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후유의 바다

2023년, 아사히나 마후유의 생일을 축하하며

피로하다. 관성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아사히나 마후유는 그렇게 생각했다. 책상 위에는 아직도 선물이 꽤 많이 쌓여 있었다. 마후유는 초콜릿 박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사히나 선배, 생일 축하해요. 그렇게 말하던 후배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그 말이 어쩐지 자신의 몫 같지가 않았다. 선물도, 축하도, 케이크도 모두 다른 사람의 것이고 자신은 다만 그것들을 정리하고 있을 뿐인 것 같았다. 

그래, 피로한 날이었다. 세카이에서 파티를 했을 때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는데. 조금은 따뜻하고 간지러워서 힘들이지 않고도 고맙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그 감정마저도 휘발되어 버리고 피로만이 남아 있었다. 생일 축하해. 마후유는 입 안에서 그 말을 가만히 굴려 보다가 곧 관두었다. 누구의 몫도 아닌 축하가 어색했다. 낮에 먹은 초콜릿 케이크처럼 맛도 향도 없이 좋지 않은 촉감만을 남기고 입 안에서 뭉개졌다. 

‘이제 마무리된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몸을 움직이자 선물 정리는 거의 끝나 있었다. 책상 위에는 몇 개의 선물만이 남아 있었다. 장갑과 머리끈, 병 안에 든 꽃과 무선 이어폰, 마린 스노우 돔. 마후유는 손을 뻗어 그것들을 치우려다, 곧 관두었다. 다른 선물과 같은 곳에 보관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그것들은 자신의 몫이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후유는 마린 스노우 돔을 들어 보았다. 해초와 물고기 장식 위로 가짜 눈이 내렸다. 어쩐지 방에 있는 수조가 떠올랐다. 흔들리는 수초를 구경하듯, 마후유는 스노우 돔을 몇 번이고 뒤집어 보였다. 바다 위로 눈이 날렸다. 피로해진 마음이 점점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마후유는 며칠 전 했던 대화를 떠올려 보았다. 우리 넷 다 졸업하면 다 같이 여행 가자. 가고 싶은 곳 있어? 글쎄, 나는 삿포로? 마후유는? 그 질문에 마후유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바다. 바다에 가고 싶어. 대답할 줄 모르고 던진 질문이었는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바다는 왜?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마후유는 물이 좋았다. 그 안에서 흔들리는 수초의 움직임이, 안에 든 것을 비추는 투명함이, 그 고요함이 좋았다. 좋다는 단어를 쓰는 게 적절한지는 몰랐지만, 그것보다 더 맞는 단어를 찾기가 힘들었다. 니고를 보며 마후유는 좋아한다는 단어를 배웠다. 마후유와 다르게, 모두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고 떠올리며, 붙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학교에서 마후유는 종종, 빨리 집에 가서 수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은 곧 사라지고 마후유는 다시 자신의 역할에 집중했다. 그렇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떠올리게 된다면, 아주 잠깐이라도 일상에서 눈을 돌리게 된다면. 그것은 좋아함이 아닐까. 

마후유, 바다가 뭐야? 언젠가 미쿠가 물었었다. 물이 아주아주 넓게 퍼져 있어. 유리벽도 없고 조용하지도 않아. 바람이 불면 물이 움직여. …그렇구나. 마후유는 바다를 좋아해? 미쿠가 말하자 마후유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자신은 바다를 좋아하는 걸까.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종종 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

바다를 모르는 미쿠는 마후유가 건넨 마린 스노우 돔을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다. 돔을 천천히 오래 뒤집어 보는 미쿠의 눈이 반짝였다. 마후유, 이게 바다야? 비슷해. 하지만 훨씬 커. 유리에 둘러싸여 있지도 않고,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어. 미쿠는 스노우 돔을 한번 더 흔들더니 말했다. 예쁘다. 나, 마후유랑 바다에 가 보고 싶어. 

스노우돔. 바다. 수조. 머릿속을 이런저런 생각들이 채웠다. 마후유는 스노우돔을 집어 수조 속에 넣어 보았다. 물은 잠시 흔들렸지만, 다시 안에 있는 것들을 투명하게 비추어 주었다. 유리병에 든 꽃 역시 집어넣었다. 물에 젖으면 안 되는 머리끈과 무선 이어폰은 수조 옆 자리에 가만히 두었다. 수초는 여전히 천천히 흔들렸다. 물은 전처럼 비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여전히 마후유의 수조인 것 같았다.

언젠가, 내가 바다에 정말 가고 싶은 건지 알게 된다면. 수초를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이유를 알게 된다면. 그때는 안에 무언가를 키워 보고 싶다고 마후유는 생각했다. 그게 무엇이 될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것은 마후유의 수조일 것이다. 마후유의 바다일 것이다. 어딘가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마후유는 조용히 시원한 수조 유리 위에 손을 얹었다.

생일 축하해. 이 말을 다시 입 안에서 굴려 보았다. 여전히 맛도 향도 없었지만 그 질감은 더 이상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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