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편. 에나의 짧은 평안은 끝났다. 지난번 마후유와 술자리를 가진 뒤 몇달이 지났다. 오늘은 에나가 고소장을 제출하고 난 뒤 집에서 혼자 열불이 뻗쳐 연소할 것만 같아서 예고도 없이 마후유네 집에 들이닥친 날이었다. 이미 에나는 있는 화 없는 화를 끌어다 내서 녹초가 된 채로 소파 위에 무릎을 세워 앉아 널부러져 있었다. 그러는 에나를 보고 마후유는
파도를 직접 겪어본 건 몇년만에 바다에 가봤던 올 여름이었다. 여고생의 젊음과 미모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는 SNS글을 보고 떨떠름한 기분에 자리를 나섰었다. 나 귀가 얇은 편인가? 불편한 마음으로 간 바다는 결말도 별로 좋지 않았다. 3시간이나 걸려 세팅한 헤어가 예상치 못한 해일 때문에 흠뻑 젖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SNS용 사진이라고는
마후유는 얼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부모님과 대화… 라고 할 수도 있는 타협을 거친 뒤에는 그나마 나아졌다. 에나가 마후유의 집에 놀러가서 얼굴을 비추는 일도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어쩐지 언짢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은, 에나가 마후유의 엄마와 이야기할 때 경계만이 아닌 선망과 호감을 담은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견디지 못해 물어
첫키스의 추억은 최악이었다. 에나에게는 약간의 선망이 있었다. 상냥한 연인과 낭만적인 키스가 추억으로 남는 것. 에나의 감성은 여느 여고생과 다름이 없었다. 마후유와 맺는 관계는 남들과 현저히 차이가 있었음을 관과한 사고였다. 에나는 마후유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언제까지나 에나를 보고 멀뚱히 서서 지켜볼 마후유를 생각하면 화가 날 것 같으니 사전에 차단한
에나가 아사히나라는 성을 빌려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별 대단한 이유가 아니었다. 본명으로 시작했다간 아버지의 명성을 내세웠다는 오명을 쓸 것 같았고, 닉네임을 에나낭으로 지을 정도로 창의력이 없었으며, 그에따라 주변에서 빌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니, 별 시답잖은 의미부여를 하지 않을 사람은 마후유 뿐이었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서나 마찬가지였지만, 일
“하.” 입술을 떼니 열로 뜨거운 뒷목이 당겼다. 언제나 적응이 안 됐다. 얘랑은 한글도 못 뗀 어린아이를 건드는 느낌이 든다니까... 에나는 자기 삶에서 가장 나쁜 짓을 했던 순간보다도 얼굴이 홧홧했고 안구 윗부분이 저렸으며 약간은 울 것 같았다. 이런 속도 모르고 마후유는 시선을 내리깔고 에나의 입술을 바라봤다. 더 원하는 거겠지. 하, 흡. 키스따위는
“에나가 좋아.” “또 그거야?” 세카이에서 긴장감도 없이 퍼질러 누워있으니 들은 말이었다. 분명 열원도 없을 텐데 바닥이 차가운지 아닌지도 구분이 가질 않았다. “또가 아니라 계속.” “그런 말을 들어봤자…” 물론 나는 예쁘고, 상냥하고, 고백 받아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사람이지. 하지만 고백의 발언자가 마후유라면? “하아, 그래. 어디 한번 얘기해보자.
“에나가 좋아졌어.” “열 나니?” 탱그랑. 커터칼로 공들여 길게 깎은 미술연필의 심이 바닥에 닿아 부러졌다. 의아함을 숨기지 못하고 눈과 눈썹 사이가 한참이나 멀어졌다. 얘가 장난으로 이런 말을 할 애던가? “연애적 의미야.” 표정을 살피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얼굴을 들여다보자 듣는 척도 안 하고 뒷말을 이었다. 드로잉 북을 내려놓고 마후유의 이
바싹 긴장한 목이 빳빳해지기, 멀쩡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갈라져 나오기, 말끝이 갑자기 흐려지기. 옆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죽어라 고함치는 맥박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거나. 고개는 분명 이쪽을 향해 있는데 시선은 자꾸만 주변으로 미끄러진다거나. 얼굴은 새빨갛거나, 아니면 창백하거나. 시노노메는 이런 흔하디 흔한 사랑의 법칙에 통달해 있었다. 왜냐면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