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아키/아라소우] Living Dead Alive
Living Dead Alive / Living Dead alive : forever / Living Dead Alive : my bittersweet cake
- 프세카 토우야 X 아키토
- 사망 소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비배스 모두가 성인이 된 먼 미래의 시점. 캐릭터들이 요비스테를 하고 있습니다.
- 아라타의 어머니에 대한 날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Walk on and on 스포일러 포함.
***
Living Dead Alive
영원히 이 순간에 남고 싶다.
…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
인적이 없는 바닷 길을 두 사람이 함께 걷고 있었다.
파도소리만이 울려퍼지는 이곳에서, 주황빛의 머리칼과 옅고 짙은 푸른빛 머리가 바람에 헝클어졌다. 어째서 이런 곳에 찾아왔느냐 물을 사람도 없는 이 곳에 어째서 두 사람이 도착했는지 아는 이는 당연히 없었다. 그것은 두 사람 중 한사람인, 아오야기 토우야에게도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이 기묘한 여행이 시작된 것은 며칠 전이었다.
“토우야.”
그 당시, 막 잠에서 깨어난 토우야는 그 부름에 답하지 않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아키토는 또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여행 갈까?”
그렇게 말하는 아키토의 표정은, 고개를 돌린 뒷모습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었다. 말은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곧 내 생일이잖아. 마침 한동안 쉬기로 했으니까. …질릴 때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면 어떨까 해서.”
그렇게 말하는 아키토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고, 어딘가 불안해 보이기 까지 했다.
‘아무래도 아까 있었던 일이 아키토를 불안하게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토우야는 방금 전 있었던 사고를 떠올렸다. 할로윈 당일, 여느때처럼 우리는 이벤트를 주최하고,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잠시, 분명 무대에 올라서기 전, 몇번이고 확인했을 조명이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천운이었던 건지, 누구도 다치지 않았지만, 자신 앞으로 떨어지던 조명과, 그 순간 지어 보인 아키토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런 표정의 아키토는 처음 봤어.’
토우야는 잠시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눈을 감았다.
‘여행… 기분전환으로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다녀오면 아키토도 조금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토우야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무작정, 떠나자. 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여행은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고, 끝도 정해지지 않은 여행이었다.
아무런 짐도 챙기지 않고, 그저 몸 하나만을 가지고서 심야 버스에 올라탄 두 사람은 모자를 눌러쓴 채로, 서로 머리를 기대었다.
좌석에 기대앉은 아오야기 토우야는 아키토를 슬쩍 바라보았다. 마스크 아래 숨어있는 아키토의 표정이 궁금했으나, 주변은 어둡고, 푹 모자를 눌러써 그늘진 얼굴에 가려진 표정은 토우야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모든게 의문뿐이었지만, 토우야는 질문하지 않았다. 어디로 떠나는 건지,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건지, 그런 표정을 했던 이유가 뭔지.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토우야는 그저 떨리고 있는 그의 손을 마주 잡아 주었을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게 된것이다.
“아키토, 춥지 않아?”
“별로.”
“밤바람이 차. 오늘은 제대로 된 숙소에서 묵어야 한다고 생각해.”
집에서 나온 이후로 제대로 잠을 자질 못했으니까, 이대로 가다간 감기에 걸릴지도 몰라. 토우야는 꽤나 단호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 아키토가 그런 토우야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어째서였을까, 눈가는 슬픔으로 일그러져 있는 듯 했다.
“…그런가.”
토우야는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처에 조금 오래돼 보였지만 아직 운영하는 것 같은 여관을 봤던 것 같아. 그쪽에 가보는 건 어떨까?”
“그런건 또 언제 봤대. 좋아. 가자.”
두 사람은 또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그 여관은 운영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하룻밤 묵을 방을 잡았다. 그 사이에 토우야가 값을 치르려고 해 아키토가 막는 일이 있었지만 뭐, 그건 사소한 일이었다.
이불에 누운 채로,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토우야는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아키토는 눈을 감은 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푹 잠든 것 같아서 다행이네. 아키토.’
할로윈 이후로 아키토는 이따금 잠에 들지 못하는 듯 했다. 그렇게 잠에 들지 못하고 깨어난 아키토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자신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아키토는 숨기고 있는 듯 했으나 몇번이고 제 품에 파고들어 심장 소리를 들어오는 것을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아키토는… 그날 벌어질 뻔 한 일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그 불안을 해소해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괜찮아 아키토. 나는 지금 여기에 있어.
그렇게 속삭인 토우야는 잠에 든 아키토를 슬쩍 끌어안았다.
마주붙은 체온이 따스했다. 심장이 서로를 향해 쿵쿵 뜀박질 했다. 그 심장 소리가, 지금 두 사람이 이곳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토우야도 그 일정한 박동을 느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어이, 토우야.”
“응?”
“마스크 벗지 마.”
아키토가 토우야를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토우야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키토는 그 모습에 다시 말을 이었다.
“…마스크, 벗으려고 한 거 아니야?”
어쩐지 말에 날이 서있는 것 같았다. 토우야는 더욱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었지만. 왜?”
토우야의 그 말에 아키토는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과민반응이었다고 생각했는지, 아키토는 제 뒷목을 만지작 거리며 말을 이었다.
“사고도 있었으니까,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귀찮아지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키토와 자신은 제법 유명인이 되어서, 알아보는 사람도 꽤나 는 상태였다. 토우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자를 고쳐쓰다,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아키토에게 말을 꺼냈다.
“그건 그렇지만, 그러면 차라리 SNS에 글이라도 올려달라고 하는건 어떨까? 팬들도 걱정하고 있을테니까…”
저쪽에 마침 공중전화가… 토우야가 그렇게 말하려는 찰나, 아키토가 입을 열었다.
“그건…!”
갑작스럽게 큰소리로 외치는 아키토에게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아키토는 그 시선에 모자를 더 푹 눌러쓰며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그건, 안이나 코하네에게 맡겨두고 왔으니까, 신경쓰지마. 알아서 했을거야.”
“두 사람에게?”
“어. 그러니까 너는 나한테만 집중해.”
모자도 확실히 쓰고, 마스크도 벗지마. 방해받는 거 싫어. 그렇게 중얼거린 아키토가 토우야의 손을 잡아 끌었다. 토우야는 그것이 아키토 답지 않은 투정이라고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알았어, 조심할게.”
