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일기
Amia가, 아니, 미즈키가 죽었다. 여름날의 함박눈 같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식을 접한 지 이제 막 하루가 지나고 있다.
이변을 눈치 챈 건 오늘 25시 때였다. 영상 편집만 끝나면 바로 올릴 수 있는 신곡이 하나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미즈키에게서 파일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업에 관련된 시간 약속을 어긴 적도 별로 없었고, 만약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 같으면 언제나 사전에 연락을 해 주던 그였기에 더욱 이상하다 싶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을 받은 건 마후유와 에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까지 무겁게 생각하진 않았다. 미즈키가 늦다니 별일이네, 무슨 일 있나, 심야 애니메이션 보다가 집중한 나머지 까먹은 거 아냐? 그 정도의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가볍게 웃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Amia’라는 익숙한 닉네임으로부터 채팅이 올라왔다. 역시 별일 아니었나, 하고 생각하며 확인한 그 메시지는 평소의 미즈키의 말투가 아니었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마치 보고와도 같은 그런 말투였다. 실제로 보고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Amia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저의 동생이 방금 숨을 거두었습니다.’라는 문장이 머리말인 보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처음에는 장난이라 생각했다. 미즈키는 장난과 농담을 좋아하던 사람이었으니까, 하고 말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알고 있었다. 만약 이게 장난이자 농담이라면 너무나도 질 나쁜 장난이고 이제까지와는 결이 다른 농담이라는 걸.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미즈키는 그런 장난과 농담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을 인정했다. 물론 절반 정도의 인정이었다. 머리로 하는 정보 습득은 어떻게든 되었으나 마음으로 하는 수용은 전혀 되지 않았다. 에나는 비통함과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미즈키의 이름을 연신 부르다가 방에 들어온 남동생 분에 의해 연결이 끊어졌고, 마후유는 죽어, 미즈키가, 같은 단어와 문장 중간 어딘가에 있는 얘기를 몇 번씩이고 중얼거리다 “이제 어떡할 거야?” 하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나마 부모님의 일을 통해 죽음을 한 번 경험해 본 내가 제일 침착할 수 있었다. 나는 아침에 메시지에 적혀 있는 장례식장에 가자고 마후유에게 얘기한 뒤 나중에라도 에나가 볼 수 있도록 동일한 내용을 메시지로 남겼다.
장례식장에 가는 인원은 생각보다 많았다. 나랑 마후유, 에나 말고도 에나의 남동생 분을 포함해 일전에 한 번 마주쳤던 사람들까지 총 일곱 명이 미즈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다. 이렇게까지 사랑 받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니 다시 한 번 가슴이 송곳으로 쑤셔지듯 아팠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에나는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식장까지 가는 동안 어떻게든 참으려 애쓰던 눈물을 전부 쏟아 내듯이 펑펑 울었다. 함께 온 에나의 남동생 분이 에나를 위로해 주듯 그 옆에 같이 쭈그려 앉았고, 마후유는 울지 않는 대신 아주 괴롭다는 듯이, 고통스럽다는 듯이 눈앞에 놓인 미즈키의 사진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고만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대로 미즈키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리고 나는 죽음을 한 번 경험했다고는 하나 친구의 죽음은 또 처음이어서, 먹먹한 가슴과 흐려지는 눈앞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꾹 감은 채 고개를 숙였다. 미즈키의 가족 분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우린 하루 종일 그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꽃을 놓고 인사를 하고, 내가 어렸을 적에 눈으로만 봤던 일들을 직접 하고 난 뒤 우리는 미즈키의 가족을 마주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세 얼굴들 속에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는 미즈키의 얼굴이 계속 어른거려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었다. 셋 중에서 가장 미즈키와 닮아 있는 사람이 자신을 미즈키의 누이라 소개하며 자신이 부고 소식을 돌렸다고,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겠느냐 물어서 우리는 짧은 대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어제 늦저녁에 교통사고를 당한 미즈키는 현장에서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밤을 넘기지 못하고 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미즈키의 출혈량이 너무 많은 탓에 손쓰기도 전에 그렇게 되었고, 사고를 낸 운전자는 미즈키가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오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여 알려 주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마지막 얘기에 에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격하게 분노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다 있느냐고, 그럼 미즈키가 자살을 택했다는 거냐고, 그냥 본인의 죗값을 줄이기 위해 헛소리를 늘어놓는 거라고 울부짖듯 소리쳤다.
