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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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지 않은 전투마법사

주절주절 by Ζ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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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란 무엇인가.

상처를 입으면 왜 고통을 느끼는가. 질병에 걸리면 왜 고통을 느끼는가. 어째서 고통을 느끼는 것인가.

상처를 입은 사람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아 상처가 악화되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병에 걸린 사람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아 병이 악화되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고통이란 곧, 죽음으로 이르는 것을 방지하는 일종의 경고장이라 할 수 있다.

뱀파이어는 죽음으로부터 제법 자유롭다. 그들은 치명상을 입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뱀파이어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일은 제법 까다로우며……, 섣불리 시도할 수조차 없다. 그들에게는 날카로운 손톱과 송곳니가 있으며, 사람을 홀릴 수 있는 매혹적인 외모를 갖추고 있고, 비행도 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으니, 누가 감히 그들을 상대하려 하겠는가.

볼라디 배그렉은 뱀파이어인데다가 뛰어난 전투마법사이기도 하다.


“음.”

방학을 맞아 다음 학기 시험에 쓸 교보재를 구하러 나선 볼라디 배그렉은 산산조각 난 오른팔과 찢긴 복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위험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나 상처 없이 사로잡으려다 보니 신경 써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러나 제자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위험은 감당할 수 있는 법. 그는 사납게 덜컹거리는 우리를 들고 그랑덴 시로 향했다.

키메라를 가장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곳은 역시 에인로가드다. 벤도졸 교수가 안다면 당장 달려와 귀찮게 굴겠지만, 그 교수는 지금 학교에 없으니 알 바가 아니지. 볼라디는 그랑덴 시에 머무르며 에인로가드에 가두어 둔 키메라를 돌볼 생각이었다. 머무를 여관을 구하고, 키메라를 키우는 법을 찾고, 음, 워다나즈와 마주치고.

“교수님?”

이한은 방학 중에 자신이 먼저 교수를 발견하여 부르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자신도 모르게 말이 나가는 법 아니던가. 배그렉 교수님이 이렇게까지 다치다니. 마법 범죄자인가? 습격? 아니면, 아, 설마! 이한의 등줄기에 불안함이 스쳤다.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한은 볼라디 교수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세상에. 가까이에서 보니 더 가관이시군. 이러고 돌아다니신 건가? 교수의 상태에 경악한 이한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아, 아니, 교수님.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여관의 방이 모두 나갔더군.”

아니, 그걸 물어본 게 아닌데. 이한은 어이가 없었지만 여관 주인들의 심정이 이해 갔다. 누구라도 팔이 부러지고 복부가 찢긴 뱀파이어가 숙소를 구한다고 하면 무서워서라도 거짓말을 하게 되리라. 그나저나 교수를 길바닥에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법. 버두스 교수님이라면 좀 내버려 두어도 됐지만, 배그렉 교수님은 위험하다. 아는 척까지 했는데 그냥 지나친다면 앙심을 품고 강의 시간에 더 세게 두들겨 팰 수도 있는 교수! 이한은 눈물을 삼키며 제안했다.

“그러면 제 저택에서 머무르시겠습니까? 저택에 방도 많고…….”

“그러지.”

“예……. 그럼 가시죠……. 그런데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이렇게 다치신 겁니까?”

거절해 주길 바랐건만 볼라디 교수의 장점은 고개를 잘 끄덕인다는 것이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수락한 배그렉 교수의 대답에 이한은 빠르게 체념하고 대신 강의에 대한 정보를 캐내야겠다는 심정으로 재빨리 원래의 질문을 다시 물어보았다.

“음.”

볼라디는 시험 내용을 말해주어도 될지 고민했고, 이한은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마침내 볼라디 교수가 입을 열었다.

“독이 있더군.”

그러니까 뭐가? 독이 있는 몬스터 종류가 어떻게 되더라? 이한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교수의 팔을 부러뜨리고 복부에 이런 상처를…, 아니, 잠깐!

“치료는 안 하십니까?!”

“괜찮다.”

“아니, 목숨에 지장이 없다 해도 아프기도 할 거고…….”

“뱀파이어는 죽음과 멀지. 아프지 않다.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군.”

볼라디 교수가 희미하게 웃었다. 누군가 다치면 걱정하고 보조해 주는 것은 본래 스승의 일이나, 스승을 이렇게 걱정해 주는 제자라. 나쁘진 않군. 역시 자신의 교육법은 틀리지 않았다.

매번 이런 식이시지! 걱정해 주는 보람도 없고. 울컥 감정이 치밀어 오른 이한은 입을 닫았다. 볼라디 또한 대답이 없으니 대화를 종료한 것으로 판단하고 말을 더 꺼내지 않았다.

