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미즈

옥상과 신발 한 짝

1교시부터 수업을 빼는 건 이제 예삿일이 아니게 되었지만 등교하자마자 옥상으로 향하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어떤 특별한-당연하겠지만 부정적인 의미에서의-일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오늘따라 옥상에 가고 싶다는 충동이 심장과 뇌를 거세게 때렸다는, 이성이나 논리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탓이었다.

 처음에는 한숨과 함께 잡았던 밋밋한 옥상의 출입문 문고리도 이젠 조금 가볍게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소소하면서도 중대한 변화를 느끼며 카미시로 루이는 옥상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이 충동과 변화는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답을 알 것만 같은 자문을 중얼거리며 옥상에 발을 들인 루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제는 익숙해져 버려 없으면 허전하게까지 느껴지는 옥상의 동료였다.

 

 “야아, 미즈키…… 군?”

 

 잿빛 바닥. 그것과 크게 다를 거 없는 색채를 띠고 있는 펜스. 그런 잿빛과는 동떨어져 있어 더욱 밝게 눈에 띄는 분홍빛 머리칼과 눈동자……. 익숙한 것들 사이에 딱 하나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가진 존재감이 루이의 사고와 입을 정지시켰다.

 그건 바로, 분홍빛 밑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 한 짝.

 “…왜 이리 일찍 온 거야, 선배.”

 

 아키야마 미즈키는 루이를 바라보며 애먼 짜증을 부렸다. 자신의 놀란 마음을 감추고 추스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런 짜증 섞인 작은 항의에도 불구하고 루이의 시선은 미즈키의 발밑에서 떠나지 않았고, 미즈키는 그것이 빠른 속도로 거북하게 느껴졌다. 선배한테까지 그런 눈길을 받고 싶진 않았는데. 그래서 그는, 마치 그러면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이 사라질 것이라 믿는 것처럼 아까까지 보고 있던 펜스 너머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루이는 뭘 하고 있었느냐는 식의, 흔하다 못해 진부해 빠진 질문을 구태여 입에 담지 않았다. 질문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옥상에서 신발을 벗고 있는 상태가 뜻하는 건 하나밖에 없으니까.

 출발점이 다른 당혹스러움 두 개가 만들어 낸 침묵이 옥상에 내려앉았다. 짙게 깔린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은 입 한 번 떼지 않고, 눈 한 번 돌리지 않고, 그저 각자의 머릿속에서 온전한 문장이 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는 단편적인 표현들을 되새김질하고만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유지되던 조용하고 번잡스러운 시간을 깬 건 루이였다.

 

 “신발은…… 그대로 안 신을 생각이니?”

 

 최대한 쥐어짠 문장을 얘기하는 루이의 목소리는, 미즈키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떨리고 있었다. 미즈키는 처음에 그것에 살짝 놀랐다가 이내 당연한 일이겠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납득했다. 루이가 제아무리 교내에 이름이 쫙 퍼진 ‘괴짜’여도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사람이다. 남들과 다른 점이, 어떤 관점에서는 특이한 점이 있을 뿐이지, 그것을 제하고는 통상적인 사람과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미즈키는 이런 경우에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인 거겠지, 게다가 우리는 아직 중학생이니까, 하고 꼭 자신이 연관되지 않은 먼 나라 얘기를 하는 것처럼 생각했다.

 

 “…아니, 이따가는 신을 거야. 오는 길에 물웅덩이를 밟는 바람에 신발이랑 양말이 다 젖어서 말리려고 벗어 두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라 미리 짐작하며 얘기해서 그런지 미즈키의 말투에는 힘이 없었다. 스스로도 그렇게 느꼈을 정도였으니 듣고 있던 루이는 오죽했을까. 지난주부터 계속 맑기만 했던 하늘은 차치하더라도, 신발과 양말을 말리기 위해 신발을 벗어 뒀다면서 정작 양말은 신고 있는 그 모습은 루이의 눈에 모순 그 자체로 비추어졌다.

 

 “그렇구나. 이렇게 맑은 날씨에 물웅덩이라니, 운이 안 좋았네.”

 

 그러나 루이는 구태여 모순을 짚어 내지 않았다. 그것은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배려’라는 형태를 띤 행동이었지만, 중심 또한 그런 선의였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루이의 행동의 중심에 서 있는 감정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공감’이었다. 옥상에서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두고 있는 상태. 그것이 가리키는 단 하나의 단어, 혹은 짧은 문장은 루이 스스로도 몇 번씩이고 생각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루이는 쇼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머릿속과 마음속을 환기시켰다. 그것만으로 부족할 것 같으면 이젠 서먹해져 버렸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나마 응원을 이어 가고 있는 소꿉친구의 밝을 앞날이나, 그녀와 함께 쇼를 하며 보냈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것으로 할당량을 채웠다.

 아, 내가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것마저도 없는 거구나. 미즈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루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미즈키는 루이의 대꾸에 이렇다 할 반응을 내보이지 않은 채 무표정을 유지하고 펜스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괜찮겠니?”

 “언제부터 허락을 맡고 질문을 했다고……. 뭔데?”

 “신발이랑 양말, 아직 다 안 마른 거지?”

 

 루이의 물음에 미즈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펜스 너머에서 루이 쪽으로 눈길을 옮겼다. 속이 빤히 보이는 거짓말에 어울려 주는 그 태도에도 놀랐지만, 자신이 신발과 양말에 불어넣은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질문 자체에 놀란 게 더 컸다. 평소와 비교했을 때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아니, 슬퍼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루이를 향해 미즈키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미즈키 군만 괜찮으면 신발이랑 양말이 마를 때까지 옆에 있어 주고 싶은데……. 어때?”

 

 미즈키를 만나기 전까지 루이는 쿠사나기 네네와 쇼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고독을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계속 그래 왔고, 커다란 계기가 생기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있어 그것을 빼면 남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옥상에서 우연히 만난 작은 인연이 가져다준 공감대와 다른 곳에서 느끼는 것과 결이 다른 안락함은, 루이가 계속해서 가지고 있던 스스로를 향한 선입견을 부수기에 충분했다. 오늘 아침에 느꼈던 충동과 변화가 미즈키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걸 루이는 눈치 채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즈키가 루이에게 직접적으로, 또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 준 건 아니었다. 그저 옆에 있어 줬고, 그저 얘기를 들어줬다. 그러나 루이는 그것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었다. 네네와 쇼에 대한 생각 이외의 또 다른 숨구멍. 루이에게 있어 미즈키는 그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옆에 있는 정도라면 뭐……. 애초에 항상 옆에 있었잖아.”

 

 미즈키의 말에 루이는 “후후, 그것도 그러네.” 하고 웃으며 대꾸하면서, 역시 우리는 서로에게 구원이 되어 줄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스스로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그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타인을 구한다는 게 가능할 리 만무하니까. 그런 이유로 루이는 자신이 떠올린 자학적인 독백에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 그 대신에, 구원까진 못 하더라도 위로는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사이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간지러운 생각들을 마음속으로 떠올렸다.

 루이는 발걸음을 옮겨 미즈키의 옆으로 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섰다.

 둘 사이의 공간의 크기는 미즈키가 벗어 둔 신발 한 짝 사이즈였다.

 이 이상 좁힐 수는 없겠지.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을 긍정하는 건지 부정하는 건지, 선선한 가을의 바람이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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