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족의 인간 (下)

게나조

篝火 by 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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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도 나를 키우면서 힘드셨을까? 키타로가 자라기 시작하면서 미즈키는 매일 이런 생각을 했다. 말 그대로 키타로는 손이 많이 가는 사고뭉치였다. 예를 들면, 지금 같은 상황이 그럤다.

“아, 아야, 아야야, 키타로, 따가워, 아파.”

“키타로오! 형에게 그러면 안 되지!”

밥투정을 부리던 키타로는 기어코 미즈키를 향해 머리카락 침을 날렸다. 미즈키는 급히 이유식 그릇을 내려놓고 키타로를 양손으로 안아든 채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사람의 팔은 유령족만큼 늘어나지 않아서 미즈키는 침을 고스란히 맞았다. 미즈키가 소심하게 반항하는 소리에 뒷마당에 있던 게게로가 기겁하면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앞마당 텃밭에서 잡초를 골라내고 있던 이와코도 게게로의 고함에 놀라 뛰어왔다. 게게로는 재빨리 미즈키에게서 키타로를 빼내고, 이와코는 미즈키의 볼과 턱, 목에 박힌 머리카락 침을 조심스럽게 빼냈다. 호저의 가시처럼 박힌 끝부분이 살짝 휘어져 있어 집중하지 않으면 휘어진 부분이 안쪽을 더 찔러 고통스러웠다. 몇 번의 신음소리와 사과를 반복한 뒤에야 미즈키는 가시로부터 해방되었다. 구멍에서 조그맣게 흐르는 피를 일일이 닦아준 뒤 이와코는 미즈키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괜찮니? 아프면 소리를 내야지. 그래야 우리가 도와줄 수 있잖아.”

“아니, 그래도 애 앞에서 어떻게 그래요….”

“아! 아약! 키타로! 어찌 아버지에게 이럴 수 있는 게냐!”

바로 옆에서 게게로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다시 보니 키타로가 빼앵 울면서 머리카락 침을 또 뿌리고 있었다. 게게로는 바로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 키타로를 허공으로 들어올려 달래주었다. 그러나 너무 높아서 겁이 난 걸까, 키타로는 더 크게 울면서 아예 생체 전기까지 뿜어내고 있었다. 으아악! 전기를 그대로 맞은 게게로는 선 채로 기절했다. 이와코와 미즈키는 동시에 머리를 짚었다.

머리카락 침이나 머리 끄댕이 잡아 당기기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따금 흥분해서 전기를 몸에서 뿜는다던가, 잡을 수도 없을 만큼 높은 곳으로 올라가버린다거나, 날 때부터 있었던 송곳니로 피가 날 만큼 깨문다거나, 빗을 때마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여서 곤란하게 만들거나, 빨리 이유식을 내놓으라며 카멜레온 혀로 손목을 휘감는다거나 하는 것들은 아직 익숙해지지 못헀다. 그리고 이따금 울면서 모든 능력을 총동원할 때에는 필사적으로 도망갈 구멍을 찾아야 했다. 같은 유령족인 이와코나 게게로야 어떻게든 괜찮겠지만 인간인 미즈키는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떡을 돌리러 온 스나카케바바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그는 웃으면서 조언했다.

“원래 어떤 생물이든 아기는 그래. 이제 뛰어다니기 시작하면 더 골치 아플 거다. 그것도 한 순간이니까 즐기는 게 나을 거야.”

그치만 스나카케바바, 이대로면 나 진짜 죽을 지도? 미즈키는 뒷말을 삼켰다.

유령족의 인간 (下)

“그랬는데 말이지….”

“도대체 언젯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형.”

“그래, 키타로야. 너는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단다.”

“아버지까지….”

