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미즈

벚꽃과 졸업

링크에 있는 곡을 들으며 작업했습니다.

 “졸업 축하해, 선배.”

 “후후, 감동적이네.”

 “그럼 말만 감동적이라 하지 말고 눈물이라도 흘리지 그래?”

 “오야?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중인데, 혹시 안 보이니?”

 “네, 네. 나쁜 사람이라 그런지 하나도 안 보입니다~.”

 

 졸업식 당일,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 이르게 고개를 내민 분홍빛 꽃잎을 품은 많은 벚나무 아래에 앉은 미즈키와 루이는 그런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다른 졸업생들은 이미 눈물, 아쉬움, 추억 등을 가슴에 품고 마지막 하교를 마친 뒤였고, 졸업식이라는 행사가 끝난 교사들도 퇴근을 마친 뒤였다.

 

 “그나저나 내가 학교에 와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후후, 직감이라고 해 둘까?”

 “그럼 지금까지 학교에 남아 있던 것도 그 직감 때문이라는 뜻?”

 “그렇다고 볼 수 있으려나.”

 “순 엉터리…….”

 “하지만 실제로 남아 있었잖니?”

 

 그건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며 미즈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졸업식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바로 어제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졸업식 날은 기본적으로 졸업생과 학부모, 교사들만 학교에 오는 날이다. 그렇기에 원래대로라면 미즈키에게 있어 졸업식 날은 단순한 휴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날이었다. 실제로 그는 작년 졸업식 때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며 애니메이션 관람에 몰두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학교에 나온 이유는 졸업을 축하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재학생이 나와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다. 미즈키의 작년과 금년의 최대 차이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졸업을 축하해 주고 싶은 사람의 유무 말이다. ‘기본적’이라는 말은 ‘규격 외의 것’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규격 외에서 살고 있는 내가 졸업식에 가는 게 이상하다고만은 할 수 없지. 아슬아슬하게 블랙 조크의 선을 지키는 자학적인 생각을 가슴에 새기며 미즈키는 학교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막상 학교에 도착한 미즈키는 졸업식 날의 등교를 후회했다.

 주위의 시선 같은 게 문제였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건 무시하기 편했다. 익숙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스스로 결심한 게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미즈키는 왜 등교를 후회했는가.

 멀미가 날 정도로 술렁거리는 가슴과 그것에 맞춰 차오르는 눈물 때문이었다.

 작년까지 고수해 오던 관찰자의 시점에서 ‘졸업’이라는 단어는 ‘출발’의 의미가 강했다. 지긋지긋한 곳에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들인다는 의미를 가진 출발 말이다. 그래서 미즈키는 졸업식 때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공감하지 못했다. 이 좋은 날에 눈물이라니 무슨 추태인가,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젠 자신이 그 추태를 부리게 되었다. ‘졸업’은 출발만이 아니라 ‘끝’도 의미한다는 것을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에 깨달은 탓이었다.

 옥상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도, 그 시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짧은 행복도, 함께 듣던 음악도, 함께 나누던 얘기도, 복도에서 가끔 우연히 마주칠 때 나누던 가벼운 눈인사도, 이젠 전부 끝이다. 나누고 싶어도 나눌 수 없고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과거로 사라져 기억으로 변질되곤 망각에 도달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건 싫어.

 마치 종소리처럼 머릿속에서 울린 그 한마디에 미즈키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맺었다.

 연락처를 교환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가 저어졌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기계음 섞인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나 목소리를 상상하며 나눠야 하는 텍스트로 이루어진 무미건조한 대화가 아니라는 것을 미즈키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침묵을 지키더라도 옆을 지켜 주는 것이었고, 졸업이라는 누구나 겪는 의식은 그것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한 절차였다.

 그래서 기껏 학교로 온 미즈키는 졸업식이 진행되고 있는 강당으로 향하지 못하고 평소처럼 옥상에 틀어박혔다. 그리고는 웅크리고 앉아 평소보다 더 자신을 몰아세우며 시간의 흐름을 억지로 무시했다. 저 멀리서 교장의 목소리와 박수 소리, 학생들의 환호성이 교내를 가득 메우듯 차례대로 들려올 때면 미즈키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더더욱 스스로를 옥상이라는 공간에 가뒀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미즈키는 제 무릎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술렁거림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그 자리에 허탈함 비슷한 게 남아서였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진짜…….”

