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편. 에나의 짧은 평안은 끝났다. 지난번 마후유와 술자리를 가진 뒤 몇달이 지났다. 오늘은 에나가 고소장을 제출하고 난 뒤 집에서 혼자 열불이 뻗쳐 연소할 것만 같아서 예고도 없이 마후유네 집에 들이닥친 날이었다. 이미 에나는 있는 화 없는 화를 끌어다 내서 녹초가 된 채로 소파 위에 무릎을 세워 앉아 널부러져 있었다. 그러는 에나를 보고 마후유는
끊어진 실을 다시 이어붙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대단한 초강력 접착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은 너무나도 얇으니까. 그 사이를 벽을 새로 만드는 수준으로 억지로 둘을 봉쇄해두지 않는 한, 한번 끊어진 실은 다시 풀리기 일쑤니까. 관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헤어짐이 길면 길수록, 강제로 이어붙이는 사람이 곁에서 만남을 주선하지 않는 이상 그때
마후유가 돌아오는 꿈을 꾸곤 했다. 마후유가 활동을 그만둔 지 얼마 안 된 시점에는 같이 작업을 하는 꿈을 꿨다. 나이트코드로 주고받는 연락마저 조금 뜸해질 시점에는 세카이에서 만나는 꿈을 꿨다. 미야마스자카의 기말 시험이 가까워져, 호나미나 이치카로부터 소식만 겨우 전해 들을 때 쯤에는 메일을 받는 꿈을 꿨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둘로부터 들려오는 소식
장례식장은 추웠다. 어머니는 꽤 발이 넓은 사람이었고 그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마후유의 몫이었다. 마후유는 냉기가 도는 바닥 위를 바삐 돌아다녔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인사를 나눈 뒤 다과를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얼어붙을 것 같았다. 두 발이 어머니의 영정사진 앞에 영영 묶여 버릴 것 같았다. "안쓰러워라..." 향수 냄새가
"마후유, 아프진 않아?" 미즈키는 옆에서 걷고 있는 마후유를 흘깃 쳐다보았다. 안드로이드, 그것도 아사히나 사의 최신식 안드로이드가 통증을 느낄 일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입에서 질문이 불쑥 튀어나온다. 마후유의 외형이나 말투가 인간과 같기 때문일까. 괜찮아. 마후유가 전보다 묘하게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각 센서에는 이상 없어. 아니다. 다른
피로하다. 관성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아사히나 마후유는 그렇게 생각했다. 책상 위에는 아직도 선물이 꽤 많이 쌓여 있었다. 마후유는 초콜릿 박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사히나 선배, 생일 축하해요. 그렇게 말하던 후배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그 말이 어쩐지 자신의 몫 같지가 않았다. 선물도, 축하도, 케이크도 모두 다른 사람의 것이고 자신은 다만 그것들
https://youtu.be/ZEy36W1xX8c?si=HTq9hz3at10pBVGf [멜티 랜드 나이트메어]를 들으며 작업했습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읽어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세카이에 대한 독자적인 설정이 약간 들어갑니다. #0. 마후유는 모르는 곳에서 눈을 뜬다. 세카이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곳. 철골이 드러난 황량한 구조는 여전하
“요이사키 유키입니다.“ 마후유는 매일 거짓말을 했다. 독서 모임을 하러 간다고 말하고는 다른 버스를 탔다. 아무 노래도 흐르지 않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계속 걸었다. 무슨 색인지 알지도 못하는 하늘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병원 데스크에는 가짜 이름을 댔다. 예비 도쿄대 의대생 아사히나. 환자 카나데의 사촌 언니 요이사키 유키. 카나데를 기다리는 마후유.
모치즈키 호나미는 해일이 많은 마음을 가졌다. 그녀의 마음에는 언제나 파도가 울렁이고 있다.해일의 갈피를, 파도의 갈피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친 후 맞은 여름 방학때였다.그녀는 해당 지역에서 알아주는 명문대에 재학 중이었고, 그럭저럭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루함이 싫지 않았다. 고교 시절에는 지루
바싹 긴장한 목이 빳빳해지기, 멀쩡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갈라져 나오기, 말끝이 갑자기 흐려지기. 옆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죽어라 고함치는 맥박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거나. 고개는 분명 이쪽을 향해 있는데 시선은 자꾸만 주변으로 미끄러진다거나. 얼굴은 새빨갛거나, 아니면 창백하거나. 시노노메는 이런 흔하디 흔한 사랑의 법칙에 통달해 있었다. 왜냐면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