**
자신의 몸에 덧올려진 옷을 바라보며 아키토가 표정을 구겼다.
“어이, 토우야. 진심이냐.”
그 말에 토우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 나름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에 아키토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진심이냐고… 아무튼 이건 패스. 너무 촌스러워.”
아키토가 옷을 다시 걸며 중얼거렸다. 토우야는 제 앞에 있는 옷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하나를 꺼내 아키토에게 내밀었다.
“그럼 이건 어때?”
내밀어진 옷을 유심히 바라보던 아키토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괜찮을지도.”
그가 내민 옷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이리저리 살펴보는 그 모습에 토우야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골라둔 옷을 아키토에게 내밀었다.
“그럼 이거랑 이걸…”
그런 토우야의 행동에 아키토는 잊었냐는 듯이 토우야에게 쏘아붙였다.
“…토우야. 우리 여기서 한 벌만 살 거거든?”
아키토의 말에 아쉽다는 듯 옷을 내려놓은 토우야가 그를 바라보았다.
“아, 그랬던가.”
아키토에게 다 잘 어울려서 그만… 토우야의 그런 말에 아키토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신도 눈여겨 보고 있던 옷을 꺼내 토우야의 품에 안겨주었다.
“하여간 너도 참… 너는 이거랑 이거로 사. 안에서 갈아입고 오고.”
옷을 받아든 토우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금방 갈아입고 올게.”
그런 토우야를 보며 아키토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어떤 옷인지 안봐?”
토우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키토가 골라준 옷이니까. 분명 잘 어울리겠지.”
“너무 믿는 거 아니야? 내가 너 골리겠다고 이상한 옷 줬으면 어쩌려고?”
“아키토가? 흠…아키토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해.”
아키토가 그 말에 멋쩍게 웃었다.
“너한테 나는 어떤 인간인 거냐…”
그 말에 토우야가 잠시 고민에 빠진 듯 말을 늘였다.
“음…”
“아니,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대답하려고 할 필요는 없거든.”
아키토가 놓는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토우야가 중얼거렸다.
“나에게 아키토. 인가.”
“어이, 토우야. 그만 고민하고 옷이나 입고 와.”
그런 아키토의 말에 고개를 든 토우야가 드디어 결론을 냈는지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이자 사랑하는 사람. 일까?”
그 속삭임에 반사적으로 아키토가 한발짝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본 토우야가 미소지었다.
“그럼, 갈아입고 올게 아키토.”
그렇게 말한 토우야가 피팅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키토는 토우야가 피팅룸으로 들어가자마자 붉어진 제 목덜미를 가리며 중얼거렸다.
“저런말을 진심으로 한다는게 무서운 거라니까.”
**
머리카락에 닿아오는 손길에 아키토가 고개를 돌렸다. 토우야가 미소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키토, 낙엽이 붙어있었어.”
그 손에 들린 낙엽을 보며 아키토가 입을 열었다.
“아, 고마워.”
제 손에 들린 낙엽을 바라 보던 토우야가 입을 열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걸 보니, 이제 확실히 가을이구나.”
“뭐, 그렇지.”
“가을이라… 곧 아키토의 생일이네, 받고싶은 선물이라도 있을까?”
그런 토우야의 말에 그를 힐끔 쳐다본 아키토가 작게 중얼거렸다.
“…네가 있으면 됐어.”
작은 중얼거림에, 그 말을 듣지 못한 토우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그 되물음에 아키토가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같이 있어 주면 그걸로 충분해. 너도 그랬잖아?”
아키토의 말에 토우야가 눈을 깜빡였다.
“아, 그런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그래도 내게 뭐라도 선물해주고 싶은걸.”
아키토는 별소리를 다 한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같이 여행하고 있잖아? 이게 선물이지 뭐.”
“여행이 즐겁다면 다행이지만… 아, 당일에는 잠시 시부야에 들리는 건 어떨까?”
토우야의 말에 아키토가 되물었다.
“시부야에?”
토우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아키토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해.”
원래도 생일 기념으로 라이브를 하려고 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토우야의 말에, 아키토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필사적으로 얼굴을 핀 아키토가 말했다.
“…그랬었지. 하지만 이번 생일은 됐어, 너랑 둘이서 보내고 싶으니까.”
그 굳은 얼굴을 보지 못한 토우야의 눈이 크게 떠졌다.
“나랑 둘이서?”
아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VIVID BAD SQUAD를 결성한 이후로 둘이서만 축하한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둘만 있어 보려고 하는 것 뿐이야.”
“아키토가 그러길 원한다면야. …내가 모두의 몫까지 축하해 줄 수 밖에 없겠네.”
그 진지한 모습에 아키토가 피식 웃었다.
“나 참, 성실하기는. 뭐 그렇게 말하는게 너 답기는 하다.”
“아키토가 태어난 소중한 날이니까. 있는 힘껏 축하해 주고 싶어.”
그렇게 말하는 토우야가 미소짓자, 아키토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토우야를 보며 저도 미소 지어 보였다.
“알았다니까. 기대하고 있을게.”
“그래. 기대해줘.”
**
“감사합니다.”
직원이 토우야에게 생크림 케이크가 들어있는 상자를 건냈다. 그 상자를 받아들며 토우야가 가게에서 나왔다. 함께 가게를 나서며 아키토가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런 오지 산골에 빵집이 있을 줄이야.”
“그러게, 덕분에 살았어.”
정말로 안심하는 듯한 그 말에 아키토가 어이없다는 듯 제 목덜미를 만졌다.
“굳이 케이크까지 필요 없다니까.”
“하지만 아키토의 생일이니까. 케이크는 준비해 주고 싶었는걸.”
… 치즈케이크가 없는건 아쉽지만. 그렇게 말하는 토우야에게 아키토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고집도 세긴. 그래서 1시간 넘게 걸어서 시내까지 나온 거잖아. 너 그 가게가 없으면 어쩌려고 했어?”
“음… 그래도 슈퍼는 있을 테니까. 팬케이크라고 구워줄 생각이었어.”
“…그렇게까지 할 일이냐.”
“적어도 나한테는 그래.”
“…무슨 말을 못 하게 하네.”
아키토는 발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뭐, 네 팬케이크. 맛있으니까. 그것도 좋았을 거야.”
그 말에 토우야가 눈을 깜빡였다.
“그래? 그럼 팬케이크도 해줄까?”
