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카나

비밀

세카이에 앉아 머릿속을 부유하던 악상을 정리해 나가고 있는데, 돌연 뒤에서부터 감싸 오는 부드러운 중량과 향기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이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존재가 미쿠들과 나이트코드 멤버들뿐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튀어나온 생리적인 반사 반응이었다.

 

 “미, 미즈키……?”

 

 목과 어깨에 둘러진 두 팔 위로 보이는 옷차림의 편린과 코에 닿은 익숙한 향기에 어렵지 않게 떠오른 사람의 이름을 조심스레 입에 올렸다. 이젠 ‘Amia’보다 ‘미즈키’라는 호칭이 입에 더 자연스럽다는 것에 긍정적인 의미로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어깨와 목이 이어지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차갑지 않은 간지러운 숨결이 고르지 못했다. 이런 식의 감정 표현을 원체 하지 않던 미즈키였기에, 마음 한 구석에 앉아 있던 당혹이 심려로 조금씩 형태를 바꾸어 갔다. 나는 그 감정을 따라 몸을 돌려 미즈키를 마주 보려 했지만, 나를 안고 있는 힘이 생각했던 것보다 강해서 그럴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앞쪽에 시야를 고정해 두고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어?”

 

 평소에 잘 내보이지 않던 말이나 행동을 갑작스럽게 밖으로 드러내는 이유는 무슨 일이 있을 때밖에 없다. 남이 보기에 크든 작든 간에 말이다. 갑작스럽게 쓰러져 버린 아빠가 내게 알려 준 것 중 하나다.

 

 “…으응, 그런 질문을 받을 정도의 일은 없었어.”

 

 미즈키는 자신의 숨결이 닿는 부분에 고개를 파묻고 천천히 가로로 저었다. 그의 말투는 확실히 평상시에 얘기를 나눌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밝고 경쾌하다면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내 안의 심려가 몸집을 키웠다. 이유는 단순했다. 평소와 다른 언행을 내보여 놓고 곧장 아무렇지 않은 듯이 세상 밖으로 나온 자신의 언행을 언제나의 일상과 다를 것 없는 순간 중 하나로 포장하려 드는 태도. 그 태도가 무슨 일이 있는 사람이 취하는 패턴 중 하나라는 걸, 마찬가지로 아빠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목에 감긴 미즈키의 두 팔 위에 나는 마치 소중한 물건을 다루는 것처럼 살포시 양손을 올렸다. 미즈키는 나처럼 떨기는커녕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정말?”

 

 내 물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건지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건지, 미즈키는 언어로 이루어진 대답을 내놓는 대신에 팔에 힘을 줘 그의 품 안에 나를 조금 더 밀어 넣었다. 그에 맞춰 내 어깨에 머물던 숨결이 자연스레 자리를 옮겼다. 내 귓가를 새로운 둥지로 삼은 미즈키의 숨결은 딱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간지러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은 상태로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 별일 없었어……?”

 

 ---

 

 이것저것 재지 않은 순수한 걱정이 담긴 카나데의 질문에 나는 그녀를 조금 더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카나데를 감싸고 있는 유리처럼 가느다랗고 얇은 선이 그만큼 눈앞으로 더 다가왔다. 이렇게 금방이라도 기화해 버릴 것 같은 연약한 사람이 구원이라는 단어가 입버릇이 된 상황과, 그 상황들이 모여 만들어진 현재와 앞으로의 미래에 넌덜머리가 났다.

 아까 전에 카나데에게 얘기한 대로,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은 이유는 정말 별거 아니었다. 평상시에도 은은하게 가지고 있던 우울감이 이유 없이 오늘따라 조금 더 꿈틀거렸고, 그것에 맞춰 목적 하나 없이, 정처 한곳 없이 몸을 움직이던 나의 마지막 장소가 세카이였으며, 이곳에서 우연히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 카나데였다. 그리고 그 작은 등을 마주한 나는 뒤에서부터 카나데를 안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래,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확실히 그뿐인 일이었고 별거 아닌 일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오늘이 끝났더라면 계속 그뿐인 일,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내 행동을 실수에 가까운 것이었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막상 카나데를 안고 나니, 새삼스레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구원’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실체감 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압감을 모르고 있던 바는 아니었다. 모니터 너머에 있는 생면부지의 타인에게까지 영역을 확장할 필요도 없이, 당장 함께 활동하는 중인 마후유와 카나데가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만 놓고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를 내 품 안에 넣음으로 인해 추상적인 개념이었던 중압감이 실체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 카나데의 어깨 위에는 내가 취하고 있는 자세처럼 여러 사람의 다양한 사정이 올라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카나데의 어깨 위에 보금자리를 만든 그 사정들이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냐 한다면, 분명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카나데는 그것을 감당해야만 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본인이 본인을 그렇게 몰아세웠다. 그러고 카나데는 자신의 생각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벅차고도 남았을 가족 일 위에 강박에 가까운 신념을 얹은 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스스로를 마모시켜 나간다는 선택지를 택했다. 제 어깨 위에 있는 것들과 본인을 끊임없이 마찰시키며 자신을 작게 만들어 없애는 그런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조금 더 자신을 소중히 했으면 좋겠는데. 무심코, 어떤 의미에선 자연스레 떠오른 그 생각 하나에 나는 자괴감에 둘러싸였다. 얼핏 보면 선의에 가득 찬 생각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실상은 참,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더럽게 이기적인 것이었다. 카나데가 고른 마모 덕에 나는 이 순간에도 생명체의 본능을 따라 호흡을 반복하고 있고, 누군가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주어졌으며, 이렇게 누군가를 안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저 내가 숨통이 좀 트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카나데의 감정과 행동의 흐름, 그리고 그녀가 떠맡고 있는 다양한 사정들을 무시한 것이니 말이다.

