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마후

인어 이야기

idiotxt by 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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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치즈키 호나미는 해일이 많은 마음을 가졌다. 그녀의 마음에는 언제나 파도가 울렁이고 있다.

해일의 갈피를, 파도의 갈피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친 후 맞은 여름 방학때였다.

그녀는 해당 지역에서 알아주는 명문대에 재학 중이었고, 그럭저럭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루함이 싫지 않았다. 고교 시절에는 지루함을 벗어 놓고 청춘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고교 3학년 때 까지만 해도 또래 여자애들과 뜨거운 우정을 꽃피웠지만, 각자의 진로를 정하고 전국 각지의 대학으로 흩어지면서부터는 소원해졌다. 파도가 울렁이는 것이 그렇게 버거운 일이었다는 걸, 대학교 2학년 쯤 되어서 깨닫는다. 신입생 시절에는 이리저리 바쁘게 대학 생활에 자신을 맞추느라 피곤한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리고 2학년이 되어서 마음의 파도가 이렇게나 힘겹게 울렁거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3학년이 되고서는, 문득 이 해일의 갈피를 잡고 싶다고 생각했다.

계기는 정말 사소했다. 학기말 테스트 공부의 막바지에 접어 들면서 그녀도 동기를 따라서 학교 도서관의 열람실에서 밤을 새웠다. 중학생 때 처럼 어영부영 친구를 따라서 수업 시간을 맞추고 공강 시간을 맞추고 공부 시간까지 맞춘 것이다. 오랜 시간 앉아 있어서 속이 더부룩했지만, 출출하지 않느냐는 동기의 말에 근처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지분거렸다. 더더욱 더부룩해진 배를 부여잡고 편의점 문을 나선 순간, 문득 초여름의 새벽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비로소 제 복통의 원인을 깨닫는다. 아주 느리게, 느리게. 초여름의 새벽 하늘을 보면서 제 뱃속에 일렁이는 해일에 대해 깨닫는다.

크고 작은 파도의 범람은 늘 있었다. 중학생 이후로 언제나 그녀의 마음에는 파도가 범람했다. 그리고 고교 3년의 시간만큼은 그 범람이 유쾌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범람하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원인 모를 복통에 배를 부여잡곤 했던 것이다.

모치즈키는 이제 명징하게 범람을 직시한다.

바다를 잠재우고 싶다, 고.

그러나 어떻게? 그녀는 아주 많이 소심하고 정말 많이 주저하고 약간 비겁하다. 이제와서 연락을 하면 뭐 어쩌자는 거지. 마음은 고교 시절로 돌아가 있다. 방과 후 교실에서 친구들과 노닥거리는 일. 연습실을 빌려서 하루종일 밴드 연습을 하는 일. 그런 몽글몽글한 것들을 하염없이 회억하고 있지만 그녀의 마음의 복통은 그것으로 가라앉을 수 없었다.

종강 후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본가로 향했다. 자취방을 정리하면서 마음의 해일도 정리할 요량이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잠재우고 싶었다.

집으로 가는 신칸센에서 그녀는 문득 Y를 떠올렸다. 그 사람도 그녀의 고교 생활의 일부였다. 어질러진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 검고 누런 것을 희게 만드는 작업에서 그녀는 안정감과 쾌감을 찾았다. 요리도 그랬다.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하고 레시피를 따라 조리하면 결과물이 나온다. 정해진 프로세스를 거치면 결과물이 나오고 그것을 보고 값지게 땀을 흘렸다고 생각한다. 해일이 많은 마음을 잔잔하게 해 줄 수 있는 건 청소와 요리라는 강박이었다. Y는 그녀가 고교 시절 가사 대행 아르바이트를 했을 당시의 고객이었다. Y는 대단히 생활력이 없었고, 또 생활의 의지도 적극적이지 않았던 탓에 그녀는 제 취향껏 고용주의 집을 청소할 수 있었다.

그녀는 문득 못 견디게 그 장소가 그리워졌다.