 

 스스로를 일갈하듯 미즈키가 그렇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새파란 하늘을 자유롭게 노니는 구름을 거울로 삼은 행동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바보 같은 자신의 모습에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거구나. 그런 자조적인 말을 내뱉으며 미즈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시간 동안 유지해 온 자세를 풀어서인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봄바람이 차가웠다.

 이 시간이면 아무도 없겠지. 미즈키는 저도 모르게 펜스 너머의 강당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그렇게 독백했다. 실제로 그의 독백처럼 교내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렇게 듣기 싫었던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것이니 마음이 편안할 법도 하건만, 어째서인지 진정되었던 술렁거림이 그 몸집을 다시 키워 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아니, 감각이 들었다.

 아, 안 돼. 빨리 집에나 가자. 생각을 그만두고 시선을 옮기던 찰나,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미즈키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선명한 보라색 머리카락. 멀대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기다란 키. 옥상에 올라올 때마다 봤던 눈에 익숙한 깡마른 손목과 커다란 손, 그리고 좌우로 흔들리는 팔의 움직임.

 

 “미즈키 군!”

 

 아슬아슬하게 들려오는 정겨운 목소리에 미즈키는 곧장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낭자한 침묵을 깨끗이 닦아 내듯이 미즈키의 발소리가 무인(無人)의 복도에 빠른 박자로 울려 퍼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루이를 향해 달리고 있는 그의 마음속엔 허탈함도, 술렁거림도, 슬픔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을 거쳐 루이와 미즈키는 늘어놓아진 벚나무 아래에 앉게 되었다.

 뭐, 드론이나 그런 걸로 확인한 거겠지. 루이가 자신을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를 미즈키는 그렇게 한마디로 정리했다. 깊게 파헤칠 마음도 없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아까웠다. 무슨 주제여도 좋으니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조금 더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무슨 표정이어도 좋으니 조금 더 얼굴을 보고 싶었다. 내일도 있으니까, 같은 얘기가 통하지 않는 날이기 때문인지 미즈키는 답지 않게 그런 것들에 목을 맸다.

 

 “그나저나 신선하네.”

 “뭐가?”

 “우리가 옥상이 아닌 곳에 이렇게 앉아 있다는 게 말이야.”

 

 그렇게 얘기하며 루이는 미즈키 쪽을 바라봤다. 졸업식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고정해 둔 그 모습이 루이답다는 생각이 들어 미즈키는 저도 모르게 루이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를 보고 루이는 순간적으로 아, 역시 미즈키 군은 웃는 게 어울리네,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게. 이래서 학교에는 사람이 없어야……. 왜 그래, 선배?”

 “응? 뭐가?”

 “아니, 음, 아니야.”

 “오야, 미즈키 군이 그런 식으로 말을 안 하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그래? 몇 번 있었지 않았나?”

 

 꼬마나 시체만을 담는 두 눈에 찰나이긴 하지만 어른이 담겨 있던 것 같았다. 차마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었기에, 미즈키는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한 어투로 자신에게 쏠린 의심을 회피했다.

 

 “선배가 고등학생이 될 줄은 몰랐는데.”

 “후후, 사실 나도 이대로 유급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긴 했었어.”

 “유급이라…….”

 “나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지 않니?”

 “에, 왜?”

 “그렇게 되면 미즈키 군이랑 같이 졸업할 수 있잖아.”

 

 루이의 말에 미즈키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그것도 루이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랑 같이 졸업하고 싶어? 굳이?”

 “이 세상에 ‘굳이’라는 말이 붙어서 좋아지는 건 없단다, 미즈키 군.”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지 않나? 뾰로통한 한마디를 심중에서 곱씹으며 미즈키는 루이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미즈키의 마음속을 알아차린 루이는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동료라고 얘기해 놓고 먼저 떠나는 건 치사하잖니.”

 “뭐야, 그게……. 그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불량 학생을 연기하지 그랬어.”

 “후후, 그럴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잘 안 풀렸네.”

 

 이 사람은 어쩜 이럴까. 미즈키는 그런 생각을 하며 루이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두 사람의 거리가 미즈키가 움직인 만큼 좁혀졌다.

 미즈키에게 있어 루이는 꽤나 큰 힘듦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성격과 심리가 복잡하고, 그 탓에 외부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남들은 받지 않을 스트레스까지 받게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좋은 사람이었다. 천성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상냥하긴 또 엄청 상냥해서 자신의 일이 아니어도 큰 신경을 써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루이에게 있어 이 졸업의 의미는 분명 새 출발의 의미가 강할 것이다. 미즈키는 그렇게 단정 짓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온갖 선입견과 편견에서 탈출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과 루이는 닮은 사람이고 자신이 졸업이라는 것에 그런 의미를 부여해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즈키는 방금 전의 루이의 말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어떤 의미에선 맹점이었다. 자신이 이번 졸업을 출발이 아닌 끝으로 느낀 것처럼 자신과 닮은 루이도 그렇게 느낄 확률이 높다는 걸 간과해 발생한 맹점 말이다.

