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미즈

꿈-흉몽과 백일몽

 *전 글 '꿈-자각몽과 악몽'에서 이어지는 부분이 조금 있습니다. 읽고 읽으시면 조금 더 원활한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

 아키야마 미즈키는 오랜만에 기분이 안 좋았다. 안 좋다고 해 봐야 평소에 단전에 담겨 있는 우울 위에 울적이 몇 숟갈 얹어졌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즈키는 그것에 불행까진 아니더라도 불쾌함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 꿈자리가 꽤 나빴기 때문이다.

 나빴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꿈속에서 로봇으로 개조 당하거나 괴생물체에게 쫓기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평범하다 못해 빤하기까지 한 일상이 그 속에 있었다. 큰 부담 없이 반에서 수업을 듣고,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시간이 되면 함께 점심을 해결하고, 하굣길에 군것질을 하는……. 지금의 자신이 바라 마지않는 그런 생활 말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별일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미즈키는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잡몽이나 길몽 정도로 치부하고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즈키는 그러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이 꾼 꿈은 여러 의미로 비참하고 잔혹한 흉몽에 불과했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꿈속에서 보낸 생활들이 허탈한 허상이라는 점, 최소한 이 학교에서는 이루어질 성싶지 않은 꿈이라는 점은 이유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둘째 문제였다. 가장 크고 첫째가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꿈속에 카미시로 루이가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미즈키는 스스로의 양면성이 메슥거렸다.

 물론 루이의 부재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그에게 없지는 않았다. 아니, 충분히 있었다. 꿈속에서처럼 일상적인 평범함을 누릴 수 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이니까. 그래도 선배에게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 그런 식으로 냉정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즈키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에 대한 파악이 빠른 탓이기도 했고 냉정과 냉담의 차이를 알고 있는 탓이기도 했다.

 그래서 미즈키는 옥상에 루이와 단 둘이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루이를 어떤 얼굴로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미즈키의 속을 알 리 없는 루이는 그에게 간헐적으로 말을 걸었다.

 

 “진짜 아무 일 없는 거지, 미즈키 군?”

 

 진심을 다해 걱정하는 말투로 또 다시 물어 오는 루이에게 미즈키는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별일 없다니까. …벌써 몇 번째 물어보는 거야?”

 “여덟 번째려나.”

 “그걸 또 새고 있었네…….”

 “후후, 재미있지 않니?”

 “딱히.”

 

 무뚝뚝한 대꾸를 내뱉은 미즈키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선배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걱정만 하는 걸까. 평소에는 연출이네 쇼네 하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하면서. 속으로 그런 퉁명스러운 생각을 하던 미즈키는 이내 작은 위화감에 휩싸였다. 몇 번이나 반복된(루이의 말대로라면 여덟 번 반복된) 대화 속에 숨어 있던 단 하나의 이변을 눈치 챈 탓이었다.

 미즈키는 고개를 돌려 루이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까 선배.”

 “응?”

 “오늘은 연출 얘기 안 하네.”

 

 미즈키가 입에 담은 나직한 한마디에 루이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떨렸고 그것을 본 미즈키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루이의 동요는 미즈키가 느낀 위화감처럼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동시에 더없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후후……. 그냥 그러고 싶은 날도 있는 거 아니겠니?”

 

 거짓말. 진실을 갈구하는 단어가 입 앞까지 역류했지만 끝내 그것을 입 밖으로 토해 내지는 않았다. 미즈키를 지독히도 괴롭히는 저주와 같은 자문 중 하나인 “의미가 있어?”라는 물음이 그의 입을 단단히 봉한 탓이었다.

 

 “오늘이 그러고 싶은 날이라는 거야?”

 

 그래서 미즈키는 직구를 포기하고 변화구를 던지기로 했고, 루이는 그런 미즈키의 변화구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갑작스럽네.”

 “극적인 변화라는 점에선 꽤 나답다고…….”