Y씨는 지금도 그 맨션에 살고 있을까?

그녀는 마치 홀린듯이 Y의 연락처로 메일을 보냈다. 그 생활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맨션에 가고 싶었다. 그 곳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생활감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청소와 요리라는 가사 프로세스를 거치면 바다를 잠재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파도의 갈피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진행은 생각보다 빨랐다. Y는 그녀가 기억하고 있던 목소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약간 낮은 톤의, 고슬고슬한 쌀알처럼 날아갈 것 같이 울리는 목소리. 그 여상한 목소리로 Y는 흔쾌히 그녀를 고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모치즈키 씨가 졸업하고 나서, 그 뒤로도 다른 곳에 가사 대행을 몇 번 맡겨 보았는데 좀 불편하더라고. 나야 모치즈키 씨가 와 준다면 좋지. 고저없이 단조로운 목소리로(특별히 아주 반가워하지 않는 목소리이지만 말하는 내용은 분명 반갑다는 말이었다) 답하는 Y의 목소리에서 그녀는 좋은 예감을 느꼈다.

Y가 연락처로 보내 준 주소는 그때 그 맨션 그대로였다. 시간을 따라서 집은 착실하게 낡았는데 집주인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더 엉망이었다. Y의 작업실에는 필터를 청소하지 않은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어서 그나마 시원했지만, 거실과 주방은 전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 찜통같이 더웠다. 세탁하지 않은 지 오래 된 슬리퍼를 신는 것이 민망했던 그녀는 맨발로 서 있었다. 보얗게 싸인 먼지가 여름의 습기에 뒤섞여서 발바닥에 쩍쩍 달라붙었다.

먼지가 많고 잡동사니들로 뒤죽박죽인 것을 제외하면 가구배치는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물음표를 읽어낸 Y가 겸연쩍은 듯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아직 입원해 계시거든. 집에 돌아오셨을 때를 생각해서 가급적이면 크게 손을 대고 싶지 않아서.”
“아…….”

대청소에 들어가기 전, 모치즈키는 우선 홍차를 준비했다. 물을 끓이면서 주방의 상태를 체크할 요량이었다. 그녀는 빠르게 주방과 거실, 욕실을 훑은 뒤 Y에게 홍찻잔을 건냈다. Y는 얼굴에 살이 조금 빠진 것을 제외하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키도, 얼굴도, 머리길이도. (중간에 너무 길어서, 어쩔 수 없이 한번 잘라낸 게 다라고 했다) 심지어 옷도 늘 입고 있던 그 트레이닝복이었다. 밖에서는 꾸준히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Y와 이 맨션 만큼은 박제된 것 같았다. 고교 시절의 추억 중 하나가 그대로 보존된 상태로 그녀를 맞이하는 기분은 오묘했으나 싫지 않았다. 오히려 반갑고 기분 좋은 것이었다. 후텁지근한 주방을 건너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는 Y의 작업실에서 그들은 차를 마셨다. 모치즈키가 사 온 쿠키를 곁들여서. (작업실의 인테리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컵라면 용기와 오선지가 조금 더 많아진 것을 제외하면)

그럼…… 오늘 하루 잘 부탁해, 모치즈키.

그녀가 출근하면 언제나 Y가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고객의 인사를 알람 삼아서 기분 좋게 작업에 들어갔다.

그 날 이후로도 개강 전까지 그녀는 일주일에 세 번씩 Y의 집에 꼬박꼬박 출근도장을 찍었다. 페이를 더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미안해하는 Y에게 손사래를 치면서. 화장실에 락스를 한 통 들이붓고 곰팡이를 제거하는 일이 즐거웠다. 스팀 청소기로 거실에 보얗게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 즐거웠다. 자신의 집이 아니고 남의 집이니까 일상으로부터 도피하는 느낌이라 즐거웠다. Y는 어차피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는 데 여념이 없기 때문에, 이 시간 만큼은 아무도 그녀에게 개입할 수 없었다. 익숙한 가구를 닦고 익숙한 집을 청소하고 익숙한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서 그녀의 해일은 조금씩 온순해졌다.