토우야의 말에 헛웃음을 지으며 아키토가 입을 열었다.
“어이, 케이크에다가 팬케이크까지 하면 누가 다 먹으라고요.”
그 정도로 먹보는 아니거든? 그렇게 말을 이은 아키토가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애초에 넌 단거 안 좋아하잖아. 근데 팬케이크는 왜 그렇게 잘 만들어?”
그 말에 토우야가 조금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아키토가 좋아하니까. 연습했어.”
토우야의 말에 아키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그게… 처음에는 정말 맛이 없었거든. 그걸 아키토에게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럼 가끔 집에서 단 냄세가 났던 이유가…”
“아, 아키토가 나가있는 사이에 연습했거든.”
“팬케이크가 버려진 건 못 봤었는데.”
“…버리면 아키토가 눈치챌 테니까. …내가 먹었어.”
“단것도 안 좋아하면서.”
“그때는 나름 필사적이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토우야가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아키토는 웃지 않았다.
“…뭐야 그게.”
“…왜 그래 아키토?”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키토가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을 보고 토우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 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는 필사적으로 웃는 얼굴을 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눈물을 참듯이 파르르 떨리는 눈가가 애처로웠다.
방금 나눈 대화의 무엇이 아키토를 울리고 만 걸까. 토우야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아키토를 제 품으로 당겼다. 그대로 토우야에게 몸을 기댄 아키토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토우야.”
“응.”
“가끔은 이기적으로 굴어줘.”
“…아키토?”
“…날 위해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토우야는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팬케이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역시, 아키토는 아직도 그날의 일에 머물러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또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고 아마 자신은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네가 위험에 처한걸 내가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 그렇게 대답하지 않은 채로, 토우야는 아키토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기댄 아키토도 더 이상 말 하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서 두사람은 숙소에 도착했다. 낡은 숙소에서 괘종시계가 째깍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키토가 겉옷을 벗으며 소파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문을 열기 전 고개를 돌려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토우야는 그런 아키토를 말릴 수 없었다. 차가워진 케이크를 식탁에 올려놓으며 토우야가 말했다.
“…그래. 다녀와.”
그리고 문이 닫히고, 토우야는 소파에 털썩 주저않아 몸을 기댔다. 그때 토우야의 손에 무언가 걸리며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아, 이건. 토우야는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스마트폰? 이 케이스는… 아키토의…’
하지만 분명 잃어버렸다고 했었는데… 토우야는 의아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찾은걸까? 토우야는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 손길에 꺼져있는 스마트폰이 작은 진동과 함께 커졌다. 그리고 비친 화면에 쓰인 글씨에 토우야의 눈이 커졌다.
부재중 525건
그건 많이도 너무 많은 숫자였다.
이렇게 전화가 많이 올 일이 있던가?
그때, 화면에 도착한 메시지의 내용이 떠올랐다.
[너 지금 대체 어디야?]
토우야는 아키토의 사생활을 엿본 기분이 되어 다시 화면을 끄려했다. 하지만, 다시 스마트폰이 반짝 빛을 내며 새로운 알람을 띄웠다.
[이렇게 잠적하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
[지금 네가 범인으로 몰리고 있다고!]
범인…? 아키토가?
토우야는 의아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이어 올라온 메시지에 토우야는 제 눈을 의심했다.
[야 이 멍청아! 죽은 토우야가 네가 이러길 바랄 거 같아?]
…
토우야는 눈을 깜빡였다. 순간 잘못 본 건가 싶어 몇 번이고 읽어 내려간 문장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듯이 바뀌지 않았다.
죽어…?
누가…?
하지만 그 순간 모든 것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도망치듯이 움직이던 여행길, 마스크와 모자를 벗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목소리, 카드는 사용하지 않고 현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던 아키토. 그리고 초조한 표정까지도.
잠겨있던 기억이 열쇠로 열린 듯 한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날, 조명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밑에 아키토가 있었지.
그래서…
그래서 나는…
아키토를 밀치고…
.
.
.
조명에 맞았어.
.
.
.
아.
그렇구나.
나는 그날 죽었구나.
그 깨달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곳엔 다급한 표정을 한 아키토가 있었다.
**
.
.
.
사람들이 간혹 착각하는 것이 있다.
집을 나서는 가족이 당연히 돌아올 거라 믿으며. 친구와 싸운 뒤 언젠가 화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일도 곁에 있을 거라 믿는다.
그건 전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시노노메 아키토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영원을 믿지는 않았으나 그의 내일에는 언제나 아오야기 토우야가 함께 있었다.
믿고있는 파트너이자, 사랑하는 그의 연인.
아키토의 옆에는 그가 있는 것이 당연했고, 그가 꿈꾸던 미래에서 토우야는 언제나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분명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네가 나를 밀쳤고…
그리고…
커다란 소리가 났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같기도 했고 쇠가 우그러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아키토는 다시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의 앞을 바라보았다.
관객석에서 터져나온 비명이 귀를 찔렀다.
“꺄아아아악!!!!!”
“구급차… 누가 구급차 좀 불러요!”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그는 여전히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닥에 흘러내리고 있는 액체가 붉었다. 그 붉은 액체의 정체를 아키토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독할 정도로 현실감이 들지 않아서 아키토는 쓰러진 토우야를 향해 중얼거렸다.
“…토우야?”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건지 알 수 없었다.
싸늘히 누워있는 토우야를 바라보면서도 아키토는 그가 잠시 잠든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키토는 토우야를 데리러 온 그의 가족과 마주했다.
토우야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 시노노메 아키토라고 했었나.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네.”
“토우야는 우리 쪽에서 데려가기로 했다.”
“…”
“불만이라도 있는 거냐.”
그 말에 아키토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불만이라… 자신에게 그런 권리 따위는 없었다. 달라붙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구나.”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깨트린 것은 토우야의 아버지였다.
“…나는 너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 말에 아키토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키토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그 아이를 이해하려고 했다. 이해해보려고 해봤지.”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어.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설령 그 아이가 영원히 나를 원망한다고 하더라도”
“…”
“그랬다면… 적어도 무대에서 죽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아키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토우야가 무대 위에서 죽은 것은, 자신이 그를 이 세계에 끌고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파트너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가 이번 무대에 함께 설 일도 없었을 것이고, 자신을 구하려다 조명을 맞는 일도 없었을텐데. 그 사실이 아키토를 더욱 괴롭게 했다. 그리고, 그런 아키토에게 토우야의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장례에 올 필요는 없다. 아니,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말에 아키토가 눈을 크게 떴다. 토우야의 장례식에 가지 말라고? 아키토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여전히 차가웠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구나. 네가 정말 그 아이를 위한다면 네 발로 나가거라.”
