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미즈

고독과 동료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사고사, 모브 캐릭터의 자살 요소가 있습니다.

 *캐해가 미흡해 캐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키야마 미즈키는 버스 창문에 기댄 채, 별 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고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풍경을 무감정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가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은 후부터 계속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미즈키의 태도는 마치 “저는 이것밖에 못 합니다.”라고 주위에 얘기하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 미즈키는 자신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좋게 말하자면 자포자기였으며, 적확하게 말하자면 우울과 탈력의 교집합이었다.

 

 ‘루이…….’

 

 미즈키는 저도 모르게 현재 자신의 상태의 원인이 되는 이름을 되뇌었다. 그렇다. 최대한 현재를 즐기자는 마인드를 가지고 행동하는 미즈키의 감정과 행동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카미시로 루이였다.

 좀 더 정확히는 그와의 사별이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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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별이라고 해서 두 사람이 연인이나 그에 준하는 관계에 있던 건 아니었다.

 루이와 미즈키는 처음 만난 중학교 시절에 서로가 동의하고 정의한 ‘고독한 동료’라는 관계성에서 단 한 번도 발을 헛디디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의 두 사람에게 필요했던 건 자신을 온전히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지, 그 외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오묘한 관계는 서로에게 극단과 음악 서클이라는 새로운 장소가 생긴 고등학생 때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둘은 서로의 상태를 누구보다 먼저 눈치 챘고, 그렇기에 상대방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재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각자가 생각하는 적정선을 지키며 서로를 위해 움직이는(이를 테면 미즈키의 등교를 확인하기 위해 드론을 띄운다던가 하는), 건강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는 그런 사이가 바로 루이와 미즈키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하게 지내지 않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중학교 동창인 건 차치하고서라도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기에 겹치는 지인도 많았고, 교내를 오가며 마주칠 때도 있었거니와, 무엇보다 옥상이라는 둘만의 장소가 여전히 건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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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발단은 짧은 여름 방학이 끝난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날에 두 사람은 점심시간에 옥상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미즈키는 으레 그래 왔듯 출석 일수와 소외감의 문제로 옥상을 찾은 것이었고, 루이는 바쁜 일이 있어 점심을 거르고 옥상에서 연출을 구상하고 있던 중이었다.

 바뀌었는데 바뀐 게 없네. 미즈키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쓴웃음을 한 번 지은 뒤 루이에게 다가갔다.

 

 “야호~. 이 더운 날씨에 옥상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아, 미즈키. 후후, 연출에 대해서 생각할 게 있어서 말이지. 점심시간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제대로 집중이 안 되어서 잠깐 올라왔어.”

 “흐응….... 연출이라면 츠카사 선배랑 쇼에서 할 거?”

 “음, 그거랑은 조금 다르려나.”

 

 그 뒤로 이어진 루이의 얘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지하철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불꽃놀이 연출을 그가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헤에, 루이가? 대단하네!”

 “그렇게까지 반응해 주다니 고마운걸.”

 “대단하니까 그렇지! 루이가 얘기한 축제, 이 근처에서 꽤 유명한 거잖아. 심지어 작년엔 뉴스에도 나왔었고.”

 

 미즈키의 말대로 루이가 연출을 담당하게 된 축제는 근방에서 벌어지는 축제 중 가장 유명한 것이었다. 레스토랑 코스 요리처럼 짜임새 있게 진행되는 여러 행사와 그에 따른 연출이 가장 큰 특징인데, 그 때문인지 매년 연출가를 바꿈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행사나 퍼포먼스를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있었다.

 

 “축제까지 얼마나 남았는데?”

 “열흘 정도 남았으려나.”

 “열흘이라……. 뭔가 애매한 기간이네.”

 “후후, 확실히 그러네.”

 

 그래서 여유를 부릴 수 없는 것도 있어. 그렇게 말한 뒤 루이는 미소를 거두지 않고, 꼭 즐거운 상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애매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그런 거면서. 미즈키는 머릿속에서 떠오른 문장을 내뱉을까 하다가 그만뒀다. 별 다른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고, 고독한 동료의 눈부신 발전과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은 스스로가 비교되어 일시적으로 혐오감이 든 탓에 기분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루이가 눈을 감고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미즈키가 안심하고 있는 찰나, 루이가 눈을 감은 채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미즈키. 혹시 괜찮다면 축제에 와 줄 수 있을까?”

