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삽니다

오토바이와 밤 벚꽃

치치미즈

篝火 by 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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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노전님(@professorcchan) 연성 기반

“미즈키, 다음 주 화요일 시간 되나?”

“왜? 벚꽃 때문에?”

게게로가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미즈키는 어떻게 알아챈 건지 오토바이 헬멧을 쓰면서 물었다. 헉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면 미즈키는 특유의 악동 같은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면, 일주일 전부터 벚꽃 벚꽃 노래를 불러댔는데 모를 줄 알고?”

아앗, 하면서 게게로는 부끄러운 척을 했다. 저게 가식적이지 않고 귀엽게 느껴진다면 나도 갈 데까지 갔다 이거지. 같이 산 지 무려 70년이나 지나 갈 데는 한참 지나 가선 안 되는 곳까지 향하는 주제에 미즈키는 태평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워커에 라이더용 장갑을 끼면서 미즈키는 덤덤하게 말했다.

“도쿄는 다다음주부터 벚꽃이라던데, 다음 주 화요일이면 따로 정해둔 데라도 있어?”

“으음, 효고 현은 어떨까 생각 중이었네만.”

“효고 현? 살짝 뜬금없는데.”

의외의 장소에 미즈키는 집을 나서려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쿄보다 일주일이나 일찍 피는 곳이라면 대충 고치 현 정도일까 생각했는데, 효고 현이라니 조금 당황스러운 선택이었다. 차라리 그 옆에 있는 교토나, 아래에 있는 히로시마라면 모를까. 미즈키는 고개를 쭉 빼고 거실에서 날씨 예보를 보고 있는 게게로에게 물었다.

“효고 현은 왜?”

“음, 오사카베히메 양이 이번에 피는 벚꽃으로 술을 빚을 테니 손을 보태달라고 각 요괴에게 전서구를 보냈다네.”

“뭐야, 그럼 벚꽃이 아니라 술이 목적이잖냐.”

미즈키가 핀잔을 주니 게게로는 토호호, 하고 웃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자네도 요괴의 술을 좋아하지 않는가. 게게로의 말에 미즈키는 반박할 거리를 잃고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내가 불로장생하는 건 유령족의 피가 아니라 요괴의 술이며 음식을 너무 많이 받아먹어서라고 미즈키는 속으로 짐작했다.

“미즈키여, 히메지 성의 벚꽃도 참으로 근사하다네. 교토나 도쿄만큼은 아니지만 그곳만의 청취가 있어. 나는 자네에게 그 조용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네.”

“…너 이와코 씨도 이렇게 꼬셨지.”

아이처럼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얼굴로 저런 달콤한 말은 반칙이다. 미즈키는 어쩐지 뒤통수가 간지러운 느낌을 받았다. 맹하게 생겨서는 말은 참 잘한다. 저 말로 대체 몇 명을 홀렸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이와코가 게게로를 남편으로 삼은 데에는 둘 밖에 남지 않은 유령족이라는 특수성도 있겠지만 저 말빨도 한 몫 할 것이다. 미즈키의 칭찬 아닌 칭찬에 게게로는 다시 토호호,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즈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던 건지 손을 내밀다가 헬멧을 보고는 입술을 비죽이며 도로 내렸다.

“그 이상한 모자는 안 쓰면 안 되나.”

“안 돼 안 돼. 아직 불사까지는 아니니까 사고라도 나면 머리가 날아가서 죽는다고?”

“죽으면 안 된다네 미즈키!”

“어어, 그러니까 이 손 좀 놔줄래? 네 악력에 내 머리가 터지게 생겼으니까.”

미즈키의 농담 같지만 진지한 말에 게게로는 바로 손을 거두었다. 그러나 머리를 만지고 싶어 낑낑대는 꼴이 주인에게 치대고 싶어 안달난 강아지 같아, 미즈키는 웃음을 참으면서 헬멧을 벗었다.

“다녀올게, 게게로.”

“조심히 다녀오게나, 미즈키.”

드디어 이마에 뽀뽀를 할 수 있게 된 게게로가 화사하게 웃으면서 이마에 입술 도장을 남겼다. 게게로의 이마 키스는 항상 축복을 내려주는 듯한 기분이라 받을 때마다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미즈키는 고개를 숙이느라 드러난 게게로의 뒷목을 쓸어주며 물었다.

“이따 올 거야?”

“음, 가게 정리할 때 즈음 찾아가지.”

“그래. 그럼 그때 보자.”