 여전히 헤매고 있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뇌와 심장 사이에 있는 미로 같은 감정 안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 내게, 카나데는 계속해서 무슨 일 있었느냐, 정말 아무 일 없느냐, 하며 나를 향한 걱정의 말을 반복적으로 그 작고 옅은 입술에 실었다.

 

 “카나데는……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해?”

 

 입에 담는 순간부터 무리 없이 대답을 그릴 수 있는 물음을 건넸다. 카나데라면 분명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 음악을 듣고 웃음 지을 사람들을, 구원 받을 사람들을 떠올려. …한 번씩은 아빠의 말도 떠올리고.”

 

 그래, 그럴 줄 알았어. 한숨을 폐 속에서 삼켜 없애며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떨어뜨렸다. 카나데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고개를 들 생각도 없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심코, 이렇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다 내려놓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안 들어?”

 

 ---

 

 다 내려놓고 싶다, 라. 미즈키의 질문을 속으로 되뇌고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글쎄. 최근엔 머릿속이 곡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해서인지 그런 생각은 잘 안 한 것 같은데……. 왜?”

 

 미즈키는 다 내려놓고 싶어? 그런 얘기를 입에 담아도 될지 잠깐 고민했지만, 마음속을 지배하듯 거닐고 있는 충동이 너무나도 명백했기에 나는 침을 살짝 삼키고 떠오른 물음을 덧붙였다.

 

 “…아니. 요즘엔 그런 생각이랄까, 느낌은 잘 안 들어. 니고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좀 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야.”

 

 심중에 안심이라는 감정이 서서히 퍼져 가는 걸 느끼며 나는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지금은 마후유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멤버들을 모른 체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춘 마후유를 만나기 위해(미쿠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후유를 도와주기 위해) 세카이라는 곳에 처음 발을 들였던 그때 마후유는 “너희들도 나랑 다를 거 없잖아.”라고 얘기했고, 마후유를 설득하러 나를 포함한 멤버 전원이 세카이에 집결했을 때 미즈키는 “마후유의 기분, 조금이지만 알 것 같아.”라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이야…….”

 “카나데.”

 

 안심에 젖어 나도 모르게 흘리듯 중얼거린 한마디를 잘라 내듯이, 미즈키가 내 이름을 강한 어조로 포장해 불렀다. 그다지, 아니, 아마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그 말투에 나는 아까와 비슷하게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응……?”

 

 역시 아까 그 질문은 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까.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뒤쪽에 있을 미즈키의 표정들을 멋대로 그렸다.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달고 이리저리 뻗어 나가던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표정들이 기어코 내 시신경까지 도달했는지, 아무것도 없는 눈앞의 풍경 위에 상상이 낳은 감정들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카나데의 일에도 그렇게 웃으면 안 돼?”

 

 내 일? 내 일이라니?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어, 미즈키.”

 

 솔직함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담은 내 말에, 귓가에 머물고 있던 미즈키의 숨결이 불규칙해지면서 온도가 올라갔다. 예기치 못한 그 변화에 나는 숨을 죽였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움이나 당혹 같은 감정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었기에, 나는 잠자코 다음에 이어질 변화를 기다릴 수 있었다.

 이윽고 내 어깨 위로, 꼭 여름날의 빗물처럼 따뜻하지만 촉촉한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치고는 꽤나 다급한 말투로 미즈키의 이름을 부르며 입을 열었다.

 

 “그,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런데 이제 슬슬,”

 

 그러나 미즈키는 그런 내 말을 가로막듯 “조금 더 이대로 있고 싶어.” 하고 얘기했다. 그 한마디에, 떨리는 목소리로 내 귓가에 닿은 그 한마디에 나는 돌아봐야겠다는 의지를 잃고 침착함을 되찾았다.

 미즈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것을 알아낼 방도가 내게는 없다. 나한테 있어 명확한 건 미즈키가 드물게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과 한동안 이 자세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나는 팔을 뒤로 뻗어 미즈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즈키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 이렇게 있어도 돼.”

 

 내 얘기에 미즈키는 이렇다 할 대꾸를 내놓지 않았다. 혹시 자신이 무리한 부탁을 하고 있다고,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사고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자 점점 그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럴 필요 없는데, 하는 생각을 담아 미즈키에게 눕듯이 몸을 기댔다. 온전히 몸을 위탁한 그의 품 안은 짐작하고 있던 것보다 조금 더 넓고 포근했다.

 

 “나는 카나데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미즈키의 품 안에서 잠에 들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데 나지막하게 그런 얘기가 들렸다. 나는 대답을 하기에 앞서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희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야.”

 

 내 대답에 미즈키는 어떠한 대꾸도 없이 나를 꼭 끌어안았다.

 뒤에서 작게 들리던 훌쩍임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만의 비밀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울어.

 마음속으로 그런 말을 건네며 나는 미즈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째서인지 귓속에서 오르골 소리가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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