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미즈

너의 밤을 줘. -Another-

전 글의 미즈키 시점

 *두 사람이 성인이 된 시점입니다.

 *전 글의 번외격 글입니다. 이 글을 읽지 않으셔도 전 글을 이해하는 데에 큰 무리는 없으나, 이 글을 원활히 이해하시기 위해서는 전 글을 읽으시는 게 좋습니다.

 

 후, 하고 얕은 숨을 내뱉자 희뿌연 입김이 사뿐히 허공에 번져 나갔다. 눈 한 번 깜빡인 틈에 자취를 감춰 버린 입김이 어딘가 나처럼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덕분에 괜스레 술렁거리던 마음이 진정되었다.

 여기를 찾아온 게 얼마 만이지. 눈앞에 있는 익숙한 출입문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자문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몰라서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내가 여기를 얼마 만에 찾아온 건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단지 3년이 지나도 찾아오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했는데 고작 3개월 만에 돌아오게 된 스스로를 꾸짖고 싶었기에 감정적으로 내뱉은 질문이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딩동, 하고 맑고 투명한 소리가 문 너머에서부터 들려왔다. 이 두근거림은 오랜만에 하는 재회에 대한 설렘 때문일까, 아니면 나를 향하는 시선이 몇 달 만에 바뀌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버릇 같은 불안 때문일까? 어쩌면 양쪽 모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익숙한 출입문이 내 쪽으로 움직이면서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호~. 자고 있던 건 아니지, 루이?”

 “미즈키……?”

 

 내가 그가 익숙한 만큼 분명 그도 내가 익숙할 텐데, 카미시로 루이는 마치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생물을 발견한 학자처럼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나를 내려다봤다. 아,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놀라네. 나는 일부러 조금 더 장난기 서린 말투로 “내가 여기에 온 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누가 보면 귀신이라도 본 줄 알겠어.” 하고 얘기하며 루이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봤던 세 달 전과 비교했을 때 루이는 달라진 게 없었다. 아무렇게나 넘겨 머리핀으로 고정시켜 둔 보랏빛 머리칼, 괴상망측하다는 표현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옷차림, 은은하게 퍼져 나와 코끝을 간질이는 샴푸의 향까지 전부 똑같았다.

 장난기 가득한 말투와 웃음에도 불구하고 루이는 여전히 표정을 굳힌 채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오랜만에 나를 본 루이의 반응은 확실히 내 예상을 웃도는 것이었지만 이 침묵은 예상 범위 안이었다. 그 덕에 나는 장난기를 싹 뺀 말투로 “그건 그렇고 들어가도 돼? 나 지금 꽤 추운데.” 하고 얘기하며 투명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루이는 내 말에 “당연하지.” 하고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이렇게까지 동요하는 루이를 본 게 언제였더라. 알고 지낸 지난 7년을 머릿속에서 되짚으며 나는 루이의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코트를 벗으며 집 안을 둘러봤다. 아, 역시 이럴 줄 알았지. 아니지, 오히려 좋다. 내가 이곳에 찾아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루이는 아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이런 일상들을 통해 그것의 언급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면 뭐든 간에 내 입장에선 환영이다.

 나는 세 달 전에 있었던 루이네 집들이 때 안이랑 남동생 군과 함께 나눴던 ‘루이의 집은 언제까지 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와 그 결론을 떠올리며 루이를 바라봤다.

 

 “실례합니다…… 랄까, 루이. 집들이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응? 뭘 말이니?”

 “진짜로 반년도 안 되어서 이렇게까지 어지럽혀진 모습을 보니까 새삼 경이롭네~.”

 

 도대체 뭐가 적혀 있는지 알 수 없는 온갖 종이 뭉치들과 사용 방법이 어떻게 되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공구들, 싱크대에 방치되어 있는 설거지 더미와 탁자 위에 뚜껑이 열린 채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반찬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웃었다.

 

 “그렇게 얘기하다니 섭섭한걸, 미즈키. 어지럽혀진 게 아니라 아직 정리를 시작하지 않은 건데.”

 “애니메이션에서 꼭 방을 어지럽히는 꼬맹이 캐릭터가 그렇게 대답하는 거 알아? 루이도 어쩔 수 없는 애라니까, 정말~.”