미즈키는 활짝 웃으며 다시 헬멧을 쓰고 밖으로 나갔다.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오토바이와 밤 벚꽃

미즈키는 5년 전, 쉴 만큼 쉬었으니 일을 하고 싶다며 돌연 카페를 열었다. 마침 게게로가 아는 요괴 중에 인간계에 건물을 하나 산 녀석이 있어, 그놈에게 매주 원할 때 팬케이크를 만들어주는 조건으로 1층에 브런치 카페를 열 수 있었다. 왜 하고 많은 것 중 브런치 카페인가 물었더니, 이 업종은 단가가 높고 운영 시간이 점심 한 철이기 때문에 단골이 생기기 어려워 10년을 하든 20년을 하든 눈치챌 인간이 없어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꽤나 오래 전부터 이 일을 할 준비를 했구나, 라며 게게로는 단명종의 부지런한 특성에 감탄했다가, 그러면 이제 자신과 놀 시간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서운해하는 소리를 냈다. 좀 더 자신과 놀아주면 안 되느냐고 끌어안으며 떼를 쓰니 미즈키는 인간계에서는 돈이 필요한데 일을 안 하면 그걸 어디에서 구하느냐고 딱밤을 놓았다. 그러면서 너에게 좋은 옷과 먹을거리를 주고 싶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싶어서 그런 거라는 꽤나 낭만적인 말을 했다. 이와코가 생각나면서도 미즈키다운 이유라고 게게로는 혼자 흐뭇해했다.

그렇게 가게를 얻고 인테리어 공사가 끝난 후, 미즈키는 돌연 아는 퇴마사에게 부탁해 새 운전면허증을 딴 다음 중고 오토바이를 하나 구했다. 미즈키는 매일 게게로를 데리고 오토바이 매장을 돌면서 깨끗하면서도 연비가 좋은, 그리고 그중에서 게게로가 가장 마음에 들어가는 기종을 찾아 다녔다. 그렇게 고른 것은 검은 차체에 붉고 푸른 포인트가 들어간 무광 오토바이였다.

솔직히 게게로는 자동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시끄러운데다 너무나도 빠르고, 관리도 힘든데다가(미즈키의 말에 따르면 주기적으로 연료를 넣어주고 닦아주고 검진을 받아야 오래 탈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너무 많은 생명을 죽였다. 그리고 무수한 탈것들 중 오토바이는 가장 최악이었다. 그것은 자동차보다 빨라 순식간에 사고가 일어났다. 게게로는 미즈키가 멀쩡히 있는 자동차를 두고 그 위험한 오토바이를 사려고 하는지 납득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 게게로는 그 오토바이라는 것은 자동차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게게로는 흘긋 시계를 보았다. 오후 네 시 반. 슬슬 미즈키의 가게가 ‘내일 만나요’라고 적힌 팻말을 걸 시간이다. 게게로는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팔꿈치 부분이 검은 천으로 덧대진 붉은 가죽재킷을 샀다. 오토바이를 탈 때는 이 곳이 편할 거라며 미즈키가 사준 것이었다. 벌써 5년이 지나 군데군데 헤지고 색이 바랬지만 게게로는 여전히 이 옷을 입고 다닌다. 미즈키가 자신을 생각해 사준 옷이지 않은가.

한쪽 옆구리에는 헬멧을 끼고, 게타 대신 워커를 신은 채 게게로는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독특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미즈키를 배웅하러 가는 길에는 절로 휘파람이 나왔다. 중간에 앞집 이웃을 만나 가볍게 담소를 나눈 다음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미즈키가 운영하는 카페는 그들의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도보로 약 40분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직통 노선도 없고, 주차 공간도 여유롭지 않아 미즈키는 오토바이를 선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으로 그렇다는 이야기. 게게로는 골목에 인기척이 사라지자마자 가볍게 도약해 지붕 위로 올라갔다. 마치 전국시대의 닌자처럼 게게로는 지붕과 지붕, 전신주와 가로등 위를 가볍게 날아다니며 카페로 향했다. 은신술을 쓴 덕에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았다. 미즈키가 항상 당부하던 것이니 잊을 리 없다.

“미즈키여.”

카페 근처에 도착해서는 으슥한 골목에서 내려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인파에 섞여 걷는다. 독특한 패션에 흘끔거리는 시선에 아랑곳않고 걷다 보면, ‘내일 만나요’라는 팻말이 걸린 문 뒤에서 잔업을 하고 있는 미즈키가 보인다.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이름을 부르면, 미즈키가 몸을 돌렸다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어서 와. 오늘은 좀 늦었네?”

