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변
아사히나 모녀
장례식장은 추웠다.
어머니는 꽤 발이 넓은 사람이었고 그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마후유의 몫이었다. 마후유는 냉기가 도는 바닥 위를 바삐 돌아다녔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인사를 나눈 뒤 다과를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얼어붙을 것 같았다. 두 발이 어머니의 영정사진 앞에 영영 묶여 버릴 것 같았다.
"안쓰러워라..."
향수 냄새가 나는 손이 마후유의 등을 토닥였다. 어머니와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었다. 의대 입시 자료도 저 분한테 받아왔다고 했었나. 마후유가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 속의 그 여자는 꽤 친절한 사람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마후유는 그게 불편해 견딜 수가 없었다.
여자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운다고 착각한 걸까. 마후유는 울고 있지 않았다. 떨고 있었다. 덜덜 떨며 몸 안쪽부터 기어오르는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마후유는 손수건을 받아 건조한 눈가를 문질렀다. 이럴 때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알 수 없었다. 그런 것을 알려 줄 어머니는 이제 없었다. 마후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정도면 자연스러우리라.
차가운 손이 어깨 위를 감쌌다. 마후유, 가서 좀 쉬거라.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마후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쪽 방으로 향하는 마후유를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추웠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을 타고 냉기가 올라왔다. 그대로 가라앉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마후유는 방문을 열었다.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면 다시 학교에 가야 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엄마는 마후유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눈을 감게 직전,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바란 그 미래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이제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부정할 수는 없었다. 마후유는 너무 많은 것을 깨달아 버렸다. 그렇대도 이제 마후유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다시 학교에 가야겠지. 어머니가 없는 생활에도 적응해야 할 거고. 챙겨줄 사람이 없으니 공부 방법도 조금 조정해야겠네. 문득 자신의 노트북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방 어딘가에는 자신의 노트북이 있을 것이다. 마후유는 그 생각을 빠르게 지워 버렸다. 지금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됐다. 스스로에게 구역질이 났다. 잠시 잊고 있던 오한이 다시 다리 위로 기어올라왔다.
마후유, 사랑해.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제서야 눈물이 흘렀다. 슬픈 걸까. 죄책감일까. 무엇 하나 알 수 없어 마후유는 소리를 죽이는 것에만 집중했다.
"다녀왔습니다."
습관적으로 내뱉은 인사가 황망하게 집 안을 떠돌았다. 아직 어머니의 짐을 치우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집은 두 명이 살기에는 너무 넓어 보였다. 어머니가 구매했을 흰색의 반투명 커튼이 유령처럼 천천히 나부꼈다.
손을 씻고, 옷을 갈아 입고, 문제집을 꺼내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그러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마후유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목이 조여드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 중 무엇이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목이 탔다. 마후유는 주방으로 나왔다. 컵에 물을 따라 들이켰다. 주방은 어머니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찻잔. 어머니가 골라 준 마후유의 도시락통. 마후유는 그것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식기뿐만이 아니었다. 이 집의 공기, 딛고 있는 바닥, 물을 마시고 있는 자신까지 모든 것이 어머니의 흔적이었다. 모든 곳에 어머니가 있었다. 마후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책상 위의 사과가 돌아가려던 마후유의 시선을 붙잡았다. 깎은 지 꽤 시간이 지난 듯 갈변된 상태였다. 아마 마후유의 하교를 기다리며 깎아 두셨으리라. 어머니는 사과를 자주 사 오시곤 했다. 어린 마후유는 사과를 좋아했으니까. 마후유는 사과의 달고 시원한 맛을 좋아했고 토끼 모양을 낼 때 남는 붉은 껍질을 좋아했다. 종종 깎아 달라고 어리광을 부릴 만큼.
마후유는 사과를 집어 입에 넣었다. 기억과는 조금 다른 질감의 과일이 입 안에서 부서졌다. 상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음식에 깐깐했고 갈변된 과일은 입에 못 대게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 없었다. 어차피 마후유에게는 모든 게 똑같았다. 배앓이를 조금 하면 그만이었다.
마후유는 자리에 앉아 그릇 위의 사과를 전부 먹었다. 의미 없는 짓이다. 어차피 마후유는 맛을 모르니까. 맛을 알게 된대도 여전히 아무 의미도 없다. 이 사과는 달고 시원하지도, 껍질이 붉게 반짝이지도 않는다. 마후유는 사과를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씹고 삼키는 행위가 조금 힘겨웠다. 속이 더부룩했다. 마후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엄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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