키타로는 양쪽의 주정뱅이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벌써 아버지라 부르는 거냐며 게게로가 다시 눈물을 터트렸다. 이와코가 옆에서 자기 역시 ‘어머니’라 불린다며 위로해주다가 그의 울음보를 더 크게 터트렸다. 그래도 아직은 형이라고 부르는구나. 와중에 미즈키는 속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키타로가 태어난 지 어언 10년, 이제는 미즈키의 허리까지 온다. 게게로와 이와코를 닮아 훌쩍 자랄 줄 알았는데 성장이 더디다. 그러나 부부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원래 우리 유령족은 성장 시기를 조절할 수 있지. 그래서 나도 계속 어린애로 지내다가 이와코를 만나고…. 미즈키는 유령족의 이능異能에 감탄하면서 게게로의 아내 자랑을 적당히 흘려보냈다. 그러면 키타로는 언제 즈음 성장해서 어른이 될까. 미즈키는 청주를 홀짝이며 홀로 생각했다.

스나카케바바의 말이 맞았다. 아기 때는 그래도 좀 더 자라면 얌전해지겠다 싶었는데, 뛰어다니기 시작하자 오만 곳으로 쏘다니기 시작했다(미즈키가 잡으려다가 논두렁에 빠지거나 비탈길에서 굴러 떨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자라 네 살이 되자 온갖 것에 ‘왜?’라며 물음을 달았고 다섯 살이 되자 갑자기 낯을 가렸다. 낯가림이 심한 날에는 미즈키도 안지를 못했다. 난 요괴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걸까. 그날은 유령족 몰래 뒷마당에서 담배를 줄기차게 피워댔다.

그러나 스나카케바바의 말대로 모두 한순간이었다. 일곱 살이 되어 요괴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얌전해져서는 오히려 부모님이나 미즈키보다 철이 들었다. 몇 번이나 이름을 가르쳐줘도 ‘미쥬’라고 부르던 녀석이 갑자기 또박또박 ‘미즈키 형’이라고 부르고 존칭을 쓰고. 밥을 얌전히 먹고 제 그릇을 알아서 치우고. 이불도 옷도 조금 구겨지긴 하지만 제 손으로 개웠다. 어른에게 인사할 때는 늘 배꼽 인사를 했고 제 의사도 분명하게 표현했다. 어떨 때는 떼를 쓰고 가지 말라며 붙잡던 어린 키타로가 그리울 정도였다.

어린 아이 취급을 싫어하게 된 점도 눈에 띄는 변화였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하지 말라고 도망가고, 나이에 맞추어 놀아주려고 하면 뭐 하는 거냐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유령족과 함께 살게 된 때가 생각났다. 이와코랑 게게로가 물어 물어 인간의 놀이 같은 걸 알아와서 나랑 같이 하려고 하면 되게 매정하게 쳐다봤지. 요괴를 못 믿던 시절이라고 해도 키타로의 행동은 그 시절 미즈키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역시 요괴든 인간이든 그 나이에는 그렇게 행동하는 법인가?

키타로의 어린 시절 추팔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 새 미즈키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옛날엔 미즈키도 그랬지, 하면서 쌍으로 그를 놀리던 부부가 갑자기 폭탄 발언을 던졌다.

“그래서, 미즈키.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니?”

“푸흡!”

훅 치고 들어온 이와코의 순수한 질문에 미즈키는 목구멍으로 넘기던 술을 그대로 뿜었다. 덕분에 아까운 텐구의 술만 낭비하고 옷까지 적셨다. 미즈키여,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칠칠치 못하게 구는가. 술에 절어질 대로 절어진 게게로는 미즈키의 행색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차면서 행주를 찾으러 갔다. 미즈키는 소매로 입가를 벅벅 문지르며 물었다.

“켁, 마, 마음에 드는 사람이요?”

“아, 역시 인간이라 요괴는 색시로 좀 그런가?”

“새, 색시요?!”

“뭘 그렇게 놀라. 인간은 원래 스무 살이 되면 결혼한다던데.”

아니, 갑자기 대체 무슨 말씀을…. 아무것도 먹은 게 없는데 또 사레 들리는 느낌이다. 미즈키는 침착하려고 애쓰며 이와코의 발언을 정정헀다.