 “에, 축제? ……음, 나보다는 쇼 동료들이랑 가는 편이 더 좋지 않겠어? 츠카사 선배도 있으니까 텐션도 많이 오를 거고.”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저녁에 대본 리딩 연습이 있어서 셋한테는 그때 얘기할 계획이거든.”

 “하하, 뭐야. 그럼 굳이 내가 없어도…….”

 “그래도 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냥한 말투였지만, 그 어조는 미즈키가 루이와 알고 지내면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한 발자국 물러나려는 미즈키를 꽉 붙잡는 것 같은 강한 어조. 그것에 미즈키는 이렇다 할 대꾸도 하지 못하고 루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는지, 루이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미즈키를 향해 상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츠카사 군이라면 분명 그렇게 얘기했을 거야.”

 “무, 뭐야……. 흉내 낸 거였어?”

 “후후, 아까 얘기했듯이 방과 후에 대본 리딩 연습이 있으니까 몸이라도 풀까 해서. 혹시 놀랐니?”

 놀랐다기보단 뭐랄까, 어라, 루이가 원래 이랬나 싶긴 했어. 미즈키가 안심과 웃음이 섞인 말투로 그렇게 얘기했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루이는 마음속으로 츠카사에게 사과와 감사를 전했다. 자신의 진심을 전할 수단으로 소중히 여기는 팀의 멤버 중 한 명을 사용한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과, 그래도 그 덕분에 자신이 정해 둔 미즈키를 향한 적정선을 지킬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나올 자신의 진심을 미즈키가 덜 무겁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루이는 미즈키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진심을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모처럼의 이벤트니까 같이 즐기는 게 어떨까? 이건 고독한 동료로서의 제안이야.”

 

 올곧게 자신을 향하며 말하고 있는 루이의 눈에, 미즈키는 순간적으로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얘기하면 할 말이 없잖아.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려 하는 심술궂은 문장을 꾹 눌러 담았다. 루이가 왜 저렇게까지 얘기하는지 눈치 챘기 때문이다. 방금 전에 느꼈던 자기혐오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눈 감고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되다니, 루이,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한 거 아니야?”

 “후후, 그 부분은 피차일반이지 않을까?”

 “한마디를 안 지지…….”

 “뭘 새삼스레. ……그리고 동료도 동료지만 관객이 많을수록 연출가는 활력을 얻는 법이거든. 나를 위해서, 라고 하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와 줬으면 해.”

 

 미즈키가 축제에 가지 않으려고 했던 건 순간적인 자기혐오에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제대로 씻기지 않은 채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다. 루이는 그것을 알기에 미즈키가 느끼고 있는 자기혐오를 부정하거나 긍정하지 않고, 그 대신 감정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길을 미즈키에게 제안한 것이다. 이것은 루이의 배려였다.

 그리고 미즈키는 그런 루이의 배려가 마음에 들었다. 얄팍한 이분법을 들이밀지 않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언제나 루이를 통해 깨닫는 그였다. 그러나 여전히 켕기는 부분은 존재했다. 말 몇 마디로 가볍게 사라질 정도로 미즈키의 감정이 가볍지 않은 탓이었다.

 어떡하면 좋을까. 머릿속으로 고민을 시작하는 미즈키에게 루이는 살포시 한마디를 얹었다.

 

 “무리라면 안 와도 되니까 너무 마음 쓰진 마, 미즈키.”

 

 어디에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그 얘기에 미즈키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흔해 빠진 말이어도 그것이 루이의 입을 통해 나오면 무게감이 확 달라졌다. 적어도 미즈키에겐 항상 그랬다. 두 번이나 배려를 받았는데 뺄 수는 없겠지. 미즈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루이의 배려로 만들어진 길 위를, 자신의 삶의 태도인 현재를 즐기자는 마인드로 걸어가 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으음, 뭐, 루이가 그렇게까지 얘기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알겠어, 꼭 갈게.”