바로 이것을 원했다.

너무나 절친한 사이는 다시 만나기 위해서 많은 각오가 필요하다. 그녀에게는 고교 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소꿉친구들이 그랬다. 그러나 적당히 친분이 있는 사람은 다시 만나기 위해 그렇게까지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녀에게는 Y가 그랬다. 이 익숙한 집이 주는 익숙한 안정감 속에서 익숙한 가사일을 하며 그녀의 해일은 그렇게 조금씩 온순해졌다.

결론적으로 그 해 여름의 아르바이트는, 그녀도 Y도 만족스러워했다. 3학년 겨울방학때도 그녀는 Y의 맨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는 동안 종종 Y의 입에서 그녀의 고교 시절 밴드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친구들은 각자 바쁘게 취업을 하고 유학을 가고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관계 진전은 그저 친구들의 SNS 게시글을 훑어 보며 근황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래도 괜찮았다. 언제까지나 박제된 채로, 시간이 흐르지 않은 채로, 이 맨션과 Y와 자신의 가사 대행 아르바이트는 보존되어 있었으니까. 그녀는 이 잘 보존된 공간에서 박제된 시간을 쓰다듬었다.

그 해일을 감싸고 있던 안온함이 어긋나기 시작한 건 이듬해 여름이 되어서였다.

몇 달 만에 다시 방문한 Y의 맨션은, 지난 겨울에 왔을 때 보다 다소 어수선해져 있었다. 그동안 외주 작업이 많아서 그랬겠거니 하고 모치즈키는 홍차를 끓였다. 차를 끓여 놓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는 게 그녀의 루틴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 Y는 홍차를 거절했다. 날이 더워서 뜨거운 홍차는 역시 싫은걸까?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거절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 다소 의아했지만 그녀는 괘념치 않기로 했다. 집은 여전히 큰 변화 없이 그대로였다. 다만 물비린내가 조금 났는데, 올해의 장마가 유난히 길었던 탓인 것 같았다. 그녀는 의욕적으로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장마 내내 물때와 곰팡이가 피었을 욕실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Y가 그녀를 막아 섰다.

아, 저기, 욕실은 청소하지 않아도 괜찮아.

Y는 드물게 긴장한 표정이었다. 금방이라도 땀을 흘릴 것 같았다. 아마 날이 무더운 탓도 있을 것이다. 욕실 청소를 좋아하는 그녀로서는 약간 맥이 빠졌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선선히 주방으로 향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청소를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으므로.

주방에는 Y답지 않게 요리를 해 먹으려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개수대 주변을 먼저 정리하고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물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해일을 잠재우고 잔잔하고 고요한 호수의 수면이 되어……. 그런 상상을 하며 기분 좋게 주방 청소를 마무리했다.

거실을 청소하고 있을 때, 욕실에서 철퍼덕 하고 물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Y씨가 목욕이라도 하고 있는 건지, 이틈에 작업실을 간단히 정리하고 올까 싶었다. 그러나 웬걸, Y는 작업실 방문도 활짝 열어놓은 채 작업에 골몰 중이었다. 그렇다면 아까 들었던 욕실의 물소리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상냥하고 이타적이고 배려심이 많다. 쓸데 없는 걱정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났다는 건 수도꼭지가 열려 있다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그녀가 착각한 것일수도 있다. 그래도 확인은 해 보는 게 좋다. 하지만 Y는 오늘 그녀가 욕실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환청을 들은 셈 치기로 했다.

다음 방문도, 그 다음 방문에서도 Y는 욕실을 그냥 두라고 했다. 그녀는 물때와 곰팡이가 자글자글한 욕실 타일을 상상하고 약간 맥이 빠졌다. 욕실 청소가 빠진 만큼 요리를 더 해놓고 가겠다고 말했더니 Y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선이나 어패류는 피하고 싶어. 여름이니까. Y는 답지 않게 “아무거나 괜찮아”가 아니라 꽤 구체적인 지시를 했고 그녀는 흔쾌히 알겠다고 답했다.