“음, 중간에 야마시타 네를 만나서 말일세. 여기에 와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고 하더군.”

“아, 하긴 야마시타 씨는 맞벌이니까. 타케루 군이랑 같이 올 일이 없네. 나중에 내가 한 번 얘기하고 시간을 잡아봐야지.”

타케루 군에게는 키타로가 신세를 졌으니까 말이야. 미즈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즈키는 우두커니 서 있는 게게로에게 빈 자리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이제 이것만 정리하면 끝이니까.”

“날 위한 핫케이크는 없는 겐가?”

“집에서도 충분히 먹잖아.”

“이곳에서 미즈키가 만들어주는 핫케이크가 먹고 싶은 걸세.”

게게로의 단정적이면서도 솔직한 고백에 미즈키는 그를 돌아봤다가, ‘어쩔 수 없네’라며 피식 웃었다. 곧 홀에 다시 불이 들어오고, 미즈키는 잠갔던 가스 밸브를 다시 돌리면서 물었다.

“토핑은 뭘로 해줘? 역시 체리가 제일 좋으려나?”

“스크램블 에그도 잊지 말아주게나.”

“알았어. 그런데 너무 많이 먹었다가 저녁 대충 먹으면 안 된다?”

“유령족의 위장을 얕보지 말게나 미즈키.”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미즈키는 충분히 달궈진 팬 위에 버터를 두르고 반죽 통을 꺼냈다. 국자로 뜬 반죽을 신중하게 팬 위에 부으면, 동그란 팬 모양을 따라 반죽이 퍼진다. 두 세 번 더 국자질을 해 도톰한 모양새를 만들고, 가장자리에 기포가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퐁, 퐁 하고 물방울 터지듯 기포가 올라오면, 망설임 없이 재빨리 뒤집는다. 곧 노르스름하니 때깔이 고운 팬케이크 두 장이 순식간에 완성된다. 다른 팬으로 만들던 스크램블 에그에 새빨간 체리를 올리고, 버터와 메이플 시럽을 뿌리면 완성이다.

다가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면 팬케이크와 커피 플로트가 담긴 트레이가 앞에 내려온다. 얼마 전 단 둘이 간 카페에서 먹은 커피 플로트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 뒤로 게게로는 다른 카페를 갈 때마다 커피 플로트가 있는지 메뉴판을 뒤적이곤 했다. 몇 주 만에 보는 음료에 게게로의 잔머리가 자아를 가진 생명체처럼 팔락인다. 미즈키가 뿌듯해하며 말했다.

“다음 달 신상 음료…, 라고 할까. 연습 겸 만들어본 거야.”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은 오로지 게게로를 위해 들인 메뉴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게게로는 빨대로 커피 플로트를 한 모금 빨아마시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음, 그 카페에서 먹은 것보다 미즈키의 것이 훨씬 맛있군. ”

“농담하지 마. 그냥 카페도 아니고 호텔이었거든?”

미즈키가 가볍게 타박했으나 입꼬리는 승천하기 직전이었다. 이런 솔직하지 못한 남자 같으니. 게게로는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커피 플로트와 핫케이크를 천천히 입에 넣었다. 미즈키는 맞은편에 앉아 그의 식사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커피를 타왔다. 손님이 없는 가게 안에서 두 사람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깐 침묵하고 서로를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깨끗하게 비운 접시를 깔끔하게 씻은 다음 미즈키는 앞치마를 벗었다. 드디어 진짜 퇴근 시간이 되었다. 검은 가죽재킷을 걸치고, 능숙하게 장갑과 헬멧을 쓴 미즈키가 게게로에게 물었다.

“네 거 헬맷은?”

“여기 있네,”