 역시 이 사람은 친애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미즈키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한 뒤 이제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고 보면 차고 넘쳤다. 졸업 축하한다는 흔해 빠진 얘기 말고도 보고 싶을 거라던가, 고등학교에서는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던가, 좋아했다던가, 이제 친애 같은 감정을 품지 않으려 노력할 거라던가. 사흘 밤낮을 새며 얘기해도 모자란 그런 말들이 명치 부근에 웅덩이처럼 푹 고여 있었다.

 미즈키가 그 얘기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는 이유는 얘기해도 괜찮을지 잘 모르겠어서였다. 가족 이외의 사람의 졸업을 축하하는 자리는 처음이었고,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 호감 비슷한 따뜻한 감정을 가지는 것도 처음이었다. 낯선 것도 적당해야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이다.

 

 “…마지막인 날인데 선배는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 없어?”

 

 그래서 미즈키는 발언권을 루이에게 넘겼다. 먼저 거리를 좁혔고 먼저 할 얘기가 있는 것처럼 굴었으면서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게 얼마나 치사한 일인지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취한 태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웅덩이를 비워 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자신에게 다가온 미즈키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루이는 입을 열었다.

 

 “으음, 시간이 되면 한 번씩 만나러 올게?”

 “의문형인 거야?”

 “후후, 어떻게 만나러 올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애초에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시간이 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이 선배는? 마음속으로 쓰게 웃으며 미즈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루이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 명치에 고여 있는 웅덩이 옆에 작게 피어났다. 누군가에게 친애하는 감정을 품고 호감을 가지는 게 이렇게나 무서운 일이구나. 미즈키는 머릿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에게 일어난 희망이라는 낯선 감각을 마주했다.

 정말 만나러 올 거냐는 식의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자신과 루이의 관계에 그런 식의 문답은 속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미즈키 스스로가 너무나도 명확히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서 미즈키는 확답을 요구하는 질문 대신 “뭐, 말이라도 고마워.”라는 대답을 건넸다. 설령 겉치레뿐인 말이었을지라도 정말로 고마웠다.

 

 “있잖아, 선배.”

 “응?”

 

 하늘에서 눈처럼 내리는 벚꽃 잎. 편히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인식. 처음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고서부터 조금씩 커져 온 친애. 그 모든 것이 합쳐져 화학 물질처럼 몸속과 머릿속을 떠다니는 미련과 아쉬움, 아련함과 두근거림.

 탓할 게 많아서 다행이네. 미즈키는 오랜만에 긍정적인 뉘앙스의 독백을 하며 루이의 품에 안겼다. 루이는 자신의 머릿속에 쌓여 있는 미즈키에 대한 인식과 그를 통해 예상해 둔 행동 양식들을 배신한 눈앞의 행동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저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이별의 포옹 같은 그런 거야. 뭐랄까, 서양에서는 이런 거 많이 하잖아? 동양이라고 못 할 거 있나 싶어서.”

 “…미즈키 군, 혹시,”

 “그러니까 선배.”

 

 미즈키는 루이의 말을 황급히 가로막았다. 무슨 말이 나올지 뻔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막을 새도 없이 눈물이 차올라 흐르기 시작했다. 어깨와 가슴이 속절없이 떨려 왔고, 무언가가 끓어오르듯 목 안쪽이 뜨거워져 갔다. 나를 안고 있는 루이가 이 변화들을 모를 리 없지. 미즈키는 그렇게 최대한 남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며 루이에게 안긴 팔에 힘을 줬다.

 

 “조금만 더, 이렇게 있자…….”

 

 아이의 투정보다 더 어리면서 서툰, 어떤 의미론 귀여운 미즈키의 투정에 루이는 가볍게 웃으며 제 팔을 들어 미즈키를 안아 줬다. 루이는 미즈키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면서 그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안겨 줘서 고마워.”

 

 루이는 잘 지내야 한다는 식의 말 대신 그런 얘기를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어딘가에서 불어온 봄바람은 옥상에서 맞았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따뜻하고 산뜻했다.

 바람결에 흔들려 흩날리는 벚꽃 잎이 두 사람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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