 “고마워. 최고의 연출로 보답할게.”

 “응! 아, 루이. 관객은 많을수록 좋다 그랬잖아. 그럼 다른 사람들도 데려가도 되지?”

 “그럼. 언제나 환영이야.”

 

 루이의 말에 미즈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머릿속으로 여러 사람들을 떠올렸다. 카나데, 마후유, 에나, 안, 남동생 군. ……다 같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신나고 재미있는 일들이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키득거리는 미즈키를 보고 루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의 머릿속에서 자신의 연출을 보며 환하게 웃는 모두의 얼굴이 불꽃놀이처럼 피어올랐다.

 

 ---

 

 축제는 여러 의미로 순조로웠다.

 우선 축제 자체적으로 순조로웠다. 매 축제 때마다 한 번씩은 벌어지는 도난 소동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모든 행사가 정해진 순서와 규정에 맞춰 차례차례 진행되었다. 또한 이전에 비해 대대적인 홍보를 감행했기 때문인지 작년에 비해 사람이 많이 몰린 것도 쾌재였다.

 루이 개인적으로도 축제는 순조로웠다. 옥상에서 미즈키를 만난 그날 밤, 아이디어 하나가 번뜩인 덕분에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여 연출을 완성할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오길 바랐던 사람들이 축제에 와 주기도 했다. 아무리 연출 준비가 잘 되어 있어도 변수라는 게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지라 아쉽게도 그들과 함께 축제를 즐길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자신의 연출을 보고 놀라고 웃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기에 루이는 본인 나름대로 스태프 지정석에서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미즈키 개인적으로도 축제는 순조로웠다. 그의 바람대로 모두가 함께한 축제였기도 했고, 옥상에서 소소하게만 보고 듣고 상상했던 루이의 연출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에 설렜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눈을 빛내 가며 만들어 낸 연출은 어떤 걸까. 기회가 된다면 영상 소재로 활용해 보고 싶네. 모두가 만든 노래와 일러스트에 내 영상 편집과 루이의 연출이 합쳐지면 분명 엄청난 결과물이 나오겠지. 그런 떨리는 생각들을 하며 함께하고 싶은 이들과 함께하는 축제는 미즈키에게 있어 확실한 선물이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작 선물을 마련해 준 루이와 축제를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정도일까. 그래도 뭐, 축제 끝나고 보면 되니까.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미즈키는 아쉬움을 저 멀리 날려 보냈다.

 

 “다음 이어지는 순서는, 대망의 불꽃놀이입니다!”

 

 축제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무렵이었다. 사회자의 높은 텐션이 경내에 설치된 여러 스피커를 통해 전해졌고, 그 텐션을 고스란히 받아 내듯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미즈키는 군중 속에 녹아들어 그 흐름에 몸을 맡겼고, 루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곧 있으면 그가 고안하고 제작소와 밤을 지새우며 만들어 낸 형형색색의, 그리고 각양각색의 불꽃들이 하늘을 수놓을 예정이었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엔 환경적인 면을 고려해서 기존에 쓰던 불꽃이 아닌 자신의 드론만으로 연출을 할 계획이었지만, 축제의 총괄 책임자가 흔히 말하는 어른의 사정을 들이민 탓에 그러지는 못했다. 드론이었으면 좀 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루이의 눈에 얼마 지나지 않아 비친 건, 금방이라도 넘어질 기세로 자신 쪽으로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는 축제의 총괄 책임자였다.

 

 “무라타 씨? 왜 그러세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숨을 헐떡거리는 책임자를 보며 루이가 그렇게 물었다.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거나, 혹은 이미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하는 그였다.

 “카미시로 씨! 호, 혹시 제 딸아이를 못 보셨습니까?”

 “네? 따님이라니요?”

 “축제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계속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고 방금 전에 첫째 녀석이…….”

 “무라타 씨, 일단 진정하시고 따님의 인상착의부터 알려 주시겠어요?”

 

 책임자를 통해 들은 인상착의를 들은 루이는 아, 그 아이인가, 하고 생각했다. 오늘 쓸 커다란 화약을 화로에 넣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을 때 얼핏 본 아이 두 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축제 관계자의 자녀들일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는데 설마 총괄 책임자의 따님이었을 줄은 몰랐다.

