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자각몽과 악몽
“루이.”
“왜 그러니, 네네?”
“잠깐…….”
“잠깐?”
“같이 밖에 나가 줄 수 있나 해서.”
쿠사나기 네네의 제안에 카미시로 루이는 놀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네네는 이제 더 이상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었다. 이유는 무겁고도 간단했다. 처음으로 주역을 맡은 공연에서 저지른 단 하나의, 단 한 번의 실수가 바로 그것이었다. 네네는 그 앞에서 자신의 심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그 탓에 등교 거부와 은둔형 외톨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생활 리듬을 얻게 되었다. 네네는 꼭 베니싱 현상의 주체가 된 것처럼 점점 옅어져 갔다. 그녀의 발걸음에서 다채로움과 명확한 목적성은 지워져 있었고, 얼마 전까지 열정과 꿈이 가득 담겨 있던 두 눈에는 이제 모니터 너머의 총과 탄알만이 가득했다.
네네의 그런 모습들은 루이의 눈에 상당히 위태롭게 비추어졌다. 진부해 빠진 표현이지만, 책상 모서리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는 유리잔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루이는 매일 같이, 아니, 매일 네네를 찾아갔다. 옥상과 쇼로만 이루어진 자신의 일상에 네네라는 사람을 대입한 것이다.
물론 네네를 상담해 주겠다거나 하는 목적은 아니었다. 루이는 그저 친구의 옆을 지키며 혹시 새어 나올지도 모를 그녀의 감정을 받아 내고 싶었고 그 자신의 마음속에서 쭉쭉 성장해 나가는 불안과 걱정을 희석시키고 싶었다. 실제로 네네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루이가 하는 일이라곤 독서, 게임 관람, 간식 먹기 정도가 전부였다.
루이는 한동안 이런 일상의 반복이 켜켜이 누적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예상보단 확신에 가까웠다.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이런 일상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누적되어 갈 것이라는 그런 확신. 루이가 놀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네네의 갑작스러운 외출 제안은 루이가 품고 있던 확신에 커다란 흠집을 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루이가 네네의 제안을 거절할 만한 사람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애초에 그에겐 친구의 제안을 거절할 마땅한 이유도,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나가 줄 수 있지.”
조용한 방 안에 나지막이 울린 루이의 대답에 네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것이 지금의 그녀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긍정의 표시라는 걸 루이는 네네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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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도 지난 초가을임에도 불구하고 밤공기에는 물쿤 구석이 있었다.
함께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이렇다 할 대화 한 번 나누지 않고 한적한 길거리를 정처 없이, 그리고 하염없이 걷기만 했다. 그것이 대화의 대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루이와 네네는 침묵이라는 안개 속을 헤매고 또 헤맸다.
자동차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두 사람 옆을 지나고 나서야 그들은 안개에서 나올 수 있었다.
“시끄러워.”
네네가 저 멀리 사라져 가는 자동차에 대고 쏘아붙이듯 얘기했다. 우리는 침묵을 찢는 것조차 다른 존재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걸까. 루이는 자신의 입 앞까지 기어 온 그런 감성적인 생각을 혀로 천천히 녹였다. 지금 말해 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얘기라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이는 건조한 맞장구를 입에 담았다.
“그러게. 엔진을 개조했나 봐.”
“엔진 개조……. 왜 하는 건지 모르겠네. 의미가 있나.”
“후후, 글쎄……. 의미 없이 그냥 좋아서 하는 걸지도 모르지.”
“좋아서…….”
네네는 발밑을 바라보며 루이가 꺼낸 표현을 멍한 말투로 곱씹듯 중얼거렸고 루이는 그런 네네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너무나도 투명하게 보이기 때문이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가 하고 있는 예상은 실제로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있었다.
의미를 따지지 않고 그냥 좋아서 한 일.
네네는 그 말에 자신의 과거를 투영해 불온한 감상에 젖어 가고 있었다.