마후유와 나는 그 옆에서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달랐다. 아주 분명히 달랐다. 마후유의 표정을 통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그 표정을 통해 나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침묵을 지킨 이유는 분노도 아니었고 납득이 가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확실하게 반박할 수 없어서였다. 미즈키는 스스로 죽음을 택할 사람이 아니라는, 흔하디흔한 그 한 문장을 얘기할 수 없어서였다. 그 흔한 문장을 나를 대신해 얘기해 준 건, 아니, 확언해 준 건 에나의 남동생 분이었다.
우리들은 식장 앞에서 헤어졌다. 사람들은 각자의 길로 사라져 갔고, 나랑 마후유는 그 뒷모습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귀갓길에 올랐다. 그 길에서 마후유는 새벽에 내게 건넨 물음을, 이제 어떡할 거냐는 물음을 다시 한 번 꺼냈다.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미래에 대한 얘기인지 아니면 니고 활동에 대한 얘기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어.”라고 답했다. 내 답을 들은 마후유가 중얼거린 “꼭 나 같은 대답이네.”라는 말이 어째서인지 견디기 벅찰 만큼 힘들었다.
집에 도착하고 나는 옷을 갈아입으며 마후유의 말을 곱씹으며 고민했다.
이제 어떡하면 될까.
니고 활동에 관해서는 답이 정해져 있다. 새로운 사람을 찾거나 세 명이서 이어 나가거나, 둘 중 하나. 어느 쪽으로 나아갈지는 모두와 상의해 봐야겠지만……. 새로운 사람을 찾진 않을 것 같다. 편집 실력도 그렇지만 사람 미즈키를 대신할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요즘엔 리릭 비디오라고 해서 크고 화려한 편집 없이 가사만 띄우는 형식의 뮤직 비디오도 많이 보이니 그런 쪽으로 방향을 틀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미래에 관해서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진심으로 모르겠다. 바로 위에도 쓰긴 했지만 미즈키는 내게 있어 편집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Amia가 필요해서 말을 걸었지만 점점 아키야마 미즈키가 필요해서 말을 거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얼굴도 볼 수 없고, 닿을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 그 사실이 애달프고 고통스럽다. 사무치게 허하고 뼈저리게 쓸쓸하다.
…운전자는 미즈키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고가 난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얘기를 그의 누이 분에게 들었을 때, 미즈키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미즈키에게 드리운 불온한 음영을 나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걸까. 그렇다면 나는 왜 그를 막지 못했을까. 모니터 너머의 사람들을 구원하겠다고 곡을 만드는데, 정작 바로 옆에서 나를 도와주던 사람을 구하지는 못했다. 이런 내게 자격이 있을까. 구원이라는 낱말을 입에 담을 가치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마저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게 갑갑하기만 하다.
보고 싶다.
…그거 알아? 나는 미즈키가 필요했어. 아니, 지금도 필요해. 분위기를 유하고 따습게 만들어 주는 장난스러운 네가, 흔들리는 나를 잡아 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웃음 짓던 상냥한 네가, 이틀 넘게 철야를 한 나를 바라보며 걱정 어린 표정을 짓고 안부를 묻던 착한 네가 필요해. …너는 내가 안 필요했어? 생각 같은 충동을 앞에 뒀을 때 내가 떠오르진 않았어? 나 덕분에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다고 얘기했었잖아. 이번에는 그게 안 됐던 거야? 내 노래로는, 우리의 노래로는, 나로는 안 됐던 거야? 그렇게나 너의 안에 있던 나는 작았어? 선택 하나 가로막지 못할 정도였어? …아니, 아니야.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가 조금 더 신경을 기울였어야 했어. 너의 좋지 않은 표정을, 한없고 더없이 외로워 보이는 표정을 볼 때마다 괜찮으냐고 물었어야 했어.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나이트코드에 안 들어올 때마다 안부를 물었어야 했어. 이렇게 되기 전에 너를 안아 주고 너의 얘기를 들어 줬어야 했어. 내가 너의 옆에 있다는 걸, 언제든 나에게 기대도 된다는 걸, 너를 위한 노래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걸 말해 줬어야 했어. 어려운 얘기도 아니었고 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는데……. 그걸 못 해 준 게, 너무나도 미안해. 그리고 이보다 더 미안한 건……. 이렇게나 너를 방치한 나인데, 내 잘못을 알고 너에게 준 상처를 아는데, 그런데도 네가 보고 싶다는 거야. 정말 말 그대로 사무치게 보고 싶어. 만약 널 한 번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꼭 사랑한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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