 

 “혹시 다른 분들은 따님이 없어졌다는 걸 아시나요?”

 “모두는 아니지만 절반 정도는……. 다들 백방으로 찾아 주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루이는 잠깐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축제 관계자의 정확한 숫자는 잘 모르겠지만 규모가 규모다 보니 몇 백 명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인원의 절반이 총괄 책임자의 따님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이 얘기는 찾아볼 만한 곳은 이미 다 찾아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아이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루이의 머리에 한 가지 안 좋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보다 먼저 루이의 다리가 움직였다.

 미리 지름길을 파악해 두길 잘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루이는 가쁜 숨을 골랐다. 그는 곧 있으면 화약이 터져 오를 화로 앞에 도착했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는 루이 스스로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했어야만 했다. 루이의 사고 회로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그의 지금 행동만큼이나 위험천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총괄 책임자의 자녀들은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첫째가 ‘못 찾았다’고 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실종된 둘째는 숨는 역할을 맡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면 어디가 제일 숨기 좋은 곳일까? 대체 어디에 숨었기에 술래는 물론이고 수많은 어른들의 눈에 한 번도 걸리지 않은 걸까?

 루이는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눈앞에 있는 화로를 떠올렸다.

 화로라면 앞뒤가 맞아떨어진다. 어린아이 한 명 정도는 가뿐히 숨을 수 있을 만한 커다란 사이즈. 곧 있으면 폭발이 일어날 곳이기에 사람들이 올 리 없는 장소. 또한 사이즈만큼 화로의 깊이도 꽤 되기 때문에 아이 혼자 들어갔다면 빠져나오기 힘들며, 만약 아이가 화로 안에 들어가 있다면 주위의 정적 탓에 안에서 잠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루이는 침을 작게 삼키고 조심스레 화로 쪽으로 다가갔다.

 

 “무라타 아가씨? 여기에 계신가요?”

 

 아이가 놀라지 않기 위해,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긴장한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루이는 일부러 익살스러운 말투로 화로에게 말을 걸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제대로 확인해야 해.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며 걸음을 멈추지 않은 루이는 이윽고 화로 바로 앞에 도착했다.

 고개만 조금 내밀어서 확인하고, 아이가 없으면 바로 빠지면 돼.

 심호흡을 한 번 내뱉는 것으로 짧은 각오를 다진 루이가 화로에 손을 올린 순간, 그의 핸드폰이 갑작스레 진동했다. 놀랐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린 루이는 핸드폰을 들어 발신인을 확인했다. 미즈키였다.

 

 “전화를 걸 줄은 몰랐는걸, 미즈키. 축제가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은 걸까나?”

 “하하하, 설마! 완전 재미있게 즐기는 중이야.”

 “진짜인 것 같은 목소리여서 다행이네.”

 “진짜인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짜야. 진짜 중의 진짜!”

 “후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미즈키. ……그럼, 무슨 일로 전화를?”

 “음,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루이도 스태프로서 축제에 참여한 거 맞지?”

 “응, 맞아.”

 “아, 다행이다! 그럼 있잖아, 미아 보호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미아 보호소?”

 “응, 길을 잃은 것 같은 아이를 발견해서.”

 

 미즈키의 얘기를 들으며 루이는 천천히 화로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긴 이 정도의 규모면 미아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겠지. 회의 때 도난 방지책만 논의하지 말걸 그랬다. 루이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사이, 미즈키는 핸드폰에 대고 미아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흰 티, 분홍색 프릴 달린 치마, 검은 운동화, 땋은 양갈래.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인상착의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루이는 고개를 화로 입구로 완전히 내밀었다.

 그곳에 사람은 없었다.

 

 “혹시 그 아이 성씨가 무라타니?”

 “무라타? 에, 응? 아, 이름이야? 그렇구나, 무라타 마리라는 이름이었구나. 예쁘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얘기를 들으며 루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생각이 그저 불길한 생각에서 끝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루이는 입을 뗐다.