루이는 그것을 멈추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가 속으로 자조적으로 웃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예상할 수 있는데 그 생각을 어떻게 끊어야 할지, 끊어도 되는 게 맞을지, 끊었을 때 네네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고 그 앞에서 자신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그런 것들은 예상할 수 없는 자신이 정말 작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먼저 입을 연 건 네네였다.
“있잖아, 루이.”
“응?”
“놀이터 가고 싶어.”
“놀이터, 라…….”
네네의 말에 루이는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네네가 얘기한 놀이터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그 의미가 지금의 네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눈에 훤히 보인 탓이었다. 그렇다. 회피는 그 나름의 배려였다. 굳이 지금 가야만 하느냐는 질문을 담은 배려.
그러나 네네는 루이와 생각이 달랐다. 굳이 지금이어야만 했다. 그곳을 통해서만이 자신의 진심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머릿속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 기분이 비논리적인 충동인지도 모른 채 네네는 요 최근의 루이가 들어 본 적 없던 단호한, 어찌 보면 고집스러운 말투로 루이가 흐린 말끝을 선명하게 이었다.
“어렸을 때 갔던 곳 있잖아. 루이는 연출을 연습하고 나는 연기를 연습하고 했던 거기.”
“아, 거기…….”
“응, 거기. 가고 싶어.”
단호함과 고집을 넘어선 결연한 말투 앞에서 루이는 마땅한 거절의 대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평소처럼 웃어 보인 뒤 “…후후, 네네가 가고 싶다면 어디든지.” 하고 얘기했다.
루이의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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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는 사람 한 명은커녕 벌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곧장 그네로 가 한 자리씩 앉았다. 어렸을 적에는 이 그네로 등장인물의 극적인 등장을 위한 연출을 구상했었지. 루이는 멍하니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현실이라 그런지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루이는 자각몽이라고 알아?”
옆에서 신발 뒤꿈치로 모래를 푹푹 찌르던 네네가 어둠 속에서 대뜸 그런 질문을 던졌다.
“응.”
“그럼 자각몽에 관한 괴담도 알아?”
“괴담?”
루이는 네네와 같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각몽을 꾸게 되는 원인이라면 모를까 괴담을 찾아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모르겠네. 네네는 뭔가 알고 있니?”
“응. …예를 들어서 내가 자각몽을 꾼다 했을 때 꿈속에서 이거 꿈이네, 하고 생각하거나 얘기하면 꿈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본대.”
“흥미로운 현상이네.”
루이의 대꾸에 네네는 어둠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탓에 그녀의 윤곽은 뿌옜는데 어째서인지 그 고갯짓만큼은 뚜렷하게 보였다.
네네는 왜 갑자기 평소에 하지도 않던 꿈 얘기를 하는 걸까. 루이는 조용히 그런 생각을 시작했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생각을 멈췄다. 마치 깊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처럼 네네가 평소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자신의 얘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때 무대 위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어. 아, 전부 꿈인가 보다. 지독한 악몽 같은 자각몽인가 보다. 내가 그걸 알아차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무대 위와 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나 보다.”
“네네…….”
“그런데 금세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왠지 알아? …아파서, 아파서였어. 공연을 망친 건 내 탓이라는 얘기에 가슴이 아팠고, 나한테 삿대질을 하던 손가락에 찔린 어깨가 너무 아파서였어.”
“네네.”
“아직도 한 번씩 생각해.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꿈인 건 아닐까, 꿈이었으면 좋겠다, 하고. …있잖아, 루이. 꿈속에서 죽으면 눈을 뜰 수 있다는데…….”
“네네!”
루이는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네네는 그것에 적잖이 놀랐는지 숨을 한 번 들이 삼키는 소리를 내며 제 얘기를 끊었다. 서로가 있을 때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감정과 분위기로 만들어진 어색한 적요 속에 두 사람은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먼저 고민을 끝낸 건 루이였다. 그는 그네에서 일어나 네네의 앞으로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그러자 네네의 얼굴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살려 달라는 얼굴로 죽음을 얘기하다니. 네네, 아직 이쪽 연기는 서투르네. 다행이야. 그런 얘기들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루이는 팔을 뻗어 네네의 손을 잡았다. 생각보다 더 차가웠다.