“스물부터 가능한 거지, 모두가 스물부터 하는 건 아닐 걸요.”

“음? 그치만 내가 알던 인간들은 모두 미즈키보다 어린 나이에 자식이 있었는 걸.”

이건 뭐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게게로가 휘청대면서 한 손에 수건을 들고 다가왔다. 그는 수건을 미즈키에게 내미는가 싶더니 대뜸 유카타 앞자락을 벌렸다. 미즈키가 비명을 지르며 게게로의 손을 잡았다. 벌리려는 자와 싸매려는 자의 싸움을 하면서 미즈키가 고함을 질렀다.

“뭐하는 거야 임마!”

“미즈키, 옷이 젖지 않았는가. 어서 벗고 갈아입게나.”

“갈아입을 거야! 방에 들어가서!”

“왜 굳이 방에 들어가 갈아입나. 내가 옷을 가져왔네.”

“옷이 아니라 수건이잖아!”

“여보, 아무래도 미즈키를 위해 인간 짝을 찾아야 할 거 같아요.”

와중에 적당히 취한 이와코가 눈치도 없이 미즈키의 짝 이야기를 꺼냈다. 게게로가 흐리멍텅한 눈을 끔뻑이면서 말했다.

“으음? 갑자기? 색시를 들이기엔 아직 어리지 않나? 이제 겨우 스물일곱이네만.”

“아이 참. 인간은 스물부터 짝을 지어서 아이를 낳는다고요.”

“그러니까 모든 인간이 그러지는 않는다고요――!”

아수라장 속에서 키타로만 조용히 보리차를 마셨다. 어른들은 참 시끄럽구나, 그 생각을 하며.


술자리에서의 대담 이후 미즈키는 이와코와 게게로가 부담스러워졌다. 대체 누가 바람을 불어넣은 건지 그날을 기점으로 미즈키의 짝을 찾아준다며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 인간을 찾고 있었다. 이들만 이러는 건 상관이 없다. 문제는 키타로까지 거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부부가 집을 비운 어느 겨울, 코타츠에 몸을 지지며 떡을 먹는데 갑자기 키타로가 물었다.

“미즈키는 연애에 관심 없어?”

떡 덩어리가 통째로 넘어갔다. 한참 괴로운 기침을 토해내자 키타로가 다가와 등을 두드려주었다. 겨우 떡을 넘긴 미즈키가 입가의 침을 닦으며 물었다.

“아니, 그건 왜?”

“네즈미오토코가 미즈키는 사람들에게 인기 많을 얼굴이라고 부러워 하길래.”

저걸 죽여 살려. 미즈키는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일곱 살 야생 고양이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지만 한 순간도 도움이 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어떻게든 꼽사리 껴서 뭐라도 뜯어 먹으려고 했지. 그를 반면교사 삼아 키타로를 가르쳤건만 어째서인지 네코무스메 다음으로 친한 요괴가 네즈미오토코였다. 대체 어째서. 미즈키는 이마를 손으로 쓸면서 중얼거렸다.

“그렇게 잘생기진 않았어.”

“히노엔마나 시라누이도 미즈키 미남이라는데.”

“혹시 요괴는 미적 기준이 다른가?”

대체 왜 나를 보고…. 미즈키는 앞머리를 만지작댔다. 왼쪽 눈에 큼지막한 흉터도 나 있고, 왼쪽 귓바퀴도 잘려나간 사람이 뭐가 좋아서? 게다가 그는 인간이라 신기한 능력도 없고, 키도 크지 않다. 있는 것이라고는 유령족이라는 뒷배뿐인데, 미즈키는 한 번도 이를 내세우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인간인 걸, 요괴 마음에 들게 생겨서 뭐해. 잡아 먹히거나 카미카쿠시 당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미즈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재떨이에 담뱃잎 재를 털었다. 오늘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야 한다. 근력은 미즈키보다 좋다 해도 아직 열 살짜리인 키타로에게 시킬 수는 없다. 미즈키는 뒷마당에서 양동이를 가져오며 말했다.

