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카나마후

마후유가 돌아오는 꿈을 꾸곤 했다. 

마후유가 활동을 그만둔 지 얼마 안 된 시점에는 같이 작업을 하는 꿈을 꿨다. 나이트코드로 주고받는 연락마저 조금 뜸해질 시점에는 세카이에서 만나는 꿈을 꿨다. 미야마스자카의 기말 시험이 가까워져, 호나미나 이치카로부터 소식만 겨우 전해 들을 때 쯤에는 메일을 받는 꿈을 꿨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둘로부터 들려오는 소식마저 끊겼을 때에는 길을 걷다 스쳐 지나가는 꿈을 꿨다.

꿈의 내용은 조금씩 달랐다. 마후유는 평소처럼 굳은 얼굴이기도, 웃고 있기도, 아주 가끔은 울고 있기도 했다. 교복을 입고 있기도, 셔츠에 헐렁한 바지 차림이기도, 가끔은 다 찢어지거나 오물로 범벅이 된 옷을 입은 채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든 결말은 항상 동일했다. 마후유는 언제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어떤 음악으로도 붙잡히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러고 나면 카나데는 눈을 떴다. 기분 나쁜 꿈이었다.

"카나데는 잠을 거의 안 자잖아.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생각해. 곡을 효율적으로 만들려면 가끔은 자는 게 좋아."

몸도 상할 거고. 스피커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평탄했다. 그러나 단어 사이사이에서 그 애가 신경써서 말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두 달간 연락이 끊겼다. 마지막 대화라기에는 너무 일상적이었다. 그 이후로 카나데는 전처럼 막무가내로 밤을 새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그 잠깐의 휴식마저 일주일에 한두 번은 꿈에게 방해받곤 했다. 

똑.

똑똑똑.

의자에 앉아 선잠에 든 카나데가 눈을 떴다. 오밤중의 노크 소리. 마후유가 활동을 그만둔 지 얼마 안 됐던 때에는 몇 번 꾸었던 꿈이었다. 그 애가 어디론가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 도피처가 되어주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더 이상은 아니었다. 이제 카나데는 마후유가 계속 이곳에 살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카나데는 뻑뻑한 눈을 비비고는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피곤했다. 마후유가 없더라도 계속 곡은 만들어야 했다. 가사를 쓰고 미묘한 소리들을 조율해줄 사람이 없더라도. 더 이상 곡이 마후유의 이름을 딴 폴더에 차곡차곡 쌓여 가지 않더라도. 그것이 카나데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러려면 몇 시간이라도 눈을 붙여야 했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상하다, 보통 이쯤 되면 깨는데. 위화감을 느낀 카나데가 휴대폰을 바라봤다. 화면에 띠링, 하고 나이트코드 메시지가 떴다. 닉네임 유키. 두 달만에 보는 이름이었다.

- K, 집에 있어?

카나데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바닥 어딘가에 위태롭게 쌓여 있던 에너지 드링크 캔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방문을 열고 현관까지 가는 그 짧은 사이에 두 번이나 넘어질 뻔 했다.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밖에서 오래 기다렸는지 코끝이 빨개진 그 얼굴이 입을 열었다. 카나데, 있었구나.

마후유가, 정말로 돌아왔다.

"가출했어."

담담한 목소리였다. 두 눈은 언제나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평소 같은 태도여서 오히려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카나데는 손등을 가볍게 꼬집어 보았다. 얼얼했다.

"부모님이 여행을 가셨거든. 공부하겠다고 집에 혼자 남았는데,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마후유는 급하게 나온 듯 책가방 하나만을 메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도저히 거기 혼자 있을 수가 없었어. 그렇게 말하는 마후유는 무서워하고 있는 듯했다. 정확히 무엇이 무서운지는 몰라도 그 사실 하나만은 확실했다.

"일주일만 재워 줄 수 있어?"

어떤 말을 듣든 침착하자고 다짐은 했었다. 그러나 막상 그 말을 들으니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집에 마후유가 지낼 만한 공간이 있나? 내가 마후유에게 제대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이렇게 나와 버려도 마후유는 괜찮은 건가? 수만 가지 물음이 머리를 채웠다. 그 중 무엇 하나 제대로 대답하기도 전에 카나데는 마후유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그 감각에 현실감이 서서히 돌아왔다.

"...춥겠다. 일단 들어올래?"

마후유를 안으로 들이고 현관문을 닫았다. 방 바닥에 널린 악보와 컵라면 박스를 대충 여기저기로 밀어넣었다. 그러고 나니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는 모니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잠들기 직전까지 작업하고 있던 곡이었다. 여러 사운드가 켜켜히 쌓여 있었다. 그 중 대부분은 노이즈였다.

카나데의 곡에는 언제나 마후유가 조금씩 녹아 있었다. 더 이상 마후유에게 곡을 전하지 못할 때조차 그랬다. 작업 중이던 곡은 마후유의 편곡을 닮아 있었다. 마후유는 카나데의 곡에 여러 노이즈를 넣고, 소리를 조정해 튀는 부분들을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마후유의 편곡은 언제나 호소하는 것 같았다. 카나데가 곡에 담은 의미들은 마냥 부드럽지 않은 소리를 거쳐 더 분명하게 흘러나왔다.