 “아니.”

 “오야?”

 “극적이지도 않고 선배답지도 않아.”

 

 단정적인 미즈키의 말투 앞에서 루이는 할 말과 표정을 잃었다. 어젯밤에 있었던 친구와의 악몽 같은 순간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젯밤. 담백하다는 말이 사치스러운, 건조하다 못해 황폐하기까지 했던 대화를 끝낸 뒤 루이와 쿠사나기 네네는 신작 게임의 출시일, 어려서부터 꾸준히 유지되어 온 편식에 대한 가벼운 언쟁, 서로의 가족의 건강과 일에 관한 얘기 같은, 지금까지의 각자의 상황과 감정 때문에 나누지 못하고 미루기만 했던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며 평범하게 귀가했다.

 물론 이 평범함은 작위적인 것이었다. 루이에게는 더욱 그랬다. 당시의 그의 머릿속은 온갖 잡념과 상념으로 가득한 상태였고, 그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표정을 잃어버린 루이를 목격한 미즈키는 마른 침을 목 뒤로 넘기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되나, 하고 생각하며 충격을 느꼈다. 별종이네 동료네 하는 낱말들로 한데 묶이기는 하지만, 옥상이라는 공통된 공간 안에 있기는 하지만, 존댓말을 쓴 적은 한 번도 없긴 하지만, 어쨌건 미즈키에게 있어 루이는 선배였다. 자기 나름의 어른스러운 부분을 가지고 있는 그런 선배 말이다. 그리고 미즈키가 존경하고 있던 루이의 어른스러운 부분 중 하나는 감정을 대놓고 흘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런 루이가 목전에서 표정을 상실했다.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고, 그렇기에 미즈키는 평소보다 더 냉정한 얘기를 입에 담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개연성이 너무 부족하잖아, 선배.”

 

 미즈키의 냉정에 루이는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너무 극적이어서 개연성이 없어. 관객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얘기가 아니야. “그냥 그런 날이야.” 같은 얘기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편리한 게 아니라고.”

 “후후…….”

 “저기요, 웃으라고 한 얘기 아니거든요?”

 “미안, 나도 모르게 웃었네. 미즈키 군이 쇼에 관련된 얘기를 먼저 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거든.”

 

 나도 생각도 못 했어. 미즈키는 그렇게 대꾸할까 하다가 관두고 다른 말을 했다.

 

 “이렇게 얘기하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쉽잖아? 선배는 쇼밖에 모르니까.”

 

 미즈키의 얘기에 루이는 다시 한 번 작지만 확연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다행이라고 느끼는 자기 자신이 미즈키는 낯설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낯설음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고, 도리어 따뜻했다. 자신의 가슴속에 밴 그런 생소한 감각에 두근거림까지 느낄 정도였다.

 연애 감정일까, 하고 미즈키는 자문했으나 역시 그건 아니라는 대답이 곧장 돌아왔다. 가히 절대적이라고 얘기해도 될 정도로 그런 풋풋하고 아린 마음은 아니었다. 그럼 이 감각과 감정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그는 그렇게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었으나 이번엔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루이는 미즈키에게서 시선을 떼고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옥상 바닥에 벌렁 누웠다. 그러곤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중얼거렸다.

 

 “관객이 납득할 만한 개연성……. 후후, 확실히 무시할 순 없겠구나.”

 

 미즈키는 정리가 덜 된 자신의 마음속 술렁거림을 꾹 누르며 루이의 옆에 앉아 태연하게 대화를 이었다.

 

 “무시하면 큰일이지. 배우도 아니고 연출가인데.”

 “…그러네. 연출가로서의 자존심도 있고.”

 

 자칫 잘못하면 자학적으로 빠질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대화 끄트머리에서 루이는 다시 눈을 떴다. 그러곤 한쪽 팔을 쭉 뻗은 뒤 손을 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햇빛을 가렸다.

