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에 집중하는 법
이한은 기분이 좋았다. 배그렉 교수가 오랜만에 이론 위주의 강의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극악의 말재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본인의 책을 짚어가며 설명하는 식이라 알아듣기 어렵지도 않았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지금 강의를 위해 꺼낸 책이 단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배그렉 교수가 손으로 집필한 단 하나뿐인 교재.
덕분에 이한과 배그렉 교수는 책상 하나를 두고 가까이에 앉아 대화할 수밖에 없었다.
배그렉 교수가 말할 때마다 드러나는, 입을 다물면 가끔 입술 밖으로 살짝 튀어나오는, 길고 날카롭지만, 수납에 실패해 아랫입술을 누르고 있는 그 송곳니를 보고 있자니……, 고양이가 생각났다.
‘이런, 세상에. 내가 무슨 생각을. 게다가 뱀파이어는 박쥐에 가깝지 않나?’
“워다나즈.”
‘그런데 박쥐 이빨이 어떻게 생겼지?’
“워다나즈?”
‘고양이 송곳니는 교수님과 똑같이 생겼는데.’
볼라디 배그렉이 이한의 손등을 툭툭 두드렸다. 화들짝 놀란 이한이 표정을 관리하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만들다 만 시약이 생각나서.”
“집중하도록.”
“예.”
생각을 들키진 않았군. 다행이다. 이한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날의 수업은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갔다.
그다음이 문제다. 이한은 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고양이 송곳니 배그렉 교수’를 생각해 버린 그날 이후로 검은 고양이만 보면 교수님이라는 생각이 들어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다. 고양이를 보지 않더라도 배그렉 교수를 보면 고양이가 생각나 이한은 반쯤 미칠 지경이었다.
‘아니. 교수님이 버두스 교수님이나 알시클 님도 아니고, 하다못해 피가 옅은 랫포드나 앙라고, 디레트 선배 같은 수인도 아닌데 교수님만 보면 고양이가 생각나는 게 말이 되나? 게다가 고양이는 귀엽잖아. 교수님은……,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멀지.’
공부하다 말고 무서운 얼굴로 책을 노려보는 학년 수석의 모습에 휴게실에 있던 학생들은 움찔거렸다.
“워다나즈 왜 저래?”
“과제가 늘어난 거 아냐?”
“그것 가지고 저럴 리가 없잖아. 이한은 공부를 좋아한다고!”
“내가 예상하기로는, 해골 교장 때문이 틀림없다.”
“아냐. 배고파서 저러는 거야.”
“워다나즈가 너냐?”
“이한! 이한!”
“헉. 저 자식 잡아!”
“마법사 카드 게임 할래? 나 새 카드 덱 만들었어. 무려 고양이 수인 바다니스 카드까지 넣었다구. 후후.”
이한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교수님을 고양이로 한 번 만들어 보면 이 고민이 끝날 텐데!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배그렉 교수님을 고양이로 만들기는 정말 미친 짓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아쉬운 대로 만족할 수밖에. 이한이 지팡이를 들어 가이난도를 겨눴다.
“으악! 이한!”
몸집이 큰 치즈태비 고양이가 카드 위에 앉아 서럽게 웨웅거렸다. 이한이 덤덤하게 다가오더니 흩어진 카드를 모아 가이난도의 카드집에 넣어주곤 고양이의 입을 벌렸다.
‘송곳니가 짧군. 털도 노란색이야. 전혀 안 닮았어.’ 실망한 이한이 한숨을 쉬었다. 가이난도가 풀어달라며 울었지만, 이한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검은 머리를 찾아봐야 하나. 요네르는 양심에 걸리고, 더르규에게 부탁하긴 미안하다. 모라디는 금발, 닐리아는……, 삐지겠지. 그렇다고 랫포드를 변신시키기엔 쥐 수인이라 좀.’
이렇게 사람이 없을 줄이야! 이한은 본인의 인간관계에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한은 배그렉 교수의 강의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배그렉 교수가 강의를 중단하고 무슨 일이 있나 물어볼 정도였으니 이한이 얼마나 산만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컨디션 관리도 전투마법사의 중요한 덕목이지.”
하지만 이걸 어떻게 말하겠는가.
