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날 좋아할 리가

에나마후 마후에나

삼림 by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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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나가 좋아졌어.”

“열 나니?”

탱그랑. 커터칼로 공들여 길게 깎은 미술연필의 심이 바닥에 닿아 부러졌다.

의아함을 숨기지 못하고 눈과 눈썹 사이가 한참이나 멀어졌다. 얘가 장난으로 이런 말을 할 애던가?

“연애적 의미야.”

표정을 살피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얼굴을 들여다보자 듣는 척도 안 하고 뒷말을 이었다.

드로잉 북을 내려놓고 마후유의 이마에 손을 턱 내려놓았다. 뜨뜻하지만… 원래 마후유는 체온이 높다. 내 손이 그렇게 차가운가? 딴 생각으로 새려들자 차가운 빛깔의 눈동자가 한참이나 이쪽을 노려봤다.

불만이 있음이렸다. 아니, 황당한 건 이쪽이거든? 난데없이 그런 말을 들어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데? sns에서 칭찬이나 장난성 고백을 듣는 정도야 익숙한 일이지만 직접 목소리로 전해 듣는 건 워낙에 드물었다.

물론 에나 자신이 저도 모르게 기백이 넘치기에 부끄럼을 숨기려는 저들만의 눈치싸움으로 이어져 여토록 없었던 것이지만, 본인은 알 리가 없다.

살며시 손을 내려놓으니 시선이 따라 내려갔다. 왜 아쉬운 것처럼 그러지?

“이것저것 모르겠다고 일관하더니… 무슨 바람이 분 거야? 드라마라도 봤어?”

“그럴 시간 없어.”

“만화?”

“없어.”

“소설?”

“아니.”

“연애 수다?”

“……”

“헤에.”

마후유도 동년배가 어설프게 건드는 화제에 휘둘리기도 하는구나.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윽.”

얘는 가끔 독심술하나 싶기도 한 적이 한둘이 아니다. 진짜 대하기 까다롭다니까.

“말해두는 건데, 에나가 얼굴에 드러나기 쉬운 편이라고 생각해.”

뭔가 못마땅해져서 힐끗 째려보면서 바닥에 떨어진 연필을 주워들었다. 혼잣말로 부러진 연필심을 아까워하며 훅 불어 먼지를 털어냈다. 아니, 세카이도 먼지가 쌓이나? 차가운 음식을 불어서 식히는 짓을 한 게 아닌지 슬쩍 의심했다.

다시 그려볼까 했는데 부드럽게 연필을 빼앗겼다. 그 손을 따라 고개를 드니 가깝게 다가온 마후유의 얼굴이 보였다.

진짜 예쁘다. 얼굴의 조형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피부의 톤이나 맑은 정도, 감정을 빼둔 것 같은 눈빛에도 퇴색되지 않는 푸른 눈의 빛깔이 유독 아름다운 인상을 줬다. 억센 곱슬의 앞머리가 그 위를 덮는 것까지.

가볍게 그 얼굴에 눈을 사로잡힌 틈에 어느샌가 마후유가 가까이 턱을 들이댔다. 아니, 어림도 없지. 무슨 짓이야? 고개를 돌리면서 그 예쁘장한 얼굴을 밀어냈다.

“뭐하는 거야?”

내 손에 밀려난 탓에 턱을 치켜든 모양새로 이쪽을 바라봤다. 이 굴욕적인 각도에도 못생길 수가 없다니 무슨 일이야.

“잘 모르겠어.”

“야!”

이녀석의 잘 모르겠어, 라는 말은 속으로 생각이 너무 많아서 충돌한 탓에 발생한 응답없음을 출력하는 것과 동일하리라. 컴퓨터같은 인간. 알면서도 열이 뻗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퉁치지 말고 중간에 떠오른 말 전부 다 말해.”

“……”

얼굴을 놔주자 더듬더듬 제 목을 만지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무릎 위에 손을 가지런히 올려두고 잠시 말을 정리하던 마후유는 어쩐지 풀이 죽은 낌새로 에나를 바라봤다.

“아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

“가사 담당이 무슨 소리야. 다시 생각해봐.”

확실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전교권에서 노는 애가 하는 말이다. 니고에서 제일 말도 잘하고 똑똑한 주제에 이런 쪽에서는 꼭 이렇다.

“……”

“……하아.”

이렇게 되면 마후유는 결코 입을 열지 않는다. 맥이 빠져 양손으로 마후유의 뺨이나 머리를 톡톡 쓰다듬어주고는 씩 웃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줄게.”

감사하라구. 덧붙인 말에 마후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 어깨에 머리를 묻고 긴장을 늘어뜨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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