게게로가 그것을 내밀자 미즈키는 받아들고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게게로에게 씌워 주었다. 이 헬멧에도 잔잔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처음 미즈키를 마중나올 때 게게로는 헬멧을 쓰지 않았다. 머리를 감싸는 갑갑한 보호구는 내구성이 뛰어난 유령족에게 필요 없었다. 그러나 미즈키는 아무 보호 없이 오토바이를 타려는 게게로에 비명을 지르면서 제 헬멧을 씌우려고 했다. 나보다는 그대가 더 다치기 쉬운데 어째서인가! 오토바이가 얼마나 위험한데 아무리 유령족이라도 머리가 남아 있겠냐? 그럼 왜 미즈키는 그런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는 겐가! 이런 실랑이를 몇 번 거친 뒤, 게게로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그렇게 싸움을 종결난 날 미즈키가 바로 매장에서 사온 헬멧이다. 남들보다 조금 작은 머리통 탓에 구하는 데에도 꽤 애를 먹었다며 미즈키가 처음 게게로에게 씌워주면서 투덜대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 작게 웃으니 미즈키가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가게 문을 잠그는 동안 게게로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탔다.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한 미즈키가 앞에 타 운전대를 잡으면, 게게로의 손이 바로 뻗어나와 미즈키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시동을 켜고 노루발을 올리면 오토바이가 부릉대는 소리를 내면서 집으로 출발했다. 운전하느라 미즈키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운전하는 사이 게게로는 그의 등에 뺨을 갖다 댔다.

게게로가 오토바이를 좋아하게 된 이유, 그것은 운전하는 미즈키를 끌어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좌석으로 막혀 있어 미즈키에게 다가가는 것이 어려웠다. 얌마, 운전하기 힘들다고,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처음 몇 번은 미즈키도 핀잔을 주면서 떼어 놓으려고 했으나 이젠 미즈키도 제법 익숙해졌는지 그다지 제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게 더 익숙하다는 듯, 이따금 제 배에 얹어진 게게로의 손을 토닥이기까지 했다. 손에 얹어지는 온기를 느끼며 게게로는 피식 웃었다.

오토바이를 이용하면 집까지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좁은 골목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오토바이의 장점 덕이다. 집에 도착해 시동을 끄고 노루발을 내리면 게게로는 아쉬워하면서 내려왔다. 게게로는 헬멧을 벗고 흐트러진 머리를 흔들면서 물었다.

“미즈키, 히메지 성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갈 겐가?”

“음? 멀어서 그건 힘들지 않을까 싶은…, 그래 그래. 타고 가자. 뭐 어떻게든 되겠지.”

무심하게 대답하다가 시무룩해 하는 게게로의 표정을 보고 미즈키는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그러자 게게로는 내심 즐거워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참, 오토바이 그거 타면 안 되냐고 투덜거리던 녀석이 누군지. 미즈키는 핏 하고 웃으며 두 사람의 헬멧과 가죽 재킷을 정리했다. 어차피 옷이야 나나 게게로나 많이 챙기는 편도 아니고, 세면도구도 작으니까 큰 배낭에 넣어서 가면 되겠지….


역시 장거리 여행을 오토바이로 하는 건 재고해봐야겠다. 미즈키는 히메지 성에 도착하자마자 그 생각을 먼저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토바이는 차체가 작아 연료의 총량도 자동차보다 적다. 그러다 보니 중간중간 주유소를 들러 기름을 채워줘야 했다. 또한 이륜차는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없으니, 국도를 타야 했다. 그러다 보니 먼 길을 돌아가게 되고, 도착 시간은 점차 지체되었다. 동승자가 느긋한 유령족이 아니었으면 언제 도착하느냐는 볼멘소리를 서른 번도 넘게 듣다가 싸울 뻔했다. 새벽부터 출발했으나 역시나 거리가 거리인지라 오후 1시 즈음에야 겨우 도착했다. 장거리 운전으로 초췌해진 얼굴을 바로 보여줄 수 없어 공용 화장실에서 적당히 얼굴을 씻은 다음 그들은 히메지 성으로 향했다.

히메시 성의 내부는 복잡하여 일반인은 공개된 통로만 이용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이젠 아무도 살지 않는 화려한 궁의 쓸쓸한 모습만이 보이겠지만 요기가 트인 인간에게는 이곳에 자리를 잡고 왁자하게 살고 있는 요괴들이 보인다. 역시나 오사카베히메의 전설이 서린 곳이라 그런지 여우와 박쥐 요괴가 많았다.

게게로와 미즈키는 관광객 행렬을 벗어나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수막처럼 물컹한 무언가를 통과하면, 강렬한 빛이 쏟아지면서 요괴의 세계가 열린다. 고급스러운 비단에 금빛 실로 자수를 박은 장막이 하늘거리고, 하인의 복장을 갖춘 여우 요괴들이 통로 양쪽에 서서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반짝이는 옥과 수정 따위로 장식한 발이 다다미 열 장마다 달려 찬란하고 사치스러운 느낌을 더해주었다. 그 당시 이 성의 모습은 이랬구나, 하며 히메지 영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계의 히메지 성에 감탄을 하는 사이, 요괴 여우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유령족 나리를 뵙습니다.”

