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미즈

길어질 것 같은 밤

평화로운 토요일 오후. 나이트코드 멤버들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모여 있었다. 무슨 중대한 일이 있어서는 아니고,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신곡 업로드를 끝낸 뒤의 뒤풀이로써 모인 것이었다.

 

 “역시, 이번 곡에도 댓글 엄청 많이 달렸네~.”

 

 스마트폰으로 영상에 달린 반응을 확인하며 아키야마 미즈키가 입을 열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시노노메 에나가 포크로 치즈 케이크를 자르다 말고 “어디, 어디?” 하고 미즈키 쪽으로 급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우왓, 에나. 그렇게까지 안 해도 댓글이 도망가거나 하진 않으니까 조금 진정해~.”

 “하? 그걸 누가 몰라? 이번에 그린 일러스트는 평소보다 좀 더 심혈을 기울였으니까 바로 확인해 보고 싶을 뿐인 거야.”

 “네, 네. 에나가 작업할 때 같이 있어 주면서 이것저것 얘기해 준 게 나인데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어디 보자, 일러스트에 대한 댓글이…….”

 

 요이사키 카나데와 아사히나 마후유는 온라인에서와 오프라인에서의 차이가 크게 없는 미즈키와 에나의 대화를 바라보며 별 다른 얘기 없이 자신들이 시킨 음식을 먹어 나갔다. 남들이 볼 땐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니고 멤버들에겐 이젠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한바탕 댓글 탐방이 끝난 미즈키와 에나는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뗐다. 에나는 아까 전에 먹으려다 만 음식을 다시 입 안으로 넣었고, 미즈키는 음료를 한 모금 들이키곤 “역시 탄산이 오장육부에 잘 스민단 말이야!” 하며 아저씨 같은 얘기를 했다,

 

 “또 아저씨 같은 얘기를…….”

 

 에나의 조용한 핀잔에 미즈키는 “이렇게 마시는 편이 훨씬 더 재미있고 맛있으니까 그렇지~. 에나도 한 번 이렇게 마셔 볼래?” 하고 장난스럽게 반응했다.

 

 “아무리 맛을 위해서라도 그건 좀…….”

 “더 맛있어진다니깐~.”

 “그런데 에나,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다시 시작되려 하는 두 사람의 만담 같은 대화 위에 카나데가 조용히 한마디를 얹었다. 미즈키와 에나는 즉시 대화를 멈추고 카나데에게 시선을 향했다.

 

 “응? 뭔데?”

 “갑자기 평소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서 그린 이유가 뭔가 해서. 대답하기 곤란하면 얘기해 주지 않아도 되지만…….”

 

 카나데의 얘기를 들은 에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아니, 대놓고 카나데 앞에서는 상냥한 표정이란 말이지. 마후유와 자신을 향할 때의 표정과 카나데를 향할 때의 표정의 차이를 머릿속에서 비교하며 미즈키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질투나 서운함이 일절 끼어 있지 않은 순수한 감상이었다.

 

 “전혀 곤란하지 않아, 곤란하기는커녕 물어봐 줘서 기뻐.”

 

 표정에 잘 어울리는 상냥한 말투로 에나가 그렇게 대꾸했다. 자신을 향한 호의에 익숙한지 카나데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곤 에나의 뒷말을 기다렸다.

 

 “카나데가 이번 곡의 데모를 보내 주고 나서 컴퓨터를 한 번 정리했었어, 용량 문제도 있고 해서. 그런데 정리라고 해도 용량을 차지하고 있는 건 대부분 그림이거든. 그래서 다른 드라이브로 옮기거나 USB에 담을 생각으로 폴더를 열었는데……. 왜 있잖아, 예전에 만들었던 거니까 분명 지금보다 더 엉망일 걸 알면서도 한 번 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거.”

 “아, 있어, 있어. 나도 한 번씩 찾게 된단 말이지~. 추억에 젖는다고나 할까? 카나데랑 마후유는 어때? 그런 적 있어?”

 

 에나의 말에 적절히 호응하며 미즈키는 카나데와 마후유에게 흐름을 넘겼다.

 

 “글쎄……. 예전에 만든 데모나 곡으로부터 영감을 받기도 하니까 한 번씩 듣긴 하는데, 그렇게까지 자주는 아니야.”

 “나는…… 혹시 몰라서 항상 삭제해 둬.”

 “그렇구나. 비슷할 것 같았는데 다 다르네. 하긴, 그게 니고이긴 하지.”

 “응. 어쨌든 그래서 예전에 그렸던 그림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보는데 뭐랄까, 점점 짜증이 나는 거야.”

 “우왓, 나왔습니다, 에나표 히스테리~!”

 “하? 시끄럽거든?!”

 “하하, 농담이야, 농담. 미안해. 그래서 왜 짜증이 난 거야?”

