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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천동굴

치치미즈

篝火 by 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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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머니는 우리가 잘 보살펴줄 테니, 안심하거라.

촌장의 말에 미즈키는 코웃음이라도 치고 싶었다. 빈곤한 촌락에 어울리지 않는 상등품 기모노, 고급 술과 술잔.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지 신을 위해 준비한 공물과 치장일 뿐. 지아비도 아들도 없는 나이 든 여성을 이 각박한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대할지, 미즈키는 잘 알고 있었으나 잘 부탁드린다는 상투적인 인사 외에는 꺼낼 수 있는 말이 없어 더욱 분했다.

미즈키는 공물을 들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저 산 중턱엔 거대한 뱀이 한 마리 사는 동굴이 있다고 한다. 수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할 때 흘러내린 용암과 그것이 녹인 나무며 흙이 동굴이 되었고, 그 안에 뱀이 자리를 잡아 산의 주인 행세를 하며 용이 되기 위한 수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뱀이 용이 되려면 덕을 쌓아야 한다는데 그러면 인간을 공물로 받으면 안 되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차라리 자신을 집어 삼켜 선처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었있다. 자신이 멀쩡히 살아 마을 사람들에게 발각된다면, 제물로써 제 할일을 다하지 못했다며 몰래 죽이거나 새로운 제물을 바칠 테니.

동굴에 가까워지자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운해가 낄 날씨는 아닌데. 따라가던 사람들도 웅성대며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미즈키만이 아랑곳 않고 차분히 동굴로 향했다. 어차피 곧 뱀에게 먹혀 죽거나 동굴에서 아사할 거, 그깟 운해가 뭐라고. 예상보다 담담한 미즈키 때문에 다른 이들도 어영부영 발을 옮겼다.

마침내 동굴이 눈앞에 보였다. 그들은 서로 흘끔대다가 미즈키의 등을 툭 하고 밀었다. 그러지 않아도 알아서 갈 거다. 미즈키는 속으로 대꾸하면서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촌장과 무녀가 말한 대로 보따리를 풀어 떡을 올리고, 술잔을 가득 채운다. 두 잔을 채워 하나는 자신이 마시고, 다른 하나는 신에게 올린 다음 무뤂을 굽히고 앉아 뱀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마을 사람들은 뒤에서 축문을 읊은 다음 줄행랑치듯 산을 내려갔다.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미즈키는 이 촌극이 빨리 마무리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인기척이 사라지자마자 동굴이 닫혔다.

말 그대로 하얀 실 같은 것이 안쪽에서 뻗어나와 입구를 막았다. 미즈키는 어깨를 떨었으나 뒤를 돌아보거나 몸을 일으켜 입구로 달려가진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일이 더 잘못될 거 같았다. 파르르 떨리는 눈꼬리를 모른 체하며 미즈키는 고개를 숙였다.

"음, 이건 예상도 못한 일이구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나 할 법한 말투를 쓰며 천장에서 무언가가 내려왔다. 새하얗고 길쭉한 덩어리가 탐색하듯 다가와 미즈키 주변을 뱅뱅 돌았다. 마치 이것을 제가 삼킬 수 있는지 확인하는 움직임 같다고 생각하다가 미즈키는 깨달았다. 동굴에 산다는 뱀이 이 녀석이구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겁주기 위해 만든 옛날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서로에게 잔인한 생물이군. 보나마나 기근을 해결해달라고 이몸에게 바친 거겠지."

정확하다. 하기사 과거에도 한두 번 정도는 이런 일이 있었을 테지. 미즈키는 침음을 삼키면서 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 좀 잡아먹고 어떻게 좀 해주지 않을래? 내가 살아있거나 기근이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제물이 올 거야."

이런, 그래도 용이 되기 위해 수련하고 있는 영물인데 경어를 써야 했나. 말하고 나서 후회했지만 의외로 뱀은 인간의 허례허식이나 예의범절에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뱀은 미즈키가 한 말 그 자체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곤란하군, 곤란하이. 몇 번이나 곤란하다는 말을 중얼거리던 뱀이 말했다.

"기근은 곧 끝날 걸세. 지금은 단지 봄이라 비가 내리지 않을 뿐.... 곡우가 지나가면 그때부터 비가 내리고 지하수가 차 만물이 생기를 되찾을 걸세. 하지만 자네를 잡아먹어야 한다는 건 마음에 걸리는군."

흐음, 하고 다시 고민하는 소리를 흘리던 뱀이 미즈키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자네, 혹시 내 시종이 될 생각은 없는가?"

"뭔 소리야. 내가 살아 있으면 새 제물이 온다니까?"

"앞으로 자네가 다닐 곳은 인간계가 아니라, 천계와 선계일세."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미즈키는 얼떨떨해 하며 다시 뱀에게 물었다.

"그 정도야 네가 알아서 갔다 오면 되지 않아?"

"이몸은 이 산 일대를 보호하느라 바쁘네. 그리고 이몸은 천계도 선계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러니 자네가 양쪽을 다니면서 내 수족이 되어주었으면 하네."

설마, 용이 되기 위해 수련한다는 산의 주인이 답도 없는 은둔자일 줄이야. 미즈키는 이마를 짚고 곰곰이 생각했다. 어차피 이제 인간으로서 살지 못한다. 다른 마을로 심부름을 간다 해도 누군가 미즈키를 아라보고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면, 그들은 필히 미즈키를 해하려 들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갈 데가 없다면, 차라리 이 뱀에게 붙어 명줄을 좀 더 이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까지 체념하고 있었지만, 미즈키는 누구보다도 살고 싶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둔 건 없지만 이렇게 죽고 싶진 않았다. 미즈키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들었다. 하얀 덩어리던 뱀은 어느 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여 왼쪽 눈을 가린 기이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이 영물이 가진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리고 있었다.\

"...미즈키야. 당신은?"

"뭐, 적당히 부르도록 하게나. 이몸에게 특별히 정해진 건 없으니."

뱀은 그렇게 말하면서 술잔과 떡을 집어 들었다. 음, 가난한 마을에서 준비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상등품이군. 뱀은 떡과 술을 번갈아 먹고는 흡족해하며 동굴 안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미즈키도 급히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

영물의 시종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때의 미즈키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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