이정도가 내가 그애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예의다. 그렇게 중얼거린 토우야의 아버지는 아키토의 존재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 말은, 장례식에 가더라도 그를 들여보내줄 생각이 없다는 통보였다. 아키토는 끓어오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열기어린 말을 삼키며, 아키토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이 그들에겐 당연한 행동일지도 몰랐다.
원망 섞인 그 눈빛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찔렀다. 그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필요한 것은 알고 있다. 그것이 제가 될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무력했다.
너는 나의 친구였고, 파트너였으며, 연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너와 나의 사이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네가 살아있을 적에는 너의 존재로 모든 것이 증명 가능했는데도, 네가 없어지자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잠시만요! 아키토는!”
안이 다급하게 외치는 것을 아키토가 팔을 들어 붙잡았다.
“됐어, 그러다 너희까지 못가.”
아키토는 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텅 비어있어서, 안의 옆에 있던 코하네가 그런 그를 보고 눈물을 글썽였다.
“아키토 군…”
“난 괜찮으니까, 너희는 준비나 하고 있어.”
…너희라고 있어 줘야 덜 외로울 거 아니야. 그렇게 중얼거린 아키토가 고개를 들어 토우야의 가족을 바라보았다.
“…토우야가 아끼던 물건을 챙겨오겠습니다. 그정도는 허락해주시겠어요?”
“…그래.”
“…그럼 이후에 자택에 들리겠습니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한 아키토가 토우야를 한번 바라보았다. 그의 주위를 그의 가족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키토는 이내 병원 밖으로 나섰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아키토는 저벅저벅 거리를 걸어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멍하니 걷던 도중 아키토는 누군가와 부딪혀 뒷걸음질 쳤다. 아키토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아라타…?”
아라타가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아, 아키토 군. 마침 만나러 가던 중이었는데. 우연이네.”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이럴 거라곤 생각했지만. 더 심각한 것 같네.”
“…뭐가?”
“네 상태 말이야.”
“…”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아키토 군.”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거든. 그렇게 말하는 아라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서, 아키토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키토 군은 기적을 믿어?”
“…기적?”
“그래, 기적. …예를 들면,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온다던가.”
아키토는 아라타의 말에 주먹을 꽉 쥐었다.
“…농담할 기분 아니야. 간다.”
“농담이 아니야.”
“…”
“지금은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없지만…”
아라타가 잠시 말을 멈췄다. 아키토는 그런 아라타를 바라보았다.
“만약에… 토우야 군이 다시 돌아오면 연락해.”
“…”
“연락 기다리고 있을게.”
그렇게 말하는 아라타를 등지고, 아키토는 홱 몸을 돌렸다.
**
아키토는 토우야의 방에서 그가 아끼던 물건을 하나 둘 상자에 담았다.
토우야답게 깔끔히 정리된 방에서, 그가 아끼던 물건을 정리하고 있자니, 정말로 그가 죽은 것 같아서. 아키토는 그대로 바닥에 누워 넋을 놓고 있었다.
어서 정리해서 토우야에게 가져가야 하는데. 토우야가 외롭지 않도록 이런 거라도 가져다 줘야 하는데…
하지만,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걸 전해주면, 정말로 끝인 것 같잖아.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키토는 몸을 일으켰다.
‘누구지,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키토는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은채로 그대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가 있었다.
아키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푸른 머리카락에 그리운 회색 눈동자. 수의를 곱게 차려입은 그는 아무말도 없이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져 아키토에게 고꾸라졌다. 그 몸을 반사적으로 받아내며 아키토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맞닿은 몸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체온이 그가 죽은 것을 다시금 알려주는 듯 했다.
다급히 문을 닫고 토우야를 소파로 옮긴 아키토가 멍하니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한참을 그렇게 토우야를 바라보던 아키토가 스마트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
“안녕, 아키토 군.”
“너… 당장 이게 무슨 일인지 말 안해?”
“…역시. 토우야 군이 돌아왔구나?”
아키토는 아라타의 멱살을 잡아챘다. 아라타는 그 상황에 놀라지도 않았는지 멱살이 잡힌 채로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그건 주술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아라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죽은자가 돌아오고, 다시 살아가게 해.”
“…”
“한번이라도 상대방에게 숨을 불어넣은 적 있는 자가 죽는 그 순간 이름을 부른다. 그런 간단한 주술이지.”
그때, 토우야 군의 이름을 불렀지? 그래서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렇게 말해오는 아라타의 말에 아키토의 손에서 점점 힘이 빠졌다. 잡혀있던 옷깃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그런 걸 나보고 믿으라고?”
“하지만, 토우야 군은 돌아왔잖아?”
“…”
“다시 심장을 뛰게 하는 방법도 간단해. 살아있는 사람이 숨을 불어넣으면 되거든.”
“…”
“숨을 불어넣기 전까진 그저… 살아있는 시체지. 의식도 없을 거야.”
아라타가 진지한 얼굴로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아키토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집에 누워있는 토우야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아키토를 아라타가 붙잡았다.
“근데, 그거 알아둬. 이거. 완벽한 주술은 아니거든.”
“…”
“…본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 다시 돌아가게 돼. 실수로라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끝이야.”
그말에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것 같았던 아키토가 뚝, 멈췄다. 그런 아키토에게 아라타가 말했다.
“상황이 너무 안좋아. 토우야 군이 죽은 걸 너무 많은 사람이 알고 있어.”
아무래도 너희 사고, 기사까지 났으니까.
그말에 아키토가 이를 악물었다. 아라타가 그런 아키토를 바라보다 품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에게 쥐여주었다.
“…이건.”
“부조금이야. 소우마 것도 같이 넣었어.”
그렇게 말한 아라타가 아키토의 표정을 보고 미소 지었다.
“너한테 주는 이유가 궁금해?”
“…”
“현금, 필요할 거잖아?”
아라타는 그렇게 말하며 아키토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라면 닥치는 대로 뽑아서 도망쳤을걸? 그렇게 중얼거리는 아라타의 목소리가 아키토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아키토는 분하다는 듯 봉투를 구겨쥐곤 그를 등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라타는 그런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저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았다.