거실을 청소할 때면 굳게 닫힌 욕실에서 철퍼덕 하고 물소리가 났다. 그녀는 제가 들은 물소리가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욕실을 의심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욕실을 피하고 있게 되었다. 그러는 한편 Y도 어쩐지 그녀를 불편해 하는 것 같았다.

일을 마치고 나면 때때로 Y는 욕실 안에 들어가 있었다. 목욕하는 사람을 구태여 불러서 곤란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므로, 그녀는 퇴근 전에 노크를 하고 이만 가보겠다는 말만 남겼다. 욕실 문 너머로는 물에 몸을 뒤채는 소리, 철퍼덕하는 소리, 색색 숨을 크게 몰아쉬는 소리 같은 게 났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그렇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다만 모치즈키는 노크로 그녀의 목욕 시간을 방해하게 될 때마다 어색하고 불편한 기류를 읽었다. 욕실 앞을 지나다닐 때면 겨우내 진정시켰던 물결이 다시 울렁이는 걸 느꼈다. 이 아르바이트도 이번 여름이 마지막이구나. 오는 겨울에는 관두는 게 낫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 내일부터라도 안 나오는게 나을 것 같았지만. 눈치도 보이고 변명거리를 찾기도 궁색했다.

집에 돌아가서 침대에 누우면, 그녀는 곧잘 낮의 욕실이 생각났다. 아무리 집안을 청소해도 희미하게 감도는 물비린내의 발원을. 자신이 출근하기 전부터 욕실은 계속 잠겨있었던걸까 뭐 그런 생각을 했다. 습기와 더위로 눅눅해진 집의 눅눅한 욕실 바닥에는 물때가 잔뜩 끼어서 미끌미끌할 테다. 타일에도 곰팡이가 피어 있겠고 욕조도 엉망이면 어쩌지. Y씨는 머리가 길어서 배수구에 머리카락도 많이 끼어 있을 텐데. 겨울에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해 놓고 그녀는 또 쓸데없이 남의 집 욕실 걱정으로 마음을 축냈다.

하루는 Y가 그녀를 다소 반갑게 맞이했다. 운동이라도 한 건지, 얼굴과 머리칼이 땀으로 가볍게 젖어 있었다. 물건을 좀 옮겨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이었다. Y가 작업실에 있지도, 욕실에 있지도 않은 상태로 그녀를 맞이해서 먼저 부탁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모치즈키는 그게 좀 반가워서 역시나 반색하며 기꺼이 돕겠다고 했다.

음, 그런데 모치즈키, 모치즈키가 보기에는 좀 이상한 일일 수도 있어. 그렇지만 전혀 위험하지 않고 그저 대야만 옮기면 되는 일이니까, 크게 부담 갖지 않았으면 해. Y는 약간 민망한듯이 웃었다. 전보다 훨씬 더 비쩍 말랐는데도 얼굴에는 홍조가 있고 눈은 또 묘하게 반짝거렸다. 음주 후 기분 좋은 취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의 표정 같았다.

Y는 그녀를 욕실로 안내했다. 역시나 굳게 닫힌 욕실의 문 앞을 점령하고 있는 건 다갈색의 커다란 고무대야였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서 욕조라고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대야에는 물이 반 정도 잠겨 있었다.

“물을 받아서 거실로 옮기고 싶었는데, 나 혼자서는 조금 무겁더라고.”
“음……. 꼭 물을 받은 채로 옮겨야 하는게 아니라면, 빈 욕조를 먼저 옮기고 거기에 물을 조금씩 붓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아.”