“그럼 나 우물 좀 갔다 올게.”

“아, 그럼 같이 가요.”

“얌마, 그러면 집은 누가 지키냐.”

미즈키는 웃으며 타박을 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캉, 캉. 게타 소리가 나란히 길 위에 울렸다. 마주치는 요괴마다 키타로를 보고 언제 이렇게 컸냐며 감탄했다. 미즈키가 장난스럽게 여자친구도 생겼어요, 라고 하면 꿋꿋하게 친구라고 정정하기도 했다. 미즈키가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말했다.

“에이, 네코무스메가 무슨 친구냐.”

“정말 친구라니까요.”

“나중에 한 번 집에 데려와. 핫케이크 정도야 나도 만들 수 있으니까.”

암, 미즈키 핫케이크는 세상에서 제일이지. 폼포코가 엄지손가락을 들면서 칭찬했다. 폼포코와 헤어지마자 미즈키는 다시 잔소리를 했다.

“너 자꾸 그러면 네코무스메가 서운해 한다니까. 저번에 봤을 땐 누가 봐도 너 좋아서 안달이 난 표정이던데.”

“아버지랑 어머니께서 짝 이야기 할 때는 진절머리 냈으면서.”

“켁, 야 난 아직 나 좋다고 하는 사람 없으니까 그렇지.”

미즈키가 조금이라도 그럴 마음이 든다면 홀라당 넘어와줄 요괴가 여기 한둘이 아닌데. 키타로는 속으로 대꾸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 마을에서 미즈키가 요괴에게 제일 인기가 많다는 걸, 미즈키만 모르고 있다. 지금 미즈키를 요괴로 만들려고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닌데. 키타로는 논두렁 사이를 흐르는 물길을 바라봤다. 그중 가장 위험한 녀석을 꼽으라면 당연히 수신이다. 수신은 예전부터 미즈키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오로지 인간만이 신을 믿고 추앙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름도 300년 전 아직 인간들이 마을을 이룰 만큼 많이 남아 있을 때 누군가가 붙여주었다고 한다. 요괴로 만들거나 잡아먹진 않겠지만 자신의 영역으로 데려가 유일한 신관으로 삼아버릴 수 있다.

수신만 위험한 게 아니다. 산 너머에 사는 까마귀 텐구도 그를 제자로 삼아 다음 텐구로 키워내려고 한다. 검은 머리카락이 예쁘니 검은 날개를 달면 더 아름답지 않겠나? 언젠가 까마귀 텐구가 술에 취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가 된통 혼이 났다고 한다. 그 뒤로 마음을 고쳐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까마귀 텐구는 고집이 세니 한 번 그리 생각한 것을 쉽게 접진 않으리라.

이렇게 사방이 위험으로 가득한데 당사자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키타로는 왜 부모님이 미즈키의 앞날을 걱정하는지 이에 이해할 수 있었다. 미즈키는 자신을 향한 적의나 악의에는 민감했으나 호의에는 둔감했다. 특히 파멸적인 호의는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 부모님이 없을 때 나라도 바짝 붙어 다녀서 위험한 일이 없게 해야지. 키타로의 새해 다짐이었다.

우물에 도착한 그들은 그릇에 물을 가득 담고 귀가했다. 미즈키는 동이를 두 개나 든 키타로를 들고 말했다.

“무거우면 나 줘. 내가 들 테니까.”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역시 유령족이다 이건가.”

미즈키가 앞장 서서 걸어가자 키타로는 헐레벌떡 종종걸음으로 그를 따라갔다. 겨울이라 유독 해가 빨리 저물었다. 이제 곧 있으면 시위가 완전히 어둠에 젖어들 것이다. 키타로는 미즈키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미즈키, 호롱등불 가져왔어요?”