**
한달음에 달려온 탓에 숨이 차올랐다. 아키토는 숨을 고르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토우야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아키토는 그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죽어있는 그에게 입을 맞추고, 숨을 불어넣었다.
그 순간 토우야의 심장이 두근. 소리를 내며 박동하기 시작했다.
아키토는 떨리는 손을 감추며 토우야에게서 퍼뜩, 멀어졌다. 감긴 눈이 서서히 열렸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키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참아내며 아키토가 입을 열었다. 내뱉는 말이 떨렸다.
“토우야.”
우리 떠날까?
아무런 설명도 이유도 없는 그저 충동적인 말에도 토우야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떠나기로 했다.
우리는 가장 멀리 떠나는 티켓을 샀다. 돌아오는 티켓 같은 건 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키토는 그와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
[2xxx. 11.1]
도착한 곳은,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스마트폰은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결국 우리는,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토우야는 불평하지 않았다.
토우야는 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을까. 그것이 무서웠다.
[2xxx. 11.2]
식사도 엉망이었고, 숙소를 잡지 못해 또다시 심야버스를 탔다. 여전히 그날의 일이 꿈만 같다. 이렇게 내 옆에 살아있는데도, 마음이 불안하다.
[2xxx. 11.3]
이런 곳에 이런 바다가 있을지 몰랐다. 숙소도 나쁘지 않았다. 끌어안은 네 심장 소리가 나와 함께 뛰어서, 어쩐지 안심이 됐다.
[2xxx. 11.4]
오늘도 이 바다에 남았다. 손을 잡고 바다를 거닐다 보면 불안이 파도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내 손을 붙잡아주는 네가 있기 때문이겠지.
[2xxx. 11.5]
오늘도 바다에 머물까 했지만, 그만뒀다. 더 오래있다간 발각될지도 모르니까.
[2xxx. 11.6]
함께니까 괜찮아.
[2xxx. 11.7]
새로 산 옷은 토우야에게 잘 어울렸다. 이벤트에 입어도 될 것 같은데.
…그럴 일은 없겠지만.
[2xxx. 11.8]
…토우야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xxx. 11.9]
아니, 돌아가지 않아.
널 다시 잃지 않을 거야.
[2xxx. 11.10]
조금만 더, 조금이라도 더 오래…
**
벗어둔 겉옷에 스마트폰을 두고 왔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이미 십여분이 지난 후였다.
아키토는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화면이 켜진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토우야가 있었다.
**
…봤을까? 아니면 보지 못했을까.
아키토의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빠르게 뛰었다.
역시, 스마트폰 따위. 들고 오는 게 아니였는데.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토우야…”
아무말 없이 토우야는 아키토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그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 없어서, 아키토는 안심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못 본 거겠지?
못본게 분명해. 그래, 봤다면 저럴 수 없어.
시끄럽게 울려대는 스마트폰을 받아들며, 아키토는 토우야를 바라보았다. 토우야의 입이 열렸다.
“전화, 안 받아?”
“…응. 받을 필요 없어.”
아키토는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의 전원을 껐다. 추적, 들어갔겠지? 지금이라도 여기를 떠나야 하나? 이 시간에 버스가 있던가? 온갖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키토.”
그리고 그 순간, 토우야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응?”
“또 떠날 생각을 하고 있어?”
그 말에 아키토의 행동이 뚝, 멈췄다. 흔들리는 눈빛이 그를 바라보았다. 토우야는 그 눈빛을 피하지 않으며, 말을 꺼냈다.
“나는 함께 가지 않을 거야.”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아키토는 멍청하게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뭐?”
“이제 그만하자.”
아키토는 심장이 멈춘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 벌어진 입술에서 말이 꺼내지지 않았다.
“그게… 무슨…”
그런 아키토를 바라보며, 토우야가 담담히 말을 꺼냈다.
“전부 기억났어. 아키토. 나는 그날 죽었던 거지?”
그리고, 그가 뭐라 말을 꺼내기 전에, 토우야가 말을 이었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건. 아마 아키토 덕분일 거고.”
“…”
“하지만, 아무런 조건이 없을 것 같지 않아. 그건, 내가 지금까지 내 죽음을 기억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토우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오른손을 뻗어 아키토의 뺨을 감쌌다.
“…아키토. 아키토는 평생 나를 데리고 도망 다닐 생각이었던걸까?”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키토는 제 뺨을 감싸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에서 그렇게, 살아가길 원했어?”
그의 말이 맞았다. 그러길 원했다. 그가 없는 세상의 시노노메 아키토로 살아가는 것보다, 그가 있는 세계의 도망자로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안된다는 듯이. 토우야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울려 퍼졌다.
“그래선 안 돼. 아키토.”
“그런 삶은 그저 멍하니 살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는걸.”
그렇게 말한 토우야가 말을 이었다.
“아주 예전에, 아키토가 그랬었지. 어중간한 마음으로 뭘 하고 싶은지 모른 채로 멍하니 살아간다는 건 죽을 정도로 하찮은 거라고.”
“…아키토. 나는 네가 나 때문에 그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
토우야는 잠시 말을 멈추곤 아키토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정말이지 잔인했다.
“내가 없더라도, 아키토는 분명 행복할 수 있을 거야.”
…무리야, 내가 너없이 어떻게 행복하라는거야? 아키토는 올라오는 눈물을 억지로 눌러 삼켰다. 그런 아키토를 따스히 끌어안고, 토우야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 삶에 내가 없어도 된다는 말. 하고 싶지 않아.”
갑자기 쏟아지는 그의 진심에, 아키토는 떨리는 손으로 그를 마주 끌어안았다.
“분명 쓸쓸해지겠지. 하지만, 그것보단 기쁨이 더 클거라고 생각해.”
“…”
“난 아키토를 사랑하니까.”
그 말에 아키토의 목이 메었다.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된 너는 그저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는 널 보낼 수가 없는데.
너를 보내줘야 한다는건 알고 있어. 하지만 그 한마디를 할 수 없어서. 차갑게 식어버린 너를 이렇게 부른 거겠지.
너는 여전히 다정하게 웃고 있을 것 같아.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도 웃음이 지어지지 않는데.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해 토우야?
