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욕

프로세카 by Sh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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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나 마후유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학교는 끝났고 예비교 활동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애매한 시간대에, 조금 들뜬 발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 예쁘게 묶인 보라색 머리카락 뒤에서 소곤대는 목소리가 들린다.

"와, 아사히나 선배다. 어디 가시는 거지?"

"당연히 공부하러 가는 거겠지. 그 성적을 유지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걸."

"하긴 그렇겠지? 아사히나 선배는 뭐든 잘하니까."

그들은 마후유에게 직접 대답을 묻지 않는다. 동경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등생'에게 말을 거는 것이 부담스러워서인지. 마후유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교문을 나서는 것뿐인데 다들 제멋대로 판단을 내린다. 너희가 뭘 알아.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 삼키고 착한 아이의 표정을 짓는다. 지금 누군가 아사히나 마후유를 본다면 깜짝 놀랄 만큼 예의 바르고 친절한 학생이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역겨움을 떨쳐내기 위해 걷는 속도를 조금 올린다. 학교를 등지고 걸으면 학생들의 목소리도 조금씩 줄어들 줄 알았건만,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시끄럽다. 다른 학생들이 흥미 있어하는 주제인 연애나 아이돌 따위는 마후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TV에서 유명 연예인들의 열애설이 나도,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이 새 앨범을 내도 마후유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착한 아이 마후유의 세상에 그런 것들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이물질이었다. 마후유의 어머니는 청소라는 이름으로 그런 '이물질'들을 깨끗하게 치웠다. 그리고 비어버린 자리에는 두꺼운 책을 꽂아넣었다. 대개는 '의대 가는 법'이나 '의대를 목표하는 수험생을 위한 참고서'같은 것들이었다. 지나치게 깔끔하고 빳빳한 책은 잊을 만하면 마후유의 손끝에 상처를 내곤 했다.

마후유가 방에 어항을 두려고 했을 때도, 어머니는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마후유를 흔들었다. 마후유, 괜찮겠니? 엄만 널 걱정해서 그러는 거란다. 물고기를 키우다가 공부에 방해가 되면 의대에 못 갈지도 모르잖니. 물론 마후유가 알아서 잘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마후유가 나중에 후회할까 걱정이야.

걱정이라는 단어로 예쁘게 포장된 속박이 유려한 말투와 너무나도 잘 어울려, 마후유는 그대로 토할 뻔했다. 몇 번이나 설득한 끝에 어항에 수초만 넣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지만 그조차도 못마땅해하는 것 같았다. 수초를 돌보다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면 아깝지 않겠니? 일렁이는 수초 너머로 환영이 보이는 듯했다. 

사실, 아사히나 마후유의 방은 일반적인 고등학생의 방이라고는 생각 못 할 만큼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책은 색깔과 크기별로 정리해 순서대로 꽂혀 있다. 벽면에 걸린 미야마스자카 여학원 교복은 잔주름 하나 없이 단정하다. 마후유는 순간 자신이 물고기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생기 없는 인공 수초 사이에서 떨어지는 사료만을 받아먹고 사는 물고기. 꽃잎처럼 흔들리는 꼬리와 선명한 몸통 빛깔로 눈길을 끌지 못하면 가차없이 평가 절하되는 물고기. 그물 안에서 힘없이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물고기. 아사히나 마후유의 방은 섬세하게 얽힌 그물이자, 거대한 수조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잠깐이나마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니까. 그 아이를 생각하면 무거웠던 발걸음도 깃털처럼 가볍게 변했다. 현관문이 열리면 그 아이는 따뜻한 미소로 마후유를 맞이할 터였다. 뛰어나다고 하기 힘든 서툰 솜씨로 차를 우리고,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뒷맛이 조금 쓴 홍차를 마시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마후유는 익숙한 집 현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집주인은 반응이 없다. 평소의 마후유였다면 조금 더 기다렸겠지만,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그 포근한 미소를 보고 싶었다.

딩동. 딩동 딩동.

두 번, 세 번. 마후유는 예의 따위는 무시하고 계속해서 초인종을 눌렀다. 얼른 나오지 않는 것이 짜증스럽다는 듯이. 

카나데, 왜 문을 안 열어주는 거야.

간병을 받은 이후로 마후유는 자연스레 카나데가 어디에 사는지 알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습관처럼 카나데의 집을 찾았다. 마후유가 찾아가면 카나데는 조금 놀라면서도 찾아온 손님을 잘 대접하려 애썼다. 약간 쓴 차도, 설익은 쿠키도 카나데가 정성껏 만든 거라고 생각하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마후유의 등장으로 요이사키 가의 적막은 깨지곤 했다. 마후유는 그것이 좋았다. 새벽부터 두텁게 쌓인 눈 위에 살며시 첫 발자국을 남기는 듯한 묘한 소유욕이 채워지곤 했다. 

"마후유, 미안해! 작업하느라 소리를 못 들었어."