“아니? 그런데 넌 밤눈이 좋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앞으로 혼자 다닐 때는 꼭 호롱등 들고 다니세요.”

“애초에 밤에는 혼자 못 돌아다니게 하는데 내가 어둑해졌을 때 나갈 일이 있겠어…. 어.”

미즈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추어 섰다. 정수리 부근에 튀어나온 머리카락이 삐죽 솟구치는 감각에 키타로는 황급히 물동이를 버리고 미즈키의 손을 잡았다. 미즈키 역시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저 덩어리는 이쪽도 저쪽도 아니다. 코에서 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저것이 노리는 건 내가 아니야. 미즈키는 물동이를 내팽개치고 키타로를 덥석 안아들었다. 발과 바짓단이 젖었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미즈키는 키타로를 안고 냉큼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그의 어깨와 팔에 매달린 키타로가 외쳤다.

“미즈키! 내려주세요!”

“안 돼! 내리면 잡힐 거야!”

그것은 따라오지 않았으나 미즈키도 키타로도 바짝 뒤에서 다가오는 검은 기운을 느꼈다. 땅을 타고 천천히 퍼지는 죽음의 기운이 그들의 발목을 잡을락말락 아슬아슬하게 뒤쫓아왔다. 미즈키는 한참을 쉬지 않고 달렸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찼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저것은 요괴를 먹는 요괴. 키타로를 내려주면 그것이 바로 이 아이를 붙들어 데려갈 것이다. 민가로 내려가 다른 요괴를 부르는 것도 위험하다. 그들 또한 휘말려들 수 있다.

미즈키는 숲을 향해 필사적으로 뜀박질했다. 숲에는 수신이 거처로 삼은 신사가 있다. 다 허물어 가고, 인간 추앙자를 잃은 토리이는 색이 바랬지만 신의 영역을 알리는 역할은 톡톡히 하고 있다. 무사히 들어가기만 한다면 저것은 따라오지 않을 거다. 그곳까지만 키타로를 옮기면 이 애는 무사할 것이다. 자기만 마을로 돌아가 요괴들에게 대피하라고 알리면 된다. 미즈키는 앞으로 고꾸라질 뻔한 다리에 더 힘을 주며 악착같이 도망쳤다.

숲 입구의 토리이로 들어가자 검고 불쾌한 기운이 멀어졌다. 여기서부터 신의 영역이 시작됨을 알고 망설이고 있는 것이리라. 미즈키는 시험 삼아 천천히 속도를 늦추었다. 다행히 그것이 속도를 내 다가오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미즈키는 안도하지 않고 계속 신사 쪽으로 걸어갔다. 코다마와 요부코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미즈키를 쳐다봤다. 미즈키는 살짝 고개를 돌려 키타로의 상태를 살폈다. 기운에 노출되어 조금 힘이 없어진 것 빼고는 괜찮아 보였다. 그는 커다란 바위에 앉고서야 키타로를 내려주었다. 거칠게 갈라진 숨을 몰아쉬자 코다마가 나뭇잎에 물을 담아 건넸다. 수신의 가호를 받은 계곡물을 마시니 갈증이 사라졌다. 길게 숨을 토하자 키타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미즈키, 괜찮아요?”

“어어. 다행이다…. 여기까지 안 잡히고 와서.”

키타로가 살짝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수신의 영역까지 왔으니 코다마들에게 키타로를 부탁하고 나 혼자 마을로 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키타로는 놈에게 잡힐 위험이 없고, 놈은 요괴만 노리니 나 같은 건 거들떠도 보지 않을 텐데. 그보다 놈이 언제 마을로 갈지 모르니 모두에게 도망가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미즈키는 바위에서 일어나 입구 쪽으로 향했다. 키타로가 당황하며 소매를 덥석 잡았다.

“어, 어디 가요 미즈키. 신사는 이쪽….”

“아니, 난 마을로 갈 거야.”