아키토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토우야는 그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아키토의 심장과 토우야의 심장이 맞닿았다. 아키토의 심장소리에 맞추어 토우야의 느려지는 심장소리가 불규칙하게 울려퍼졌다.
가만히 아키토를 지켜보던 토우야가 말했다.
“작별 인사를 하자.”
“…”
“나는, 지금 너와 이렇게 인사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신에게 감사하고 있어.”
그 말에 아키토는 그를 놓지 않겠다는 듯 아주 세게 끌어안았다. 그 손길이 절박했다.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남은 자의 마음에, 떠나는 자가 남는자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 순간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종소리에 토우야가 아키토에게 속삭였다.
“생일 축하해. 아키토.”
정말로, 사랑하고 있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토우야의 몸이 아키토에게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또다시 영원히 잠들었다. 내가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차갑게 식어가는 토우야를 끌어안고, 아키토는 돌려주지 못한 말을 중얼거렸다.
사랑해.
사랑해 토우야.
…사랑하고 있어.
낡은 방 안에서 어디서 내리는 건지 계속 비가 내렸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손을 적셨다.
목이 잠겨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아키토는 그렇게 계속 듣지 못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
Living Dead alive : forever
아라타는 경찰서에서 나오며 한숨을 쉬었다.
‘끈질겨… 사건을 해결할만한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이러는 건가.’
지난밤, 사라졌던 토우야 군의 시체와 함께, 아키토 군이 발견되었다. 경찰서 내부에 떠드는 이야기에 따르면, 처음 그들을 발견한 경찰은, 그곳에 시체가 둘 있는 줄 알았다고 떠들어댔다. 그 정도로, 아키토 군은 눈물과 슬픔으로 엉망인 얼굴을 하고 순순히 체포당했다.
아라타는 가장 마지막으로 그와 만난 사람으로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나온 참이었다.
경찰은 사건의 범인을 아키토 군으로 확정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그가 어떻게 시체를 훔쳐 달아난 건지 알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토우야 군을 보관하고 있던 아오야기 저택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도망치듯 떠날 때도 아무런 짐도 챙기지 않았다. 그는 시체를 보관할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수사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였다.
‘더 알아볼수록 수사에 혼란만 생기겠지, 어떻게 시체가 살아서 움직였을거라고 생각하겠어.’
그렇게 생각한 아라타가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지는 소우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이었다.
**
“아라타. 엄마가 주술을 하나 알려줄게.”
“주술?”
“응. 정말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주술이란다?”
그렇게 말하며, 어머니는 자신을 끌어안고는 귓가에 이야기를 속삭였다.
“우선, 준비가 필요해. 살아있을 때 그 사람에게 네 숨을 한 번이라도 불어넣어 둬야 한단다.”
품에 파고드는 자신을 토닥이면서,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 떠나는 순간에 이름을 불러야 해. 그리고, 숨을 불어넣으면 끝이야. 간단하지?”
그러니까, 아라타가 나중에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숨을 한번 불어넣어 두렴.
그렇게 말하며, 어머니는 나에게 사랑한다며 입을 맞추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부 어머니의 공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어머니가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 같아서. 어린 자신은 괜스레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말이 기억에서도 사라졌을 무렵, 소우마를 만났다.
가창 시험 이후, 막무가내로 다가오는 그에게 자신은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하고, 같이 있는 게 당연해졌다.
그래서, 네가 소중해져서. 교실에서 홀로 잠들어 있던 그에게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그의 입술을 벌리고, 그렇게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곤 이건 네가 너무 소중해서야. 라고, 스스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때의 자신에게 어머니의 말은 그를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면서도, 그에게 입 맞출 수 있는 핑곗거리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고가 났다.
갑자기 달려든 자동차에 소우마가 부딪혀 바닥을 굴렀다. 아라타는 반사적으로 소우마의 이름을 불렀다.
“소우마!!!”
바닥에 늘어진 소우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라타는 다급히 그에게 달려갔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 따위 신경 쓰지도 않고, 그 앞에 무릎꿇은 아라타는 소우마의 가슴께에 귀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귓가에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라타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소우…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라타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우마를 치고 간 차는 이미 도망간 지 오래였으며, 지나가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119… 아니 우선 CPR을 해아하나? 나는 어떡해야… 아라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떨리는 손이 소우마를 똑바로 눕혔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아라타의 머릿속에는 어머니의 말이 맴돌았다.
‘마지막은, 숨을 불어넣는 거란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인공호흡이라기엔 흉부를 압박하지도 않고 저지른 그 행동을 아라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숨을 불어넣고, 고개를 든 아라타는 재빠르게 소우마의 가슴팍에 제 귀를 가져다 댔다.
그때, 심장이 뛰지 않았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소우마의 심장이 다시 두근 소리를 내며 박동했다. 그리고, 감겨있던 눈이 떠졌다.
“아…라타?”
자신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 아라타는 인정할 수 밖에없었다.
죽은 사람을 돌아오게 하는 것.
그건 어머니의 망상도, 공상도 아니었다.
정말로 주술이었다고.
덕분에 네가 이렇게 다시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고.
그제서야, 아라타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그건, 안도의 눈물이었다.
**
소우마는 연락을 받고 온 구급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함께 이동하려다 저지당한 후, 그대로 집으로 돌아온 아라타는, 서랍에 넣어두었던 어머니의 일기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주술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숨을 나누어준다는 것은 생명을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숨을 불어넣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시체 상태가 되며 이름을 부른 상대에게 본능적으로 찾아가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상태로 오래 버틸 수 없고, 살아난 이후에는 죽을 당시의 일을 왜곡해서 기억하며, 그 당시 자신이 죽었다는 걸 알게되면 또다시 죽게 되며, 또한 주기적으로 숨을 불어넣어 주지 않으면 역시 죽은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도.
이전에는 그저 어머니의 공상이라 여겼던 것들이 눈에 밟혔다.
이게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라타는 이제 이 주술을 무시할 수 없어졌다.
만약, 이것을 어겼다가 소우마가 다시 죽어버리면 어떻게 해?
그렇기에 아라타는 몇 번이고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몇 번이나. 그렇게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다시 만나러 간 소우마는, 육체에 손상이 남았는지, 마비가 왔다고 했다. 그는 노래를 계속 부르는 게 힘들어졌다.