 “후후, 꼭 네네 같은 얘기를 하는구나. 그럼, 아이 같은 나를 위해 정리를 도와주는 건 어때?”

 “설마 손님한테 청소를 시킬 줄이야! …뭐, 도와줄 생각이었지만.”

 

 종이 뭉치랑 공구들은 내가 정리하는 것보다 루이가 정리하는 게 훨씬 더 효율이 좋겠다 싶어서 나는 그대로 식탁으로 가 플라스틱 용기들의 뚜껑을 닫기 시작했다.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루이는 자연스레 바닥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종이 뭉치들과 공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일부러 평온한 일상을 꺼내 입에 담았다.

 

 “이거 루이네 어머니가 해 주신 거야?”

 “아니, 네네가 가져다준 거야.”

 “친구가 해 준 반찬을 이렇게 방치했다고?!”

 “방치가 아니라 보류라고 해 주겠니?”

 “뭔 차이인지 전혀 모르겠어…….”

 

 분명 떠오르는 생각도 많을 거고 그만큼 하고 싶은 말도 많을 텐데, 루이는 군말 없이 내가 만들어 낸 흐름에 기꺼이 타 줬다. 그 배려와 선의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미소를 흘릴 수 있었다.

 

 ---

 

 루이에게 실질적인 의미에서 절연을 선언하고 집을 나선 나는, 그의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머릿속에서 곱씹으며 “그걸 루이가 얘기하다니. ……하하, 진짜 웃기네.” 하고 힘없이 웃으며 자조적인 문장을 중얼거렸다.

 있을 수 있는 장소. 그건 중학생이었을 때의 루이와 내가 잔잔하고 절절하게 찾아 헤매던 것이고, 동시에 고등학생이었을 때의 루이가 찾아내 성인이 된 지금까지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하며, 또 동시에 아직까지 내가 찾아 헤매는 것이기도 하다.

 아니……. 잘 생각해 보면 찾아 헤맸다는 말을 쓸 정도로 유동적이진 않았다.

 ‘찾아 헤맸다’는 식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은 에나랑 마후유, 카나데한테 더 잘 어울린다. 자신이 원하는 게 확실히 있고,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힘과 열성을 다해 싸워 왔으니까. 어차피, 결국, 다시, 그래,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자포자기라는 표현이 사치스럽다고 느껴지는 말만을 반복하며, 오늘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는 허울 좋은 변명을 방패로 삼아 미래로부터 눈을 돌린 채 살아온 나에게 그들과 같은 표현을 쓰는 건 너무 미안한 짓이다.

 그리고 이건 루이에게도 동일하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이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쏟았다. 자신을 고독으로 몰고 간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한 연출과 해박하게 가지고 있던 공학적 지식들을 활용해 로봇들과 함께 쇼를 선보이고,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외로움이 밀려올 때면 늘 들고 다니던 노트를 펼쳐 자신만의 세상에 몰두하며 그 스스로가 얘기한 희곡처럼 언제 올지 모를 사람을, 어떤 의미에선 빛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노력은 결실을 맺어,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단의 연출가로서 종횡무진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습게도 이 두 그룹 앞에서 같은 태도와 감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나이트코드 멤버들의 피나는 노력은 온 힘을 다해 응원할 수 있었다. 그들을 볼 때면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이 언젠가 결실을 맺길 바라는 마음과 이미 맺힌 결실이 쭉 이어져 나가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지곤 했다. 아니, 사실 안 그런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루이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그에게 가지는 감정은 멤버들과 확연히 달랐다. 잘됐다는 생각이 없던 것도 아니었고,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옥상을 찾지 않는 루이의 모습에 선명히 표현하기 힘든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 뒤부터 그를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것을 자각한 뒤로 약 5년 동안 나는 어째서 이런 마음이 생긴 것인가에 대해 줄곧 자문해 왔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처음으로 이해해 준 가족 이외의 사람의 밝은 현재를 응원해 주지 못하는 걸까? 그런 자기 비하의 목적을 쏙 뺀 순수한 의문의 반복이 알려 준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루이였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옥상에서 내려간 루이의 뒷모습에 대한 질투에 더해 그에게 더 이상 내가 유일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질투였다.

 웃긴 일이었다. 전자는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후자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선배를 짝사랑하는 사춘기 학생도 아니고, 친구이자 동료를 상대로 이게 무슨 파렴치한 생각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앞서 생각한 의문의 해답이 된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왜 나는 루이처럼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헤매지 않았는가?