Y는 머쓱한듯이 제 머리칼을 손가락에 빙빙 감았다. 그저 제안만 한 것 뿐인데 어쩐지 타박을 준 것 같아 모치즈키는 Y보다 훨씬 더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먼저 물을 버릴까요?”
“그 편이 낫겠네. 고마워, 모치즈키.”

모치즈키는 머리를 새로 고쳐 묶고는 욕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찝질하게 젖은 냄새가 확 풍겼다. 그녀는 무방비하게 욕조 쪽을 바라보았고, 그 욕조를 차지하고 있던 생물과 눈을 마주쳤다.

아.

그녀의 입은 비명은 커녕 짧은 탄식 하나 뱉지 못했다. 그렇게 화들짝 놀랄 수도 없었다.

욕조에 앉아 있는 건 여자였다. 짙은 보라색의 모발을 늘어뜨린 채 알몸으로 욕조에 누워 있던 여자는 모치즈키가 시선을 돌렸는데도 계속해서 뚫어지게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치즈키는 여자의 시선에 적개심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여자는 무방비하게 나신이 노출되었는데도 전혀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없다.

화들짝 놀라고 당황하는 건 Y 뿐이었다. Y는 민망해하면서 제가 물을 버리겠다며 대야를 욕실 안까지 질질 끌었다. 모치즈키는 그런 Y가 안쓰럽기도 하고, 또 이 어색한 상황에서 뭐라도 하고 싶어서 Y를 한사코 말렸다. Y도 자신이 깡말랐고 딱 그만큼의 근력만 있는 걸 알아서, 순순히 모치즈키가 물을 버리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물을 버리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무수히 많은 생각을 했다. 저 사람은 Y 씨의 가족일까? 친구? 여기서 같이 사는 걸까? 그런데 집을 청소할 때는 두 사람이 거주한다는 생활감은 전혀 없었는데. 나도 이 사람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물을 다 버리고 몸을 일으키면서, 욕조의 끄트머리로 살짝 삐져나온 꼬리 지느러미를 본다. ‘이 사람’이라니. 사람은 맞는 걸까.

모치즈키는 어색한 티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대야를 문가로 끌어냈다. Y는 여자의 머리칼이며 귀를ㅡ정확히는 귀의 위치에 있는 지느러미와 아가미 쪽을 살피고 있었다. 너무 작고 왜소해서 기껏 해 봐야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Y가 금방이라도 욕조에 고꾸라져서 빠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조그만 Y의 손길을 얌전히 받고 있는 덩치 큰 여자는 꼭 애완동물 같았다. 그녀는 Y가 여자의 송곳니며 비늘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낯뜨겁다고 생각되었다. 욕실이 고온다습함과 누런 조명이 어쩐지 야릇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고, 또 실로 그 행위의 분위기도 야릇함을 풍겼다. 꼭 정사 후의 여운을 즐기고 있는 모르는 사람들의 침실에 눈치 없이 들어와 청소를 하는 청소부가 된 기분이었다. 결국 그녀는 약간 도망치듯이 대야를 끌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은 바닥은 더위로 끈적끈적하게 달아 올라 있었다. 잠시 후 질질 끄는 소리가 나더니 Y가 여자를 업고 나왔다. 다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생선의 몸통이 풍채 좋게 달려 있다. 거실 조명을 받은 비늘이 화려하게 산란했다. 다만 Y의 작은 체구가 여자의 거대한 몸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이어서, 화려한 비늘과 하반신이 바닥에 끌렸다. Y는 안간힘을 써서 욕조에 인어를 넣었다. 평소에 전혀 운동을 하지 않았던지, Y는 힘들게 숨을 골랐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물끄러미 보던 인어는 긴 혓바닥을 내밀어 핥았다. 뱀처럼 혀 끝이 갈라진 모양이었다.

아 맞다. Y는 급하게 뭔가가 생각난 건지, 주방 찬장에서 굵은 소금을 꺼내 왔다.

“물을 좀 받아 와 줄래? 욕실에 보면 작은 대야가 있을거야.”

