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카네이션

프로세카 by Sh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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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쨍쨍한 7월이었다. 이글거리는 태양빛만큼 식물들은 줄기차게 꽃을 피웠다. 짙은 주황빛을 띠는 능소화, 수많은 씨앗을 품고 노란 꽃잎을 활짝 펼친 해바라기, 하얗고 청초한 백합. 꽃집에도 별의별 꽃이 다 들어와 있었다. 햇빛의 은혜를 듬뿍 받는 7월은 꽃들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계절임을 꽃집 주인은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꽃집에 소녀가 들어왔을 때 자연스레 여름에 유행하는 꽃을 권한 것인데.

"저, 혹시 카네이션은 없을까요? 흰색 카네이션이요."

"꼭 흰색 카네이션이어야 하니? 카네이션은 5월이 아니면 잘 안 나가서 많이 들여놓지 않아. 그냥 흰색 꽃이라면 백합이나 하얀 접시꽃을 써도 괜찮단다. 마침 제철이라 가장 예쁠 때고."

"꼭 흰색 카네이션이어야 해요. 다른 꽃은 안 돼요."

완강히 거부하는 은발 소녀의 말에, 꽃집 주인은 한숨을 푹 쉬었다. 사실 흰색 카네이션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붉은 카네이션이 훨씬 잘 팔려서 그쪽을 많이 들여놓을 뿐. 아무리 7월이 카네이션의 개화기라고 해도 여름에 카네이션을, 그것도 흰색으로 찾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안쪽에 있으니 갖고 올게, 하고 꽃집 주인은 상체를 일으켰다. 

꽃집 주인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은발의 소녀, 요이사키 카나데는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평소에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일이 없던 카나데로서는 이례적으로 고집스러운 태도였다. 그래도 이건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만큼은 꼭 흰색 카네이션을 준비하고 싶었으니까.

생전 카나데의 어머니는 흰색 카네이션을 좋아했다. 물론 학교에서 색종이로 접는 카네이션이나 평범한 꽃집에서 파는 카네이션은 모두 빨간색이었기에, 카나데는 흰색 카네이션을 구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손수 발품을 팔아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구한 흰색 카네이션을 붉은색 카네이션과 함께 건네면, 어머니는 꽃다운 미소를 지었다. 꽃봉오리였던 카네이션이 서서히 꽃잎을 펼치고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듯한 미소였다. 그 미소는 순수한 기쁨에 차 있어서, 어린 카나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하지 않고 흰색 카네이션을 찾아오곤 했다.

카나데가 상념에 잠겨 있던 사이, 꽃집 주인은 예쁘게 포장된 흰색 카네이션 한 다발을 건넸다. 흰색만 있는 것이 약간 단조롭게 보일 수 있었으나 카나데의 마음에는 쏙 들었다. 살짝 코끝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향긋한 카네이션 향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거면 엄마도 좋아하겠지, 하고 카나데는 혼자 중얼거렸다.

어머니의 무덤까지는 거리가 제법 있어, 카나데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집 밖에 외출하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해도 어머니에게 가는 길은 기억하고 있었다. 정오의 뜨거운 햇살이 카나데의 왼쪽 뺨을 데웠다. 창밖으로 여름의 푸른 하늘과 나무가 번갈아 지나갔다. 

카나데의 어머니는 세상이 가장 싱그럽던 7월에 생을 마감했다. 그 전까지도 간간히 병원에 드나들기는 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퇴원하곤 했다. 그래서 카나데는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입원하던 날에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곧 돌아오겠지. 카나데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할머니가 카나데의 집에 찾아왔을 때였다. 할머니는 몇 번이고 눈물을 흘리며 카나데의 아버지와 긴긴 대화를 나눴다. 지나친 호기심은 독을 부른다. 당시의 카나데는 그것을 모르는 어린아이였다.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게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방문으로 가 귀를 대었다. 

".....이제....."

"..어떻게...."

".....원래도 안 좋았으니까...."

"...카나데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순간, 카나데는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손이 떨리며 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방 안의 대화가 끊기고, 당황한 표정의 아빠와 할머니가 뛰어나왔다.

"카나데, 들은 거니?"

그때의 아빠는 몰래 엿들은 것에 대해 화가 난 게 아니라,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못 들었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린 카나데는 거짓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아이고, 저 어린 것이 벌써부터..."

할머니는 눈가가 짓무를 만큼 울면서도, 카나데에게는 진실을 알리지 않으려 애썼다.

물론 의미 없는 노력이었다.

대략 일주일쯤 뒤, 카나데는 영정사진 속에서 엄마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은 혈색이 좋고 온화했다. 단지 더 이상 엄마, 하고 부르면 왜 그러니, 카나데? 하고 대답해줄 수 없다는 것이 다를 뿐. 주변의 어른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 어린 카나데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싱숭생숭한 분위기에서 며칠이 흘렀다. 카나데는 다시 원래의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없는 집으로.

카나데가 과거의 상념에 젖어 있던 사이 버스는 종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학생, 곧 종점인데 안 내려? 하는 버스 기사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카나데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무리 과거의 일이라고 해도 상실은 상실이었다. 카나데는 씁쓸함을 느끼며 꽃다발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무덤 앞의 비석에는 카나데의 성씨와 같은 한자가 쓰여 있었다.

"엄마, 나 왔어."

"난 요즘도 작곡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

평소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난 듯, 카나데는 손에 든 꽃송이들을 내밀었다.

"참, 여기 엄마가 좋아하는 흰색 카네이션이야."

그렇게 말하며 카나데는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은은한 카네이션 향기는 무성한 풀 냄새와 섞여 새로운 향으로 변했다. 꽃집에서 맡았던 향과는 또 다른 향이었다. 

"향이 정말 좋네. 엄마는 하얀색 카네이션을 좋아했으니까, 조금 사 왔어."

"있잖아, 엄마. 나는 잘 지내고 있어. 할머니가 모치즈...가사 도우미를 불러 주셔서 밥도 잘 챙겨먹고 있어."

"아빠는...여전히 병원에 계시지만."

카나데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작아졌다. 지금 이 순간 카나데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슬퍼하는 걸까. 괴로워하는 걸까. 혹은 너무 빨리 떠나버린 사람을 그리워하는 걸까.

카나데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래도, 요즘은 친구들이 생겼어."

친구들 이야기를 꺼내는 카나데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결연하고 힘이 있었다. 

"마후유, 에나, 미즈키...다들 나랑 같이 작품을 만드는 친구들이야."

"힘들 때도, 괴로울 때도, 그 친구들 덕분에 나는 계속해서 살아나갈 수 있었어."

언뜻 뿌듯함과 신뢰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카나데는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난 이 친구들과 계속해서 음악을 할 거야. 그러니까 엄마도 거기서 지켜봐줘."

그렇게 말하고 일어서려다, 카나데는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꼭이야."

7월의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다. 비록 이전의 요이사키 카나데에게 7월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비극의 달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흰 카네이션과 함께 카나데는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카나데는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계속해서 한 걸음씩 내딛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가 원하던 미래에 닿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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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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