 아주 간단명료하다. 루이가 내게 있어 있을 수 있는 장소였으니까.

 극단적인 생활 패턴의 차이와 국가 간 시차로 인해 가족들과 이렇다 할 교류를 나누지 못하는 내게 루이는 유일한 도피처이자 숨을 쉴 수 있는 장소였다. 루이가 중학교를 졸업하기 얼마 전에 혼자 떠올렸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옥상이 아니라 옥상에 있는 사람을 찾은 걸지도 모르겠네.’ 하는 생각과 견디기 힘든 밤이 올 때면 누구보다 먼저 루이를 떠올리고 그에게 연락하는 내 버릇을 보면 분명 그렇다. 오만한 생각으로는 루이 또한 지금의 동료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 문제는 그가 동료들을 만난 것이었다. 내 전용이었던 루이라는 사람과 그의 공간에 다른 사람들의 손과 발이 닿고, 때가 묻고, 향이 섞이고 하는 것을, 그리고 루이가 그것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아니, 오히려 좋다는 듯이 짓는 그 표정을 나는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루이를 막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명분도 없었을 뿐더러, 이제 와서야 이렇게 정리해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이지 당시엔 그저 감정 덩어리에 불과했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루이는 점차 옥상에서부터 멀어져 갔다. 그리고 그것은 곧, 옥상에서 내려가지 못하는 나로부터 멀어져 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있을 수 있는 장소가 멋대로 나를 떠났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이란 말인가. 나는 스스로의 어지러운 이기심에 그대로 잠을 설쳤고, 아침이 밝아 오는 새벽에 루이와 연을 끊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미 내 곁을 떠난 걸 혼자 붙잡고 있는 것도 뭐했고, 내 이기적인 마음을 언제까지고 가지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무엇보다 언젠가는 루이를 진심을 다해 응원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게 있어 있을 수 있는 장소였던 루이가 “꼭, 미즈키가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줘.” 같은 얘기를 한 것이다. 나한테 있어서 그건 너였어, 루이. 알아? 먼저 나를, 옥상을 떠난 건 너란 말이야. 그런데 왜 그런 얼굴로 그런 소리를 해? 입 안까지 차올라 빙글빙글 맴돌던 그런 얘기를 최대한 누르고 거른 뒤에야 그 얘기를 루이가 하는 거냐는 대꾸를 할 수 있었다.

 오늘따라 밤하늘은 유난히 새카맸고 선명했다.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처럼 눈물이라도 흐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속이 시원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아, 진짜…….”

 

 갑작스럽게 솟구치는 뭔지 모를 감정에 나는 뒷머리를 조금 세게 긁었다. 루이만 연관되었다 하면 항상 이렇다. 생각한 적도 없는 부분에서 생각한 적도 없는 감정이 튀어나와 머릿속과 마음속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뒤집힌다. 차라리 이 마음이 남들이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설레는 감정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아서 답답하기만 하다.

 아니지, 아니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른 곳으로 빠지려 하는 정신을 되돌렸다. 절연을 선택한 이유가 이런 감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였잖아, 미즈키. 루이 집에서 나오고 삼십 분은커녕 십 분도 안 지났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흔들리면 어떡해.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고 꾸짖으며 발걸음을 재촉해 그의 집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어쩐지 뒤쪽에서 루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루이는 워낙 상냥하니까 있을 법한 얘기였다.

 하지만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상냥하지 않으니까, 하는 어딘가 낭만적인 생각도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뒤를 도는 그 순간에 나의 결심이 무너질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무서운 생각이 더 큰 이유였다. 루이에게 있어 더 이상 내가 유일하지 않다는 걸 알아서 뒤를 돈 건데도 불구하고, 그가 나를 향해 다시금 팔을 벌리면 주저 없이 달려 나가 그 안락한 품에 안길 것 같은 아이러니하고 연약한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짙게 남아 있었으니까.

 아무리 소설 같은 감정을 통해 영화와 같은 이별을 했다 해도, 궁극적으로 현실과 허구는 달라서 그런지 하늘에서 비가 내리진 않았다.

