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별을 보고 싶었어.

프로세카 by Sh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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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일 접속 못 해."

"뭐? 너 시험기간 때문에 한참 동안 접속 못 했잖아!"

"워워, 진정해, 에나. 마후유는 할 일이 많잖아."

갑작스런 마후유의 접속 불가 선언은 25시 멤버들에게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대개는 시험 기간, 가끔은 동아리 활동. 혹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다. 

"학교에서 여름 학습 캠프를 한대. 나도 참가하게 됐어."

"헤에, 미야마스자카는 그런 것도 하는구나. 언제까지 하는데?"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밤에도 공부하자는 취지로 하는 행사라서, 밤늦게까지 학교에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기는 했어도, 본 목적은 아니었다. 학교에 늦게까지 있을 거라는 것만은 사실이니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그럼, 난 나가볼게. 엄마가 부르셔."

"앗, 유...!"

끊겨버린 에나의 말을 뒤로하고, 마후유는 나이트코드 접속을 종료했다. 가장 중요한 단계를 실행할 차례였다. 마후유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교복의 주름진 부분도 좀 더 신경써서 폈다. 마지막으로 착한 우등생일 때의 미소를 짓는다. 자연스럽게, 거짓말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있잖아, 엄마. 나 내일 12시까지 학교에 있을 거야."

"그래? 무슨 일인데 그러니?"

"학교에서 여름 학습 캠프를 하는데, 나도 참가하게 됐어. 자정까지 하는 행사라 집에 늦게 들어올 것 같아."

"꼭 마후유 너도 참가해야 하는 거니? 집에서 공부해도 될 텐데."

마후유의 어머니는 영 내키지 않는 눈치다. 공부해야 하는 애를 왜 불러낸대? 어머니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아서, 마후유는 저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애써 준비한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마후유는 치맛자락을 꾹 쥐고, 평소보다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선생님께 부탁받아서 거절하기는 힘들 것 같아. 미안해, 엄마."

그리고는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할 만한 말들을 덧붙인다.

"거기 참가하는 친구들은 다들 전교권에서 벗어나지 않는 우등생 친구들이야. 그런 친구들이랑 공부하면 나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원래 진실이 어느 정도 섞인 거짓말은 훨씬 그럴듯한 법이지만, 마후유는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세상의 진리처럼 믿어왔던 어머니에게 이렇게 술술 거짓말을 하다니. 학습 캠프에 참가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마후유의 목적은 공부가 아니었다. 몇 년간의 경험으로 마후유는 미야마스자카 여학원 옥상에서 너른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물며 자정에 보는 별빛은 얼마나 예쁠까. 마후유에게는 그 별빛을 함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속임수에 과연 어머니가 속을까. 마후유는 장담할 수 없었다. 밤 12시까지 학교에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급하게 세운 계획이었다. 어머니가 조금만 더 꼬치꼬치 캐묻는다면 마후유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제발, 믿어줘. 마후유는 마음속으로 호소하듯 외쳤다.

다행히 신이 마후유의 기도를 들어준 것인지, 어머니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하지만 마후유, 무리할 필요는 없단다. 힘들다면 언제든 말하렴."

"걱정해줘서 고마워, 엄마. 그럴게."

"엄마는 마후유를 믿어. 지금까지 잘 해왔잖니."

그리고는 확인하듯 마후유에게 미소를 지었다. 마후유도 입꼬리를 올려 그에 화답했다. 어머니의 미소는 늘 그렇듯 기만적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런 것도 참을 수 있었다.

마후유는 새어나오려는 기쁨을 애써 감추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옷장을 열었다. 주말에 세탁한 여분의 교복이 한 벌 더 있었다. 미야마스자카의 교복을 입고 있다면 카나데도 외부인이라고 의심받지 않을 게 분명했다. 약간 걱정되는 것이라면 사이즈였다. 카나데는 마후유보다 체구가 작으니 마후유의 교복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어쩐다.

마후유는 고민하다 교복을 넣은 쇼핑백에 흰색 카디건도 함께 넣었다. 카디건으로 교복을 가리면 사이즈 때문에 어색해 보일 일은 없을 터였다. 교칙에도 흰색 카디건은 착용 허용이라고 나와 있었고. 이제 이 쇼핑백을 카나데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반은 성공이었다.

"엄마, 나 잠시 나갔다 올게."

"무슨 일 있니? 엄마가 대신 갔다 올까?"

"아냐, 괜찮아. 친구랑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노트를 서로 교환해서 읽기로 했거든."

그 후에 어머니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마후유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카나데의 집 방향으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도중에 신호등에 막힐 때마다 마후유는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의 마후유는 놀라울 만큼 참을성이 없었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녹색 불로 바뀌자마자, 마후유는 달렸다. 궁도로 단련한 체력은 이런 상황에서 아주 도움이 되었다. 몇 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카나데의 집이 보였다.

딩동. 딩동딩동.

다급함을 피력하듯 마후유의 손가락이 계속해서 초인종을 눌렀다. 마침내 문앞에 은발의 소녀가 나타났을 때, 마후유는 불쑥 쇼핑백을 내밀었다.

"마후유, 이게 뭐야?....미야마스자카 여학원 교복?"