 

 “그 아이는 총괄―”

 

 그리고 다음 순간, 요란한 굉음이 한 번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밤하늘에 형형색색의 불꽃이 피기 시작했다. 불꽃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방금 전까지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울던 아이도, 루이의 부름에 축제에 참여하게 된 친구들도, 미즈키의 부름에 축제에 참여하게 된 친구들도 모두 함께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불꽃놀이라는 것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하나로 모으는 힘. 그러나 절대적인 건 또 아니어서 언제나 예외는 있었다. 이번엔 미즈키가 그 예외였다.

 불꽃이 하늘을 수놓기 전에 들린 한차례의 굉음.

 미즈키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것을 수화기를 통해 들었다.

 미즈키는 먹먹한 귀를 손으로 막고 놀란 마음에 내던진 핸드폰을 주웠다. 통화가 끊어져 있었다.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생겨나는 온갖 비극적인 장면들을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애써 억누르며 그는 루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루이의 전원은 꺼져 있었다.

 

 ---

 

 장례식은 생전의 루이와는 달리 어떠한 극적인 요소 없이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루이는 이런 장례식을 바라지 않았을 텐데. 밋밋하기 그지없는 관을 바라보며 미즈키는 그런 생각을 했다.

 루이의 죽음은 사고사로 정리되었다. 루이가 자신의 행선지를 알리지 않고 움직인 탓에 벌어진 일이라는 경찰의 얘기에 미즈키는 아무런 반응도 내비치지 못했다. 차라리 그의 극단 동료들처럼 주저앉아 울거나, 내가 부른 친구들처럼 화를 낼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어느 쪽에도 들지 않는 스스로가 미즈키는 괴물 같이 느껴졌다.

 루이에게 자신의 딸아이를 찾아 달라 한 축제의 총괄 책임자는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이런 막장 같은 인간이 다 있지.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 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진짜 막장인 인간이네. 와이프랑 자식들은 어쩌라고. 어디에도 내뱉을 수 없는 그런 말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썩어 가는 것 같다고 미즈키는 느꼈다.

 원더랜즈 쇼타임은 루이의 죽음 이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해체되었다. 연출가가 없어진 배우들이 갈피를 제대로 잡을 수 있을 리 만무하거니와, 무엇보다 연출가와 배우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관계에서 그의 죽음은 멤버들에게 크나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제일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쿠사나기 네네로, 루이의 죽음과 극단의 해체를 연달아 겪은 그녀는 결국 상담 센터에 다니게 되었다.

 그에 반해 니고는 해체되거나 하지 않고 창작을 계속해 나갔다. 루이와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이 니고 내에 한 명밖에 없기도 했고, 그 한 명마저 겉으로 힘들다는 티를 내지 않은 덕이었다. 같은 학교이며 가족을 통해 루이와 미즈키에 대해 듣게 된 시노노메 에나가 한 번씩 그를 신경 썼지만, 워낙 미즈키가 괜찮다며 완강한 태도를 유지한 탓에 이렇다 할 얘기 한 번 나누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그래서 미즈키는 실제로 어땠는가 하면, 당연히 좋지 않았다. 아니, 좋지 않았다는 완곡한 표현이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확실하게, 그리고 제대로 나빴다. 조금이라도 신경 쓰던 학교의 출석 일수에는 아예 신경을 껐고, 바깥으로 표출되지 않은 감정은 그를 안에서부터 좀먹기 시작했다. 나이트코드를 통해 멤버들과 작업을 하고 대화를 할 때도 그의 눈은 죽어 있었고, 곡을 업로드하고 나면 가지던 뒤풀이에도 여러 핑계를 대며 가지 않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도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져 결국 잘리게 되었고, 작업을 할 때 이외의 시간에는 거의 침대에 누워 루이를 머릿속에 그리고만 있었다. 그 탓인지 미즈키는 꿈에서 루이를 자주 만나게 되었고, 그만큼 눈을 떴을 때 공허함에 사로잡히는 속도도 빨라져 갔다.

 일상을 이루던 대부분의 것을 내려놔도 별 다른 감정이 들지 않을 정도의 충격. 미즈키에게 있어 루이의 죽음은 그 정도의 충격이었다.