 루이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에게서는 상처라기에 애매한 작은 흠집을 받았는데 기껏해야 몇 달 동안 알고 지낸 동료에게서는 그 흠집을 수리할 수 있을 만한 기회를 받았다는 지금의 상황도 신기했지만, 그보다 더욱 신기한 건 다름 아닌 미즈키의 태도였다. 정확히는 태도 속에 녹아 있는 호의가 신기했다. 옥상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지내 온 나날 속에서 미즈키가 단 한 번도 제대로 보인 적 없던 호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즈키가 불친절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동료로서의 친절함을 갖추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루이의 연출 아이디어를 들어 주거나 한 번씩 튀어나오는 소소한 잡담에 어울려 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 모습들이 호의인가 따졌을 때 그건 아니라고 루이는 생각했다. 호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넓고 깊은 틈을, 크레바스와 다를 바 없는 거리의 실재를 선명하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루이는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동료로서의 사무적인 친절함이어도 좋으니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이는 미즈키의 담백한 친절함에 큰 불만을 품지 않았다. 도리어 이 정도면 족하지, 하고 언제나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이번에는 친절이 아닌 호의였다.

 사무적이지 않은, 더할 나위 없이 사적이며 명확한 호의.

 넓디넓고 깊디깊은 크레바스 위에 놓인 단 하나의 다리.

 루이는 바로 그 다리 앞에서 신기함을 느끼고 있었고, 미즈키는 그 반대편에서 루이와 동일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다리는 상대에게 멋대로 기대하고, 서로 의존을 닮은 의지를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갑작스레 등을 돌린 상대에게 혼자 상처를 받고 그것을 끌어안은 채 나아간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요소로 인해 확정적으로 맞이하게 될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미즈키가 스스로 거두었던 다리였다. 그렇게 없앴던 다리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미즈키는 알지 못했다. 아니,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확실히 하진 않았다. 몇 개월 뒤면 어쩔 수 없이 이 장소를 떠나야만 하는 사람에게 이제 와서 동질감 너머의 친밀감을 느낀다거나 더 함께 있으며 이런저런 상황 속에 있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 섣부르고 연약한 심경을 가지게 되었다는 걸 정의하는 순간 일어나게 될 변화를 우려한 본능적이며 소소한 자기 방어였다.

 얼마간 이어진 침묵 속에서 느끼고 있던 신기함이 잦아들었을 때 루이가 입을 열었다.

 

 “미즈키 군은 백일몽이라는 단어를 아니?”

 

 무슨 일이 있었으면 죽상만 짓지 말고 얘기를 하라는 뜻에서 개연성이 어쩌고 했던 거였는데 난데없이 꿈 얘기라니. 미즈키는 순간적으로 ‘내가 한 얘기를 오해했나?’ 하고 생각했으나, 곧장 루이가 이런 상황에서 쓸데없는 얘기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뭐, 의미 정도는?”

 

 하얀 해가 뜬 낮에 꾸는 꿈, 백일몽. 보통 무상하고 헛된 공상이나 망상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내 감상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이만한 것이 없겠구나. 어젯밤부터 루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껏 백일몽 속에서 살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언제부터?”

 “후후……. 작야부터려나.”

 

 루이는 그렇게 대꾸하곤 작게 한숨을 뱉어 내더니 자신이 겪은 일을 느긋한 어조로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가 어려서부터 꿈꾸고 바라고 원했던 것. 그것을 실현시켜 줄 수 있을 만한 유일한 출구의 폐쇄. 닫힌 출구가 다시 열릴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했으나 도리어 좌절만을 겪게 된 어젯밤의 담화. 그저 상상으로만 그릴 수 있는 일들을 미즈키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대꾸나 호응은 일절 내뱉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통해 대화의 흐름을 흐리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지금의 상황에 어울리는 단어는 대화가 아닌 상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루이는 미즈키의 의도하지 않은 그런 진심과 배려가 고마웠다.

