가? 아키토는 짜증을 한껏 담아 안을 그대로 째려보았다.
애초에 이 약속을 잡은 건 저기 서있는 시라이시 안 본인이었으니까.
“시라이시, 네가 모이자고 했잖아.”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너까지 장난치지 마. 그렇게 쏘아붙인 아키토는 제 머리를 짜증을 담아 헝클어트렸다.
“응? 내가 만나자고 했다고?”
내가 너를? 그렇게 대답하는 안의 표정이 정말로 의아해 보여서, 아키토는 안이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야, 장난치지 말라니까.”
“이런 걸로는 장난 안 치거든?”
날이 선 아키토의 반응에 안도 투덜거리며 말했다.
“이렇게 짜증 낼 시간에 파트너나 구하러 가지 그래? 그러려고 온 거 아니야?”
“토우야가 있는데 내가 파트너를 왜 구해?”
뜬금없는 안의 말에 아키토는 다시 뜬눈으로 안을 바라보았다. 안은 그 대답에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파트너 구했어? 토우야라, 처음 듣는 거 같은데... 외부 사람인가?”
“외부 사람?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 하고 있네 너.”
그런 아키토의 말에 토우야... 흐음... 토우야? 그렇게 중얼거리던 안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며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역시 처음 듣는데.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 어쩐지 미안해지네.”
변하지 않는 안의 태도에 아키토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시라이시가 장난 한번 치자고 이렇게까지 하는 녀석이었던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어지러워졌다.
그럼 장난이 아니면 어떡하지? 정말, 장난이 아니라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일렁일렁이는 시야가 어지럽고, 소리는 잡음이 낀 듯 시끄러웠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한 인영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아키토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끼던 안이 그 인영을 보곤 표정을 활짝 풀며 손을 마구 흔들었다.
“코하네! 어서 와!”
울려 퍼지는 코하네의 이름에 아키토의 눈에 잠시 빛이 돌아오는 듯했다. 아키토는 성큼성큼 코하네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마침 잘 왔다. 아즈사와.”
아키토는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코하네를 빤히 바라보며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그녀의 어깨를 꽉 잡았다.
평소의 아키토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에 코하네가 몸을 움찔 떨었다. 안도 그 행동에 무슨 짓이냐는 듯 나서려 했다.
“시라이시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다들 짜고 나 놀리려는 거지? 그렇지?”
“토우야도 말이야... 갑자기 사라져서...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
횡설수설하며 중얼거리는 아키토는 누가 봐도 이상해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에 코하네는 이상하게도 그가 겁을 먹었다고 느꼈다. 그렇게 느끼자 몸의 떨림도 어째서인지 가라앉는 듯했다.
코하네는 용기를 내 아키토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아키토가 바라던 대답이 아니었다.
“저... 토우야 군이 누군가요?”
침묵이 그들의 위에 무겁게 눌러 앉았다.
코하네의 대답에 한참을 굳어있던 아키토는 몸에 힘을 빼 코하네를 놓아주었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안이 다급히 코하네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키토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로 뒷걸음질을 치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안과 코하네는 그런 아키토를 붙잡지도, 쫓아가지도 않았다.
그야, 그와는 아무 관계도 아니었으니까.
**
토우야가 사라진지 일주일이 지났다.
한 사람이 사라진다고 해서 많은 것이 바뀌지 않는다고,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다면 개소리 하지 말라고 한 대 날려버리고 싶었다.
그 정도로, 아키토는 한계에 몰려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아키토는 미친 듯이 지난 흔적을 헤집고, 뒤집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토우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다다를 뿐이었다.
아키토는 멍하니 쪼그려 앉아, 토우야가 사라졌던 교차로를 바라보았다.
신호가 점멸하듯 깜빡이더니, 이내 빨간불이 되었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파트너를 잃고, 한때, 동료였던 이들이 타인이 되고, 내가 알던 모든 것이 부정 당했다.
토우야가 없다.
아무도 토우야를 알지 못한다.
그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세계조차 그를 지워버린 것 같았다.
그런 세계에서, 자신 혼자 미망(未忘)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이상해 토우야, 우린 분명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네가 없는 것 만으로도 내 세계는 이렇게나 많이 달라져 있어.
나쁜 자식! 빌어먹을! 천하의 개자식!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렇게 나를 바꿔 놓고선 없어져 버리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엉망이 되었을 자신의 얼굴도, 자신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어떻게 되든 좋았다.
내 파트너, 만약 널 잊어버린다면, 나는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그 녀석과 같이 RAD WEEKEND를 뛰어넘기 위해 다시 노력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네가 이 세계에 처음부터 없었다고 해도, 그저 내 망상에 불과했더라도, 나마저 널 잊어버린다면 네가 있었다는 사실이 전부 거짓말이 되니까.
너의 존재를 거짓말로 만들고 싶지 않아.
눈물을 닦아내지도 않아 뿌연 시야로, 아키토는 한참 동안 교차로의 신호가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싸구려 줄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곤, 이제 지겨워진 노래를 다시 한번 틀며, 홀로 교차로를 건넜다.
그렇게, 아키토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상실하고,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것을 잊지 못하는 미망인(未忘人)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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