마치 왕이 아끼는 신하나 그 일족을 대하는 듯 정중한 모습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미즈키에게는 낯설면서도 부담스러운 장면이었다. 마치 사극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어색한 느낌. 그러나 게게로는 자신이 그 드라마의 인물인 것처럼 자연스럽게(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정말로 그 시대를 살긴 했으니 익숙한 게 당연하다), 제 옆에 있는 여우 요괴에게 질문했다.

“오사카베히메 공은 어디에 계시지.”

“이 앞 방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른 요괴들도 같이 있습니다.”

“고맙네. 가세, 미즈키.”

“아, 응.”

“아, 인간 분은….”

여우는 미즈키를 동행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섞여든 인간이라고 생각했는지 미즈키의 팔을 잡아 다른 곳으로 안내하려고 했다. 게게로가 그의 반대편 팔을 잡고 버티며 명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이 자는 내 친우일세.”

“아, 손님이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아아, 아뇨. 아닙니다.”

“방은 나와 같이 쓸 테니 따로 준비하진 말도록.”

게게로는 여우 요괴에게 너무 차갑지 않은가 싶을 만큼 무미건조하게 말하고는 다시 미즈키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미즈키는 무안해져 고개를 들지 못하는 여우를 계속 흘끔거리다가 게게로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렇게 매몰차게 말하지 않아도 되잖아.”

“나는 평소처럼 말했을 뿐이다만.”

게게로는 제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투로 미즈키에게 대꾸하고는 하인 여우를 따라 앞장섰다. 미즈키는 게게로의 뒤에서 조용히 따라갔다.

길게 이어진 방과 구슬발, 장막을 지나가고서야 그들은 오사카베히메의 방 앞에 도착했다. 그 방은 마치 허락을 받고 들어와야 한다는 듯 굳게 닫혀 있었는데, 그 문에도 역시 은빛 여우와 박쥐가 뛰어다니며 재주를 부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들을 안내하던 붉은 옷의 여우가 그 문 앞에서 절을 한 번 하고는, 깊게 울리는 목소리로 안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을 주인에게 알렸다.

“유령족 나리 납시오―!”

안쪽이 잠시 조용해지더니 문이 저절로 열렸다. 좌우가 벌어지면서 거대한 방이 손님을 맞이했다. 미즈키는 안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치스러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발 달린 짐승들이 좌우로 앉아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고, 비단 옷을 입은 손님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과 술에 절여져 있었다. 상이 온통 술과 고기 등 냄새가 강렬한 음식으로 가득 차 있어 질릴 만도 하건만, 코를 찌르는 냄새들은 희한하게도 역하지 않고 오히려 방문객의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미즈키는 저도 모르게 목을 움직여 입안 가득 고인 침을 삼켰다.

그리고 방의 가장 뒤쪽, 그들의 맞은편에 자개로 장식하고 옻칠로 마감을 한 묵색 의자에는 이 성의 주인이 앉아 있었다. 전설 속 묘사대로 그는 기모노 8겹을 겹쳐 입고 위에는 하얀 하오리를 걸쳤다. 후리소데는 너무 길에 의자 아래로 흘러내렸지만 먼지 한 톨 묻어 있지 않았다. 하카마 아래로 금빛이 도는 하얀 여우 꼬리 아홉 개가 살랑대고 있었다. 그는 머리 위로 올라온 여우 귀를 쫑긋거리다가 새로운 손님을 보고는 살랑살랑 웃으면서 팔을 벌렸다.

“어머, 정말로 와줄 줄은 몰랐습니다, 유령족 나리.”

“지금은 게게로라는 이름이 있으니 그리 부르도록 하게나.”

“어머, 아내가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할 때도 시큰둥하던 양반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서로 격식을 차리고 있지만 대화 내용으로 미뤄볼 때 그들은 꽤나 오랫동안 안면을 트고 친하게 지낸 사이인 듯 싶었다. 게게로라는 이름이 언급되자 미즈키는 제 귀가 타오를 만큼 빨개지는 것을 느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게게로는 이름의 출저에 대해 그런 일이 있었다고 뭉뚱그려 설명한 다음 미즈키를 소개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올해도 벚꽃 술을 담갔다고 들었네만. 혹시 두 병 정도 받아갈 수 있겠나?”

“오호, 웬일로 두 병이나 챙기십니까? 술은 적당히 취기가 올라올 만큼이면 족하다던 양반께서.”