“왜요?”

“왜냐니. 놈이 마을로 갈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다른 요괴들도 물론이고, 게게로랑 이와코까지 휘말릴 텐데.”

친구들과 부모님 이야기를 하니 키타로도 입을 다물고 반대하지 못했다. 키타로는 미즈키의 소매를 놔주며 말했다.

“…빨리 와야 해요.”

“어. 너무 걱정하진 마.”

코다마가 반딧불이 호롱불을 들고 왔다. 미즈키는 고맙다고 말하며 급히 마을로 돌아갔다. 키타로와 코다마, 요부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멀어지는 그를 바라봤다.

날이 급격하게 어두워지고 있음에도 돌아다니는 야행성 요괴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갑자기 나타난 그것 때문이리라.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는 이는 없다. 다만 그것은 요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다는 것과 신의 영역으로는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인간은 해하지 않는다는 것도. 지금보다 인간이 많았던 시절에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어린 인간을 사냥해 부적처럼 데리고 다니던 요괴가 많았다고 한다.

아직 그것의 등장을 모르는 어린 요괴들은 철부지처럼 길 위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미즈키는 그들을 먼저 숲으로 보낸 다음에 마을을 향해 달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을 쪽에서는 어떤 소란도 들리지 않았다. 설마 이미 모두 잡아먹힌 후일까,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미즈키는 지칠 대로 지친 발을 억지로 움직였다.

마침내 마을 어귀가 보였다. 그것이 아직 마을에 도착하지는 못했는지 몇몇 집에선 밥 짓는 연기가 피어 올라오고 있다. 다행이다, 아직 다들 무사하구나. 안도하는 마음에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거기로 들어가지 마라.”

싸늘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왔다. 미즈키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 위를 쳐다봤다. 요괴들이 신성시하며 띠를 둘러둔 나무 위에 사람 모습의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거대한 삿갓을 쓰고 검은 하오리를 걸친데다 손에는 석장을 들고 있었다. 마치 고대에 존재했다는 수행자의 차림새 같았다. 그는 다른 손에 든 곰방대로 연기를 빠끔거리며 경고했다.

“거긴 요괴들이 사는 마을이다. 들어가면 죽는다.”

그제야 미즈키는 상대의 기운이 요괴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과 더 가까워 보였다. 그는 인간이었다. 미즈키가 가족 외에 처음 보는 인간이었다. 그는 미즈키를 빤히 쳐다보다가, 부엉이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꺾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면 너, 저기에 사는 거냐?”

미즈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그것을 불러왔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왜 지금까지 요괴들은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았을까. 인간이 요괴에게 밀려나 없어지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그것, 요괴만을 잡아먹으면서 인간은 건드리지 않는 그것. 수행자로 보이는 사람이 고개를 들면서 중얼거렸다.

“사리분별이 안 될 만큼 어려 보이진 않는데. 아니면 자기가 요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가?”

“난 인간이야. 그리고 이 마을엔 신세를 지고 있어.”

미즈키는 또박또박 말했다. 수행자의 눈이 더욱 커졌다. 그는 오니보다 더 거친 표정을 지으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신세? 인간이 요괴한테 신세?”

그는 마치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미즈키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가 길게 연기를 뿜으면서 말했다.

“인간이 대체 어쩌다가 요괴에게 사육당하는 수준까지 떨어진 건지. 이래서는 안 된다. 이래선 안 돼.”

