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파도를 생각하는 에나
파도를 직접 겪어본 건 몇년만에 바다에 가봤던 올 여름이었다. 여고생의 젊음과 미모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는 SNS글을 보고 떨떠름한 기분에 자리를 나섰었다. 나 귀가 얇은 편인가? 불편한 마음으로 간 바다는 결말도 별로 좋지 않았다. 3시간이나 걸려 세팅한 헤어가 예상치 못한 해일 때문에 흠뻑 젖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SNS용 사진이라고는 남길 수 없었고 추억용 사진만 잔뜩 남긴 채 돌아오고 말았다. 그때문에 한동안 성질을 부리면서 주변 사람을 괴롭혔었다. 자외선이 얼마나 피부에 쥐약인데, 그 고생을 해놓고 건진 게 없다니. 하지만 이 말에 추억은 건졌다는 정론을 얻어맞은 덕에 더는 불평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그림에 담아보겠다고 이젤이며 캔버스며 모든 그림도구를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가 바닷바람의 싸늘함에 덜덜 떨면서 오기로 버텼던 날도 있었다. 바다를 보러 간다는 말에 엄마가 멋대로 넘겨준 그인간의 망원경 덕에 수평선 가까이도 감상하고 올 수 있었다.
수평선. 직선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요동치는 파도의 모임인 것. 친절해보여도 살아남기 힘든 장소. 나에게 뒤집어씌었던 그 파도가 쉴 새도 없이 몰아치는 곳. 그곳은 마치 마후유처럼 보였다.
파도는 분명 바람과 달의 인력으로 만들어진댔나. 신경쓰이다 못해 구글을 열어 검색하니 좌르륵 나오던 글에서 보았다. 아, 그렇다면 바다는 영원히 파도가 멎는 일은 없겠구나. 마후유의 삶에도 그럴까.
마후유. 넌…
나는 왜 이렇게 마후유를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과 마후유는 의미가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고작해야 서클 동료. 사각형의 꼭짓점으로 비유한다면 서로가 가장 먼 대각선에 위치한 존재. 잠깐, 내가 지금 수학으로 비유했다고 뭐라하는 거야? 이정도는 중학생, 아니, 언제였더라. 아무튼 이미 한참 전에 배운 거거든.
됐다. 이걸 생각해서 뭐해. 지금 당장 내 인생부터 급선무인데. 걔 인생도 고생길이 훤하지만 내 인생도 똑같아. 하. 그림같은 내 인생의 높디 높은 벽을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니.
에나는 질겁하듯 어깨를 으쓱하고 쓰게 웃었지만, 이내 머리를 질끈 묶고 이젤 앞에 앉았다. 항해사는 사나운 눈썹을 하고도 입꼬리는 씩 웃었다.
내 무대는 여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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