소우마와 노래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이지, 괴로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숨을 쉬지 않는 그를 생각했다. 그러면 지금 그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소우마는 괴로워 보였지만, 아라타는 그를 붙잡아 둘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소우마는 자신이 있는 병원이 너무 멀다면서, 오지 말라고 했지만 아라타는 그를 보러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가끔씩 늦은 시간까지 머물며 잠든 소우마 몰래 그에게 입을 맞췄다.
하지만,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때와 같이 그에게 입 맞추던 순간, 소우마가 눈을 떴다.
“…아라타?”
마주 닿은 두 입술에, 소우마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당황하며 몸을 뒤로 빼는 소우마의 모습에, 아라타가 다급하게 그를 붙잡았다.
“소우마… 이건…!”
그 당시의 자신은 절박했다. 소우마에게 숨을 불어넣을 수 없게 될까 두려웠다. 이렇게 그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때, 소우마의 입이 열렸다.
“왜 입을 맞췄어?”
아라타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너를 살아가게 하고 싶어서 입을 맞췄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 나는…”
그렇게 머뭇거리는 그에게, 소우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라타, 나를 좋아해?”
그렇게 말하는 소우마의 표정이 도망가지 말라는 듯, 아라타를 붙잡았다. 아라타는 대답하는 대신, 침묵을 택했다.
“…”
그의 침묵에, 숨겨진 답을 읽어낸 소우마가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중얼거린 소우마가, 아라타의 눈을 마주 보았다.
“…있지, 아라타. ”
“응.”
“… 많은 게 변했어, 나는 이제 너랑 노래하지 못해. 함께 무대에 서지도, 곡을 만드는것도 어려워.”
“…알고 있어.”
“…네가 알던 나와 미래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될지도 몰라.”
“소우마…”
“…그래도 여전히, 날 좋아할 수 있어?”
소우마가 손을 뻗어 아라타의 옷깃을 잡았다. 마비 때문인지 그의 손이 조금씩 떨려왔다. 아라타는 어쩔 줄 모르며 움직이지 못했다.
아라타는 결국, 숨겨두었던 진심을 꺼냈다.
“…응. 영원히.”
아라타의 대답에 소우마가 멋쩍게 웃었다.
“…영원히라니, 무겁네.”
괜스레 그렇게 말한 소우마가 아라타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놀란 건 사실이야.”
네가 나한테 입 맞출 줄은 몰랐거든. 그렇게 말한 소우마는 입꼬리를 올려 아라타를 바라보았다. 아라타는 그 미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라타에게 소우마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싫지 않았어.”
그 말에 아라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소우마는 아라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가 잡아당기는대로 고개를 숙인 아라타의 뺨에 입 맞췄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렇게 죄지은 것처럼 몰래 키스하지 마.”
아라타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소우마…”
소우마가 멋쩍게 웃었다.
“너를 위한다면 이러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데. 아, 이러나저러나 난 너한테 너무 약해서 탈이라니까.”
소우마는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민망해졌는지 조잘조잘 말을 늘어놓았다. 벅차오르는 마음에, 아라타는 그런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
“소우마, 다녀왔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라타에게, 소우마가 인사했다.
“어서 와. 아라타.”
그대로 소우마의 옆에 앉은 아라타를 향해, 소우마가 말을 이었다.
“아키토 군은 어땠어? 상태는 괜찮아 보여?”
“…괜찮을 리가 없지. 엉망이던데.”
“…그런가. 역시 토우야 군의 빈자리가 크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소우마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쓸쓸해 보였다.
‘소우마는 토우야 군과 사이가 좋았으니까… 많이 상심했겠지.’
아라타는 소우마의 옆에 앉아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소우마도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아마, 아키토 군은 금방 풀려날 테니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착잡해 보이는 소우마를 보며 아라타가 말했다.
“상황이 전부 끝나면, 같이 토우야 군에게 인사하러 갈까?”
아라타의 말에 소우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역시 한 번쯤은 직접 인사하고 싶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침묵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이 서로의 손을 붙잡고 있던 두 사람의 등 뒤로, 해가 저무는 것이 보였다.
아라타가 입을 열었다.
“소우마.”
“응?”
“입 맞춰도 될까?”
“뭐야, 아라타. 새삼스럽게.”
그런 것쯤은 안 물어봐도 돼. 그렇게 말하는 소우마의 표정이 사랑스러웠다.
소우마의 뺨을 감싸자, 그가 응하듯이 눈을 감았다. 살포시 입술을 겹치자 소우마가 입을 벌려왔다. 정말이지, 귀여웠다.
아라타는 소우마의 숨을 삼키듯 들이켰다. 소우마는 숨이 모자라는지 점점 새빨게지는 얼굴이 되어 헐떡였다. 그런 모습을 잠시 빤히 바라보던 아라타는, 곧바로 자신의 숨을 소우마에게 넘겨주었다.
소우마가 내가 넘겨준 숨을 전부 받아 마실 때까지, 그를 빤히 바라보자 슬쩍 눈을 뜬 소우마가 입술을 떼며 중얼거렸다.
“…항상 생각하는건데. 아라타. 너, 성격 진짜 나쁘다. ”
“…소우마가 귀여워서 어쩔 수 없는걸.”
“음… 그런 점이 그렇다는 거야.”
어쩐지 투덜거리는 듯한 그 말에 아라타가 미소 지었다.
이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
영원히 깨지지 않길 바랐다.
소우마, 나는 언제까지라도 너에게 숨을 불어넣을 거야.
내가 숨을 멈추는 그 순간까지.
영원히.
***
Living Dead Alive : my bittersweet cake
[2xxx.11.12]
끓어 넘치는 열기와 넘치는 환호성.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무대의 위에서, 세사람은 최선을 다해 노래했다.
빈자리를 메우기위한 파트 배분도 이제 익숙해져서, 어색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 세 사람이 음악이 멈춘 사이 잠시 숨을 골랐다.
“모두~ 오늘도 즐겁게 즐겼을까!”
안이 외친 말에, 객석이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열기에 응하듯, 아키토가 말을 이었다.
“오늘도 보러와 줘서 고맙다. 그리고…”
아키토가 더 말을 꺼내려는 그때, 무대로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아키토와 눈이 가장 먼저 마주친 코타로가 들켰다는 듯 과장되게 움직임을 멈췄다. 코타로의 뒤로 줄줄이 올라오던 아라타와 EVER도 슬쩍 아키토의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진 아키토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다들 올라오고 난리야? 무대 미어터지겠네.”