 

 에나는 앞에 놓인 아이스 티를 한 모금 쭉 들이켠 다음에 한숨을 섞어 얘기를 이었다. 다행이다, 조금은 진정된 것 같네. 에나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미즈키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진짜, 정말, 하나도 발전했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벌써 몇 년이나 지난 그림들인데, 그것들이랑 바로 직전에 그렸던 그림을 비교했을 때 이렇다 할 개선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그랬어. 니고의 모두와 함께 걸어 나가려면 이대로는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애가 탔어. …그래서 이번 곡에는 훨씬 더 좋은 걸 그려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거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몰랐어. 나는, 언제나 에나의 그림이 내 곡에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고마워, 카나데.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카나데의 얘기에 메마른 웃음을 지은 에나가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그것에 카나데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자한 웃음(에나의 입장에선 박애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웃음)을 지었고, 마후유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에나를 바라봤다. 미즈키는 그 가운데에서 에나의 마음을 살폈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그는 에나가 원하는 건 말 몇 마디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챘다. 어떤 의미에선 살필 것도 없긴 했다. 에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래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즈키는 대화 주제를 순환시킴으로써 에나를 배려하기로 했다.

 

 “옛날에 만든 거 하니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지금은 다들 담당하는 파트가 명확하잖아?”

 “그렇지. 미즈키는 영상, 나는 일러스트, 카나데는 작곡, 마후유는 작사니까.”

 “맞아, 맞아. 그런데 예전에도 지금이랑 같았을까 싶어서.”

 “…작사 이외의 창작 활동이 있었느냐는 거야?”

 

 마후유의 물음에 미즈키는 “바로 그거지!” 하면서 가볍게 박수를 쳤다. “정말 갑자기 생각났나 보네.” 하고 중얼거리듯 던진 에나의 핀잔을 가볍게 흘려들은 미즈키는 마후유를 향해 얘기했다.

 

 “그럼 마후유부터 시작! 마후유는 어때? 작사 말고 해 본 게 있어?”

 “OWN으로 활동했던 거, 정도. 그때랑 지금을 제외하면 거의 공부밖에 없었으니까.”

 “아, 확실히 마후유는 그러겠네……. 카나데는 어때? 랄까, 계속 작곡이었을 것 같긴 한데.”

 “응, 작곡만 해 왔어. …에나는? 에나도 어렸을 때부터 그림만 그려 왔어?”

 “으음, 거의 그러긴 했는데 잠깐 노래를 했을 때가 있었지. 카나데가 만든 곡도 한 번 불러 봤었고. 뭐, 영 아닌 것 같아서 역시 그림뿐인가, 하고 얼마 안 가 그만뒀지만.”

 “헤에~. 역시 다들 다르구나.”

 “그러는 미즈키는?”

 “나? 나는 이것저것 많이 했지. 옷도 만들고, 액세서리도 수집하고, 영상도 만들고, 또…….”

 “액세서리 수집은 창작이 아니지 않아?”

 

 마후유의 태클에 미즈키는 소리 높여 웃으며 “그것도 그러네!” 하고 맞장구쳤다. 그리고 그걸 신호탄 삼아 카나데가 다음 신곡의 데모 얘기를 꺼내며 주제를 바꿨다. 카나데에게 주제를 바꾸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걸 미즈키는 알았지만, 그럼에도 결과 자체는 본인이 원하는 것이었기에 미즈키는 카나데에게 속으로 감사의 말을 남겼다.

 

 ---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뒤풀이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제 방에 들어가며 미즈키는 그리 생각했다. 몇 시간 전에 미즈키가 던진 ‘지금 하고 있는 창작의 분야 이외의 분야를 해 본 적이 있었는가?’라는 질문. 그가 그것을 물은 이유는 다른 멤버들의 옛날이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였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며칠 전, 밤늦게까지 일러스트 작업을 이어 가는 에나를 도와줄 겸, 영상에 쓸 만한 소재도 수집할 겸 나이트코드에 남아 있던 미즈키는 자신의 컴퓨터 드라이브에서 본인의 기억에 없는 폴더 하나를 발견했다.

 폴더 이름은 ‘無名(무명, 이름이 없거나 이름을 모른다는 뜻)’이었다.

 

 “‘Untitled’ 같은 제목이네.”

 

 채팅으로 양해를 구하고 마이크를 뮤트 상태로 바꾼 뒤에 미즈키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른 누군가가 건드릴 일도 없는 미즈키 본인의 컴퓨터이니 이 폴더를 만든 사람도 분명 자신일 텐데, 어째서인지 기억을 아무리 뒤져 봐도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뭐, 열어 보면 알 일이긴 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인 미즈키는 마우스를 움직여 폴더를 열었다.

 폴더 안에는 작은 용량의 텍스트 파일 하나가 들어 있었고, 그 파일의 이름도 폴더와 같은 ‘無名’이었다. 시선을 옮겨 파일의 갱신 날짜를 확인해 보니 작년 2월에 마지막으로 갱신한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미즈키는 파일에 마우스를 가져다 대며 작년 2월에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다시 한 번 기억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작년이면 내가 아직 중학생이었고, 니고가 만들어졌었고, 졸업 문제로 당시 담임이랑 말싸움도 좀 했었고, 그리고 또……. 미즈키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부터 차례대로 열거하며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파일 속에 방치되어 있던 텍스트의 첫 문장을 눈으로 읽은 미즈키는 자신도 모르게 아, 하고 탄식 같은 작은 숨결을 내뱉었다.