 그리고 역시, 끝까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

 

 어지럽혀져 있던 집 안을 어느 정도 정리한 뒤, 루이와 나는 누가 먼저 얘기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식탁 쪽으로 가 마주 앉았다. 세 달 만에 마주 보는 그의 얼굴에 스며들어 있는 주저와 눈에 깃들어 있는 온갖 인사말들이 너무나도 투명하게 보였다. 이렇게나 알기 쉬운 사람이 되었구나. 긍정과 부정 그 사이에 위치해 있을 것만 같은 애매하게 미적지근한 감상이 고장 난 네온사인처럼 머릿속에서 껌뻑거렸다.

 

 “어쨌든 손님으로 온 건데 마실 것도 안 내 주는 거야?”

 

 보다 못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또 다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루이와 내가 아무리 침묵이 편안한 관계라고는 해도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침묵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손님이 온 게 너무 오랜만이라……. 조금만 기다려 줘. 혹시 마시고 싶은 게 있니?”

 

 내 얘기에 루이는 그제야 몸을 일으키며 내게 질문을 던져 왔다.

 

 “으음. 혀가 아릴 정도로 단 거였으면 좋겠다 싶은데.”

 “단 거라……. 마침 라무네 맛 라떼를 개발했는데 시음해 볼래?”

 “내가 츠카사 선배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루이…….”

 “조금은 아쉽네.”

 “에~, 아쉬운 거야? 여기에 앉아 있는 게 내가 아니라 츠카사 선배였으면 좋겠다거나? 막 이래~.”

 “…후후.”

 

 농담으로 던진 내 마지막 말에 대한 루이의 반응이 두 박자 정도 늦었다. 또 뭔가 안 좋은 생각을 찾아냈구나,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루이는 예전부터 한 번씩 그래 왔었다. 그냥 지나갈 수 있을 법한 얘기 속에서도 부정적인 무언가를 찾아내 그것으로 스스로를 상처 입히곤 했다. 지금 동료들을 만나고 좀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역시 세 살 버릇은 여든까지 가는 법인가 보다.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 하나. 세 달이라는 기간의 공백이 알고 지낸 몇 년의 기록을 지워 버린 것처럼 느껴져 이렇다 할 위로 한마디 꺼내기가 힘들었다. 인사말을 고민하던 루이처럼 위로의 말을 고민하는 내 앞에 핫 초코와 작은 스푼이 내밀어진 것은 대화가 끊어지고 몇 초 지나지 않아서였다.

 

 “루이, 나 고양이 혀인 거 잊은 거야? 몇 달 안 되었는데 너무하네~.”

 

 결국 마땅한 말을 떠올리지 못한 나는 루이가 준비한 장면 전환에 편승해 새로운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루이는 이런 내 생각과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분명 모를 테지만) 방금 전과 엇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이쪽을 바라봤다.

 이 타이밍에 내 쪽에서 다른 주제를 꺼내는 것도 좀 부자연스러운데. 나는 핫 초코를 내려다보고 그것에 대고 후후, 하고 바람을 불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윽고 루이가 차분한, 아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툭 던지듯 이렇게 한마디를 꺼냈다.

 

 “잊었을 리가 있겠니.”

 

 그 말에 나는 핫 초코를 식히는 걸 멈추고 루이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에게 향하고 있는 내 눈에 어떤 종류의 생각과 감정이 섞여 들어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평소처럼 머리와 가슴에 피어나는 관념과 감각들을 걸러 내어 어떤 태도를 내보일지 고를 새도 없이, 꼭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역시는 역시였다. 하긴, 루이가 아니라 그 누구여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루이와 거리를 두겠다고 선언했으며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찾아보겠다고 얘기한 내가 이곳에 있는 게 가리키는 사실은 애석하게도 단 하나뿐이다.

 나는 실패했다.

 있을 수 있는 장소 같은 건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을 잃는 게 두려워 나이트코드 멤버들에게 나에 대한 얘기를 하지 못했고, 그래서 잃어도 될 것 같은 사람을 만들면 될까 싶어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으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이곳에 찾아오기 며칠 전에는 아예 랜덤 통화 매칭 어플로 사람을 찾아다니기까지 했지만 그마저도 수포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지난 세 달 동안 내 뇌와 심장에서 루이를 지워 내지 못했다. 너무나 힘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밤에, 일상 속에서 답답한 무언가가 가슴속에 가득 차올라 흘러넘칠 때에,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사무치게 외로울 때에, 계속해서 나는 루이를 떠올렸다.