“미즈키가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기에.”

“어이, 그 정도는 아니거든? 누굴 술고래로 만들고 있는 거야?”

게게로의 엉뚱한 음해에 미즈키는 반박하며 그의 등 뒤로 몸을 내밀었다. 인간의 등장에 순간, 연회의 노래가 끊어질 뻔했으나 주인의 살벌한 눈길에 부하들은 황급히 연주를 재개했다. 하지만 수많은 요괴의 시선이, 관심이, 말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미즈키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감각으로 깨달았다. 저것이 유령족이 끼고 사는 인간, 유령족의 피 냄새가 나는데, 예전에 누가 저 녀석에게 손을 댔다가 아주 큰코 다쳤다지? 세상에, 인간은 싫다고 그렇게 호언장담하고 다니다니…. 단순한 호기심이겠지만 미즈키에게는 살의 내지는 위협으로 느껴졌다.

미즈키가 다시 코피를 쏟기 전에 게게로가 자리를 피하겠다는 듯 오사카베히메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사카베히메는 박쥐 하인에게 벚꽃주 두 병을 가져오라 명령하고는 몸을 돌려 게게로에게 물었다.

“정말 이곳에서 즐기지 않을 겐가?”

“내 친우에게 이 정도 요기는 아직 독이나 다름없네. 방으로 돌아가 둘이서 느긋하게 마실 걸세.”

“아, 그러면 안주도 있어야지요. 당고와 앙금떡도 챙겨드려라.”

“저기, 난 정말 피곤해서 술은 그다지….”

“걱정말게나. 오사카베히메가 담은 벚꽃주는 피로 회복에 특효이니.”

미즈키가 속이 울렁거리는 표정으로 반려해도 게게로는 방실방실 웃으며 안주가 담긴 찬합과 술병을 받아 들었다. 누가 봐도 들뜬 표정이었기에 미즈키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면서 안주를 나눠 들고 말했다.

“알았어. 대신 그러면 오토바이는 운전하지 못해. 음주음전은 위험하다고.”

“흠, 아쉽구려. 하루종일 못 하는 겐가?”

“뭐, 밤에 술이 깬다면 가능하겠지?”

미즈키는 건성으로 대꾸하며 앞장 섰다가,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박쥐 요괴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유령족의 방으로 안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박쥐는 안내하겠다며 날개를 파닥였고, 미즈키는 아무 의심 없이 그를 따라갔다. 저리 호기심이 많고 요괴에게 잘 홀리는 인간을 어찌 가만히 두겠나. 게게로는 어쩔 수 없다고 중얼거리며 종종걸음으로 미즈키를 따라잡았다.


“미즈키, 지금은 술이 깼는가?”

밤 10시에 가까운 시간, 온천에서 나온 게게로가 뜨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몸에 유카타를 두르면서 미즈키에게 말을 걸었다. 미즈키는 고급스러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게로의 말대로 오사카베히메가 담근 벚꽃주는 말 그대로 피로를 사르르 녹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술 역시 일품이었다. 까마귀 텐구의 것만큼 상등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깨끗하고 향긋한 술에 두 아버지는 정도를 모르고 흥청망청 마시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평소에는 자제하면서 마시는 편인데, 요괴의 술은 입에 대기만 해도 속절없이 들이키게 된다.

겨우 저녁 즈음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온천에 몸을 담그고 나오니, 게게로가 그리 물었다. 미즈키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밝은 얼굴이 되어 라이더 자켓과 헬멧, 그리고 라이더 장갑을 가져와 미즈키 앞에 내려놓았다. 그 의미를 모르고 미즈키가 멀뚱히 있으니 그는 초롱불로 인해 주홍빛으로 물든 얼굴로 웃으면서 말했다.

“어떤가? 밤 벚꽃 구경은 좋아하는가?”

미즈키가 잠시 말을 생각하느라 입을 다물고 있자 게게로가 맞은편에 앉아 상체를 기울이면서 재차 물었다.

“밤이면 술이 깰 거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떤가. 내가 준 환이 잘 들었나?”

“아니, 그렇게 말한 적은….”

미즈키는 대꾸하다가 입을 다물고 낮에 게게로와 나눈 대화를 돌이켰다. 술을 마시면 하루종일 운전을 못 하는 거냐는 게게로의 질문에 미즈키는 분명 이렇게 답했다. ‘밤에 술이 깬다면 가능하겠지?’ 그것을 아무래도 게게로는 ‘밤이 되면 술이 깨니 오토바이를 탈 수 있다’고 받아들인 모양이다. 미즈키는 잠시 이마를 짚었다가 게게로가 방금 전에 한 말을 다시 떠올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잠시만, 환이라니?