 

 “그런 일들이 있어서…… 손 안, 눈앞, 머릿속,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 있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전부 사라졌다, 그런 얘기야.”

 “그래서 갑자기 백일몽이라는 얘기를…….”

 

 몇 분 만에 튀어나온 미즈키의 대꾸에 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즈키는 머릿속에서 바쁘게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주 당연한 얘기겠지만 위로를 위한 말을 말이다. 괜찮을 거야, 모든 게 괜찮을 거야, 사람한테 너무 기대면 안 돼, 선배는 선배만의 길이 있잖아, 그렇게 걱정하면 친구라는 사람이 부담스럽게 느낄 거야, 선배가 주저앉은 것처럼 그 사람도 주저앉았을 뿐이고 선배가 언젠가 일어날 것처럼 그 사람도 언젠가 일어날 거야, 걱정을 키우지 마……. 미즈키는 파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전혀 이어지지 않는 그런 문장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지우길 반복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미즈키는 한 얼빠진 문장에 사로잡혔다. 이건 말해도 전혀 도움이 안 될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런 문장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문장 하나를 떠올리고 나니 이제껏 생각한 여러 문장들이 자취를 감춰 버렸다. 또한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온갖 문장들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돌아가고 있던 상상력이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

 눈을 감고 미간까지 찌푸리며 사라진 문장과 고장 난 상상력을 더듬길 십 몇 초. 미즈키는 어쩔 수 없지, 하고 생각하며 소리 없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

 “왜 그러니?”

 “잠깐 실례할게.”

 “응……?”

 

 미즈키는 루이의 배 위에 제 머리를 누이고 바닥에 누워, 의외로 편하다고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평소 바닥의 타일과 루이에게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큼직한 하늘을 향하게 된 탓에 미즈키는 묘한 해방감에 젖어들어 갔다.

 루이는 고개를 들어 돌발적인 행동을 한 미즈키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상상에서는커녕 꿈에서도 본 적 없는 광경에 할 말을 잃은 탓이었다. 몇 분 전에 미즈키가 얘기한 개연성이라는 단어가 루이의 머릿속에서 점멸했다. 그렇다. 루이 입장에서 이건 너무나도 극적인, 펼쳐질 수 없고 펼쳐질 리도 없던 일이었다.

 시선이 느껴진 미즈키는 루이 쪽을 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선배. …꿈 따위에 지면 안 돼.”

 

 미즈키가 루이에게 던진 얘기는 그 자신에게 하는 얘기이기도 했다.

 

 “애초에 백일몽이라는 거, 단어 그대로 읽으면 낮잠 자다가 꾸는 꿈이잖아. 그럼 그냥 지금 한 번 자서 꿔 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꿈에서 잠을 자면 깬다잖아. 이곳이 선배가 얘기한 대로 백일몽이라는 꿈속이라면, 지금 우리가 잠들어야지만 백일몽에서 깰 수 있다는 거야.”

 “깨고 나면…… 그 다음엔?”

 “눈앞의 현실을 살아가야겠지.”

 “후후……. 지금 자고 일어나면 눈앞에 있는 건 미즈키 군일 텐데, 그럼 미즈키 군이 내 현실이 되어 주는 거야?”

 

 어딘가 자학적인 느낌이 스며들어 있는 루이의 물음에 미즈키는 작지만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움직임에 루이는 다시 한 번 할 말을 잃었다. 미즈키는 자신이 마지막에 떠올린 얼빠진 문장 하나를 곱씹으며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못 되어 줄 것도 없지.”

 

 미즈키는 그렇게 얘기하곤 눈을 감았다.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루이도 눈을 감았거나 다른 곳을 보고 있겠구나, 하는 멍한 생각을 했다.

 내가 옆에 있겠다니, 그런 얘기를 어떻게 입으로 해.

 자신이 떠올린 얼빠진 문장을 다시 한 번 되뇌며 미즈키는 잠을 청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