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퇴근하는 마후유의 발 아래로 마른 낙엽이 밟혔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낙엽은 공중으로 흩어졌다. 바람이 데려온 한기가 코트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마후유는 바르르 몸을 떨었다. 아직 가을이라지만 날씨가 추웠다.
괜스레 따스함이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덥혀줄 난로 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따스하고 다정하고, 항상 내 곁에 있어주는 그런 사람. 그렇게 중얼거리다 마후유는 묘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단어들이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모습은 항상 N극을 향하는 나침반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가 하나라면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마후유 본인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후유는 간단히 손만 씻고 침실로 들어섰다. 환한 불빛과 함께 침대 위에 널브러진 사랑스런 이가 눈에 들어왔다.
예쁘다. 그 말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툭하면 집으로 파고드는 마후유를 보고 동료들이 집에 보물이라도 모셔 둔 것 아니냐고 놀리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닌 셈이었다. 변함없는 따뜻함으로 마후유, 마후유, 하고 불러주는 이가 보물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꼭 보물이 값비싼 물건일 이유는 없었다.
마후유는 자고 있는 카나데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햇빛을 거의 받지 못해 창백한 피부. 감긴 눈 아래로 가지런히 뻗어 있는 길고 예쁜 속눈썹. 오밀조밀 배열된 코와 입. 고운 실처럼 흘러내리는 은빛 머리카락. 귓가에 나지막이 들리는 새근거리는 울림까지.
눈높이를 맞춰 허리를 숙이면 자는 사람 특유의 얕은 호흡이 마후유의 얼굴에 와 닿는다. 평소였다면 그저 공기의 흐름이었을 터인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마후유는 가만히 눈을 감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따뜻한 숨결과 함께 규칙적인 새근거림이 잔잔한 물결처럼 방 안을 맴돈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들었다. 커튼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카나데가 일어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할 25시까지는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며칠씩 밤을 샜으니 쉽게 일어나지는 않으리라고, 마후유는 그렇게 예상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감상해도 되겠지.
마후유는 그냥 침대에 몸을 누이기로 했다. 싱글 사이즈 침대 두 개면 충분하다는 카나데의 의견을 못 들은 체하고 주문한 킹사이즈 침대였다. 카나데의 체구가 작다고는 해도 2인용이니까. 혼자서 핑계를 대며 주문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곤히 잠들어 미동도 않는 카나데를 보며, 마후유는 눈앞의 뺨을 콕콕 건드렸다. 갓 구운 빵을 만지는 것처럼 말랑하고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마후유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깨어 있는 카나데도 물론 좋지만, 원하는 만큼 지긋이 바라볼 수 있는 카나데도 좋았다. 빤히 쳐다볼 때마다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해버려서 좀처럼 기회가 없던 탓이었다.
카나데는 부끄럼쟁이라니까.
에나와 미즈키가 투닥대며 골라온 옷을 성화에 못 이겨 입어볼 때도 그랬다. 이런 옷은 잘 안 입어 봤는데...하고 중얼거리면서 볼을 붉히는 카나데는 마후유가 보기에도 제법 귀여웠다. 레이스와 리본에 둘러싸인 모습이 꼭 마후유가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공주님 인형 같았다. 그날 마후유는 집에 돌아가다 말고 카나데의 머리카락에 리본 핀을 꽂았었다. 물감이라도 푼 것마냥 빨갛게 물드는 카나데의 얼굴이 인상적이었다고, 마후유는 어렴풋이 기억을 떠올렸다.
뒤척거리는 카나데를 보고 마후유는 엷게 미소를 지었다. 눈앞의 사랑스런 이는 뭘 해도 예뻤다. 작곡하는 모습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낑낑대는 모습도, 지금처럼 잠든 모습도. 마후유는 토닥토닥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손을 타고 따뜻한 체온이 스며들었다. 한없이 사랑스러워서 마후유는 몇 번이고 잠든 카나데를 안아 주었다.
일곱 시에 가까워지는 시곗바늘을 보고 문득 저녁밥 생각이 떠올랐다. 며칠씩 작업하는 카나데가 꼬박꼬박 식사를 챙겨 먹었을 것 같지 않았다. 카나데를 못 믿는다는 건 아니지만, 카나데는 집중하면 식사 같은 건 금방 잊어버리니까...마후유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카나데가 일어나면 바로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놓을 생각이었다. 칼날이 도마에 부딪히는 소리가 부엌에 울렸다. 가스레인지에서는 냄비에 담긴 물이 보글거리며 끓고 있었다. 마후유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 좋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이의 존재는 하루의 피로마저 말끔하게 녹여 버리는 힘이 있었다. 마후유는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손끝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서, 영양과 모양을 고려하면서...이상하게도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후유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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