강의실에서 나가려 합니다. 교수님을 더 이상 못 보겠습니다. 교수님이 고양이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고양이를 쓰다듬고 싶습니다.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교수님 강의를 포기하려 합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죄송합니다. 감기 기운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이한은 말을 돌리기로 했지만, 상대는 볼라디 배그렉이다. 볼라디 교수가 이한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체온은 괜찮은데. 몸이 많이 안 좋은가?”
큰일 났다. 송곳니다. 이한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배그렉 교수의 입가로 향했다. 전투마법사의 날카로운 감각이 이한의 시선을 포착했다.
“송곳니가 신경 쓰이나.”
“……. 예.”
이한은 포기했다. 배그렉 교수님은 이런 것으로 혼낼 분이 아니니까. 그렇겠지? 제발.
“위협적인가 보군. 송곳니는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려 보지.”
“아니, 아니. 위협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다만…….”
화내지 않는 것을 넘어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시다니! 하지만 해골 교장은 좀. 감동하려던 이한이 급하게 배그렉 교수의 말을 부정했다.
“다만?”
그리고 후회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한담.
“다만……. 저번 강의 때 무의식적으로 교수님 송곳니가 고양이를 닮았다는 생각을 해 버려서……. 죄송합니다.”
“흠.”
“변환 마법에 한 번만 걸려주시면 강의에 다시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볼라디가 고민했다. 너무 무리수를 뒀나. 이한이 한 발짝 늦게 후회했지만, 물은 쏟아지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허락하겠다. 마법 걸기엔 앉아있는 것이 편하겠지.”
고민하던 볼라디가 의자에 앉아 덧붙였다.
“그런데 워다나즈, 내 종족은 고양이보다 박쥐에 가깝다는 건 알아두도록.”
지팡이도 내려놓고 가만히 앉아있는 무방비한 뱀파이어의 모습을 보자 이한은 갑자기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런 순진한 교수님을 봤나. 아니, 배그렉 교수님에게 순진하다니 내가 미쳤나? 하지만 저 모습을 보면 진짜 순진한데. 설마 환상 마법에 걸려있는 건 아니겠지?’
왜 마법을 걸지 않지. 볼라디 교수가 눈을 깜빡였다. 그 모습에 이한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교수님에게 마법을 날려 명중시킬 귀한 기회를 이대로 놓칠 수는 없다. 이한이 마음을 다잡고 마법을 날렸다.
쾅!
이한의 뒤에 있던 책상이 부서졌다.
겨우 몸을 피한 이한은 놀란 눈으로 배그렉 교수를 바라보았다.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의 뱀파이어가 대답했다.
“미안하군. 본능적으로 공격했다. 다시 걸도록.”
“……. 예.”
설마 또 공격하시는 건 아니겠지. 이한은 방금과는 달리 잔뜩 긴장하여 방어 마법을 걸고 마법을 날렸다.
볼라디 배그렉의 손이 꿈틀거렸지만, 이번엔 참아주었는지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대신 배그렉 교수가 앉아있던 의자 위, 꼬리에 흰 리본을 묶은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교수님?”
고양이가 끄덕였다.
이한이 고양이에게 다가가자 송곳니를 보여줘야겠다 생각했는지 작은 입을 벌렸다.
귀엽다. 이한이 생각했다. 충동을 참지 못한 이한은 검은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었다.
‘핥아달라는 뜻인가.’
볼라디 배그렉이 이한의 손을 핥아주었다. 송곳니 때문에 집중하지 못했다 했으니 잇자국도 보여주기 위해 손등도 가볍게 물어주었다.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으므로 이한은 볼라디 배그렉의 털과 젤리를 만지작거렸다. 교수님도 이걸 좋아하는 것 같고. 좋아하시는 게 맞겠지? 싫어했다면 이렇게 받아주실 리가 없으니까. 열심히 자기합리화하며 배그렉 교수를 만지작거리던 이한은 마침내 만족했는지 강의 시간을 20분 남기고서야 변환 마법을 풀어드렸다.
볼라디 배그렉이 풀려 떨어진 리본을 주워 머리를 묶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괜찮아졌나.”
“예.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잘 됐군.”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그럼 준비.”
강의 시간 끝났을 때 풀어드릴걸! 한층 사나워진 배그렉 교수의 공격을 피하며 이한이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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