이십여 년만에 만난 동족임에도 미즈키는 그에게 반감을 느꼈다. 물론 이 마을의 모든 요괴가 모두 자신에게 친절했던 건 아니다.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눈칫밥도 꽤나 먹었다. 하지만 모두가 나쁘진 않았고, 모두가 인간을 하등하게 보지도 않았다. 인간이라고 모두 좋은 것만도 아니었구나, 미즈키는 이 자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문득 어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보통의 인간은 요괴를 두려워하며 그들이 사는 부락에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 인간은 마을 어귀에 이렇게 앉아 있는 걸까. 그것도 하필 그것이 나타난 때에. 미즈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여전히 삿갓 그림자에 숨어 보이지 않는 눈으로 미즈키를 응시하고 있었다. 요괴를 두려워하긴커녕 그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인간, 평범한 자라면 절대 가까이 하지 않을 요괴 마을 입구에 있는 인간, 그러나 이 마을의 요괴들이 인간에게 그나마 우호적임을 모르는 인간. 미즈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네가 그것을 불러왔구나.”

“아니, 모노노케는 우리의 일부다.”

그가 미즈키의 말을 정정했다.

“인간의 원한이 뭉쳐진 것, 그것이 모노노케다. 요괴에게 살해당한 수많은 인간의 원념, 그렇기에 그것은 오로지 요괴만을 해친다.”

그는 자신의 하오리에 새겨진 문양을 가리키며 말헀다.

“우리 우라키도는 그 모노노케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법을 터득했지. 이제 인간이 반격할 때다. 이 땅에서 요괴를 완전히 몰아내고 인간의 시대를 다시 세울 거다.”

“헛소리야.”

미즈키는 바로 반박했다. 인간과 어울려 사는 세상을 꿈꾼 적이 없던 건 아니다. 적당한 때가 되면 이 마을을 나와 인간이 사는 곳을 찾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유령족 부부와 함께 살고, 요괴들과 교류하고, 키타로를 만나면서 미즈키는 차일피일 계획을 미루었다. 기력을 회복하면, 자금을 좀 더 모으면, 성년이 되면, 이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그러다 보니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좋아졌다. 그들도 기실 인간과 다른 점이 없었다. 자기들끼리 사소한 것으로 싸우고, 금방 화해하고, 미워하고 이간질하다가 또 같이 술을 마시고 웃고, 울고. 남을 괴롭히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남을 도와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녀석도 있고.

미즈키는 결국 인정해야 했다. 나는 평생 이곳을 떠나지 못하겠구나. 언젠가 이곳을 떠나도 그 시간을 늘 그리워하겠구나.

마을을 떠나는 날이 언제일지는 모른다. 당장 내일일 수도 있고, 10년 후일 수도 있다. 어쩌면 늙어 죽을 때까지 이곳의 주민일 수도 있겠지. 그 시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곳을 소중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수많은 추억과 기억이 쌓인 이곳이 언젠가 제가 그리워하며 돌아올 때까지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지금 이 마을을 없애고 추억을 불사르려 하는 인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미즈키를 바라봤다. 그가 언성을 높였다.

“왜지? 인간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요괴에게 밀려 터전을 잃었다. 수없이 많은 이가 죽었고, 그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 드디어 요괴에 맞설 무기가 생겼는데 왜 너는 거부하는 거지? 스스로를 요괴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거냐?”

“아니, 나는 인간이야. 그리고 요괴와 같이 사는 인간이고. 난 여기에 쌓인 게 많아. 그러니까 여기를 망치려고 한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어.”

미즈키는 단호하게 대꾸하고는 마을 안으로 뛰어갔다. 남자가 혀를 차더니 석장을 휘두르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아마 모노노케를 불러올 것이다. 그 전에 최대한 많은 이를 대피시켜야 한다. 미즈키는 마을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문을 사납게 두드렸다.

그게 오고 있어! 수신의 숲으로 피해!”

이 밤중에 웬 난리냐고 투덜대던 놈들도 그것이 나타났다는 말에 기겁하면서 집을 떠났다. 요괴들이 마을에서 빠져나갔다. 미즈키는 그들에게 언질했다.

