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스치듯 기억해둔 말을 카나데는 몇 번이나 곱씹고 있었다. 카나데가 태어난 때보다 몇 세기는 일찍 만들어진 말이지만, 그 말은 놀랍도록 잘 맞아떨어졌다. 시간의 흐름은 감정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기나긴 시간 속에서 감정이란 찰나의 일에 불과했다.
요이사키 카나데는 지금 아주 의외의 방법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자고, 작곡하고, 가끔 배고플 때 컵라면에 물을 붓는 단조로운 일상이 어그러졌다는 것에서.
"이제부터는 자주 접속 못 할 것 같아."
"졸업했는데도 뭐가 그렇게 바빠?"
퉁명스러운 에나의 말에, 마후유가 담담히 대꾸했다.
"나, 의사가 됐어."
그 한 마디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
셋은 저마다의 생각을 삼켰다. 고등학생이라는 안전지대 안에서 벗어난 지금, 이제는 사회로 나가야 할 시기였다. 공부도 잘하고 우등생이었던 마후유가 사회에서 환영받는 인재가 된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친구로서 축하해, 잘됐다, 하며 칭찬해야 하는 것이 옳을 터인데.
카나데는 이상하게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축하해, 가 아니라 결국 의사가 되었구나, 하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나이트코드 접속창의 유키는 마후유가 아닌 다른 누군가인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에 마후유는 카나데를 거부했다. 건드리지 마, 내버려 둬. 가시에 찔릴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카나데는 마후유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너를 내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신뢰가 맺은 결과일까. 마후유는 조금씩이나마 진심을 드러냈다. 스스로를 알아가는 마후유를 보며 카나데는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마후유는, 아니 유키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의사가 되었다고 통보하고 있었다. 유키는 결국 대리석으로 된 동상이 되어 있었다. 병원 앞에 위풍당당하게 학력과 이름을 자랑하는, 하지만 차갑고 감정 없는 그런 동상.
요이사키 카나데는 비로소 자신의 착각을 깨달았다. 25시 멤버들과 함께하는 나날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건 욕심이었다. 시간은 어떻게든 사람을 미래로 밀어낸다. 설령 카나데가 계속해서 이 시간에 묶여 있기를 바랐다고 해도.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밤이라 창밖이 어두웠다. 별들은 쓸데없이 예뻤다. 물을 머금은 별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내가 눈이 많이 나빠졌던가? 눈을 비비면서, 카나데는 눈앞의 별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성인이 된 이상, 나이트코드에서 마후유를 자주 보기는 힘들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쓰렸다. 마후유의 길을 흔들어 놓기에 내 노력은 너무 미약했던 걸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절망감이 차가운 밤공기를 타고 내려앉았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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