“…설마, 아까 저녁 식사 후에 준 경단이….”

후한 저녁 상을 물리고 나니 게게로가 소매에서 웬 하얀 경단을 꺼내 미즈키에게 내밀었다. 오사카베히메의 손님 중 하나가 안주로 가져온 경단인데 자네가 잠깐 잠든 사이 받아왔다고, 한 번 먹어보라고 재촉하길래 한입에 털어 넣었다. 쓴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환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게게로의 히죽거리는 낯을 보니 숙취해소제나 취기를 억누르는 종류의 약인 모양이었다.

그런 거면 그냥 줘도 되지 않느냐고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말하니 게게로는 그저 장난이었다고 대꾸했다. 그의 장난기 많은 요괴 친구는 이런 식으로 아무 말도 없이 미즈키에게 요괴의 약이나 음식을 먹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 안에 해로운 것이라도 있으면 미즈키에겐 생사가 오가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말려겠다는 생각이 들긴커녕 마냥 철없게 보이기만 했다. 이게 요괴에게 단단히 홀린다는 건가. 미즈키는 귀여운 개구쟁이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게게로를 바라보다가 그가 건넨 옷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10분 내로 준비해. 벚꽃이 많이 핀 데를 아나?”

“음, 호수 쪽에 만개해 있다고 오사카베히메가 알려주었다네.”

게게로는 그러면서 자신도 외출할 준비를 시작했다. 잠옷용 유카타를 벗고 여벌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자켓, 워커, 장갑, 헬멧 순으로 착용하면 준비 끝이다. 미즈키가 먼저 나가 시동을 걸자 게게로가 금방 따라나와 미즈키의 뒷자리에 걸터앉았다. 어깨에 닿는 서늘한 뺨의 감촉을 느끼면서 미즈키는 다시 한 번 물었다.

“헬멧 잘 착용했지?”

“이제는 자네가 말하지 않아도 잘 쓰고 다니네만.”

“그래, 위치는 네가 알려줘.”

“알겠네.”

부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는 깊은 밤의 도로를 가로지르며 달렸다.

벚꽃이 피기 시작한 히메지 시의 거리는 어디를 가든 은은한 벚꽃 향이 났다. 미즈키도 게게로도, 벚꽃에는 그닥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다. 유령족의 피를 마시며 자란 벚나무와 그 벚나무에서 뽑아낸 유령족의 피로 연명한 류가와 나구라마을. 그러나 게게로는 여전히 벚나무를 보기 힘들어 하면서도 오로지 키타로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로 매해 봄 집 근처에 있는 벚꽃 거리를 찾아갔다. 이 벚나무들은 키타로를 해하지 않으니 괜찮네, 하면서.

키타로가 독립한 후로는 자연스럽게 게게로도 미즈키도 벚꽃 구경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즈키는 3월이 되자마자 게게로가 벚꽃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의아했다. 사정을 듣고 난 후에는 ‘뭐야, 결국 술 때문인가. 이 주정뱅이 녀석.’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술이 목적이라면 애초에 벚꽃 구경을 보러 가자고 조르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이젠 정말 괜찮은 건가. 일족과 자신의 상처를 품은 나무를 돌아볼 만큼 괜찮아진 건가. 미즈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토바이의 속도를 조금 높였다. 어이쿠, 소리를 내면서 게게로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폭 하고 성인 남성답게 말랑하지 않은 볼이 체격에 비해 넓고 단단한 등에 닿았다. 아, 미안. 미즈키는 싱거운 소리를 내면서 속도를 낮추었다. 아무리 밤이고 도로에 사람이 없다지만 과속은 위험하다. 설령 제 뒤에 태우고 있는 사람이 웬만한 교통사고로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고 100미터 거리를 3초 만에 돌파하는 유령족이라고 할지라도.

게게로가 알려준 방향으로 가자 한적한 호수가 나왔다. 히메지 시에 이런 곳이 있었음을 몰랐다는 게 의아할 만큼 거대하고 아름다운 호수였다. 벚꽃 철을 맞이해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자란 벚나무들이 분홍 옷을 입고 바람을 따라 흩날리고 있었다. 공기가 가라앉는 밤이라 그런지 옅은 향이 유독 짙게 코를 간지럽혔고, 햇빛 아래에선 연분홍색으로 반짝이는 여린 꽃잎들도 달빛을 받아 짙고 고혹스러운 색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호숫가에는 미즈키와 게게로, 단 둘만이 있었다.