“저번에 방문하신 적이 있어 아시겠지만, 여깁니다. 방을 치워두라고 할 테니 식사부터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도록 하지.”

저택에 도착한 이한은 하인 하나를 불러 2층의 방 하나를 정리해 두라고 시켰다. 하인은 이한 옆의 볼라디 교수를 보고 잠시 경악하는 눈치였지만 그걸 드러낼 정도로 아둔한 이는 아니었으므로 재빨리 도련님 방의 옆방을 치우러 올라갔다.

식사를 내오기 전, 볼라디 교수는 이한의 상태를 잠시 살펴보았다. 건강에 이상 없고, 성급히 위험한 일을 벌인 것 같지 않아 다행이었다.

“건강해 보이는군. 위험한 일에 섣불리 도전하지 않는 건 좋은 발전이다.”

“교수님은 건강하진 않아 보이십니다.”

이한은 살짝 비꼬았다. 어차피 배그렉 교수가 이런 것을 알아듣는 사람이던가. 그리고 예상대로 볼라디 교수는 그 말을 정말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인간 종족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군.”

“예, 그러니 붕대라도 감는 게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합니다.”

“왜지?”

“어……,”

너무 당연한 걸 묻는 볼라디 교수의 말에 이한은 잠시 멈칫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이한은 빠르게 노선을 틀었다.

“저도 교수님이 좀 무섭게 보이긴 합니다.”

“음.”

볼라디 교수는 수긍했다. 제자가 무섭다면 부탁을 들어 줘야 하지. 스승이 배려하지 않으면 누가 배려해 준단 말인가. 볼라디는 상의를 벗고 이한이 내민 붕대를 받아 배에 칭칭 둘렀다.

생각보다 훨씬 엉망인 상처에 이한은 다시 놀랐다. 팔 하박에 축장되었던 마법은 어디 가고 저렇게 시퍼렇게 멍든 것이며, 대체 무엇에 당했길래 배에 구멍이 뚫리고 발톱에 긁힌 상처가 있단 말인가? 붕대를 두르는 와중에서 차츰차츰 나아가는 상처가 어이없긴 했으나, 제일 어이없는 건 역시 이 창백한 뱀파이어 교수다. 두르기 싫어하는 것 같아 옷 위에 두르려나 했는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두를 줄은 몰랐지. 아, 그러면 옷도 새로 드려야 하나. 교수님 체격에 맞는 옷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이한이 고민하는 사이 식사가 준비되었다. 볼라디 교수의 취향으로 채소와 야채 위주의 식단이 절반쯤 되었고, 이한의 몫으로 고기와 동부식 음식이 나머지 절반쯤 되었다. 야채스프를 먹던 볼라디가 다음으로 선택한 것은 놀랍게도 고기반찬이었다.

“고기는 교수님 취향이 아니시잖습니까?”

“기억하고 있었나.”

“예……, 뭐. 채식을 좋아하시는 건 기억하고 있습니다.”

“회복에 도움이 되어서. 상처가 무섭다니 금방 낫는 게 좋겠지. 하지만 피와 상처를 두려워하면 곤란할 수 있다. 그러니…,”

“아니! 피와 상처 자체는 두렵지 않습니다! 교수님이 다치는 게 무서워, 서…….”

어느 부분에서 흐뭇해졌는지 모르겠는 볼라디 교수의 연설이 시작되기 전에 이한은 급히 말을 끊고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따지고 보면 사실로만 구성된 문장이지만 말하고 나니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아닌가! ‘아니, 이렇게 되면 내가 교수님을 엄청나게 걱정하고 의지한다는 말이 되는데?!’ 이상함을 느낀 이한은 급히 입을 닫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볼라디 교수가 웃었다.

“고맙군.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뱀파이어는 죽음과 멀고, 죽음과 멀다는 것은 곧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고통도 거의 느끼지 않으며….”

“어떻게 걱정을 안 합니까!”

걱정을 해 줘도! 다시 울컥한 이한이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제 교수님이고, 교수님이 다치면 저는 누구한테 배웁니까! 교수님이 다칠 정도의 적이 나왔으면 제가 상대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걱정되는 게 당연하죠!”

볼라디 배그렉이 이한 워다나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씩씩대던 이한은 아차 싶었는지 말을 멈추고 민망한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제 앞에 있던 훈제된 오리 요리를 볼라디 교수의 앞에 슬쩍 밀어둔 이한이 아까보단 훨씬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다치지 마시라고요. 걱정됩니다.”

“원한다면.”

볼라디 배그렉이 환하게 웃었다. 하얀 송곳니가 날카롭게 빛났지만, 그 웃음은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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