그녀는 드디어 할 일이 생겨서 안도하며 다시 도망치듯 욕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인어를 옮기느라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그걸 밟을 때 마다 발에 끈적한 소금이 묻을 것 같았다. 물을 욕조에 부으면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침착했다. 함께 물을 나르면서 Y는 간질간질하고 나즈막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지난 달 장마 때, 하천에서 주웠어. 갈 곳이 없어 보였거든. 그 동안은 욕실에만 뒀는데 일광욕도 못 하고 지루해 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한번쯤은 거실에서 해를 보여주고 싶었어. 말을 하는 건 아닌데 내 말은 잘 알아듣는 것 같아. 유키, 하고 부르면 나를 쳐다보거든. 그렇게 말하는 Y의 물색 눈동자는 푸욱 젖어서 반들반들했다. 모치즈키는 이 어색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물 위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유키’의 비늘이며 살갗을 한번쯤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을 간신히 버텼다.

시선을 주지 않고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신경 쓰게 되어버린다.

해초처럼 축 길게 늘어진 머리칼은 등과 가슴팍에 착 달라붙어 있다.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서, 살갗 아래로 혈관이 푸르스름하게 비쳤다. 인어가 뭘 먹고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입 안은 생 살을 찢기 좋은 포식자의 송곳니를 갖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걸 보라색 입술 안쪽에 숨기고 있지만.

Y가 다시 유키에게 찰싹 들러붙어 제 인어를 돌보는 동안, 모치즈키는 빈 욕실을 청소하기로 했다. 물이 빠진 욕조 밑바닥에는 해초 줄기와 약간의 모래알이 굴러다녔다. 욕실 바닥에는 소금이 굴러다녔다. 찬장에는 영문 모를 관상어 먹이가 있다. 그녀는 마음만 같아서는 욕실에 락스 한 통을 몽땅 들이붓고 물때며 곰팡이를 죄다 걷어내고 싶었으나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답지 않게 설겅설겅 마무리를 하고 나왔다.

거실에는 낡은 선풍기가 탈탈거리면서 돌아가고 있고, Y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굵은 소금을 욕조에 붓고 있었다. 유키는 자꾸만 혓바닥으로 Y의 땀을 핥아먹었다. Y는 아랑곳하지 않고 “간이 안 맞나?” 이런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연신 욕조의 물을 찍어서 맛보았다.

모치즈키는 집에 돌아와서야 그게 홀린 기분이라는 걸 깨닫는다. 욕실에 락스를 붓고 청소를 할 걸, 싶다가도 유키를 생각하면 오로지 유키만을 위해서라도 함부로 청소를 하면 안 되겠다 싶다. 아르바이트를 그만 둘걸 그랬나, 싶다가도 아르바이트 하는 날이 오면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그 집에 무서운데 자꾸만 가게 되는 거였다.

유키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치즈키가 거실과 주방을 청소하는 동안 Y 혼자서만 유키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애완동물에게 혼자 말을 거는 주인 같았다. 그럼 인어는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귀여운 반려인가? 그건 결코 아니었다. 다만 Y는 인어를 아기 다루듯 극진히 모시고 있었다. 새끼 옆을 떠날 줄 모르는 어미처럼, 욕조 앞을 떠나지 못했다.

한번 인어를 보여주고 난 뒤로 Y는 유키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여름의 태양이 무자비하게 들이치는 거실에서 제 인어를 소독시키고, 제 인어의 머리칼이며 아가미를 살피면서, 제 인어에 대해 떠들었다. 이름을 짓게 된 경위와, 식성과, 수온을 맞추고 염분의 농도를 조정하는 것의 어려움. 모치즈키는 거실의 빨래 건조대에 빨래를 널면서 잠자코 듣기만 할 뿐이었다. 유키가 Y를 보는 동안 모치즈키는 유키를 가끔 훔쳐봤다. 물 밑에 있을 비늘과 지느러미는 무서워서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유키는 움직임이 그렇게 많지 않고, 바닥에 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출근하고 보면 거실 바닥에는 늘 물이 튀어 있다. 낯선 사람 앞이라서 움직임을 참는 걸까. 어느날 모치즈키는 식탁 위를 행주로 닦으면서 그런 생각니 떠올랐다. 그리고 무심코 거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언뜻 인어가 보였다.