마후유 역시 그랬다. 노이즈 같은 사람이었다. 카나데의 인생에 갑자기 나타난 불가해의 존재였다. 무슨 생각을 했어? 무엇을 느꼈어? 지금은 어때? 수 백번의 질문 중 대부분의 대답은 공백이었고 남은 몇 개의 대답조차 카나데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 가족, 따뜻함, 모든 것이 카나데와는 달랐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깨달아 가며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자마자 마후유는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가장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비좁은 방 한켠에 기대어 서서 카나데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모든 행동이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그리고 카나데는 곡에서 그런 부분을 가장 사랑했다. 

"자세한 건 천천히 얘기해도 괜찮으니까... 일단 편하게 쉬어."

카나데는 의자 위에 걸쳐진 담요를 건넸다. 그게 카나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었다.

"여기서 지내는 건 얼마든지 괜찮지만... 조금 불편할 거야. 작업하느라 생활 면에는 별로 신경을 못 써서..."

"그런 건 괜찮아."

어디든 집보다는 훨씬 나아. 그렇게 말하며 마후유는 카나데 옆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책가방을 열자 옷 몇 벌과 생활용품, 문제집과 낡은 노트 한 권이 나왔다. 기말시험 전까지는 가사도 몇 번 썼었어. 컴퓨터를 뺏겨서 어디에 올리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마후유는 노트를 펼쳐 흐릿하게 적힌 가사들을 보여주었다. 전부 처음 보는 것들이었고 급하게 썼는지 쓰다가 지워 버린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호소력 있는 가사였다. 단어 하나하나가 마후유다웠다. 익숙한 색채의 문장들을 보자 긴장이 풀렸다. 카나데는 노크 소리가 들린 뒤 처음으로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예전에는 자주 보지 못했던 감정 하나를 눈치챌 수 있었다. 외로움. 가사의 문장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손을 쭉 뻗고 있었다. 한 번 알아 버린 이상 계속해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정체 모를 따스함을 향해.

일주일 동안 할 일도 할 말도 아주 많았지만 지금은 일단 그 가사로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가족이니 미래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 가사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었다. 마후유, 이 가사로 곡을 써도 괜찮을까? 카나데가 마후유를 똑바로 바라봤다. 마후유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새로 쓰고 싶어."

쓴지 꽤 된 가사야. 원래는 나이트코드 채팅으로 보낼까 생각도 했었어. 하지만 막상 보내려니 보내지를 못하겠더라. 그런 생각이 든 이유가 있어? 잘 모르겠어.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어. 마후유는 그렇게 말하곤 노트를 덮었다. 낡은 표지의 노트가 얌전히 바닥 위에 놓였다.

"이걸 썼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 지금 나는 카나데랑 있으니까."

카나데는 응, 하고 작게 대답했다. 말 뜻을 알 것도 같았다. 확실히 도망쳐 나온 마후유와 그렇지 않은 마후유는 조금은 다른 사람일 것이다. 조금은 다른 가사를 쓸 것이다. 전의 가사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카나데 역시 새 가사로 곡을 쓰고 싶었다. 

"가사 쓰는 거 말고, 여기서 더 하고 싶은 건 없어?"

"딱히..."

아, 학원은 가야 해. 의심 사고 싶지 않으니까... 그 말에 카나데가 쓰게 웃었다. 나이트코드로도 연락이 오지 않았던 걸 보면 연락마저 막았거나 수험 때문에 정말 바빴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중 어떤 것이 사실이었건, 일주일 간 모든 것을 버리고 유키로만 살아가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닐 터였다.

"그래도 남는 시간에는... 천천히 생각해 볼게."

카나데가 웃었다. 애매모호한 대답이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일주일 후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해 보고 싶었다. 같이 곡을 쓰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마후유가 다시 돌아가서도 아주 힘들지는 않을 만큼 무언가를 쥐여 주고 싶었다.

"지금은?"

"지금은... 좀 잘래."

마후유가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 긴장이 풀리니 잠이 오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카나데는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쌓인 악보들을 치우고 구겨진 이불을 정리했다. 예전보다 많이 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작업을 하다가 의자 위에서 잠들어 버리는 빈도가 높다 보니 침대가 영 엉망이었다.

"미안, 방이 좀 어지럽지... 여기서 자면 돼."

"카나데는?"

"아직 작업이 조금 남아서..."

"같이 자."

마후유가 카나데를 빤히 바라봤다. 카나데는 슬금슬금 그 시선을 피했다. 별로 졸리진 않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가는 마후유가 어제는 몇 시에 잤느냐고 물을 것만 같았다.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하던 것만 끝내고."

카나데는 효과 몇 가지를 더 집어넣고 파일을 저장했다. 마후유가 침대에 가만히 앉아 카나데를 기다렸다. 카나데를 바라보는 시선이 끈질겼다. 어린애가 투정을 부리듯 침대를 탁탁 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수정을 하려다, 결국 그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누웠다. 요즘 잠을 잘 못 잤어. 자꾸 악몽을 꿔서... 카나데랑 있으면 조금 잠이 올 것 같아. 그 말을 듣자 정말로 꼼짝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있어야 했다.

마후유, 잘 자. 카나데도. 실없는 인사를 주고받고 이불을 덮으니 조금은 졸린 것도 같았다.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카나데는 얌전히 두 눈을 감았다. 어둠 너머로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악몽을 꾼다고 했었지. 너 역시 돌아오는 꿈을 꿀까. 매번 같은 결말에 다시 잠들지 못한 채 답답한 기분으로 밤을 지새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카나데는 이불 속에서 마후유의 손을 잡았다. 으음, 하는 소리가 나더니 마후유가 손을 맞잡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보다 조금 높은 체온이 편안했다.

단 일주일만이라도 좋은 꿈을 꾸기를.  둘 중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카나데는 그렇게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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