“입구는 이미 막혔어! 뒤로 빠져나가! 다른 녀석들에게도 알려주고!”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필요한 짐만 가지고 모든 이들이 수신의 숲으로 도망쳤다. 미즈키는 요괴들에게 대피하라고 외치면서 집으로 뛰어갔다. 온 마을을 헤집고 다녔는데도 게게로와 이와코가 보이지 않았다. 제발 집에 무사히 있기를, 없다면 이미 그것의 기척을 느끼고 대피했기를. 미즈키는 눈을 꾹 감고 그들이 당하지 않았기를 빌었다. 저 멀리 싸릿문이 보였다. 미즈키는 그것을 밀치며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게게로! 이와코!”

“미즈키!”

게게로가 황망한 얼굴로 달려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갈한 유카타가 조금 풀어헤쳐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산발이었다. 미즈키의 목소리에 뒤따라 나온 이와코도 정신이 없는 얼굴이었다. 이와코가 숨을 헐떡이면서 물었다.

“미즈키! 어디 있었던 거야? 키타로는?”

“이와코,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에요. 그게 오고 있…!”

옆구리 쪽으로 무언가 비집고 나오는 감각이 들었다. 고통에 찬 신음이 잇새로 흘러나왔다. 겨우 고개를 내려 상태를 보니 검은 덩어리가 제 오른쪽 옆구리를 뚫고 나왔다. 가늘게 흘러나오는 피가 제 것이 아닌 양 낯설었다. 게게로와 이와코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미즈키는 피가 섞인 잔기침을 터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마당에 그 사내와, 그가 다루는 모노노케가 서 있었다. 그는 귀찮게 되었다는 얼굴로 삿갓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래, 유령족의 귀여움을 받고 있었단 말이지. 그래서 그렇게 꽃밭처럼 굴었고….”

그는 점점 인상을 쓰더니 노호를 터트렸다.

“네놈은 인간의 수치다!”

게게로가 앞으로 나섰다. 이와코는 손으로 모노노케의 촉수를 간단히 잘라버리고 미즈키를 들어 안았다. 게게로의 팔에서 영모 팔찌가 풀려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게게로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그에게 물었다.

“왜 우리를 없애려고 하는 겐가!”

“우리는 인간의 세상을 다시 세울 거다! 너희 요괴를 전부 몰아내고!”

이와코는 먼저 미즈키를 데리고 도망쳤다. 곧 인간과 게게로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구멍이 난 미즈키의 옆구리에서 계속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점점 정신이 멀어지는 게 느껴진다. 키타로가 보면 슬퍼할 텐데. 이와코도, 게게로도, 자기 잘못이라고 울 텐데. 그의 식구는 눈물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어떻게 서로 담은 이들끼리 가족이 되었는지.

슬프지는 않았다. 후회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가족이 미즈키의 이런 생각을 안다면 죽지 말라며 또 울겠지만, 미즈키는 이제 아무래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키타로가 게게로만큼 커지는 걸 보지는 못할 테지만 그 애를 구했으니까. 그 애는 물론 그 애와 함께 살아갈 요괴들도 구했으니까. 어차피 여기는 요괴의 마을이지 않은가. 인간인 자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산 게 이상한 거다. 그 때문에 요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인간에게도 배척받는 신세가 되었지만, 뭐 나쁘진 않았다. 그만큼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으니까.

그래도 키타로를 만날 떄까지만이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아주 많으니까. 게게로와 이와코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었다. 나를 식구로 받아주어서 고맙다고, 내가 이렇게 된 건 당신들 탓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앞으로도 살 날이 무한히 많은 당신들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따금 곤경에 처한 인간을 발견하면 그를 도와주기도 하면서.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치만 나를 잊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버지, 이미 늦은 걸까요.”

“…그런 것 같구나.”

“미안해요.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서….”

유령족 가족과 요괴들은 둘러앉아 한 인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맑은 얼굴로 영원한 잠에 빠진 인간을. 하때 그들의 식구이자 이웃이자 친구였으며 그들을 구해준 인간의 마지막을.

댓글 1


  • 추워하는 까치

    아아니... 미즈키.... 🥺🥺🥺🥺 후일담... 주시나요.... 주셔야만..... (므루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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