 그래서 결국 이곳에 돌아오기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루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사고가 도달하고 나니 머릿속이 차분해졌다. 긍정적인 의미인가 하면 결단코 그렇지 않았다. 이 감각은 이렇게 된 거 그냥, 같은 식의 극단적인 끝을 생각하게 될 때에만 번지는 것이었으니까. 뭐, 어떤 의미에선 긍정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 상태를 짐작한 건지 아니면 그답지 않은 충동의 탓인 건지, 루이가 갑작스럽게 미즈키, 하고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것이 일종의 방아쇠가 된 것처럼 내가 왜 부르느냐고 묻기도 전에, 그럴 틈도 주지 않고 그는 계속해서 내 이름을 그 입에 담았다. 루이는 자신의 물기에 젖어 가는 목소리와 표정에 가득한 애통함을 추스를 생각도 없는지 본인의 감정을 온갖 방법으로 표현하며 나를 계속해서 불렀다.

 눈앞에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동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입 밖으로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는 건 동정의 눈길 따위가 아니라고, 멋대로 내 처지를 재단하고 그 틀에 나를 끼워 넣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함부로 동정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 나의 유일한 이해자.

 내가 친애하는 루이였다.

 

 “루이…….”

 

 거기까지 사고가 도달하자 내 입에서는 자연스레 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중학생 때의 우리가 신을 기다린 날, 루이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나는 신을 기다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신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신이라는 가늠할 길 없는 거대한 존재보다 더 선명하고 확실한 존재가, 내게 있어 신(神)을 대신(代)하는 종류(類)의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루이는 빛에 가까운 존재였다.

 우연이라는 탈을 쓰고 나타나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 준 첫 사람.

 연애적인 의미가 아닌, 친애적인 의미에서의 첫사랑.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시간도, 계절도, 사물도, 사람도, 감정도 전부.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신을 대신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진짜 신 정도겠지. 그리고 루이는 신을 대신할 수 있어도 신은 아니었다. 애초에 신을 대신하네 어쩌네 하는 것도 나의 입장일 뿐, 그에게 그럴 생각이 없다는 건 그 누구보다, 어찌 보면 루이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아, 이렇게 놓고 보니 나는 그에게 참 미안한 짓을 했다. 남이 멋대로 나를 재단하는 것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정작 나는 루이를 멋대로 재단한 뒤 내가 만든 틀에 가두어 놓은 것이다. 그래 놓고 그의 긍정적인 변화에 질투라는 삿된 감정을 품고 거리를 두겠다며 일방적인 선언까지 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루이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이기적으로만 굴었구나 싶다.

 둘밖에 없는 공간에서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그러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처럼. 마치, 눈앞에 있는 서로가 아닌 다른 서로를 그리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찾아 헤맨다는 적극적인 표현을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애처롭게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먼저 입술을 멈춘 건 루이였다. 물기에 젖어 가던 목소리가 끝내 목을 막았는지 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눈물을 흘렸다. 루이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웃는 건 자주 봤어도 눈물을 주룩주룩 쏟아 내는 건 처음 봤다. 그 신선한 모습에 놀랄 만도 한데, 내 입과 얼굴은 이렇다 할 변화를 드러내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호명을 계속하기만 했다.

 루이가 손을 움직이더니 내 손을 잡고는 손등을 제 엄지로 문질렀다. 손등을 타고 그의 미세한 떨림이 전해져 왔고, 그것이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찌릿, 하는 미약한 충격으로 다다랐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호명을 멈췄다.

 나는 옥상과 고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처음 만났던 그날의 옥상이 정말로 하나의 추억 이야기로써, 과거의 한 장면으로써 남길 바랐다. 그땐 정말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니까, 같은 속 편한 한마디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게 되길 바랐다. 그리고 그런 식의 대화를 그 누구보다 루이와 나누고 싶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건 곧 우리가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왜. 어째서.

 생각의 연쇄가 시작되려는 것을 고의적으로 끊기 위해 나는 루이의 손을 맞잡았다.

 그 다음에 이어진 것은,

 

 “루이. …너의 밤을 줘.”

 

 너무나도 큰 슬픔을 껴안고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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