거리가 적지 않은데도 어쩌면 그렇게 가까이서 있는 것 처럼 잘 보이는 건지. 모치즈키는 이것도 인어에 홀리는 현상 때문이라고 여긴다.

인어는 엄청나게 날카로운 송곳니로, 잠든 Y의 팔뚝 위에 지긋이 이빨을 갖다 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뚝뚝 맺힐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인어가 뭘 먹더라. 육식은 맞았는데. 모치즈키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유키는 강아지처럼, 마치 고양기가 제 주인을 장난스럽게 깨물듯이, 그 흉측하고 날이 잘 들 것 같은 이빨을, 그 얇은 살갗에 갖다 대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이빨로 제 주인의 맥박을 재 보기라도 할 것 처럼.
그렇게 숨죽이고 가만히…….

그러다 시선이 마주쳐서, 모치즈키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못 볼 걸 본 것 같다. 어쩐지 몹시 부끄럽고 민망해졌다. 꼭 남의 정사 장면을 본 것처럼 괜한 수치심이 밀려들었다. 그녀는 행주를 빨아서 개수대에 놓고 Y의 방으로 도망갔다. 방청소가 끝날 무렵에는 Y가 깨어 있기를 바라면서.

청소를 마친 후에는 Y와 함께 고무 대야 욕조를 욕실로 옮겼다. 슬슬 개강을 준비할 시즌이어서, 오늘이 모치즈키의 마지막 출근이었기 때문이다.

Y는 오늘까지의 페이를 주고는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했다. 다음 겨울방학 때도 출근이 가능하냐는 물음에 모치즈키는 졸업 후 구직 활동을 핑계로 모호하게 답했다.

그리고 그 집으로부터 도망치듯 나왔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는 동안 그녀는 Y의 맨션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굳게 닫혀 있던 욕실의 철벅철벅 물소리를 생각하고, 그 다음으로는 제가 퇴근하고 난 다음 거실에서 일어날 철벅철벅 물소리를 생각했다. 커다란 고무 대야 욕조에 구겨지듯 들어간 거대한 인어와, 다 들어가지 못하고 밖으로 비죽 튀어나온 꼬리를 생각했다. 그 꼬리를 하염없이 쓰다듬는 Y와, Y의 땀방울을 핥는 유키의 갈라진 혓바닥을 생각했다. 고여있는 물에 철벅철벅 파도가 일고, 금방이라도 그 물에 몸이 쏟아질 것 같은 Y의 앙상한 몸을 떠올릴 무렵에는 구토를 할 것 같았다. 다시 예전처럼 가슴에 해일리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모치즈키는 Y의 맨션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큰 변화 없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그 공간의 구성이 좋았다. 유수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 맨션만 가위로 오려낸 것 처럼 박제되어 있어서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유키는 이렇게 시간이 보존된 공간을 통채로 먹어치우고 있는 셈이었다. 마치 밀물이 육지를 먹어치우듯이. 그걸 깨달은 순간, 더는 그 맨션에 갈 수 없게 되었다.

개강날은 결국 왔고 그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찜통같은 맨션과 물이 흥건한 거실과 다갈색의 고무 대야와와 유키에 대해 빠르게 잊어갔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언제나 바다를 머금고 있었다. 해일은 없어도 파도는 있는. 욕조처럼 커다란 수조에 담긴 바닷물이 파도처럼 철벅철벅거리는 기이한 마음이. 그렇게 수조처럼 바다를 머금고 살게 되었다. 이따금 출렁이는 물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그 찌듯이 덥고 텁텁하고 끈적한 낡은 맨션에 한동안 붙잡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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