“큰소리 내서 미안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네네가 내 얘기를 안 들을 것 같았어.”
“응……. 괜찮아.”
“고마워. ……혹시 뭐 하나만 물어봐도 괜찮을까?”
“…뭔데?”
“만약 이곳이 꿈이어서 깰 수 있다면 네네는 뭘 가장 하고 싶어?”
루이의 물음에 네네는 고개를 숙였다. 마음속의 진심을 찾는 것일까, 아니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대답을 찾는 것일까. 루이는 네네가 둘 중 어느 쪽의 것을 입에 담을지 내심 짐작하면서도 다른 쪽을 골라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내려놓지 않았다.
아니, 기대라는 표현은 너무 순화된 단어였다.
루이의 기대는 그녀가 지금 얼마나 큰 고통을 껴안고 있는지 앎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기회’ 같은 소리를 이유 삼아 ‘기대’라는 환상을 덧씌운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 루이의 마음은 부모의 어긋난 마음과 꼭 닮아 있었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어 무대가 아닌 곳을 무대로 삼고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으로 삼아 쇼를 계속해 나가는, 여러 의미에서 실패해 버린 자신과는 다른 길을 걷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정체였다.
그러나 루이는 그것을 깨달을 재간이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애초에 자신의 마음의 정체가 기대 따위가 아니라 어그러진 사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그는 질문 자체를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네네는 그것을 깨달았다. 아니, 알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호의 속에 감추어져 있는 아주 미세한 흠집 하나를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루이를 모르지 않았다. 물론 그 흠집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심지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것을 사명으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래서 네네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겠어.”
네네의 대답에 루이는 아쉽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는 그 무지가 애처로웠다.
기왕이면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꿈을 이루고 싶었다. 함께 무대를 꾸며 나가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힘차게, 당당하게, 신나게, 그리고 아름답게. 허나 적어도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다. 네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현실이 준비해 둔 상황이라는 싸구려 같은 극 속에서 허우적거리기에 바쁜 자신과 친구의 모습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 우리가 세상으로 나아간다니,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뭘까.
“네네가 모르는 걸 알게 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
네네의 속을 알 리 없는 루이가 그렇게 얘기했다. 네네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별 다른 의미를 담지 않은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평소처럼 진심을 조금이라도 담기엔 네네의 머릿속은 너무나도 바빴다.
네네는 루이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런 네네의 눈빛을 루이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는 눈빛이라고 해석했고 그것은 정답이었다.
“왜 그러니, 네네?”
“루이, 나도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그럼 당연하지.”
“루이는 죽고 싶을 때 있어?”
네네의 물음에 루이는 일순 표정을 잃었다. 이번엔 그가 고개를 숙일 차례였다.
아까 전의 네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루이는 무심코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이 한 번 방향을 잡고 흐르기 시작하니 그의 마음속에서 미안함이 솟구쳤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무슨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다 알고 있는 사람에게 듣는 굳이 싶은 질문은 이렇게나 아프구나. 애꿎은 모래밭을 내려다보며 루이는 제 행동을 곱씹었다.
미안한 마음을 느끼고 있는 건 네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게 미래로 향해 있던 시선을 발밑이나 서로를 향하게끔 조정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네네 혼자서 내린 결론일 뿐 루이의 결론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신들에게 있어 과도한 위로는 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였다.
네네의 질문은 시간을 길게 끌면 이상한 오해를 받을 만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루이는 금방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아까와 똑같은 태연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르겠어.”
루이의 대답에 네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같이 있어 주겠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루이가 자신의 옆에 있어 준다면 자신도 그의 옆에 있게 되니 구태여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네네의 속을 알 리 없는 루이는 저도 모르게 아주 조금 상처 받은 표정을 했다.
악몽 같은 순간이네.
신기하게도,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두 사람은 동시에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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