오토바이가 몰고 오는 바람을 따라 땅에 떨어진 꽃잎이 허공에 떠오르며 꽃바람을 일으켰다. 와아, 미즈키가 저도모르게 감탄을 흘리면서 벚나무 아래를 지나갔다. 마치 벚꽃으로 만든 터널을 지나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 호수는 요괴의 세계에 있는 것이고, 미즈키는 이미 이계에 들어와 기이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에 홀려 허송세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느리게 굴러가는 오토바이, 제 등 뒤에 바짝 붙어 고개만 들고 벚꽃을 구경하고 있는 천진한 요괴. 그리고 요괴의 피에 젖어 인간의 수명을 초월해버린 자신까지. 모든 게 꿈결처럼 기묘하기만 하다.

“미즈키.”

그러나 그들은 꿈속도 황홀경 속도 아닌 현실에 있음을 주지시키듯 게게로가 미즈키의 이름을 불렀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음성에 미즈키는 응? 하고 물으며 게게로를 돌아봤다. 게게로은 밤나들이가 매우 만족스러운지 가만히 미소를 머금고 미즈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너무 강렬하지 않나, 멍하니 생각할 때 게게로가 말했다.

“자네에게 이곳의 벚꽃을 보여주고 싶었네.”

“뭐, 뭐야. 싱겁기는.”

마치 연인에게 고백하듯 조심스럽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음성에 미즈키는 볼이 홧홧해져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솔직하지 못하고, 툭하면 투덜거리면서 부끄러움을 감추어버리고, 한때는 사소한 거짓말은 밥먹듯이 한 그지만 게게로는 여전히 친우가 좋았다. 인간으로 죽기를 원했으면서도 자신이 변하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로 곁에 남아주기로 한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게게로는 그에게 이 세상 좋은 것은 뭐든 주고 싶었다. 좋은 음식, 술, 음식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와 모든 일을 공유하고 싶었고 다투더라도 그의 곁에 남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처럼, 자신이 살면서 본 모든 아름다운 풍경을 그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아내에게 그랬듯이, 미즈키에게도 같은 사랑을 주고 싶었다. 게게로는 그의 허리에 두른 손에 더욱 힘을 주면서 물었다.

“어떤가. 실로 아름답지 않은가?”

“…응. 정말로. 지금까지 본 벚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워.”

감탄조가 섞인 대답이 돌아오지 게게로가 후후, 하고 웃었다. 사실, 그 사건을 겪은 후로도 게게로는 벚나무가 싫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요기를 잔뜩 머금은 그 벚나무 탓이지, 모든 벚나무가 나쁜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미즈키는 벚나무를 볼 때마다, 정확히는 벚나무 아래엥 씨는 부자를 볼 때마다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불안한 목소리로 괜찮느냐 물어보는 표정은 언제나 자신이 더 큰 상처를 입은 듯 가여웠다. 정말로, 너희 동족을 괴롭힌 그 나무가 아랑곳않지 않은 거냐. 나는 너희가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픈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은 모든 진실을 말해주었다. 그래서 게게로는 난생 처음으로 그에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했다.

‘키타로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다네. 보게나. 그런 나무지만 아름답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면 미즈키는 납득이 간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낯에는 불안과 걱정이 서려 있었다. 참 천성이 악독하지 못하고 순해서 곤란하다 싶은 인간은 처음이었다. 그의 다정이 유독 자신과 아들을 향해 있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그 탓에 키타로가 독립한 후로는 게게로도 벚꽃 구경을 나서지 않았고, 미즈키는 그것을 트라우마가 낫지 않은 탓으로 혼자 착각했다.

게게로는 그에게 말해주고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은 벚나무를 미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너와 함께 보고 싶었노라고. 그러니 더 이상 자신 때문에 가슴 아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번 벚꽃 구경은 오로지 미즈키의 마음을 치유해주기 위해 계획한 것이었다. 벚꽃술을 핑계 삼아 그를 끌고 왔으니, 게게로도 이만하면 능숙한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이와코가 본다면 ‘어머, 거짓말은 싫다면서 웬일로.’라며 놀라듯이 즐거워하겠지. 아내를 상상하고 게게로는 피식 웃었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벚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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