그 말에 한편의 만담을 보는 듯, 무대아래의 사람들이 소리내어 웃었다. 무대 위에 선 오늘의 주역들도 그를 바라보았다. 안이 아키토를 보며 씩 웃었다.
“왜긴 왜겠어, 다 알면서 내숭은~”
아라타가 입꼬리를 올리며 안의 말을 잇듯이 입을 열었다.
“아키토 군은 생각보다 쑥스러움이 많으니까.”
그런 아라타의 말에 타츠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건가?”
갸웃거리는 타츠야를 보며 코타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지!”
한마디씩 내뱉는 그들의 말에 아키토가 표정을 조금 찌푸렸다.
“어이.”
그 표정에 안이 짓궂게 말했다.
“장난도 못 치게 한다니까~”
안의 말을 마지막으로 코하네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그럼 시작할게...!”
하나, 둘, 셋!
“““아키토! 생일 축하해!”””
그 말과 함께, 무대아래에서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어이, 생일 축하한다!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각자의 마음을 담은 소리가 한데 모여 거대한 울림이 되었다.
그 울림 속에서, 오늘의 주인공 시노노메 아키토는 활짝 웃었다.
그 없이 맞이하는 3번째 생일이었다.
**
“아, 이번 이벤트도 성공적이였네~ 관객들 표정 봤어? 다들 정말 즐거워하더라~”
“응! 다들 아키토 군을 축하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오는 두 사람의 말에 아키토가 괜스레 핀잔을 놨다.
“나 참, 매번 지겹지도 않냐?”
그렇게 말하는 아키토를 바라보던 아라타가 말했다.
“하지만 아키토 군도 매번 다른 사람들의 생일 라이브에 참가해 주잖아?”
“맞아 맞아, 그러면서 항상 저렇게 시치미를 땐다니까~”
아키토의 얼굴이 조금 붉게 물들었다.
“시끄러워!”
“아, 또 화낸다~”
장난스럽게 코하네의 등 뒤로 숨는척한 안이 고개를 빼곰 들며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제 뭐 할 거야? 그래도 생일이니까, 같이 밥이라도 먹으러 갈까?”
그런 안의 말에, 아키토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각은 새벽 1시가 조금 안 되는 시간이었으니까.
“이 시간에?”
안이 입을 쭉 내밀며 대꾸했다.
“자기 전에 먹으면 저녁이다 뭐~”
“…뭐라는 거야. 그리고 그럴 시간 없어.”
지금도 아슬아슬하거든? 아키토가 그렇게 말하며 스마트폰을 확인하더니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 모습에 코하네가 아키토에게 물었다.
“아키토 군. 혹시 약속이라도 있는 거야?”
“뭐, 그렇지. ”
“뭐야, 이 시간에.”
안이 투덜거리자, 아키토가 대답했다.
“그런 친구가 있다. 버스라고.”
“이시간에 버스? 어디 가려고?”
의아한 표정의 코타로가 묻자, 아키토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비밀”
**
비어있는 집의 불을 키며, 아키토가 중얼거렸다.
“다녀왔습니다.”
들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식탁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그가 시계를 슬쩍 바라보았다.
시간은 어느새 빠르게 흘러, 1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찬장을 연 그가 두 개의 접시를 꺼냈다. 접시 위로 케이크를 잘라 올린 그는 한 조각은 자신의 앞쪽에, 나머지 한 조각은 사진 앞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턱을 괴고 사진을 바라보다 손가락을 뻗어 툭, 쳤다.
“마음에 안 들어도 참아. 원래 떠난 놈은 불평 같은 거 못하는 법이야.”
그렇게 말하고도, 아키토는 그러고 있는 자신이 웃긴지 피식 웃고말았다.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생크림의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분명 좋은 재료를 썼을 거라 생각되는 단맛에, 아키토가 표정을 찡그렸다. 분명히 기분 좋은 단맛인데도, 그렇게 맛있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 역시 맛없어.”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아키토는 포크로 다시 한번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사진 속에서 미소 짓는 그가 말하던 ‘생일 축하해’ 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네가 있었다면 분명히 그렇게 말해줬겠지.
그거면 충분했다.
그날의 추억은 달콤한 맛이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그랬기에 달디단 이 케이크와 잘 어울렸을 지도 모른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쌉싸름한 그 맛을 곱씹으며, 다시한번 입안의 단맛을 음미했다.
시노노메 아키토는 아직도 그날의 케이크의 맛을 모른다.
지금 이렇게 다시 먹는다고 해서, 그 케이크의 맛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몇 번이든 이 의미없는 짓을 반복하겠지.
취향도 아닌 생크림 케이크를 사고, 그걸 또 입에 넣고선 역시 별로라며 투덜거릴 것이다.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가, 다음에는 더 맛있는 걸 사야겠어. 하고 중얼거릴 것이다.
그 정도 투정은 봐줘, 다 너 때문이잖아.
바보 토우야.
**
▼ 여기서부턴 소설 관련 짧은 이야기 ▼
아키토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잘 지내도 되는 걸까?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잘 지내고 있어요.
주변에서 토우야 이야기를 꺼내기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는데 아키토는 태연하게 토우야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오히려 토우야 이야기를 하면 맞장구도 잘 쳐줍니다.
조금 이상할 정도로, 아키토는 그가 없는 세상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토우야의 기일이 되면 항상 토우야의 아버지와 마주치곤 하는데, 토우야의 아버지는 이제 아키토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키토가 토우야를 찾아오는 걸 말리지 않습니다.
슬픔에 잠기면 쉽게 눈앞의 무언가를 미워하게 됩니다. 원인을 만든 상대가 원망스러워지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미움도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들은 아키토가 토우야를 죽이지 않은 것을 알고 있고, 그가 토우야의 죽음을 너무도 슬퍼하고 있다는 걸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그의 묘에서 마주치게 되면서, 이제 아키토는 토우야의 첫 번째 기일을 토우야의 가족들과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
아키토는 아직도 가끔 생각합니다
그날의 케이크의 맛은 어땠을까.
그날 토우야를 혼자 두지 않았더라면 함께 생일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결국, 아키토만이 아는 그의 두 번째 기일에 그날 나누어 먹지 못한 케이크를 나누어 먹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한풀이에 가깝지 않을까요?
그런다고 해서 그날의 케이크의 맛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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