 맞아, 작년엔 루이가 졸업을 했었지. 파일의 스크롤을 내리며 미즈키는 당시를 떠올렸다. 공허함과 허전함이 공존하던 잿빛 옥상,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온 이루 말할 수 없이 절망과 닮아 있던 외로움,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던 여러 눈과 입, 수없이 되뇌었던 진짜 이대로 사라져 버릴까, 하는 생각……. 니고로서 활동을 시작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무엇보다 다시 루이와 함께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레 머릿속 한 구석으로 치워 뒀던 불온하고 서툴던 시기, 그것이 미즈키에게 있어 작년이었다.

 그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가사 같은 형식으로 뭔가를 남길 줄은 몰랐는데 이상하게 낭만적이었네. 전혀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그런 감상들을 곱씹으며 미즈키는 파일을 닫았다. 이상하게 낭만적이었다, 같은 표현을 썼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인 감정이 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긍정적인 상태였다고도 볼 수 있었다. 이것을 통해 니고의 모두에게 자신이라는 존재를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이 가득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미즈키에게 있어 이번 뒤풀이 자리는 그런 부푼 희망과 함께한 자리였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그는 뒤풀이 자리에서 자신의 희망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흐름을 유도하는 데까진 성공했으나 그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옥상에서 에나에게 자신의 얘기를 꺼내지 못했던 것과 같은 것이었기에, 미즈키는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도 했다.

 미즈키는 컴퓨터를 켜 다시 한 번 ‘無名’ 파일에 들어갔다. 가사의 형태를 띤 여러 문장들을 다시 하나씩 눈에 담으며, 과거의 자신이 그 속에 담았을 감정들을 되새김질해 가슴과 머리에 새겨 나갔다. 그것들이 지금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얼마 안 가 깨달은 미즈키는 의자 등받이를 젖혀 천장을 올려다봤다.

 

 “언제까지 이래야 될까…….”

 

 길다고는 볼 수 없는 한 문장에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여러 생각과 감정을 담아 미즈키는 중얼거렸다. 실수가 아닌 이상 다른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지 않는 그의 무광의 동공엔 무감정한 천장의 전등이 비추어졌다.

 사물의 존재에서 무감정함을 읽어 낸 뒤 그것에 타인의 시선과 신의 시선을 교차해 대입시키며 스스로를 갉아먹으려 드는 자신을 깨달은 미즈키는 고개를 가볍게 가로로 저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그런 생각을 되뇌며 미즈키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자신의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힘듦을 서로에게 지우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유일한 관계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서였다.

 

 “뭐 하고 있었어, 루이? 응? …그냥 오랜만에 오래된 동료가 생각나서 전화해 봤지~. 아, 혹시 내 연락이 달갑지 않았다던가? 막 이래~.”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염려와 배려의 말들에 미즈키는 자세를 똑바로 고쳐 앉고 모니터에서 선명하게 번쩍거리고 있는 문장들을 마주했다.

 

 “하하, 농담이고 잠깐 들어 줬으면 하는 얘기가 있어서 전화해 봤어. 시간 괜찮아?”

 

 루이가 자신의 얘기를 거절할 리 없다는 걸 알아서였을까, 수화기 너머에서 긍정의 답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미즈키는 입을 열었다. 공기의 떨림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그가 마주하고 있는 문장들이었다.

 

 “지겨운 땅과 동경의 하늘의 사이,

 그곳에 위치한 작고 네모난 잿빛.

 그 위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름은

 둘뿐인 상서로움을 바라는 종류.

 

 눈이 없어야 눈을 뜰 수 있는 우린

 그 잿빛 속에서 겨우 눈을 빛냈지.

 꿈을 즐기는 너의 한 가벼운 제안,

 햇빛을 조명 삼아 춤추지 않겠니?

 

 너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까?

 세상을 등졌던 그때의 스텝을.

 

 타인의 동공에서 벗어난 채 둘이서만 누렸던 작은 낙원.

 어떻게 해서든지 살고 싶었던 우리만의 작은 혁명 놀이.

 그마저도 거부당하는 것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딱 하나.

 잔혹하게 떠오르는 아침의 반복이 가져올 정해진 종막.”

 

 단숨에 얘기를 마친, 어떤 의미에선 시를 읊은, 또 어떤 의미에선 노래를 부른 미즈키는 짧게 숨을 고른 뒤 “어때?” 하고 운을 뗐다. 수화기 너머에선 “뭐가 말이니?” 하는 다정한 말씨의 물음이 흘러나왔다.

 

 “루이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

 

 자신이 부른 노래의 한 부분을 인용해 미즈키가 그렇게 물었다. 오늘 밤은 평소보다 더 길어질 것 같네. 혼자서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루이가 “후후, 오늘 밤은 길겠구나.” 하고 똑같은 소리를 했다. 그 상황 앞에서 미즈키는 저도 모르게 “하핫!” 하고 소리 높여 웃었다.

 제대로 기억해 주고 있구나, 루이.

 그런 말을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리며 미즈키는 파일을 닫았다.

 두 사람의 긴 밤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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