카나데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카나데, 그 옷을 입고 내일 9시까지 미야마스자카 여학원 옥상으로 와 줘. 꼭이야, 알겠지?"

"마, 마후유?"

다짜고짜 부탁하는 마후유의 태도에 카나데는 당황스러워했다. 남의 교복을 입고 다른 학교 옥상에 들어가라니. 마후유는 순간 울 것 같았다. 카나데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혼자 신나서 계획을 세웠지만, 정작 카나데의 의사는 생각하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다고 그걸 강요할 수도 없었다. 마후유는 입술을 달싹이며 카나데의 대답을 기다렸다.

"마후유의 부탁이라면, 알겠어."

세상 무엇보다 따뜻한 미소가 마후유의 불안을 누그러뜨렸다. 카나데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마후유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어떤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사히나 마후유의 부탁이어서. 그거면 충분했다.

"꼭 갈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고마워, 카나데..."

카나데가 쇼핑백을 받아들고 들어가자, 마후유는 다리가 풀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다행이야. 카나데가 날 거부하지 않았어. 내 진짜 모습을 보여줘도, 거부하지 않았어.

아사히나 마후유는 그날 생전 처음으로 길가에서 눈가를 적셨다. 늘상 괜찮은 척, 착한 아이인 척하던 그녀였다. 자아와 인격까지 부수며 남은 것은 공허한 빈껍데기였는데. 그 껍데기에 따뜻한 물이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튿날 마후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름 학습 캠프로 향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골치 아픈 심부름도 다 해낼 수 있었다. 감독하는 선생님은 마후유에게 두꺼운 문제 뭉치를 건넸다. 평소에는 애물단지로 여겨지던 문제가 오늘은 지루할 만큼 쉽게 풀렸다. 문제가 모자라 몇 번이나 추가 문제를 받을 정도였다. 마후유는 도서관의 시계가 9시를 알리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뎅, 뎅, 뎅, 뎅, 뎅, 뎅, 뎅, 뎅, 뎅.

오래된 괘종시계가 정확히 아홉 번 울리고, 마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더는 풀 문제가 없는데 교실에서 문제집을 가져와도 될까요?"

"아아, 물론이지. 역시 아사히나구나. 항상 성실하네."

"아니에요, 당연한 일인걸요. 그럼 선생님, 다녀오겠습니다."

교실은 3층, 도서관은 2층이었다. 마후유는 교실 쪽으로 향하는 척하다 방향을 틀어 옥상으로 움직였다. 감독 선생님의 눈길을 완전히 피했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마후유는 살짝 열린 옥상 문을 밀 수 있었다.

"마후유, 왔구나."

마후유가 그리워 마지않던 상대가 그곳에 있었다. 여름밤 부는 바람 한 줄기에 흔들리는 은빛 머리카락. 그 머리카락의 주인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카나데. 나 왔어."

"응, 마후유."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 속에 카나데의 목소리가 속삭임처럼 녹아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불러 줘서 고마워."

카나데의 푸른 눈 속에 별빛이 비쳤다. 별바다를 현실로 옮긴다면 이런 느낌일까? 마후유는 그 바다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짙은 푸른빛 안에 반짝이는 별들이 있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영롱한 그 바다를 보고, 마후유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마후유, 여기 앉아."

카나데는 어느새 책상 두 개를 이어붙이고 있었다. 낡았다는 이유로 옥상에 방치되고 있던 책상과 의자들은 둘을 위한 아늑한 전망대가 되었다. 

"너와 함께, 별을 보고 싶었어."

"...그랬구나."

둘의 머리 위에서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무수히 반짝이는 별빛을 지붕 삼아 둘은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공부와 어머니의 기대 따위가 한낱 스쳐가는 도시의 불빛에 지나지 않게 되고, 눈앞의 별빛에 시선을 빼앗긴다. 이 순간의 별빛은 이곳이 도시라는 걸 믿기 힘들 만큼 흐드러지게 반짝인다. 눈을 감으면 보랏빛과 은빛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별빛이 눈송이처럼 떨어져, 수를 놓은 모양새가 될 것만 같다.

"내 억지를 받아줘서 고마워, 카나데."

"감사는 내가 해야지. 이렇게 아름다운 별들을 보게 됐는데."

밤하늘 오른쪽에서 흰 빛무리가 떨어지고, 마후유는 카나데의 손을 잡았다.

"카나데, 그거 알아?"

"응?"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

"마후유는 소원 빌었어?"

순수한 관심으로 가득 찬 푸른 눈동자가 오롯이 마후유를 담아낸다. 

"글쎄. 카나데는 소원 같은 거 있어?"

"나는 있어."

명확한 대답 후, 카나데는 한 박자 숨을 골랐다.

"마후유가...행복했으면 좋겠어. 누군가의 기대나 속박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카나데."

"내 소원은, 카나데가 행복해지는 거야."

둘은 물끄러미 서로를 응시했다. 한없이 상냥한 푸른색 눈동자. 보랏빛과 푸른빛이 공존하는 독특한 눈동자. 그것은 또 하나의 별이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영롱한 별.

한 쌍의 별은 오래도록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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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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