 

 ---

 

 그게 벌써 2년도 더 된 일이라니. 버스에서 내리며 미즈키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미즈키가 내린 곳은 버스의 종점이었다. 루이가 안치된 납골당이 있는 곳이었다.

 납골당 안에 사람은 없었다. 평일 오후이기도 하고 먼 곳에 있다 보니 그런 것이리라. 물론 미즈키는 그것을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좋았다면 좋았다. 옥상에서 누렸던 둘만의 시간을 이렇게나마 느낄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좋은 오후네, 루이. 잘 있었어?”

 

 미즈키는 전해지지 않을 인사를 루이에게 건넸다. 그것은 그 나름의 해소법이기도 했다. 내려놓을 길이 없어 불어만 가는 버거운 감정을 체내에서 빼낼 수 있는 그런 해소법 말이다.

 

 “그거 알아? 나, 루이가 죽고 나서 하나도 바뀐 게 없어. 여전히 서클 멤버들한테 나에 대해서 얘기하지 못했고, 아르바이트도 계속 트러블이 생겨서 뭐 하나 길게 하지 못하고 있어. 더 웃긴 건 뭔지 알아? ……나만 그러고 있다는 거야.”

 

 미즈키의 말에는 한 줌의 거짓도 없었다. 어쨌든 2년이나 지난 일이다. 시노노메 아키토, 아오야기 토우야, 시라이시 안, 텐마 츠카사, 오오토리 에무, 마지막으로 쿠사나기 네네까지. 주저앉아 있던 기간은 다를지언정 그들은 끝내 다시 일어났다.

 미즈키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루이라면 그러기를 바랄 것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미즈키는 그들을 질타하거나 비난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지막하게, 또 나 혼자 남았구나, 하는 생각만을 할 뿐이었다.

 

 “알아,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같이 슬퍼하고 엉엉 울면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토해 내면 된다는 거.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의지라는 걸 하면 된다는 거. 그렇게 함으로써 관계라는 게 깊어지고 유지된다는 거…….”

 

 근데 잘 안 되네. 미즈키는 사진 속의 루이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의 감정을 토해 내는 것.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 관계를 깊게 유지하는 것. 미즈키에게 있어 그것들은 루이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고독한 동료라는 모순적인 이름의 유일무이한 관계성 안에 그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아. 아니, 텅 비었어. 뭘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아. 루이……. 나, 어떻게 해야 돼?”

 

 미즈키가 쥐어짜듯 뱉은 얘기는 덜 거나 더할 것 없는 순수한 진심 그 자체였다. 그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감을 전혀 잡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안에서 루이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이렇게 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중학교 때 제대로 거리를 둘걸. 고독한 동료 같은 거 만들지 말걸.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바뀌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미즈키는 그렇게 부질없는 후회를 곱씹었다.

 

 “잊고 싶지 않은데, 다 기억해 두고 싶은데……. 벌써 너의 목소리가 잘 기억이 안 나.”

 

 나를 반기던 모습, 옥상에서 부품을 조립하던 모습, 연출과 쇼에 대한 얘기를 하며 눈을 빛내던 모습, 나를 향해 슬프게 웃던 모습……. 그 모습들 속에 분명히 있었을 그의 목소리에 대한 기억이 애매했다. 아니, 애매해졌다. 내 기억 속 목소리가 그의 것인지 아닌지 제대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멍청한 내 뇌가 그의 모습을 망막에 새기는 것에만 신경이 쏠린 나머지, 그의 목소리를 고막에 제대로 담아 두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살다가 언젠가 너의 모습마저 잊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럴 바엔 한시라도 빨리 뒤를 따르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미즈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유리 너머에 있는 루이의 미소에 대고 질문을 던졌다.

 

 “고독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말, 정말 자신할 수 있어?”

 

 계속 고독과 함께한 중학교 시절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고독한 동료에서 ‘동료’가 빠지자 밀려온 이 사무치는 감각은 결단코 착각이 아닐 테니까.

 

 “루이…….”

 

 미즈키는 다시 한 번, 자신에게 고독만을 남기고 떠난 동료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 뒤로 납골당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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