초인종을 열 번쯤 눌렀을까. 하얀 은발의 소녀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목에 헤드폰이 걸려 있는 걸로 보아서는 정말로 집중하고 있던 듯했다. 그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뒷맛이 썼다.

"...일단 들어갈게. 괜찮지?"

"아, 응. 얼른 들어와."

너를 이토록 매료시킨 게 무엇인지. 계속해서 너를 찾던 나마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흠뻑 빠져 있던 게 무엇인지.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마후유는 형태조차 없는 음계의 배열에 이유 모를 불쾌감을 느꼈다. 무미건조한 그녀가 드물게 느낀 감정이었다.

"얼른 차를 끓여 올게. 앉아 있어."

카나데는 그렇게 말하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마후유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선반에 놓인 찻잎을 꺼내고 주전자에 새 물을 받는다. 가스레인지의 일렁이는 불꽃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는다. 희미한 김이 나면 불을 끄고 찻잎이 담긴 찻잔에 내용물을 붓는다. 옅은 홍차 향이 마후유의 코를 간지럽힌다. 아주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마후유는 부지런히 눈을 움직였다. 뜨거운 찻물에 카나데가 손을 데거나 하는 다소 서툰 장면까지도 그대로. 카나데가 자신을 위해 차를 우리는 것을 오롯이 간직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마후유, 차 다 됐어."

"고마워."

그렇게 말하는 카나데의 미소는 따뜻했다. 우아하지만 무관심하던 엄마의 미소와는 너무나 다른 양상을 띠었다. 왜일까. 마후유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쓴맛을 기대했던 찻물은 더 이상 쓰지 않았다. 카나데도 차를 우리는 데 조금은 익숙해진 걸까. 마후유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찻잔을 바닥까지 비웠다.

자기 몫의 찻잔을 비운 후, 카나데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마후유도 그에 뒤따랐다. 스타킹 신은 발 아래로 나무젓가락 포장지나 컵라면 박스가 밟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더 편안했다.

곧바로 마우스를 잡는 카나데를 보고 마후유는 희미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유치한 행동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작곡가가 작곡을 하겠다는 게 뭐가 이상한데? 환청 같은 목소리가 들렸고, 그 말은 옳았다. 카나데처럼 평생을 작곡에 써온 사람이 시간 날 때마다 작곡을 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머리로 그렇게 이해할수록 마후유의 짜증은 크기를 불렸다. 분명 이해되는데,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제멋대로 논리적인 이해를 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이 성가셨다.

카나데의 흰 뺨은 핏기가 없이 창백했다.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햇빛을 배경으로 아까 만들다 만 곡을 작업하고 있었다. 순간 마후유는 기묘한 충동을 느꼈다. 카나데가 나만을 바라봐줬으면 좋겠어. 컴퓨터 화면의 음표 따위가 아니라.

마후유는 그대로 카나데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아담한 어깨가 움찔하더니 마후유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왜, 마후유?"

"앉아."

그렇게 말하면서 마후유는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엄밀히 말하면 마후유가 앉아 있는 곳도 의자가 아니라 카나데의 침대였지만. 

"아, 마후유...지금은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앉아."

이유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카나데는 쭈뼛거리며 마후유 옆에 앉았다. 마후유의 숨통을 틔워 주는 은발의 여자아이가 마후유 옆에 있었다. 

"어젯밤에, 몇 시에 잤어?"

"글쎄....새벽 2시쯤 졸다가 일어나서, 지금까지 작곡을 했으니까...잘 모르겠어."

카나데, 또 잠도 안 자고 작곡을 했구나. 마후유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카나데, 누워봐."

마후유의 손이 자신의 무릎을 톡톡 건드린다. 

"마후유, 그냥 베개에서 자도 되는데."

"지금까지 안 잤다며. 얼른."

약간 억지스럽다는 건 마후유 본인도 알고 있었다. 작곡하는 상대를 방해하고는 다짜고짜 무릎에 누워보라니. 다른 사람이라면 충분히 화를 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후유가 원한다면, 알았어."

카나데는 화를 내거나 따지려 드는 대신, 순순히 마후유의 무릎에 누웠다. 

"...이러니까 엄마 생각 난다."

아마 카나데는 어머니가 존재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있는 거겠지. 아버지가 만든 음악과, 어머니의 넘치는 사랑 속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지냈던 나날을. 마후유는 말없이 카나데의 머리를 쓸었다. 예쁜 은빛 머리카락은 막히는 부분 하나 없이 고왔다. 

마후유의 손길은 카나데가 잠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새근새근, 일정한 숨소리를 내며 편안히 잠들 때까지. 카나데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가 있었다.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걸까? 마후유 자신도 웃고 있다는 건 마후유 본인만 모르는 일이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무릎에 눕힌 채 잠들 때까지 쓰다듬는 건 평범하지만 따뜻했다. 곧 예비교 활동 시작 시간이지만 마후유는 이를 무시하기로 했다. 지금의 마후유에게는 이 상황을 좀 더 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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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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